김주원(金周元)은 신라 하대의 진골귀족으로 아버지는 각간(角干) 유정(惟正)이다. 무열왕의 둘째 아들인 김인문(金仁問)의 5세 손으로 알려졌으나 최근 연구에 의하면 무열왕의 셋째 아들인 문왕(文王)의 5세 손이라고 한다. 강릉김씨의 시조다.
서기 777년(혜공왕 17년) 이찬으로 시중에 임명됐다. 그가 시중직에서 퇴임한 것은 혜공왕이 살해되고 선덕왕이 즉위한 서기 780년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시중직에서 퇴임한 뒤에도 병부령을 지냈던 것으로 보아 그의 세력은 막강했던 것 같다. 서기 785년 선덕왕이 죽자 왕위계승을 놓고 다툼이 벌어졌는데 그가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명주(강릉)서 일가 이루고 동해안 일대 다스려
강릉김씨 문중은 매년 음력 4월 20일 명주군왕릉 능향전에서 능향대제를 올리고 있다. 본사DB
'삼국사기’에 "선덕왕이 아들이 없이 죽자 군신들이 의논하여 선덕왕의 족자(族子)인 김주원을 추대하려 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귀족들이 그를 왕위에 추대한 배경은 선덕왕의 친족관계라기 보다는 실질적인 세력관계였던 것 같다. 그는 당대 실력자로서 여러 귀족들의 지지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그의 경쟁자인 김경신은 780년 선덕왕의 즉위와 더불어 세력을 잡아 상대등에 오른 인물이지만, 실제 세력면에서는 시중직에서 물러난 김주원에게 오히려 뒤졌다.
'삼국유사’ 원성대왕조에 "이찬 김주원이 상재(上宰)이고, 각간 김경신은 이재(二宰)로 있었다"고 한 것도 당시 김주원이 세력 서열의 제 일인자였음을 나타낸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김주원은 귀족회의에서 당연히 공식적인 왕위계승자로 추대될 수 있었으나, 김경신의 정변으로 그의 즉위는 실현되지 못했다.
김경신은 왕위계승의 원칙이 흔들리고 있던 당시의 상황에서 비상수단으로 왕궁을 점거하고 왕위에 올랐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김주원을 지지하던 귀족들도 등을 돌리고 말았다. '삼국유사’에는 "왕(김경신)이 먼저 왕궁에 들어가 즉위하니, 상재를 지지하던 무리들이 모두 왕에게 붙어 새로이 등극한 임금에게 배하(拜賀)하였다"고 전한다. 김주원은 왕위 계승전에서 패배한 뒤 원성왕 일파에게 위협을 느꼈던지 중앙에서 계속 거주하지 못하고 명주(강릉) 지방으로 물러난다.
명주지방은 원래 김주원의 장원(莊園)이 있었고, 또 그와 연결된 친족세력이 있던 곳이다. 김주원이 왕위 쟁탈전에 밀려 강릉으로 내려가면서 "명주는 나의 어머니의 본향이다"고 한 것을 보아 알 수 있다. 김주원은 명주에서 주관육익(周官六翼)을 관장하였는데, 그 이전에 왕위에 오르지 못하던 날 김주원은 신하 최대나와 함신 등이 궁에 들어가 거사할 것을 권했으나 옳지 못하다 하고 먼저 가족을 명주로 옮긴 다음 홀로 말을 타고 임영에 들어와서 병사를 해산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정치적 상황으로는 이같이 해석될 소지가 많으나 실제 기록은 조금 다르다. 김주원은 서기 777년 이찬으로 시중이 되었는데, 서기 785년 왕이 후사 없이 작고하자 군신이 그를 왕으로 추대하였으나, 때마침 그가 왕도 경주에서 200리나 떨어진 곳에 있었고, 홍수로 알천이 범람하여 건너올 수 없게 되자 대신들이 이는 하늘의 뜻이라 하여 상대등 김경신을 왕으로 추대했다. 그러자 김주원은 자기에게 화가 미칠 것을 염려하여 명주에 도피했는데, 원성왕은 서기 786년 김주원을 명주군왕으로 봉하고 동해안 일대의 강릉·통천·양양·삼척·울진·평해 등을 식읍(食邑)으로 다스리게 했다는 내용이다. 그 후 김주원은 이곳에서 일가를 이루며 강릉김씨의 시조가 됐다.
헌덕왕 때에 이르러 무열왕계인 김주원의 아들 웅주도독 김헌창은 앞서 선덕왕이 죽었을 때 왕위에 오른 그의 아버지 김주원이 내물왕계 귀족들의 반대로 왕위에 오르지 못한 것을 이유로 서기 822년 웅주(공주)에서 반란을 도모했으나 실패했다. 헌덕왕 17년, 헌창의 아들 범문이 고달산의 적(賊) 수신(壽神) 등 100여명과 함께 모반하여 평양에 도읍을 정하려고 북한산주를 치는 등 반란을 꾀했으나 역시 실패한다.
명주군왕 김주원의 분묘는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에 있다. 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원래의 묘는 실전(失傳)되었고 현재 전해지는 것은 조선 명종때 강릉 부사와 강원도 관찰사 등을 지낸 후손 김첨경에 의해 다시 복원된 것이다.
계단식으로 구성된 묘역에는 2기의 봉분이 앞뒤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고, 매년 음력 4월20일 강릉김씨 종중이 이곳에 모여 명주군왕제를 올리고 있다.
김주원의 후손들은 고려와 조선조에서 훌륭한 인물을 배출하여 명문으로서의 지위를 굳혔다. 가문을 빛낸 대표적 인물로는 시조 주원의 9세손 상기(上琦)가 고려 예종때 평장사(내사 문하성의 정2품 벼슬)를 지냈으며, 그의 아들 인존(仁存)은 문하평장사 상주국으로 인종때 익성동덕공신에 책록되고, 학문과 문장에 뛰어나 중요한 국사가 있을 때마다 왕이 그에게 자문을 받았다. 조선조에서 명문의 전통을 이은 대표적 인물로는 생육신의 한 사람인 매월당 시습이 있다.
박경란 lany97@kado.net
정호돈 강릉문화원장
신라하대 권력 연구 중요인물
강릉 김씨(江陵金氏)의 시조인 김주원은 신라통일의 대업을 이룬 태종무열왕의 6세손이다.
785년 선덕왕이 후사 없이 죽자, 그의 후계를 둘러싸고 다툼이 벌어졌는데, 당시 김주원이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선덕왕이 아들이 없이 죽자, 군신들이 의논하여 선덕왕의 족자(族子)인 김주원을 추대하려 했다”고 한다.
그런데 주원이 왕에 즉위하는 날 갑자기 큰 비가 내려 알천(閼川)의 물이 불어나 건널 수 없게 되자, 혹자는 “임금이라는 큰 지위는 실로 사람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인데, 오늘 폭우가 내리니 하늘이 혹시 주원을 왕으로 세우려 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라고 하여 다시 김경신을 추대하여 왕에 오르게 하였다고 한다.
삼국유사 원성대왕 조에 “이찬 김주원이 상재(上宰)이고, 각간 김경신은 이재(二宰)로 있었다.”고 한 것도 당시 김주원이 세력 서열의 제1인자였음을 나타낸 것이다. 그리하여 화백 회의에서도 김주원을 추대하려고 하였으나, 당시 상대등이었던 김경신이 화백회의의 의장이라는 직책을 이용하여 다수 귀족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먼저 왕실에 들어가 즉위식을 올렸던 것이다.
김경신이 알천신의 도움으로 즉위하게 되었다고 한 것이라든지 하늘의 뜻으로 비를 내려 재선출한 결과 왕이 되었다고 한 표현은 그의 즉위를 합리화하기 위한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 이해된다.
김주원이 강릉을 퇴거지로 택한 것은 그의 선대부터 긴밀한 관계가 있었던 것에서 연유한다. 강릉김씨세보에는 “김주원의 어머니는 연화부인 박씨인데, 집이 명주의 대천(大川) 남쪽 연화봉 밑에 있었고, 무월랑(부친 惟正을 말함)이 벼슬로 명주에 왔을 때 인연이 되었다”라고 하였다.
원성왕은 2년 후에 김주원을 명주군왕으로 임명하고 관할의 3개 군과 1개 읍을 식읍(食邑)으로 사여하였다. 신라에서 식읍을 받은 자는 그 지역의 토지뿐만 아니라 주민에 대한 지배도 인정되어서 조세와 공물·역역(力役, 노동력)의 수취까지도 가능했다.
김주원이 식읍으로 받은 곳은 그와 연고가 있는 오늘날의 양양·삼척·평해·울진지역이었다.
김주원이 받은 ‘명주군왕’의 지위는 그의 후손으로 3대에 걸쳐 세습되었으며, 이로써 김주원계는 선대 때부터 연고권이 있던 명주 일대를 기반으로 세력을 구축할 수 있게 되었다.
그후 김주원은 강릉김씨의 시조가 되었고, 그의 후손들이 이곳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현재 김주원의 분묘는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에 있다.
김부식은 '삼국사기'에서 강릉김씨에 대해 평가하기를 “출장입상(出將入相, 문무를 겸전하여 장상의 벼슬을 두루 지냄)의 명문”이라고 찬양하였다.
이렇듯 강릉김씨의 시조인 김주원은 신라 중앙조정의 권력 중심권에서 활약하다가 강릉으로 이주한, 신라 하대의 권력집중과 분산의 상관관계를 연구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인물이며, 신라시대의 강릉 역사를 연구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인물 낳는 법>
동양고전과 방중술(房中術)에 식견이 높았던 소설가 이병주는 ‘바람과 구름과 비(碑)’에서 인물 낳는 방법을 묘사한 바 있다. 여기서 주인공인 최천중은 천하대권을 잡을 자식 하나 낳기 위해서 여자를 고를 때도 신중을 기한다. 복과 지혜가 있는 여자를 고른 다음에, 합궁하는 날짜도 택일(擇日)을 한다. 그러나 소설에서는 이 택일법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이 나와 있지 않다. 너무 전문분야였기 때문에 소설가 본인도 확실하게 몰랐을 가능성이 있고, 알았더라도 복잡해서 설명을 생략했을 것이다.
조선시대 사대부 집안들은 좋은 자식을 얻기 위해서 신랑 신부의 합궁날짜를 계산했다. 어떤 날짜, 어떤 시간대에 해야 좋은가는 은밀하게 전해지는 은비학(隱秘學)이었다. 외부에 쉽게 노출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택일하는 계산과정도 상당히 복잡했다. 필자는 이 비법을 배우려고 보따리에 수업료를 넣고 전국 각처의 고수들을 찾아다닌 적이 있는데 문파마다 그 방식이 약간씩 달랐다.
공통적인 것은 음양오행의 원리이다. 먼저 신랑과 신부의 생년월일시를 파악한 뒤 만세력(萬歲曆)을 보고 이를 육십갑자(六十甲子)로 환산한다. 육십갑자로 그 사람의 생년월일시를 들여다보면, 그 사람이 어머니 뱃속에서 나와 탯줄을 자르는 순간에 우주의 음양오행 기운이 어떤 비율로 들어왔는가를 어렴풋하게 짐작할 수 있다. 우주의 기운은 별자리의 기운을 뜻하고, 이 별자리 기운은 탯줄을 자르는 순간에 들어온다. 마찬가지로 어머니 뱃속에서 수태가 되는 시점도 중요하다. 제왕절개를 하려고 계산하는 날짜와 시간이 출태(出胎) 시점을 결정하는 것이라면, 합궁날짜를 계산하는 것은 입태(入胎) 시점을 결정하는 것이다.
신랑 신부가 태어난 시점의 육십갑자를 보고 음이 부족한가, 양이 부족한가를 살핀다. 두 사람 모두 음이 부족하면 양월(陽月), 양일(陽日), 양시(陽時)로 합궁시점을 잡는다. 양이 부족하면 음월, 음일, 음시를 잡는 식이다. 1년 중에 양월은 자(子),인(寅),진(辰),오(午),신(申),술(戌)월이다. 음월은 축(丑),묘(卯),사(巳),미(未), 유(酉),해(亥)월이다. 날짜와 시간도 마찬가지다.
<자미원국>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이 겉모양으로 봐서는 각각 별개의 것으로 보이지만
도(道)의 자리에서 관(觀)할 때에는 모두가 하나라는 사실부터 이해해야 할것입니다.
천(天).지(地).인(人)의 도리가 이와 같아 밖으로 보기에는 각각 별개인 듯 하지만 진리의 눈으로 관(觀)할 때에는 전부 그 뿌리가 하나요 한몸이라는 말입니다.
온 누리가 그 근원(根源)에 있어서는 오직 하나요, 만물이 진리에 있어서는 한몸이라 함은 천지가 오직 하나의 이치로 순환.운행한다는 사실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아 땅 덩어리 또한 마치 사람의 육체와 같이 살아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몸속에서 끊임없이 맥박(脈搏)이 뛰고 동맥(動脈)과 정맥(靜脈)을 통하여 밤낮으로 피가 도는 것처럼 말입니다.
모름지기 땅이란 살아있는 생명체입니다.
이 우주 천지간에는 기(氣)라고 하는 것이 있는데, 기는 그러므로 하늘에도 땅에도 인체에도 있습니다.
그것은 인체를 형성하는 기본적인 에너지 입니다. 인체의 경우 기가 운행하는 통로를 경락(經絡)이라 하며 땅에도 역시 지기(地氣)와 그것의 흐름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산의 나라라고 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산은 수려하고 단아하며, 천지간의 조화를 잘 갖춘 지구의 정기(精氣)가 그 어느곳 보다 충만해 있으며 삼천리 금수강산 이라는 말은 괜한 말이 아닙니다.
국조(國祖) 단군 할아버지 이래로 우리 배달 민족은, 지구의 정기가 가장 왕성하게 살아 있는 이 땅에서 살아왔으니 산은 우리의 아버지요 어머니였으며 삶의 터전이었던 것이다.
산을 알지 못하는 것은 제 뿌리를 모르는 것이요, 스스로가 발 딛고 서 있는 삶의 터를 모르는 것입니다.
산은 높고 신성합니다.
우리나라는 온통 산에 에워싸여 있어 비행기를 타고 높은 곳에서 바라보면 거대하게 굽이치는 산맥과 산맥 사이의 조그만 땅에서 오밀조밀 모여 사는 것이 우리들인 것입니다.
우리는 산의 커다란 품에 안겨 대대로 그 정기를 받고 살아왔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그러할 것입니다.
<주역을 보아도 이것은 분명합니다. 우리나라는 주역 팔괘 중 칠간산(七艮山)
에 속하기 때문에 각 민족의 운세 가운데 산에 속하는 운세입니다.
예를 들어,
일건천(一乾天), 이태택(二兌澤), 삼이화(三離火)....등은 각각 중국, 미국,
독일 등을 가리키며,
우리나라는 하늘.물.불도 아닌 산의 운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무한
히 뻗어나갈 잠재력을 지닌 총각(小男)의 운세인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의 간(艮)이라 함은 만물이 시작하는 곳이자 끝맺는 곳이라
는 뜻인 것입니다.
주역의 설명에 "물시어간(物始於艮)하고 종어간(終於艮)이라" 하는 것이
바로 그 뜻 입니다.
즉 우리나라에서 인류의 원래시조가 생기고 우리나라에서 최후의 마지막을
맺는다는 말인데, 이것은 세계적인 관심거리인지라 특히 영국 옥스퍼드대학
의 고고학회 같은 데서 연구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산은 지구의 정기가 화생(化生)하는 곳 입니다.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는 지구의 기운이 온 나라에 용출하는 곳이 바로
우리의 땅이며, 산중에서도 백두산은 바로 지구의 정수리인 것입니다.
백두산은 모든 산의 조종(祖宗)이며 지구의 숨통이니
천지(天地)의 물은 땅의 생기(生氣)의 정화수(精華水)입니다.>
"삼수갑산(三水甲山)"이란? 무엇인지요....
갑산(甲山)이란 "최고의 산"이라는 뜻입니다.
성리학의 태두인 중국의 대학자 주자(朱子)는 "지구의 지붕인 곤륜산(에베레스트산)으로 부터 세 갈래의 지맥이 뻗어나갔는데,
그중 간룡(幹龍)으로 불린
북쪽 가지가 천산산맥을 타고 몽고를 가로 질러 백두산에 이르러 결(結)을 맺게 되었습니다.
곤륜산의 이 북쪽 가지가 이 세상의 천하에 비길데 없는 최고의 산인 것입니다.(天下無化之甲山)
이 "갑산"이란 그런 뜻이며 또한 이 갑산에서 발원한 물은 압록.두만.송화강으로 흘러 가는데 이를두고 삼수(三水)라 하니, 삼수갑산이란 백두산의 위용과 주변의 지세를 칭송하는 말인 것이죠.
우리나라의 모든 산세는 바로 이 백두산(갑산)으로부터 비롯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산은 바로 이 지구의 숨통과 제일 가까운 거리에 있으니 봉우리 봉우리, 골짜기 골짜기마다 빼어난 정기가 있지 않은 곳이 없는 것입니다.
백두산의 장대.웅장한 모습은 우리민족의 정기 그 자체이며 무수한 외적의 침입에도 굽히지 않고 불굴의 용기로 헤쳐나온 것은 모두가 백두산의 위용과 영기(靈氣) 때문이요,
그 신묘한 감응 때문이니, 이 아래로 가지를 뻗어 삼천리를 내려가니, 흘러가는 용(龍)마다 명당.명혈을 이루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여송과 토요토미히데요시가 아무리 우리의 명산을 파괴했어도 민족의 정기는 여전히 올올용용하게 살아 있으며, 이제부터는 찬란히 꽃 필것입니다.
이러한 지구성이 태초(太初)에 형성될 때에 곤륜산(崑崙山)을 지붕으로 하고
좌.우 양쪽으로 (수십억의 인구를 지배할 만한 대명당의 도읍지가 형성)되어 있었는데,
그곳이 백호(白虎: 오른쪽)쪽으로 로마의 교황청 자리요, 청룡(靑龍: 왼쪽)쪽으로는 중국 북경의 자금성(紫禁城) 자리인 것 입니다.
이 두자리 다 양택(陽宅)의 자리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직접적이고 감응(感應)이 빠른 음택(陰宅)에 자리가 있으니,
이 자리는 수십억년 전에 지구가 처음 생길 때부터 이미 정해져 있던 지구상에 하나밖에 없는 최대의 큰 명당 자리가 있습니다.
그 큰 명당의 자리가 바로 우리 강산에 응결(凝結)되어 있으니 이를 "자미원국(紫微垣局)"이라 합니다.
옛부터 풍수.지리에서는 4대원국(垣局)이라는 대지가 있다고 일러 왔습니다.
그 첫째가 "자미원국"이고, 그 둘째는 천시(天市) 원국으로 지금의 북한 땅인 강계(江界)지방에 있으며 셋번째가 태미(太微)원국이고 끝으로 네번째를 사미(沙微)원국이라 했습니다.
그중 이 첫번째 가는 "자미원국(紫微垣局)"에는 풍수지리에서 가장 좋다는 삼길(三吉), 육수(六秀)와 구성(九星) 정체(正體)가 모조리 갖추어진 자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대명당은 이 지구상에서는 오직 한 자리 밖에 없으며 절대로 두 자리가 없는 천하 유일의 대명당이라고 일러 왔습니다.
이제 "자미원국(자미원)"이란 어떤 곳이며 지구의 신비를 증명해낼 그것은 과연 어떤 곳인지 여러분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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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고 어진 사람들이여
천.지.인은 곧 한 뿌리이니
나라의 안녕도 개인의 행복도
모두가 삼재(三才)의 조화에서 나오는 도다.
터의 위대함과 무서움을 바로 알지 못하면
인간의 지혜가 아무리 높아도
그저 우물 안의 개구리일 뿐,
동체대비(同體大悲)의 밝은 깨침을 위해
풍수는 헌신해야 하나니
그때가 되면
현생극락이 이 땅에 오는도다!
--------육관 손석우 옹의 "터"에서-------------
<"동방의 백제 땅에 자미원국(紫微垣局)이 있는데 이런 대명당은 천하에 둘이
없는 대지이다. 우리 중국 땅에도 자미원이 하나 있기는 한데 그것은 양택
(陽宅) 자리로 되어 있어 비교할 바가 못된다.
이 하늘 아래 음택으로 자미원을 이룬 곳은 오직 동방의 백제 땅에 하나가 있
을 뿐이다.">
육관 도사는..............
천지순환의 이치와 세계.인류의 향방, 그리고 우리 국운의 장래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해 나갔다.
"이 지구상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는 세계의 모든 인류는 전쟁.사변.분규 등
여태까지의 치열했던 화운(火運)에서 벗어나 부드럽고 맑은 수운(水運)으로
진행하고 있음을 알아야 할것일세.
이에 따라서 지난날과 같은 맹렬한 투쟁 같은 것은 차츰 사라지고 인간 본연
의 윤리.도덕과 고귀한 진리가 인류를 인도해갈 것일여.
그러므로 미래의 세계.인류는 군사력이 강대한 대국들이 주도해 가는 것이 아
니라 고도의 도덕성과 심오한 철학을 가진 나라가 전세계 인류를 이끌어 나간
다 이 말이여.
이러한 새로운 운명은 아득한 태고시대부터 숭구한 한철학과 위대한 윤리.도
덕성을 지녀온 우리 배달겨레에게 모든 인류를 주도해갈 기회가 주어질 것이
라고 믿어.
우리나라의 국운을 논할진대 유사 이래 가장 위대한 시기를 맞이한 것이 바로
지금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여.
반만년 동안 온갖 슬픔과 억눌림으로 한(恨)이 맺힌 이 순박한 우리민족....
이 겨레의 앞날에 찬란한 광명이 비추고 전인류를 인도해 갈 커다란 사명이 주
어진 때가 바로 지금이야.
원시반본의 이치로 봐서나 오경명성의 조림(照臨)으로 보아서 우리나라는
실로 수십세기 만에 처음으로 역사의 주역으로 등장하게 되었다네.
원시반본(原始反本)이란 상고시대의 본래의 상태로 되돌아 간다는 뜻이야.
상고(上古)시대 우리 한민족은 지금의 만주와 요동지방 전부를 차지하였을
뿐만 아니라, 멀리 중국의 북경지방까지를 통치하고 있었지 않았는가?
선사시대의 유적들이 이것을 입증해 주고 있어.
그런 본래의 상태로 되돌아 간다는 것이 원시반본인 것이여.
이것은 마치 사시의 절후(節候)가 되돌아 오는것 같은 이치를 말하는 것일세.
온갖 꽃들이 만발한 봄철, 이 좋은 계절이 지나갔다고 슬퍼할 것 없다는 것은
내년에 다시 봄이 돌아오기 때문이란 말이여.
이와같이 천지 순환(循環)의 이치가 역사의 법칙에도 적용되어 상고시대에
동양전체를 제폐하던 우리 한민족이 다시 일어설 천운이 돌아왔다는 뜻이여.
그 다음으로 오경명성(五庚明星)에 관한 이야기인데 옛날부터 이 별이
비치는 국가는 큰 발전이 있어왔다는 것이여.
가까운 예로 영국에 이 별이 비친 것이 81년 동안인데 그 동안에 이 나라는
해가 지지 않는다는 대영제국으로 큰 발전을 했지 않았는가?
미국에 오경명성이 비친 기간은 1백72년 동안이라고 하지.
광활한 황무지에 원주민밖에는 살지 않던 이 나라가 세계 최강의 초강대국으
로 발전하였다네.
이 오경성명이 미국에서 우리나라로 건너오는 도중에 약 5년 3개월간 일본을
비추어 주었다네. 그 덕택으로 일본의 경제력이 크게 향상되었던 것이지.
그렇다면 우리나라에 오경성명이 비친 것은 언제부터냐?
그것은 1986년 9월 14일 인시(寅時: 새벽 3시부터 5시 사이)부터 일세. 그시간
이후 우리나라는 위대한 국운상승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던 것일세.
해마다 풍년이 계속되고 태풍.지진 등 천재.지변이 현저하게 줄어든 것도 이
때 부터여.
진실로 그러할진대 그 오경성명이 우리 한국을 조림하는 기간은 몇 해나 되는
가?
내가 연구한 바로는 앞으로 3백81년 동안 그 별이 우리나라를 비추게 되어 있
어. 이 기간중에 우리 한국은 천 세계와 모든 인류의 종주국으로 떠오르리라
고 확신하고 있다네.
일찍이 시성(詩聖) 타고르는 우리나라를 가르켜 "동방의 등불"이라고 격찬을
아끼지 않았으며 중국의 저 유명한 주문공(朱文公)도 "천하에 비(比)할 데가
없는 백두산이요 지구상에 둘도 없는 압록강"이라고 찬탄한 바 있었다네.
그 밖에도 역사적으로 이름 높은 많은 현철(賢哲)들이 우리나라의 앞길에 큰
영광이 비출 것이라는 예언을 남기고 있다네."
"우리의 수도 서울은 이제 나라의 국도(國都)로서 운을 다 했네.
남북의 자유왕래가 곧 시작되고 각종 협정이 맺어지게 되면 통일한국의 새로
운 수도 또한 자연스럽게 거론될 것일세. 수도를 이전해야 한다 이 말이여.
통일한국의 수도!
그곳이 과연 어디냐?
정부 내에서도 이미 여러 해 전에 준비해둔 안(案)이 있다네.
각계 각층의 전문가들이 구성되어 새로운 수도의 터를 물색했는데도 파주의
교하 일대가 제일 유력한 곳으로 보고가 올라 왔지.
서울과는 비교도 안되는 엄청난 크기의 해안 평야가 드넓게 펼쳐 있고,
임진강이 흘러서 수원(水源)의 공급도 용이한 곳이여.......
그 아래 용유도엔 국제 규모의 공항이 들어서게 되어 있으니 세계 교통의 중심
지로서도 손색이 없질 않은가?
이 공항엔 앞으로 초음속 여객기가 이.착륙하게 되는데, 미국에서 아시아로
오는 초음속 여객기는 여기로 내릴 수밖에 없다네.
일본도 중국도 일단은 여기서 내려서 다른 비행기로 갈아타고 가야된다는
말이여.
두고 보면 알 것이여. 용유도는 그만큼 천혜의 땅이여. 세상에 둘도 없는 터
요, 교통의 요충지가 될 것일세.
그러니 파주 일대가 얼마나 좋은가?
게다가 남.북한의 중간부분에 위치한 곳이니 명분상으로도 좋고....이 일대는
말이여, 앞으로 남.북 협정에 의하여 각종 규제와 제한이 있게 됨은 물론이지.
이러한 보고가 올라와서 마지막으로 풍수사들의 견해를 듣는 차례가 되었지.
수도의 터는 풍수적으로 매우 중요하니까 반드시 자문을 구해야 되질 않겠
나? 내가 거기에 가서 마지막으로 자리를 정해 주었지.
먼저 수도의 경계를 정하고, 주요한 건물들이 들어설 터를 우선 정해놓고 왔
어.
아마 통일이 되면 그렇게 될 것이여.
그런데 앞으로 약 한 세대가 지나면 <세계가 하나로 통합이 된다네.>
유럽이 통합되는 것처럼 전 지구가 하나의 정부 아래 연합체를 구성하게 되어
있지.
그것은 이 세계의 운세가 그렇게 흘러가기 때문이야.
이 흐름은 아무도 막을 수는 없다네."
우리나라는 앞으로 세계연합정부의 의장국이 될 것일세.
무력도 경제력도 아닌 도덕의 힘으로 세계를 다스리는 그런 나라로서 말이
지. 그 연합정부의 터는 지금의 중국의 요녕성에 있는 계룡산 아래의 넓은 곳
이야.
옥야천리로 광활해서 세계국가의 도읍지로서 적격이지. 그때가 되면 그곳도
우리 땅이 될 것이니. 원시반본이 아니겠나?
상고시대의 영토를 다시 찾는다 이 말이여.
그리고 세계의회가 열리는 의사당이 어디에 들어서는 줄 아는가?"
"금강산 아래 <통천>이라고 있지?
그곳이 바로 세계의회의 의사당이 들어설 곳이여.
금강산은 곧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며, 동시에 지구촌 전 인류의 행복과 번영
을 약속하는 입법기관이 터잡는 곳이니 우리 민족의 장래는 희망찬 것이지.
내가 뭐 예언가는 아니네만, 그저 땅의 이치를 뚫어보니까 모든게 다 통해지
더라 이말이여.... 하니, 크게 틀리는 말은 아니라네."
"남산 위의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소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변하지 않는 우리 민족의 기상, 만주벌판을 치달리던 그 웅혼한 기백이
오늘의 남산 소나무에도 이어져 오는 것을 육관은 명쾌히 보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 그 기상은 시간의 바람을 타고 멀지 않은 장래에 세계의 종주국으로 향
해가는 우리민족의 운명을 예고하는 것만 같았다.
"자미원국(紫微垣局)"...
서산땅에 있는 지구상의 최대 음택 명당인 자미원은 세계통일의 대제왕이
날 자리요, 다스리는 인구가 72억이다.
지금이 쓸 시기로서, 그 전에는 혹 알았어도 건드리기만 하면 벼락을 맞는
자리다.
이곳은 한인들의 역사가 결실을 맺게 되는 곳 입니다.
(자미원)에 대한 글은 다음편에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