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한 해가 저물어가는 송년 시즌이 되면 초교 동창들과 함께 대학로에서 연극 공연을 보며 문화 체험을 해 왔습니다. 한 해를 보내는 끝자락에서 올해도 예외 없이 문화 예술의 거리 대학로에 모였습니다. 올해는 뮤지컬 <루나틱>이란 작품을 관람했습니다.
오늘 월요일 아침에 바라보는 세상이야기는 지난 토요일에 관람한 뮤지컬 <루나틱>에 관한 이야기로 우리가 사는 세상의 일부를 조명해 보고자 합니다.
뮤지컬 <루나틱>은 2004년 우리나라에서 창작 뮤지컬이란 장르로 처음 선을 보였습니다. 당시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대형 뮤지컬이 대한민국의 문화계를 주도할 무렵 외국으로부터 수입된 대형 뮤지컬에 맞서 야심 차게 선보인 이 작품이 흥행에 성공하며 창작 뮤지컬이란 새로운 장르의 지평을 열었습니다. 대한민국 창작 뮤지컬의 효시에 해당하는 작품이라는 홍보문구에 더욱 매력이 끌려 호기심을 가지고 관람했습니다.
루나틱 (Lunatic)이란 말의 사전적인 의미는 달의 변화에 따라 시기적으로 나타나는 비정상적인 정신상태의 일종으로 한마디로 정신병자 또는 미친 사람의 뜻을 가진 말입니다.
뮤지컬 <루나틱>은 정신병원의 환자들이 자신의 숨은 사연을 풀어가며 웃음과 감동을 전하는 뮤지컬 작품으로 미친 듯이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세상 이야기를 희화하여 대변합니다. 이 연극에서 어쩌면 <루나틱>이란 작은 정신병원의 역할극을 통해 우리가 사는 세상 속 우리들의 모습을 비유적으로 이야기하고 하고자 하는 듯 보였습니다.
제목이 암시하듯 미친 사람들의 이야기라 내용이 머리가 아프고 연극을 보면서 동화되는 가운데 함께 미쳐 갈 줄 알았는데 막상 이 연극을 보고 오히려 미친 세상에서 잠자던 의식이 새롭게 깨어남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살짝 미쳐 살아가는 것이 우리 삶에 작은 위로가 되는 반전과 같은 카타르시스적인 공감이 생겨났음도 나름 수확이었습니다.
객석이 어두워지고 무대 위에 조명이 켜지면서 소극장 안은 전체가 정신병동이 됩니다. 무대 위 배우는 물론 관객들도 함께 정신병자들로 둔갑을 하며 금세 동화됩니다.
정신병원 <루나틱>의 치료사 역을 맡은 <굿닥터>는 환자들의 심리 치료를 위한 역할극을 준비합니다.
첫 번째 환자로 등장하는 <나제비>를 통해 전하는 세상을 미치게 만드는 첫 번째 테마는 바로 사랑입니다.
<나제비>는 평소 세상은 넓고 여자는 많다는 지론을 가지고 오는 여자 안 막고 가는 여자 안 잡는 유형의 인물입니다. 유부녀를 유혹해 돈을 뜯어 내오던 <나제비>가 처음으로 진정한 사랑이라 믿은 여자에게서 철저한 배신을 당합니다. 그 완벽한 배신녀는 그보다 한 수위에 있는 꽃뱀이었습니다. 결국 사랑에 속아 미쳐 버립니다.
두 번째로 등장하는 환자의 이름은 <고독해>!
믿었던 남편이 바람을 피우다 교통사고로 비명 횡사한 후 유산을 강탈하려는 시동생의 행패와 잦은 구박으로 <고독해>를 더 고독하게 만든 치매 걸린 시어머니를 꿋꿋하게 버텨냅니다. 그러던 중 시어머니마저 작은 말다툼 중 뛰쳐나가 교통사고로 죽자, 이후 시어머니를 돌아가시게 했다는 자책감이 그녀를 괴롭힙니다. 그러던 중 지금껏 수발해 온 자신이 받을 권리가 있다고 자신을 설득하며 그토록 찾아 헤매던 시어머니의 유산이 그녀 자신에게 상속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모든 걸 놓아 버리게 됩니다. <고독해>라는 환자의 역할극을 통하여 세상을 미치게 하는 두 번째 테마는 돈(Money) 이야기입니다.
세 번째 환자가 역할극을 준비하는 막간에 <굿닥터>의 이야기가 잠시 삽입이 됩니다.
<굿닥터>는 자신의 어릴 적 꿈의 이야기를 꺼내며 자신이 정말로 되고 싶었던 자신의 꿈은 가수였음을 밝힙니다. 가수 대신 의사의 일을 하면서도 아직도 자신이 무대에서 노래를 하는 한국의 <피욘세>의 꿈을 꾼다며 노래로 자신을 이야기합니다. 이루고 싶었던 꿈의 상실도 세상을 미치게 하는 테마임을 보여 줍니다.
세 번째 환자는 정상인입니다.
세상의 억울함에 돌아버린 정상인의 이야기는 지극히 정상인이라고 여겼던 관객들에게 반전의 놀라움과 함께 그 반전의 모습이 부메랑으로 다가와 오히려 자신의 모습이 될 수도 있다는데 적잖은 정신적 충격을 선물합니다.
그는 모든 게 억울합니다. 언제나 억울합니다. 인정할 수 없습니다. 억울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미치게 될 것입니다.
뮤지컬 <루나틱>은 사람들이 미친 게 아니라 세상이 미쳤음을 분명한 메시지로 전하면서 무대에서 단말마 같은 강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 이 미친 세상에서 미친 우리들이 정상이다! ‘
그리고 이 작은 소극장의 무대는 미친 정신병자들의 세상을 향한 외침에 이어 야단법석으로 떠들어 대는 노래와 춤으로 뒤범벅이 됩니다. 누가 미치고 누가 정상인지 모를 정도로 혼란한 난장 같은 판이 됩니다. 생각해보니 극장 안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축소판임을 그대로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연극은 관객들에게 묻습니다.
<이 미친 세상에서 살아가는 당신은 정상입니까?>
이 미친 세상에서 행복한 인생이란 과연 무엇인지?
그리고 다음과 같은 짤막하지만 기막힌 처방전을 내려줍니다.
“살짝 미치면 인생이 즐겁고 행복하다!” 미치면 행복할까요? 그렇습니다.
“스스로 무엇인가에 미쳐 보십시오. 그 순간 순수한 세상을 발견하게 될 것이고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연극의 시작과 끝부분에 배경음향으로 라디오 속에서 흘러 나온 미친 세상의 뉴스소식이 기억 속에서 가물거리며 잔영처럼 아픔으로 들리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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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들이 사라지며 점점 미쳐가는 세상 모습 속에서 어떻게 살 것인지 연극이 끝난 후에도 끊임없이 묻고 있는 듯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