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그룹사운드의 역사 ▒▒▒
한국가요사에서 그룹사운드의 태동은 60년대 중반에 시작됩니다.
일제시대 태동되어 근 40여년을 트롯트로 통칭되는 하나의 장르에만
의존하던 한국 가요계가 더욱 풍성해진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6.25라
는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시작됩니다.
미군부대의 클럽에서 미군들이 그들의 음악을 듣고 싶어 팝을 연주할
수 있는 연주자들을 모집하게 되고 이때 미 8군 무대에서 노래와 연주
를 하던 사람들이 우리 가요 음반을 발표하면서 바로 그룹사운드가
시작되었습니다.
1950년대에는 주로 노래만을 부르던 가수들이 미 8군 무대에서 섰
으며 이때 등장한 스타들이 현미, 한명숙, 최희준, 패티김 등입니다.
이런 가수 중심의 무대가 10여년 지속되면서 다양한 팝 음악이 소개
되고 한편으로는 가요에 맘보, 차차차, 탱고 등의 리듬이 본격적으로
도입됩니다.그러나 이때까지도 스탠다드 팝 음악에 치중되어 있었으
며 본격적인 그룹사운드의 등장은 60년대 중반에 가서 시작됩니다.
세계적으로 비틀즈의 열풍이 시작되던 64년에 한국에서도 키보이스,
애드포가 음반을 내면서 가수에 의존하던 가요가 연주실력까지 평하
게 되면서 더욱 풍성한 음악적 시도가 이루어집니다. 이번에는 이러
한 한국 그룹사운드의 역사를 간략하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정든 배 / 키보이스 (Key Boys)
한국 그룹사운드 최초의 음반 [그녀의 입술은 달콤해(64.7)]를
발표하고 이후 락음악의 발전을 주도하는 모태가 되는 그룹이다.
신중현의 [애드포] 음반은 64년 겨울에 발매되어 이전까지 최초의
음반으로 알려졌으나 키보이스가 빠르다. 키보이스는 윤항기기 주
축이 되어 63년에 결성하였으며 최초의 멤버는 윤항기(Drum), 옥성빈
(Rhythm Guitar), 김홍탁(First Guitar), 차중락(Singer),차도균(Bass
Guitar)이다. 비치보이스, 비틀즈의 노래를 주로 불렀으나 1집에 실린
창작곡인 [정든배는 떠난다]가 후기 멤버들에 의해 더욱 널리 히트하
였다. 1세대 그룹사운드의 대표로서 이후 60년대 말에 전개되는 그룹
사운드의 핵분열과 황금기를 주도했던 그룹이다.
2. 빗속의 여인 / 애드포 (Add4)
19세부터 미8군 무대에서 '재키 신'이란 애칭으로 인기를 모았던 한국
락음악의 신화인 신중현이 창립한 4인조 록그룹 에드훠(ADD4). 1962
년에 결성되어 64년에 음반을 냈다.
멤버로는 신중현(기타,보컬), 서정길(보컬), 한영현(베이스기타), 김대
환(드럼), 장미화(보컬)가 참여했다. [빗속의 여인], [커피 한잔(내 속
을 태우는 구려)]이 수록되었다.
이후 신중현은 덩키스(69), 퀘션스(70), 더맨(72), 엽전들(74), 뮤직파
워(80), 세나그네(83) 등의 그룹사운드와 펄씨스터즈, 김추자,김정미,
이정화, 김상희 등을 발굴 또는 기획하면서 한국 락음악의 산파역을
맡았다.
3. 아름다운 강산 / 더맨 (The Men)
[엽전들]의 초석이 된 [더 멘]은 신중현의 오랜 음악사에서도 가장
빛나는 순간으로 평가된다. 60년대 말부터 사이키델릭 사운드에 빠
져있던 신중현이 팀을 정비하여 72년에 앨범을 발표하였다.
이 앨범에는 한국 락음악 역사상 가장 훌륭한 음악 중 하나라는
[아름다운 강산]이 무려 10분 여의 롱 테이크 버전으로 실려있다.
처연한 관악 연주가 전주부를 만들어내고 보컬 파트가 등장하지만,
실제 곡의 중추를 이루는 것은 밴드의 연주이다.보컬이 퇴장하는 6분
여부터는 오르간과 오보에, 퍼즈 기타가 전면에 나서 자웅을 겨룬다.
전성기의 신중현식 사이키델릭 사운드를 감상할 수 있다.
4. 미인 / 신중현 (신중현과 엽전들)
[신중현과 엽전들]의 1집은 현재 한국 음악 발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음반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독특한 전주로 시작되는 [미인]
등의 인기에 힘입어 한국에 록 음악의 뿌리를 내린 그는 유신정권 하
에 히트곡 제조기로 명성을 날렸다.
이 시기에 박정희를 찬양하는 노래를 만들라는 요구를 자신의 음악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볼 수는 없다하며 이를 거절하면서 눈밖에
났다.
74년 대마초 사건에 연루되어 징역 4개월에 처해지고 그의 노래
100 여곡도 대부분 불온하고 퇴폐적이라는 이유로 금지되고 만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는 80년대 초까지 대마초 왕초라는 오명을 쓴 채
눈에 띄는 활동을 보이지 못한다. 80년에 [뮤직파워]를 결성하면서
활동을 다시 재개한 그는 인기곡을 만들기보다는 자신만의 음악에
몰두해 무위자연, 김삿갓등의 밴드를 결성해 음반을 냈다.
5.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 / 차중락
[차중락, 차도균 그리고 가이스 앤 돌스(Guys & Dolls)] 사촌형제간
이면서 각자의 노래실력을 뽐내던 차중락(엘비스 프레슬리), 차도균
(딘 마틴)은 키보이스의 분열의 출발점이 되었다.
잘 생긴 외모와 감미로운 목소리로 인기를 얻던 이들은 차중락이 66년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을 발표하며 솔로로 독립했고, 67년 차도균 또
한 가이 앤 돌스(Guys & Dolls)라는 그룹으로 옮기면서 키보이스의
핵분열이 시작된다.
6. 별이 빛나는 밤에 / 키부라더즈 (Key Brothers)
키보이스의 핵분열의 중심에는 윤항기와 김홍탁이 있었다. 윤항기는
부모로부터 이어받은 끼를 바탕으로 미8군 무대에서 활동하다 키보이
스를 창립하게 된다.
69년 그룹사운드 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뒤 탈퇴한 윤항기
는 70년 월남파병 위문공연단을 구성하여 공연한 뒤 귀국하여 6인조
락그룹 [키부라더스]를 창립하여 후기 키보이스와 히식스 등과 경쟁
한다.
키보이스 시절 드럼을 치던 윤항기는 보컬로 변신하여 불후의 명작인
자신의 창작곡 [별이 빛나는 밤에]를 데뷔곡으로 선사했다.
7. 초원의 빛 / 히파이브, 히식스(He5,6)
1970년대 초 록 그룹의 황금기를 이끌며 한국 록 음악사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던 He5,6는 초기 락 그룹들이 외국곡을 주요 레파토리로
삼은데 반해 [초원], [당신은 몰라],[초원의 빛]등 빛나는 창작곡을
쏟아내며 대중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히파이브는 포 가이스 출신의 한웅이 주축이 되어 유영춘, 김용호,
조용남 등 미8군 무대의 실력있는 뮤지션들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신인인 멤버들의 대중적인 인지도가 낮아 이를 극복할 방법으
로 강력한 카리스마와 인기,실력을 겸비한 키보이스의 김홍탁을 영입
하여 창립되었다. 히파이브는 많은 멤버의 변화를 겪으면서 히식스로
거듭나고 후기 키보이스와 인기경쟁을 다투었다.
8. 당신은 몰라 / 히식스(He6)와 최헌
히식스에서 보컬을 맡아 발표한 [당신은 몰라(히식스 5집)에서 최헌
은 절정의 가창력을 선보인다. 히식스는 72년 그룹의 핵심이던 김홍
탁이 탈퇴하여 미국으로 가면서 재기를 노리지만 허스키하면서도 맛
깔나는 창법을 보여준 최헌마져 독자적인 활동을 위해 팀을 떠나면서
와해된다.
최헌은 히식스에서 독립하여 [검은나비]를 결성하여 활동하다 70년
대 후반을 조경수, 윤수일과 함께 경쟁하며 가수왕에 등극한다.
9. 애원 / 황규현 (2기 포가이스와 황규현)
포가이스의 리더인 한웅이 히파이브를 창립하여 떠나자 2기 포가이스
를 결성하면서 보컬을 맡게 된 사람이 황규현이다. 황규현은 차중락의
동생친구로 키보이스의 연습을 지켜보면서 음악에 대한열정을키웠다.
2기 포가이스는 미8군 무대에서 실력과 인기를 모았지만 황규현에게
는 외국곡만을 연주하는 것에 음악적 갈등을 느끼게 하였다.
5인조 락그룹 [쉐그린]을 창립하여 애절하고 허스키한 목소리를 들려
주던 황규현을 유심히 살피던 작곡가 박진하는 친구가 되기를 간청하
여 필생의 역작 [애원]을 선물한다.
황규현은 처음에 폼나는 외국곡이 아닌 촌스런 가요라면서 거절했지
만 [애원]은 결국 유일하게 기억되는 그의 대표곡이 되었다.
10. 아니야 / 조경수 (2기 포가이스와 이승재, 조경수)
1기 포가이스의 리더 한웅이 떠난 뒤 2기 포가이스가 구성된다.
새롭게 결성한 2기는 보컬겸 리듬기타 황규현, 기타 이승재, 베이
스 조경수, 드럼 우승만이었다.
기타리스트 세사람이 나중에 솔로로 데뷔하여 히트곡을 내는 특이한
경력의 그룹사운드다. [애원]의 황규현,[눈동자]의 이승재,[아니야]
의 조경수가 그들이다.
조경수는 70년대말에 [YMCA], [징기스칸] 등의 번안곡과 [돌려줄
수 없나요], [행복이란] 등의 히트곡을 발표하였으며 78년 최헌에
이어 79년 TBC 방송가요제 대상을 수상하였다.
11. 동물농장 / 쉐그린
황규현이 결성한 5인조 락그룹 [쉐그린]의 멤버에는 전언수, 이태원,
조동진이 속해있다. 황규현이 솔로로 독립한 후 전언수, 이태원은 포
크듀엣 [쉐그린]으로 변신하여 [동물농장], [얼간이 짝사랑] 등의
히트곡을 발표하고 조동진은 독특한 음악세계를 구축하여 [작은배]
등의 히트곡과 함께 언더그라운드의 대부로 성장한다.
12. 그리운건 너 / 데블스 (Devils)
활동 당시 참신한 무대매너와 출중한 연주력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던
한국 쏘울 사운드의 대표 데블스(DEVILS/ 친구들). [철창커버]로 알
려진 2집 앨범에서 그들의 최고 히트곡[그리운 건 너],[몰라요 몰라]
를 비롯 그들의 뛰어난 연주력을 만끽할 수 있는 [태양을 향하여] 등
70년대 블랙 그루브의 열기를 가득 담고 있는 한국 올드스쿨 쏘울의
대표작을 감상할 수 있다.
13. 이 기쁨 / 산울림
[산울림]의 등장은 1977년 말이다. 서울대학 농대에서 잠사과에 재학
하던 장남 [김창완](기타, 1954년 2월생), 똑같이 서울대 농대에서 식
품 가공학을 연구하던 차남 김창훈(베이스, 1956년 3월생), 고려대학
기계공학과에 재학중이던 삼남 김창익(드럼) 3형제로 구성된 이 밴드
는 한국에 록이 무엇인가를 고시하려는 듯 등장했다.
게다가 그때까지의 가요 그룹사운드와는 동떨어지게 시원하고 화끈한
사운드와 비로서 [록]이라고 부를 만한 곡 형태,눈물이나 이별이 아닌
일상적인 기분을 밝고 드라이한 감각으로 표현한 가사, 여기에 김창완
이 연주하는 트릭키하고도 스릴있는 퍼즈 기타등 모든 것이 참신했다.
14. 한동안 뜸했었지 / 사랑과 평화
록그룹 [사랑과 평화]는 이른바 펑크 사운드를 국내에 본격적으로
도입했던 밴드이다.김태흥, 김명곤, 최이철, 송홍섭, 이근수로 구성된
다섯명의 초기멤버는 모두 미 8군 무대에서 1급 연주자로 꼽히던
인물들..
이들은 1976년 그룹을 결성해 손발을 맞춘뒤 1978년 첫 음반을
발표했다.[한동안 뜸했었지]를 선두로 공동 타이틀곡인 [어머님의 자
장가] 등이 연이어 히트하여 70년말을 풍미 했던 최고의 밴드이다.
비록 앨범 발표 때마다 겪었던 멤버 교체의 상흔은 선명하지만 20여년
이 지난 지금도 [사랑과 평화]는 굳건하게 그룹 이름을 유지하며 최장
수 록그룹이란 [명가]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15. 일곱색깔 무지개 / 작은거인 (김수철과 작은거인)
캠퍼스밴드로 대학가요경연대회에 출전하였던 초기의 아마추어 수준
에서 국내 최초의 하드락 밴드로의 도약, 국악까지 넘나드는 크로스오
버, 다양한 드라마와 영화음악 작업, 올림픽과 월드컵의 음악감독 등
지금까지 발표한 앨범의 수조차도 30장을 훌쩍 넘는 김수철이 리드했
던 그룹사운드..
1집이 스쿨밴드적인 아마추어티를 벗어나지 못한데 비하여 2년후에
발표한 2집은 국내 하드락 최고의 명반으로 손꼽힌다.
2년전의 같은 사람이 발표한 음반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완성도를 보인 이 음반에는 일렉트릭 기타의 훌륭한 연주로 [새야],
[일곱색깔 무지개],[어쩌면 좋아],[알면서도] 등이 있으며 80년대
최초의 국악가요라 할 수 있는 [별리]가 실려있다.
16. 그대는 나는 / 송골매
송골매는 대학가요제 출신의 뮤지션들이 모인 한국판 [수퍼 그룹]이
었다. 1979년 활주로의 해산 후 배철수(드럼, 보칼), 이봉환(키보드,
보칼), 지덕엽(기타), 이응수(베이스)의 라인업으로 결성되어 1980년
에 1집을 발표하고 1981년 초부터 지덕엽과 이응수의 탈퇴로 전 블랙
테트라의 멤버였던 구창모(보칼), 김정선(기타), 오승동(드럼)이 영입
하여 캠퍼스 밴드로 출발하여 상업적인 성공을 이룬 몇안되는 팀이다
매스컴의 화려한 각광을 받으며 등장한 이들은 곧 몇 개의 히트곡을
제조했고, [젊음의 행진]이나 [영 일레븐] 같은 청소년 TV 프로그램
을 통해 틴 아이돌의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성공함으로써 록 음악이
주류 대중음악의 일각을 차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밴드
이다.
또한 구창모와 배철수를 보컬로 발표한 곡들이 서로 다른 색채를 내
면서 인기를 모았다. 송골매의 초기 사운드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사람으로 이응수, 나원주를 손꼽을 수 있는데 우리 고유의 것들에
소재를 두고 있는 것이 많다.
17. 행진 / 들국화
네 사람의 모습을 각각 담은 네 컷의 사진이 비틀즈의 마지막 앨범
[Let It Be]를 연상시키는 들국화 1집(1985년 9월)은 한국가요사에
서 몇 손가락에 드는 명반으로 꼽힌다.
1985년 데뷔앨범을 들고 홀연히 등장, 미디어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은채 오로지 실력과 라이브만으로 대중음악계에 돌풍을 일으켰던
주인공들..
당시 마력과도 같은 힘으로 음악에 목말라있던 젊은 대중들을 휘어잡
았고, 세련된 외국음악에 익숙해 있던 우리나라의 록팬들 역시 그들이
내놓은 음악과 그 가능성에 열광했었다.
80년대 중반이후에는 대중들의 음악적 갈증에 대한 욕구가 높았고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실험이 많이 시도되던 시기이기도 하다.전인권
의 카리스마 넘치는 목소리는 세월을 거슬러 현재도 진행형으로 남아
있다.
18. 희야 / 부활
80년대 중반의 락음악은 시대적인 요청과 더불어 60년대 말과
70년대 초를 잇는 제2의 르네상스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이 시기에 배출된 그룹으로 [들국화], [부활], [백두산],
[시나위]등 실력있는 뮤지션들이 총출동한 느낌이다.
기타리스트 김태원을 주축으로 결성된 [부활]은
보컬 이승철을 영입하여 1집을 발표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다.
19. 크게 라디오를 켜고 / 시나위
한국 락음악의 대부 신중현의 아들 신대철이 주도하고 있는 그룹사운
드. 86년 첫 음반을 발표한 이래 국내 헤비메탈 음악의 흐름을 주도하
고 있다. 김종서, 임재범, 서태지 등이 시나위를 거쳐 스타로 독립한
가수들이다.
20. 바람인가 빗속에서 / 신촌블루스
엄인호를 주축으로 결성된 [신촌 블루스]는 80년대 언더그라운드
음악에서 들국화와 더불어 가장 상업적인 성공을 이룬 그룹이며,
한국 블루스 음악의 대표적인 팀이다.
단일 팀으로 구축되기까지 거쳐간 스타들만 해도 이정선, 이광조,
김현식, 한영애, 정경화, 이은미 등 내노라하는 뮤지션들이다.
최근에는 락과 블루스, 국악을 새롭게 접목시키며 끊임없는
음악적 정열을 태우고 있다.
☞ 출처 / 가요114에서
첫댓글 그룹사운드 난 다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