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스타프 클림트와 '키스'>
예술인들은 때로는 그들의 작품을 통해 화가들의 내면에 잠재된 욕망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고
그러한 욕망은 시대를 뛰어넘어 현대인들에게 각광받는 경우도 있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이 그 예다.
현대의 많은 이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그림 중 하나인 '키스'.
이런 그림을 감상하는 이들은 단순히 그의 그림인 '키스'에 관심을 가질 뿐만이 아니라 오히려 그의 생애와 관련지어
흥미로워하는 경우가 많다. 그의 그림은 그에 대해 많은 궁금증을 유발시킨다.
그는 왜 한 그림뿐만이 아니라 여러 그림에 이런 연인들을 그린 것일까. 그는 어떤 사랑을 했으며, 또 하기를 원한 것일까.
그가 추구하고자 한 사랑은 과연, 정말로 에로스적 사랑뿐이었을까. 수없는 질문을 던져보지만 단지 추측만 할 수있을 뿐이다.
그럼, 이제부터 그의 그림 한장에 숨겨진 그의 모든 것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그가 살던 19세기 무렵에 '빈'은 유럽의 예술 발전의 본고장이라고 할 만큼 갖가지 양식의 중심지가 되고 있었다.
하지만 빈의 이면에 숨겨진 부정의 모습들은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크라우스는 '인류 최후의 날들'이라는 희곡에 빈에 대해 이르기를, '대재앙이 일어나는 실험실'이라고 비유했다.
특히 성에 대해 굉장히 문란했다고 하는데, 구스타프 클림트는 그러한 사회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여자에 대해 성적인 관점에서 알아가길 원했고 그 이외의 관계는 오래 유지하지 못했다.
그의 여성편력은 '피터팬 증후군'에서 나온 것인데, 여자관계에 있어서 어머니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특정한 여인으로 인해 전통적인 아버지가 되고, 그런 관계로 인해 현재의 가족관계가 끊어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의 사실적인 작품경향은 아마 그러한 점들에 대해 많은 영향을 받은 것임에 틀림이 없다고 추측된다.
그의 작품경향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여행을 떠나 라벤나의 모자이크를 본 후였다.
오직 사실적인 면만을 추구하던 그는 그 모자이크의 금박장식에 매료되었고 그 기법을 그 이후의 그림과 '키스'에 적용시켰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인 '키스'에서 우리는 그가 얼마나 황금색과 금박장식에 빠졌었는지 알 수 있었다.
먼저 배경에 금박을 물감과 섞어 그림의 평면성에서 금색이 돋보이도록 했으며, 의복과 꽃밭 배경도 금박으로 장식했고
황금빛 넝쿨도 추가해서 여인의 다리를 관능적으로 부각시켰다. 그는 회반죽에 금박을 덮는 기법을 사용했는데
그것은 무척 입체적이 되었고 금과 물감을 섞어 사용함으로써 밝기가 좀 더 다양해졌다는 이점이 있었다.
금박뿐만이 아니다. 그의 그림 중 수정된 부분은 바로 문양인데, 남성성을 상징하는 사각모양과 여성성을 상징하는 둥근모양을
합쳐서 마치 이어진 것 처럼 보이게 했다. '오토 바이닝거'는 '그가 인간에 대해 완벽한 남성성, 여성성의 연속선에 위치한다는
정의를 내렸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과연 그의 그림은 적극적인 남성과 수동적인 여성이 합친 것처럼 보인다.
이 그림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키스'의 연인들이 누구냐,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오랫동안 전문가들의 논란을 불러 일으켰고 각자 의견이 분분했다. 구스타프 클림트가 가장 오랫동안
관계를 지속한 '에밀리에 플뢰게', '아델레 블로른 바우어', '힐데로트' 등등.
하지만 최종적으로 내려진 결론은 바로, 특정의 한 여인이 아닌 성애의 절정을 경험하고 있는 모든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그림이라는 의견이 가장 유력하다. 비슷한 예로, 그는 베토벤의 '환희'를 자신 식으로 재해석했는데
마지막은 나체로 포옹하는 남녀를 그려냈다는 점에서 인간성 해방을 표현했고 성애의 절정을 경험하는 연인들을 그렸다.
사랑하는 남녀간의 수줍은 고백이자 가장 대담한 애정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 '키스'의 그런 연인들과는 달리,
비록 그는 낭만주의를 동경했고 남녀의 성애를 신성하게 여겼지만 다소 자유로운 성적 취향을 가지고 있었던 탓에
진정한 사랑을 만나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만나지 못한 게 아니라 만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모두는 그가 이 그림을 그리면서 자신에게 수 없는 질문을 던졌을 것이라고들 말한다.
"나는 이런 연인들처럼 진정한 사랑을 해보고 싶은데 왜 자유로운 생활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것인가.
무엇이 나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인가. 내가 진정으로 원한 것은 무엇인가." 라고 말이다.
나는 그가 약간의 대리만족도 느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동시에 일종의 자아 괴리감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런 것으로 인해 그가 이런 명작품들을 낸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이런 명작품들을 통해 우리는 그를 알 수 있었고.
그가 남성으로서의 자아를 찾는 일에 실패했을지 몰라도, 혹은 평범한 아버지로서, 아들로서, 남편으로서의
자아를 찾는 일에 실패했을지 몰라도 그는 예술인으로서의 삶은 무척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
그의 자유로운 성에 대한 표출은-의복이라던가 평소 생활이라던가-그의 작품에 많은 기여를 했고,
그로 인해 그의 사상과 욕망, 자신에 대한 것들을 그림 속에 담아서 하나의 메시지로 전달했다는 점에서
나는 평범한 남성으로서의 삶이 아닌 예술인으로서의 삶을 걸어간 구스타프 클림트에게 경의를 표하는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