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부치는 말
추석도 지나고 아침저녁에는 쌀쌀한 바람이 부는 완연한 가을이 되었다. 나는 시골 국민학교의 교사로 있으면서 해방을 맞았고 그 해 가을도 그 곳에서 맞았다. “가을이라 가을바람 솔솔 불어오니 푸른 잎은 붉은 치마 갈아입고서 남쪽나라 찾아가는 제비 불러 모아 봄이 오면 다시 오라 부탁하노라.”
아이들이 부르던 그 노래 소리가 지금도 내 귀에 쟁쟁하거늘 61년의 긴긴 세월이 흐르고 다시 가을을 맞이하게 되었구나!
그 때 그 노래를 부르던 아이들은 지금 다 어떻게 되었을까. 김일성, 김정일 밑에서 뼈가 부러지도록 일만 하다가 죽은 자들도 많을 것이고 살아 있다하여도 모두 70은 되었겠구나.
가을이 매우 선명하게 다가오는 이 땅에 산다는 것은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큰 축복이라 아니할 수 없다. 석유가 펑펑 솟아나는 땅이면 뭐하나. 다이아몬드가 무진장 깔려있는 땅이 아니면 어떤가. 오히려 계절의 참신함을 느끼며 자연과 인생을 음미할 수 있는 이 땅에 태어난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그저 정치만 좀 잘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노무현 씨를 둘러싼 철딱서니 없는 자들은 좀 물러나고 똑똑한 한국의 젊은이들이 들어서는 새로운 날이 속히 오기를 이 가을에 간절히 염원하노라.
김동길/www.kimdonggill.com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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