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집마다 일원상을 걸자
최근 교당에 다니기 시작한 김새벽 교도는 ‘일원상’에 대한 관심이 크다. 반짝반짝 빛나는 일원상에 눈길을 사로잡혔고, ‘어느 때든 일원상처럼 둥근 마음을 생활에서 실천하겠다’는 다짐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다 최근 신년하례를 통해 원불교 익산성지 순례를 경험하면서 새로운 일원상을 만났다. 소태산 대종사가 최초로 일원상을 봉안(받들어 모시는 일)한 대각전에서다. 그곳에서 만난 일원상은 나무 배경을 두고 검은색으로 조성돼 있었다. 교당에서 봤던 것과 다른 일원상을 만난 후 김 교도는 일원상이 궁금해져 공부를 시작했다.
<원불교교사>에서는 ‘원기4년(1919) 소태산 대종사가 김제 금산사에서 머물 때 문미(창문 위에 가로로 댄 나무)에 일원상을 처음 그렸다’는 기록을 전한다. 원기23년(1938)에는 <회보> 제49호를 통해 ‘심불 봉안에 대하야’(교무부)라는 공고가 전파됐다. 공고 내용은 “심불 일원상을 … 각 지부 출장소, 회원의 가정에도 혹 봉안해 오던 바 … 봉안 방식을 통일하기 위해 봉안식순 급(及) 규례를 정하고 종사주(소태산 대종사)께서 친히 ‘심불 일원상 내역 급(及) 서원문’(현 일원상서원문)을 법어로 제정하였기에 제반 규례를 발표 하오니 … 무위시행(無違施行, 어김없이 시행)하심을 경망한다”고 했다. 또 당시에는 중앙총부 교정원에 견본을 요청해 ‘색과 모양을 동일히 하자’는 내용도 요구됐다. 원기28년(1943) 초기교서의 완결판인 <불교정전>이 나왔고, 여기서 ‘법신불 일원상 조성법’이 정리된다. 소태산 대종사는 “법신불 일원상을 숭배하기로 하면 각자의 형편을 따라 다음과 같은 모형으로 나무에 금이나 먹(黑, 흑)으로 각자(글자를 새김)하든지 … 족자를 하든지 하여 벽상에 정결히 봉안하고 심고와 기도를 행할 것이니라”고 밝혔다. 소태산 대종사의 뒤를 이은 정산종사는 <예전>(원기37년(1952))에 ‘봉불-법신불 조성 및 불단’장을 편입, 봉불에 대한 예법을 확정했다.
김 교도는 일원상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우리 집에도 일원상을 모셔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됐다. 이에 교무님에게 뜻을 전하고, <예전>에 따라 ‘집안에 가장 정결한 장소’에 불단을 조성해 가정봉불식을 치렀다. 교무님은 “현관에도 원불교 ‘일원상’ 문패를 달아 왕래할 때마다 교도로서 마음가짐을 날마다 새로이 하면 좋겠다”고 권했다.
그렇게 현관문에도 일원상을 모신 김 교도는 집을 드나들 때마다 “원불교 교도로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새긴다.
[2025년 2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