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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보인다!!!
가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가을이면 생각나는 노래들 많죠? 짝사랑 - 고복수
“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지나친 그 세월이 나를 울립니다.
여울에 아롱 젖은 이즈러진 조각달. 강물도 출렁출렁 목이 멥니다.”
광주 무등산인가요 어딜가면요 산 위에 아주 너른 억새밭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산에 올라간 사람들의 첫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와~~ 바람이 보인다!!!” 그 억새밭에 가면 바람이 보인답니다. 여러분은 바람을 보셨습니까? 바람은 안 보이잖아요. 그런데 그곳에선 바람이 보인답니다. 저쪽에서 바람이 불어오면 “솨 ~~~~” 바람이 불어오는 것이 보인답니다. 어떻게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이 보일까요?
억새들이 서로 부딪히며 “솨~~~~” 햇살에 반짝이면서 “솨~~~”, 바람에 일렁이면서 “솨~~~~” 바람이 불어오는 것이 보인답니다.
바람은 모양도 없고 색깔도 없고 향기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바람이 눈에 보이는 것은 억새들이 서로 어깨를 맞대며 추는 춤 그리고 억새들이 서로 기대어 부르는 노래 때문입니다. 억새들의 춤과 노래, 으악새 때문에 바람이 보입니다.
“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이 으악새가 보이지 않는 바람을 볼 수 있게 합니다.
Ⅰ. 교회에 불어오는 바람
우리 교회에도 바람이 붑니다. 우리 교회는 바람을 통해 시작되었습니다. 성경 말씀을 읽어 볼까요.
“오순절이 되었을 때 그들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거센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안을 가득 채웠다.”(사도2,1 -2)
성령의 바람이 불어오고 그 바람이 온 집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러자 그 집이 교회가 되었습니다. 성령의 바람, 이것이 교회의 시작입니다. 이 화원성당이 성당이 된 것은 벽돌로 건물을 잘 지었기 때문이 아니라 성령의 바람이 이 성당에 불어오고, 성령의 바람이 이 성당을 가득 채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성령의 바람을 어떻게 볼 수 있을까요? 바람은 보이지 않잖아요. 으악새처럼 보이지 않는 바람을 볼 수 있게 해 주는 것, 보이지 않는 성령의 바람을 볼 수 있게 해 주는 우리의 으악새는 무엇일까요?
이 성령의 바람이 우리에게 가득 차 있음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 ▶향주삼덕 = 믿음, 소망, 사랑◀입니다.
이 향주삼덕이 하느님의 성령이 우리에게 불어오고 있고, 우리 안에 가득 차 있음을 보여주는 으악새입니다. 따라 하세요.
☻세상의 어떤 유혹과 시련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건한 믿음.
☻세상 것에 넋이 빠져 헤벌레 하지 않고 천국을 바라는 소망
☻예수님의 사랑을 닮은 애덕의 생활
이것이 성령의 바람을 보게 하는 우리의 으악새입니다.
우리가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살 때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바람, 성령의 바람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신자들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그리고 재산과 재물을 팔아 모든 사람에게 저마다 필요한 대로 나누어 주곤 하였다. 그들은 날마다 한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이 집 저 집에서 빵을 떼어 나누었으며, 즐겁고 순박한 마음으로 음식을 함께 먹고, 하느님을 찬미하여 온 백성에게서 호감을 얻었다. 주님께서는 날마다 그들의 모임에 구원받을 이들을 보태어 주셨다.”(사도2,44-47)
초대교회 신자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따라하세요.
▶ 사사로운 욕심을 버린 공동체(공동으로 소유)
▶ 나눔과 친교의 공동체(빵을 떼어 나누고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 기도와 찬미의 공동체(날마다 성전에서 기도하고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이렇게 삶으로써 어떻게 되었다고요? “온 백성에게 호감을 얻었다.” 뭘 얻어요?
“호감”
온 백성이 호감을 가졌다는 것, 하느님에 대해서 좋은 느낌, 좋은 감정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아, 저기에 하느님이 계시는구나. 아, 저 사람들이 믿는 하느님은 정말로 좋으신 분이구나. 나도 한번 들어가 봐야 되겠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어떻게 해 주셨습니까?
“주님께서는 날마다 그들의 모임에서 구원받을 이들을 보태어 주셨다.”
신자들을 많게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입교자들을 많이 생기게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이 하원성당 공동체에도 성령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고, 이 안에 가득 차 있습니다. 한번 둘러보세요. 여러분은 그 성령의 바람이 보이십니까? 하느님의 바람이 보이십니까?
성령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는 것, 성령의 바람이 이 안에 가득 차 있다는 것, 그 바람을 볼 수 있게 하는 우리 신앙의 으악새는 뭐라고요?
☻세상의 어떤 유혹과 시련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건한 믿음.
☻세상것에 넋이 빠져 헤벌레 하지 않고 천국을 바라며 사는 천국에의 소망.
☻그리고 예수님의 사랑을 닮은 애덕의 생활.
Ⅱ.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그런데 이 세 가지 중에 가장 소중한 것, 가장 으뜸인 것은 무엇일까요? 예, 바로 사랑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
“그러므로 이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계속됩니다. 그 가운데에서 으뜸은 사랑입니다.”(1코린13,13)
그런데 왜 사랑이 으뜸일까요?
믿음이 없다면 과연, 하느님께 대한 믿음,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없다면 과연 우리의 신앙생활이 가능할까요? 예수님께서도 치유를 행하실 때마다 “믿음”을 요구하지 않으셨습니까? 믿음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런데 이 믿음보다 사랑이 더 으뜸이라고 합니다.
소망은 또 어떻습니까? 우리가 하느님 나라에 대한 소망, 하느님과 함께 사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소망이 없다면 그래서 이 세상 것이나 바라고, 이 세상 것이나 욕심내고, 이 세상 것이나 쳐다보고 산다면, 우리가 어찌 하느님의 백성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 소망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믿음과 소망보다도 사랑이 제일이고 으뜸이라 하지 않습니까? 왜 그럴까요?
그 이유는...믿음과 소망은 이 땅에서만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나라에 갈 때까지만 필요한 것입니다. 믿음이 있어야 하느님나라에 갈 수 있지요. 소망이 있어야 하느님나라 갈 수 있지요. 그리고 또 사랑이 있어야 하느님 나라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 가지를 향주삼덕이라 합니다.
그런데 하느님 나라가면, 온전히 하느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사는데, 더 이상 믿음이 필요할까요? 온전히 하느님나라에 있는데 소망이 필요할까요? 저 천국에 가면 더 이상 믿음도 소망도 필요 없습니다. 오직 한 가지만 필요합니다. 뭘까요? 예, 사랑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이 온전한 사랑이시기 때문에, 천국에서 필요한 것은 오직 사랑뿐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천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믿음도 소망도 사랑도 다 필요하지만 천국에 가면 사랑자체이신 하느님 품 안에 사는 것이기 때문에 오직 사랑만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인 것입니다. 아셨죠?
그런데 이 사랑이 도대체 어떤 사랑인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15,12)
그런데 예수님께서 남기신 사랑의 유언에는 그냥 사랑이 아니고 조건이 달려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이라는 조건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사랑한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게 도대체 어떤 사랑일까요?
사랑, 사랑, 하도 사랑타령이 많아 이 사랑이 어떤 사랑인지 헷갈려죽겠습니다. 뭐가 사랑입니까?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 그 사랑은 어떤 사랑일까요?
니코데모와의 대화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요한3, 16-17)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 예수님께서 행하신 사랑은 우리가 잘나서, 예뻐서, 충분한 자격이 되어서 사랑하는 그런 사랑이 아닙다. 하느님의 사랑, 예수님의 사랑은 한마디로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하는 사랑입니다. 구원받게 하려는 사랑입니다. 따라하세오.
“구원하는 사랑!!! 영혼의 사랑!!!”
“내가 저 사람을 구원받게 해야지... 내가 저 사람의 영혼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인도해야지... ”
이런 사랑이 예수님께서 행하신 사랑입니다. 이 사랑이 우리가 실천해야 하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인간적으로는 너무나 밉고 팍 그냥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도무지 용서할 수 없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고자 하는 사랑은 그냥 사랑이 아니라 어떤 사랑이요? 구원하는 사랑, 영혼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말씀의 뜻이 바로 그것입니다. “너희에게 잘 해주는 사람에게만 잘해준다면 너희가 받을 상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그만큼은 한다. 너희는 원수까지 사랑하라!!!!”
우리는 사랑을 해도 보통 사랑이 아닌 명품 사랑을 해야 되고, 삶을 살아도 그냥 삶이 아니라 명품 삶을 살아야 합니다. 왜 그런 삶을 살아야 합니까?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사람이 되었고, 성령의 사람이 되었고, 교회의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교회 안에 성령의 바람이 불어오고 우리를 감싸고 있고, 우리는 그 성령의 으악새이기 때문입니다.
크게 외쳐봅시다.
“나는 성령의 바람을 볼 수 있게 하는 으악새이다!!!!”
성령이 우리에게 불어오고 있고, 성령이 우리를 감싸고 있음을 보여주는 성령의 으악새가 바로 우리들입니다.
Ⅲ. 누님 이야기 - 구원하는 사랑.
우리가 하는 사랑은 좋은 사람 좋아하고, 그냥 좋고 즐거워서 하는 그런 사랑, 그런 사랑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는 사랑은 구원하는 사랑, 영혼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원수 같은 사람을 위해서도 사랑의 기도를 바치고, 도무지 용서가 안 되는 사람을 위해서도 구원을 위해 손을 내밀 수 있고, 억울하고 미워도 참고 인내하면서 희생을 바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천국의 영광을 버리시고 인간의 모습으로, 종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리하여 저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당신 자신을 바쳤습니다.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왜 저리 하셨습니까?
단 하나의 이유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요한3, 16-17)
우리를 천국의 영원한 생명으로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구원하는 사랑 때문입니다.
그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명령하셨습니다.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15,12)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하느님의 성령, 하느님의 바람이 우리에게 불어오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앙의 으악새입니다.
☛ 언제나 강한 믿음으로 사십시오. 세상의 유혹에 흔들리지 마십시오. 하느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명하십시오. 여러분의 지혜, 판단, 욕심, 고집보다 하느님의 말씀을 더 신뢰하십시오. 베드로 이야기: “당신께서 하라하시니 하겠습니다.”
☛ 언제나 천국을 소망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우리는 이 세상에 희망을 두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이 세상 것에 희망을 두는 사람은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바오로 사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천국을 소망할 때 기쁜 마음으로 욕심을 버릴 수 있고,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기쁘게 희생을 바칠 수 있습니다.
☛ 그리고 구원하는 사랑을 사십시오. 보통의 사랑이 아닌 명품사랑, 구원하는 사랑을 사는 분들이 되십시오. 구원하는 사랑을 살고자 할 때 우리는 원수 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원수도 구원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우리는 원수를 위해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구원의 사랑을 사는 분들이 되십시오.
믿음과 소망과 사랑, 그 중에 제일은 사랑, 구원하는 사랑입니다. 이것이 진정 하느님 바람이 내 안에 가득 불어오고 있음을 보여주는, 하느님의 바람을 볼 수 있게 하는 으악새입니다.
무등산에 올라서면, 사람들의 첫 말 “와.... 바람이 보이네.” 라고 합니다.
으악새의 소리와 춤.... 바람을 볼 수 있게 하는 으악새. 우리가 바로 하느님의 으악새입니다.
이 화원성당에 불어오는 하느님의 바람, 성령의 바람이 여러분 눈에는 보이십니까? 우와~~~ 제 눈엔 보입니다. 성령의 바람이 불어와 이 성당에 가득하네요. 여러분의 기도 소리와 구원하는 사랑의 모습으로 바람이 보입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알폰소신부님 특강도 하시고 넘 감사히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신부님ㅁㅁㅁ삼장님 수고 많았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