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권력을 지방에 이양하라?
정현철(민주노동자시흥연대 의장)
이래저래 지방선거는 뒷전이다. 북미회담을 앞두고 쏟아지는 이슈들 앞에 묻히고, 문재인대통령의 인기에 힘입어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이 예상되기 때문인지 흥미마저 떨어진 상태다. 노동계도 최저임금 산입범위 문제로 지방선거를 거들떠 볼 틈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일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세월호 국회의원으로 알려진 박주민의원마저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찬성표를 던졌다는 기사를 보면서 문득, 지방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단체장후보들은 어떤 입장일지 궁금해 졌다. 입장 이전에 ‘최저임금 산입범위’가 왜 쟁점이 되고, 국회에서 통과된 법이 무슨 뜻인지 해석 할 수 있을까? 아마 대부분의 단체장들은 그 의미조차 파악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그것은 그들이 무능해서가 아니라 ‘관심대상’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지방 공무원들을 만나 노동관련 문제를 이야기하다보면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우린 아무 권한이 없어요”다. 사실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노동관련 사무는 국가사무라서 시정부에는 권한이 없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정확히는 일자리문제가 중요한 사회적 문제가 되면서부터 지방정부도 노동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노동문제라고 하면 일자리와 같은 양의 문제와 비정규직, 양극화, 노동기본권 등 질적인 문제가 동시에 존재한다. 생색내기를 좋아하는 단체장들은 일자리 양을 늘리는 것으로 자신들의 ‘노동관련 책무’를 다 했다고 자랑할 수 있겠으나 그게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노동의 양과 질, 두 문제는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쉽게 분리될 수 없다. 당장 지방정부의 비정규직문제만 해도 단체장이 사용자로서의 지위를 가지고 있다.
어쨌든 이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 서울시를 필두로 지방정부도 적극적으로 노동정책에 뛰어 들기 시작했다. 서울시의 경우 근로자권익보호 조례를 만들어 노동정책의 근거를 만들고, ‘일자리노동정책관(일자리정책담당관, 노동정책담당관, 사회적경제담당관)’을 두어 행정조직을 정비했다. 서울노동권익센터 등 중간 지원조직을 통해 형식적인 정책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노동자들을 지원하고 있다. 취약노동자 권익보호 등을 통한 노동자 권익보호와 고용의 질 개선 등을 통한 모범사용자로서의 역할 정립 등의 목표실현을 통해 ‘노동존중특별시 서울’을 표방하고 있다. 생활임금확대 적용, 정규직 전환, 노동이사제 등은 대단히 선도적이다.
광역단위인 서울시뿐만 아니라 경기도 안산시도 이 분야에서는 앞서가는 지방정부다. 노동인권보호조례를 제정하여 법적 근거를 만들고 노사협력팀을 노동정책계로 재편하여 행정조직을 정비하였다. 안산시는 노동정책계를 노동정책과로 확대재편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으나 이는 새로운 시장의 의지에 달려있어서 지켜볼 문제다. 또한 안산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는 어느 도시보다 모범적으로 중간조직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쯤 되면 ‘노동관련 권한이 없다’고 발뺌하는 다른 지방정부들이 머쓱할 만하다.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양대노총(민주노총, 한국노총)도 공동요구안을 내고 출사표를 낸 후보자들에게 좀 더 적극적인 노동정책을 주문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노동존중 지자체 건설, 노조 할 권리 보장 확대 △우리 지역부터 비정규직 제로 사회 실현 △최저임금 준수, 생활임금제 도입으로 노동권 보장 △노동자 시민 참여가 보장되는 안전한 지역사회 △지역사회 복지 공공성 강화 △지역부터 사다리 있는 여성 일자리 등 ‘6대 핵심 요구 24대 정책의제’를 발표했다.
한국노총은 ‘노동존중 지역사회 건설’을 목표로 노동존중 지방시대, 좋은 일자리 인프라 구축, 소득 보장 및 삶의 질 강화를 위한 정책요구안을 마련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하 박시장)이나 이재명 경기도지사 후보(이하 이후보)는 이보다 한 발 더 나아갔다.
박시장과 이후보는 ‘노동행정권한을 지방정부로 이양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지방정부에는 근로감독, 수사권한이 없기 때문에 지방정부에서 노동관련 행정을 펼치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박시장은 “서울시에 근로감독권을 준다면 수 백명을 동원해 근로기준법 위반자를 엄정 처벌하고, 굉장한 혁신과 노동행정을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보도 “지방정부에 근로감독권한을 주는 법 개정을 추진해 임금체불·근로계약서 미작성·최저임금 위반·성희롱·산업안전보건법 위반 같은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노동계는 이 문제에 대해 신중한 입장이다. 지방정부는 노동문제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하고, 근로기준이나 산업안전 분야는 중앙정부가 강력한 감독권한을 행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근로감독권한의 지방이양에 대해서는 반대해왔다.
양대노총의 주장도 이해는 되지만, 현장에서 느끼는 것은 근로감독권한이 없이 지방정부가 노동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6.13지방선거를 계기로 이러한 논의도 해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별 주목을 못 받고 있지만 6.13지방선거는 앞으로 4년간 지방정부를 이끌어갈 수장을 뽑는 중요한 선거다. 지역은 수많은 노동자들이 일하며 활동하는 삶의 공간이다. 지역에 발딛고 살아가는 노동자의 삶을 보듬는 그런 후보들이 많이 선출되었으면 좋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