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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문학, 영원한 현재진행형! 원문보기 글쓴이: 動友齎
문예사조에 대한 내 의견
1. 고전주의를 돌아보다
글 . 남진원
내가 시를 짓다가 보니 도대체 시라든가 문학이 언제 어떻게 발생하여 이어져왔는지 매우 궁금해졌다. 물론, 고등학교 때 다 배웠지만 그땐 솔직히 문학사조에 대해 시험을 치기 위한 수단으로만 여겼기에 그리 깊이 생각해 볼 수가 없었다. 2017년인 지금에야, 내 나이 65세가 되어서야 이런 것들에 관심을 갖다니 나도 꽤나 한심한 놈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문학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생각해 보면 그 시대마다 어떤 생각의 틀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이 틀은 그 시대의 문화와 권력과도 상관이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생각의 바탕에는 예술적인 것들도 함께 포괄되어 있다.
먼저 생각나는 것이 옛날에는 어떤 흐름이었는지 궁금하다. 그래서 찾아보니 「고전주의」문학이다.
문예사조는 문학과 예술, 사상의 시대적인 흐름을 알 수 있는 그 시대 문학의 공통적인 경향을 가리킨다. 이것은 단연코 그 시대의 작가와 작품을 통해 규명할 수 있다.
고전주의는 그리스 로마의 문학과 이어져 있다. 의사의 아들이었던 아리스토텔레스(BC 384- BC 322)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다. 그는 앎과 앎을 실천하는 삶을 주장하였다. ‘지행합일’을 뜻하는 것이다. 그의 저작물 <시학>에서 보면 이성(理性)을 중시하였다. 감정이나 상상력은 이성에 의해 통제를 받았다. 프랑스 영국 독일 등지에서 17세기에서 18세기에 걸쳐 일어났던 문예활동이었다. 고전주의는 보편성과 절대적인 미를 추구하였다. 그 절대적인 미는 형식과 질서 속에서 자연스럽게 얻어진다고 여겼다.
마치 조선시대의 유교철학을 보는 듯하다. 유교의 철학은 이성 중심의 성리학이었다. 감정보다는 위세와 명분을 중시하고 명예를 소중히 여겼다. 고전주의는 도덕적으로 선한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던 것이다. 양반가의 가문에 어린 신랑을 맞이한 아내, 신랑이 병으로 죽자, 아내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이런 소설은 극도의 성적 자유를 억압하고 이성에 의해 삶을 살게 했던 조선시대 윤리의식을 그대로 드러낸 고전주의 작품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밖에도 부정과 악을 응징하는 소설 춘향전이나 홀길동전 등은 모두 이성주의 문학인 고전주의를 내포하고 있다.
그렇다면 유럽의 17세기 정치상황은 어떠하였는지가 궁금해졌다.
17세기 유럽의 정치 상황은 봉건제에서 벗어나 자본주의 형태를 띠고 근대화를 이루어가고 있었다.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건설하여 세력을 뻗어나가기도 하였으며 점차 중앙집권화와 절대 국가의 면모를 갖추었다.
이런 상황 하에서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이 매우 중요한 도덕적 기능으로 드러나게 된다.
드디어 나타난 문예운동이 고전주의라 볼 수 있다. 고전주의는 인간의 이성을 중시하고 바르고 진실 되게 살아가는 모습을 중시한다.
이 당시는 그리스 로마 문학의 시대를 지나오면서 자연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였다. 자연에의 모방을 중시하였다. 농촌에서 농사를 짓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고 사람들은 말한다. 참 순박하다는 말을 한다. 정직하기도 하고 진실된 사람의 모습을 찾을 수도 있다. 이처럼 자연을 모방하는 것이 하나의 특징이 되기에 진실한 인간에 대한 묘사 등도 고전주의 특징이 된다. 또 비합리나 모순 등을 배제하고 이성적 판단에 의한 합리주의를 기본으로 하였다. 따라서 이성적인 판단은 일정한 규칙을 원한다. 규칙도 자연을 통해 얻어진 합리적인 사고라 보겠다. 또한 감정보다는 이성을 중시하였기에 교훈적 효용성과 이상적인 미(美)를 주장하였다.
장편 서사시나 비극 등이 활발하였다.
프랑스 작가로는 몰리에르, 라신, 라퐁텐, 부알로, 코르네유 등이 있다.
2. 신고전주의
신고전주의는 무엇인가?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에 걸쳐 서구 전체를 풍미한 예술양식이다. 고대 그리스, 로마의 예술에 대한 부활을 목표로 하였다. 고전주의와 마찬가지로 합리주의 미학에 바탕을 두었다.
‘자연 = 진실 =미’ 라는 등식이 성립한다.
자연의 본질을 절대적으로 여겨 균형과 조화를 생각하였다. 이상적인 미는 통일된 질서와 균형이 생기면 가능하다고 여긴다.
신고전주의자들은 미적 요소의 가장 중요한 것을 ‘단순성’이라 한다. 단순함의 최고 상태는 ‘침묵’과 ‘절제’이다.
신고전주의나 고전주의는 낭만주의 예술과 문학에 선구자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고 볼 수 있다.
여름밤
남진원
풀잎들이
모여앉은
들길에
풀벌레들이
풀벌레들이
밤새도록
노래를 깔아놓는다
빠꼼 빠꼼 빠꼼
빠꼼 빠꼼
별들이 내려다보고 있다.
(남진원 동시집 『할아버지 이 뽑기』p.90)
신고전주의와 고전주의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17-18세기에는 바로크 양식이란 미술이 유행하였다. 웅장하고 화려하며 위엄을 보이는 미술 양식이다. 왕실미술의 전형이다. 곧바로 로코코 미술이 나왔는데 귀족들이 즐긴 미술양식이었다. 바로크의 미술 양식 중에 로코코 미술 양식이 튀어나왔다.
이에 대한 반항이 고전주의이다. 화려하고 역동적이고 거칠기까지 한 왕실중심의 경향에 대한 반대로 다시 그리스나 로마 시대로 돌아가자는 운동이 일어났다. 이 운동이 고전주의인데 활동성은 약했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등장하면서 위엄을 뽐내고 싶었고 그런 문화사조는 다시 고전주의의 부활을 의미했고 그것을 ‘신고전주의’라 했다. 신고전주의는 엄밀, 정확, 합리, 보편, 조화와 질서, 절제와 규칙 등을 내세운다. 문체는 간결체이다.
이러한 고전주의 형식은 옛날 조선시대의 권선징악적인 소설이나 정철의 훈민가 등은 이러한 고전주의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의 작품에서도 간간이 보인다. 한 시대의 문화흐름을 인도하던 모든 풍조는 현재도 부분적으로는 진행형이기도 하다.
몰리에르의 ‘평민 귀족’이란 소설은 다음과 같은 줄거리를 가지고 있는 고전주의 소설이다.
주르댕은 벼락부자인데 평민 출신이다. 그는 귀족들이 부러웠다. 조선시대 돈 많은 부자가 양반을 부러워했듯이 말이다. 그래서 주르댕은 전문가들을 고용하여 귀족풍을 몸에 익힌다.
어줍잖은 귀족의 행동을 하다가 양복점 주인에게도 속는다. 딸은 귀족에게 시집 보내려 한다. 그러나 딸은 이미 평민인 클레옹트라는 애인이 있다. 당연히 아버지인 주르댕의 마음에 들 리 없다.
하인 코비엘은 클레옹트를 투르크 왕자로 꾸며 주르댕 집에 간다. 주르댕은 그것도 모르고 기뻐 어쩔줄 모르며 두 사람의 결혼을 승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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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의 차별을 철폐하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소설이다. 편견보다는 합리적인 이성주의가 내포되어 있다.
다음은 신고전주의 비극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장.라신의 소설 ‘페드르’ 줄거리이다.
이 소설은 숙명적인 인간의 비극을 그린 작품이다.
아테네의 왕인 테제가 죽자, 아내 페드르는 아마존 족의 여인과 내통하여 낳은 아들 이폴리트를 사랑한다. 죽었다는 테제가 살아돌아왔다는 소식에 혼비백산한 페드르는 유모 에논에게 이폴리트를 중상모략하게 만든다. 결국 테제는 이폴리트를 죽게 만들고 페드르 또한 자살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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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과 욕망의 갈등을 극도로 표출하였다. 감정에 대한 도덕적 책임은 자살로 끝을 맺는다.
주머니가 비었을 때
남진원
눈이 / 맑아진다. // 이제 / 나무 한그루 바로 보이고 / 꽃들이 소근대며 /
다가오는구나. // 가진 것 / 모두 / 주고 나니 // 귀가 / 맑아진다.
(남진원동시집 『할아버지 이뽑기』p.52)
교실
남진원
이곳에서
국회의원, 법관, 장관이 나왔다고
자랑하지만
공부가 끝나면
그와 맞먹는 쓰레기를
선생님은 늘 치우셨다.
그래서
쓰레기 의원, 쓰레기 법관, 쓰레기 장관 …
이런 말들이
나오는 건가!
(남진원 동시집 『할아버지 이뽑기』p.54)
3. 낭만주의 (Romanticism)를 들여다 보다
- 인간의 내부에 깃들어 있는 넘치는 감정의 물결을 보라! -
‘낭만’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신비적 감동’이다.
18세기 중엽에 들어서면서 절대왕정의 질서가 이완되고 부르주아의 발흥이 시작된다. 인간의 이성보다는 인간 자체의 심리적 감각에 더 눈뜨게 된다.
계몽주의는 인간의 심성을 고양하는 낭만주의로 발전된다.
이러한 낭만주의는 자아에 대한 확인이며 인간의 내면에 삶의 진실이 있다고 믿는다.
‘낭만주의 (Romanticism)’는 중세 프랑스어 ‘romanz’에서 유래하였는데 주로 문학에서 비현실적인 요소를 집어내어 전기적(塼奇的), 공상적이란 뜻으로 사용하였다. 실재하기보다는 내면의 감정 상태를 표현한 말이라는 의미이다.
사람이 너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생각만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을 보면 냉혹한 인간으로 보이기도 한다. 즉 인간적인 냄새를 맡지 못한다는 말이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정감이 없다는 것과도 통한다. 그러다보니 인간성 소외라는 말이 자연스레 나오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답다는 말은 어느 정도 정겨움이 있고 따스함이 있어야 그 사람에 대한 호감이 싹트는 것이다. 낭만주의는 이러한 인간 소외에 대한 반발로 나온 것일 수도 있다.
영국의 워즈워스와 코울리지는 자연의 관조 중에 상상력에 의한 우주와의 영적 합일감을 노래하였다. 두사람의 공저인『서정 민요집』은 낭만주의 효시라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차츰 이성적인 삶과 행동에 반감을 들기 시작한다. 사람의 생활은 옳고 그름을 따지며 유지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의 감정을 무시한 이러한 철학은 점차 내부로부터의 반기를 들 수밖에 없음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였다.
18세기에서 19세기에는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 기운이 싹트고 활발해지기 시작한다.
프랑스의 루소, 독일의 괴테, 헤르더 같은 사람들이 낭만주의 작가들에 속한다.
세계문학의 거장이라고 부르는 괴테에 대해 더 알아보자.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암 마인에서 태어난 요한 볼프강 폰 괴테. 괴테는 장수한 작가이며 문학의 거장이다. 넉넉한 중산층 집안의 태생으로 문학과 예술을 일찍이 가까이 할 수 있었다. 8시에 시를 짓고 13세에 첫 시집을 낼 정도였다고 한다. 이런 나이에 시를 짓고 시집을 내는 일은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일은 아니다. 이율곡이나 김시습, 최치원 등은 이보다 어려서 시를 짓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괴테의 아버지는 괴테가 법률가나 법률학자가 되길 바랐다. 이에 다라 괴테는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20대 초반에 변호사가 되어 고향에서 개업을 하였다. 그러나 그가 진정 하고 싶은 일은 문학이었다. 그는 여러 문인들과 교류하고 광범위한 독서에 몰입하며 시와 희곡 등을 써보기 시작했다.
괴테의 나이 24살이 되던 해, 한 친구를 알게 되는데, 그 친구의 약혼녀를 첫눈에 보고 반한다. 그리고 짝사랑을 하였다. 고향으로 돌아온 괴테는 다른 한 친구가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놓였는데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는 이 이야기에다 자신의 체험을 넣어 소설을 쓴다. 그 작품이 1774년에 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이 소설로 주인공 베르테르의 옷차림이 유행되고 모방자살까지 일어나는 등 폭발적인 인기 작가가 된다. 하루아침에 괴테는 젊은 유명 작가가 되었다.
괴테는 바이마르에서 카를 아우스트 군주로부터 국정 책임자로 인정을 받아 공직을 성공적으로 수행을 한다. 그러나 괴테의 마음 속에는 늘 예술을 향한 갈망을 지울 수 없다. ‘나는 날개를 지니고 있지만 사용할 수가 없다.’라고 탄식힌다. 그의 문학의 날개를 펼쳐볼 기회를 엿보는 것이다. 드디어 10년 후인 1786년 9월 3일 새벽 3시 괴테는 칼스바트에서 몰래 빠져나온다. 마치 석가가 왕궁을 빠져나오듯이…
괴테는 자유를 만끽하며 3년 동안의 이탈리아 여행을 즐긴다. 이 여행은 괴테에게 일생의 잊지 못할 큰 전환점이 된다. 로마와 이탈리아의 주요 명소를 돌아보며 소설의 모티브를 떠올렸던 것이다. 고전주의 예술관이 확립되었다. 이후 중요한 사건이 생기는데 이는 친구들이 괴테의 내면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었다. 만약 그때 친구들과의 활발한 교류로 내면에 대한 이해의 폭이 커졌다면 괴테의 파우스트는 나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괴테는 고독하였다. 자신의 내면세계를 충분히 이해할 줄 알았던 가장 가까운 친구들은 전혀 이해를 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괴테는 친구들과의 결별을 한 채 긴 고독의 칩거에 들어간다. 이 시간이 괴테에게는 황금의 시간이었다. 단절의 시간이 강할수록 그 파괴력은 크다.
사람이 세상에 큰 인물로 드러나는 것은 본인의 힘도 중요하지만 벗의 힘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이는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중국의 정치가 관중은 포숙아라는 친구가 있었기에 명성을 드러낼 수 있었고 괴테의 옆에는 독일 문학의 거장인 실러가 있었다.
요한 크리스토프 프리드리히 폰 실러(1759-1805. Friedrich von Schiller)는 시인이자 극작이다. 저작물로 ‘빌헤름텔’ 등이 있다. 괴테는 실러와 매우 친하였다. 괴테에게는 큰 지원군을 얻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실러는 괴테가 사는 바이마르로 이사까지 온다. 두 사람은 서로 작품을 비평하며 집필을 독려하기에 이른다. 1975년 발표한「크세니엔」은 두 사람이 공저로 낸 풍자시집이다.
괴테는 이 시기를 전후하여 희곡 [타우리스 섬의 이피게니에](1787), [에그몬트](1788), [토르크바토 타소](1790), 독일 ‘교양소설’의 전형인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1796) 등을 발표한다.
그러나 괴테에게 마음의 충격이 오는 사건이 발생한다. 정다운 친구였던 실러가 1805년 폐질환으로 사망한다. 큰 충격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그 후 아픔을 극복한 괴테는 20여년 간 절정의 창작력으로 명작 「파우스트」를 완성한다. 1831년 「파우스트」를 탈고한 후 봉인하고 자신이 죽은 후에 발표하도록 하였다. 「 파우스트」는 괴테가 60평생 동안 집필한 저작물이다.
1832년 괴테는 83세로 생을 마감한다. 그는 바이마르의 한 묘지에 누웠다. 그 옆에는 평생지기인 실러가 누워 있었다.
파우스트는 16세기 독일에 유행한 전설의 주인공인 마법사이다. 마법사는 중세 시대 종교와 연관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종교나 마법사는 인간의 영혼에 접근하는 것은 동일하다. 종교적인 상황에서 신은 경배와 숭배의 대상이다. 마법은 신의 비밀을 알아내어 그 작용을 행하는 사람이다. 이 말은 인간이 마법사를 내세워 신의 영역 속을 들어가 보려는 하나의 욕망의 소산이다.
전설로 나오는 이야기의 주인공 ‘파우스트’는 악마와 계약을 한다. 그 댓가로 온갖 향락을 즐기게 된다. 그러나 천벌을 받아 지옥에 떨어진다는 전설의 내용이 있다.
이 교훈적 이야기를 영국 최고의 극작가 크리스토퍼 말로는 아주 의미가 깊은 내용으로 바꾸었다. 1592년 [포스터스 박사의 비극]이란 희곡으로 내어놓았다. 여기서는 파우스트가 마법사로 등장하지 않고 학자로 나온다. 그는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갖가지 지식을 얻기 위해 악마와 계약을 맺는다. 이와 같은 신선한 구성은 괴테에게도 영향을 미친 것 같다.
괴테는 인간의 무한 욕망을 그린다. 그 욕망을 꿈꾸는 자들은 신으로부터 파멸을 맛보게 된다. 글의 틀은 거의 공식화된 것이다. 그러나 괴테에 오면 인간의 파멸이 허상과 욕심임을 알게 해주고 천사의 도움으로 구원을 받는 것으로 끝난다. 일종의 계몽사상이 담겨 있는 것은 고전주의 기법 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일찍이 괴테가 그리스 로마 문명을 답사하는 이탈리아 여행에서 고전주의 양식을 체득한 것이기도 하다.
또한 인간의 끝없는 욕망은 인간의 자아완성을 위한 도전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인간에 대한 탐구, 이것 역시 괴테 문학의 위대함이다. 마법사를 등장시켜 인간의 욕망을 구현하려 한 점은 신비주의 관점도 들어있다. 즉 낭만주의 문학의 표출인 셈이다.
괴테의 파우스트는 3단계로 구성되었다. 처음 부분은 헌사로 되어 있다. 좋은 친구들이 먼저 세상을 떠나간 데 대한 심정이 담겨 있음을 볼 때 인간의 고뇌와 깊이, 인간에 대한 사랑이 담겼음을 알 수 있다. 지극히 인간적인 삶을 사랑했던 괴테의 면모를 들여다보게 된다.
파우스트는 자신의 영혼을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팔아넘긴다. 그리고 천국과 지옥을 다니면서 지상 최고의 향락을 누리지만 어떤 충족감도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목마를 뿐이다. 그리고 돌아가는 곳은 인간의 사랑과 순수이다. 인간의 사랑과 순수는 거의 모든 작가들이 추구하는 테마이다. 괴테 역시 인간의 타락한 영혼은 사랑에 의해 구원받는 것을 전해준다. 괴테의 고뇌와 오랜 성찰을 통해 얻어진 사랑은 비장미와 숭고미라는 새로운 미적 감동을 전해주는 낭만주의를 표방하기도 한다.
괴테는 14살 때 사랑한 여인이 있다. 소녀 그레트헨이다. [파우스트]에는 그레테헨에 대한 그리움의 모습이 흐른다. 파우스트는 전설속에서는 마법사이지만 자신의 글 속에서는 박사이다. 사랑에 녹아 흘러가버리는 듯한 기분에 젖는다. 악마의 힘에 의해 파우스트는 젊은이가 되고 그레트헨과의 비극적인 사랑을 나눈다.
[파우스트]가 완성된 과정을 보면 여러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였고 평생 동안의 시간을 투여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0세:인형극 ‘파우스트’를 접한다.
22세:작품 구상. 초고 작성.
41세:단편 [파우스트]발표
51세:제1부를 완성
이후 정체기
글벗 실러를 만나 실러의 격려에 힘입어 다시 파우스트 집필에 들어간다. 그때가 76세이다.
76세:제2부를 쓰기로 결심
80세:생일날 작품의 초연을 보게 됨
괴테의 삶이 아름다운 것은 고통의 세월을 환희로 바꾸는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의 본질은 무엇일까? 바로 괴테만이 갖고 있던 뜨거운 사랑이고 열정이었다.
괴테는 노년에 이르러 친구와 아내 외아들 등 사랑했던 사람들이 모두 세상을 떠나는 것을 본다. 나이 든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자신이 혼자 세상에 내팽개쳐진 듯 남은 모습을 확인할 것이다. 여기서 괴테는 비탄에 빠지지 않고 자신의 지난 세월을 돌아보며 추억과 아름다운 환상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조용히 [파우스트]를 써내려 갔던 것이다.
(서막)
‘천상의 서곡’에서는 신과 악마인 메피스토펠레스가 만난다. 지상에 있는 파우스트를 두고 ‘내기’를 벌인다.
(제1부) - 그레트헨의 비극
제1부에서는 마치 전설같은 이야기들, 첫 사랑, 우정, 기쁨과 슬픔 등을 상기하며 24년간 써내려 간 자전적인 글이기도 하다.
모든 학문을 탐독해도 마음에 차지 않은 파우스트는 절망한 나머지 독배를 들려고 한다. 그때 들려오는 부활절의 종소리!
다시 삶에의 애착을 느낀다. 자신을 찾아온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는 모든 욕망을 채워주겠다고 약속을 한다.
악마는 주점으로 데리고 가서 파우스트에게 약을 먹인다. 그 약은 마약이다. 그 약을 먹으면 어떤 여자라도 최고의 미녀로 보였다.
파우스트는 약을 먹은 후 평범한 여인, 마르가레테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 아가씨에게 젊은 날 사랑했던 소녀 ‘그레트헨’이란 애칭으로 부른다. 파우스트는 점차 악의 늪에 빠진다.
파우스트는 순수한 처녀 그레첸을 유혹해서 타락시킨다. 그레트헨이 미혼모로 낳은 아기를 죽이고 사형을 언도 받는다. 파우스트는 악마의 힘을 빌어 그레트헨 탈출시키려 한다. 그러나 그레트헨은 도움을 거절하고 기도할 뿐이다. 그레트헨은 사형을 당하지만 영혼의 구원을 받는다.
(제2부)
무대는 중세 독일의 황궁이다. 황제와 여러 신하들이 있는 곳에서 악마는 마술을 부려 많은 재물을 갖게 한다. 황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고대 그리스 최고의 미녀인 헬레네를 데려오도록 파우스트에게 요구한다.
파우스트는 악마의 힘을 빌어 고대 그리스 신화 속으로 들어가서 헬레네를 만난다. 그런데 그가 먼저 헬레네의 미모에 정신을 잃고 그녀와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그 두 사람 사이에는 이포리온이라는 사내 아이가 태어난다. 하지만 곧 그 아이는 죽게 되고 둘의 사람도 끝나버린다. 파우스트는 세상의 향락이란 것이 헛된 것임을 알고 자신이 영토를 갖고 세상을 거느리는 것이 최고라는 것을 알게 된다. 파우스트는 왕으로부터 땅을 얻어 개간사업을 하며 이상국의 건설을 꿈꾼다. 이때 이미 100세의 고령이 된 파우스트는 눈까지 멀었지만 마음은 이상하게도 환희와 평화를 느끼며 죽어간다.
이 순간에 메피스토텔레스가 파우스트의 영혼을 데려가려고 하는데 천사들이 내려와 장미꽃을 뿌린다. 장미꽃으로 인해 메피스토펠레스는 파우스트의 영혼을 데려가지 못한다. 오히려 그레트헨은 하늘나라에서 성모 마리아에게 파우스트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빈다. 이에 대한 하늘의 응답이 있다. 신비스러운 천상의 합창소리가 울려퍼진다.
결국 악마 메피스터펠레스는 패하고 온갖 죄를 저질렀던 파우스트의 영혼은 그레트헨의 영적 힘에 의해 구원을 받는다.
괴테의 [파우스트]는 고전주의와 낭만주의를 관통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1부는 중세사회를 반영하였으며 마법을 이용한 개인의 욕망이 드러난다. 제2부는 근대 자본의 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순과 폐단, 인간의 욕망을 제시했다는 점과 모든 악의 행위도 순결과 사랑에 의해 구원으로 승화될 수 있다는 삶에 대한 믿음을 안겨준 것이다.
괴테의 [파우스트]는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를 관통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영국에 셰익스피어가 있다면 이탈리아엔 단테가 있고 독일엔 요한 볼프강 괴테(Johann W. Goethe, 1749-1832)가 있었던 것이다.
한국의 경우에는 1920년대 낭만주의를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동인지 「백조」중심으로 홍사용, 박종화, 이상화 등이 중심이 되었다. 이들은 도덕적 전통적 인습에 반발하였지만 허무주의로 빠지고 말았다. 엄밀한 의미의 낭만주의 작품을 발표했다고는 볼 수 없다.
상상력을 중시하고 주정주의(主情主義)를 존중하며 신비주의 적인 문학 풍으로 볼 때 우리의 경우는 현재까지 부분적으로 시인들의 몇 몇 작품에서 낭만주의를 만날 수가 있다. 낭만주의는 대상의 아름다움을 대하면서 내부로부터 우러나오는 감정의 환희를 형상화하는 게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김소월의 시를 말할 때 ‘민요적 서정시인’이라 지칭하기도 한다. 그의 작품이 주정적이고 일정한 외형율을 유지하는 것 때문이다.이런 측면에서 김소월은 한국의 낭만주의 시인이라 할 수 있다.
우리들이 흔히 말하는 서정시는 정확히 이야기하면 낭만주의 시풍이라 할 수 있다.
진달래 꽃
김소월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 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4. 리얼리즘(Realism)에의 여행
몽상적이고 좀 더 나아가면 환상적인 쾌락의 세계는 오래가지 않는다. 낭만주의 요소는 누구나 모두 가지고 있지만 현실을 무시하지는 않는다. 진정한 진실의 자리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프랑스 화가들 중에 귀스타브 쿠르베는 회의를 느꼈다.
그가 그린 작품은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시각을 돌렸다. 서민들의 진실하고도 무표정한 일상들은 삶의 지표를 보여주는 것이라 여겼던 것이다. 그가 그린 ‘오르낭의 매장’이란 그림은 죽은 사람을 묻는 장례의 모습이었다. 또 ‘돌을 깨는 사람’이란 그림도 무심하고 어쩌면 생활의 아픈 편린 같은 모습이었다. 보통 사람들의 생활속의 진실을 그림속에 담았던 것이다.
이런 추세는 문학에도 영향을 가져왔다.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 객관적 방법 등이 중시된다. 사실주의 작가로는 19세기 프랑스의 발자크, 플로베르, 영국의 디킨즈 등의 소설 작가들이다. 러시아에는 투르게네프,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등이다. 리얼리즘은 현장성이 드러나기에 새로운 감동을 준다.
거지
I. S. 투르게네프
나는 길거리를 걷고 있었다.
내 발길을 멈추게 한 늙은 거지가 눈에 띄었다.
붉은 눈은 눈물에 가려있고, 파리한 입술, 다 해진 누더기 옷, 더러운 상처……
아아, 가난은 잔인한 벌레인냥 사람을 갉아먹는구나!
그는 빨갛게 부풀어 오른 냄새나는 손을 나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신음하듯 동냥을 청했다. 나는 주머니란 주머니는 모조리 뒤져보았다……
지갑도 없고 시계도 없고 손수건마저 없는 빈 주머니.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이 외출을 했던 것이다.
'이 일을 어쩐다……'
거지는 여전히 내게 구원을 바라듯 기다리고 섰다. 노인의 손은 힘없이 흔들리며 떨고 있다. 어찌할 바를 모르던 나는 당황한 채, 떨고 있는 거지의 손을 덥석 움켜잡았다.
"미안하오, 급하게 나오다보니 가진 게 아무것도 없소."
거지의 붉게 충혈 된 두 눈은 한동안 물끄러미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얇은 입술에는 작은 미소가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방법으로 나의 차가운 손을 꼭 잡아주었다.
그런 후, 그는 혼자 중얼거리듯 말했다. “괜찮습니다, 선생님. 이것만으로도 고맙습니다. 그것 역시 적선이니까요."
나는 그 때에야 깨달았다.
- 거꾸로 내가 오히려 이 사람에게서 적선을 받았다는 사실을……. -
우리나라의 경우 리얼리즘은 <창조>(1919) 무렵부터 개화기 근대로 들어오면서부터일 것이다. 리얼리즘의 작가로 김동인, 현진건, 염상섭, 전영택 등을 들 수 있다. 이후 박경리의 「토지」는 리얼리즘 문학의 본령을 획득했다고도 볼 수 있다.
김씨 아저씨
남진원
옆집에 사는 김씨 아저씨
일용직 근로자
머리만 하얀 게 아니라 삶이 하얗다.
눈동자도 뿌옇다.
건조해지는 손등처럼.
눈물이 말라있다.
지친 생각이 우울로 향하고 있다.
김씨 아저씨 집 주변,
돌멩이들도 주저앉은 모양이고
사람들은 눈이 와도 지레 천장이 무너질까 겁낸다.
둘러보니, 김씨 아저씨처럼
곳곳에 삶이 허기져 있다
5. 자연주의(Naturalism), 리얼리즘에서 한 발 더 나가다
19세기 말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났다. 자연주의는 자연에 대한 모방에나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루소의 말처럼 자연을 닮으라는 주의가 아니다. 사실주의 기법에 자연과학적인 방법을 도입하여 더 냉철하고 사실적으로 표현하고자 한 문학의 한 흐름이다. 자연주의는 오히려 쾌락이나 세속주의 쪽으로 흐른다.
인간사회에서 일어나는 적나라한 생활상을 그대로 묘사하는 방법은 자연과학적인 방법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고 할 수 있다.
사실주의를 이어받아 삶의 모습을 분석, 해부를 통해 실체적 삶의 진실에 접근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전원풍이거나 목가주의가 아님은 물론이다.
인간과 사회의 추악한 모습을 담는 그릇으로 원용된 것이 자연주의이다. 따라서 사회속의 개인이나 개인이 속한 사회의 관계를 치밀하게 묘사함으로써 진정성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에밀졸라의 <목로주점>, 모파상의 <비계덩어리>,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 투르게네프의 <그 전야>,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등은 자연주의 문학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자연주의 문학 역시 1910년 이후부터 사회의 어두운 면을 철저하게 파헤친 염상섭의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들 수 있다. 이밖에 전영택, 현진건, 나도향 같은 작가도 포함된다.
자연주의는 과학적 묘사를 하지만 어두운 면을 묘사한다. 일상 생활의 단편 묘사나 성적 묘사도 자유로운 편이다. 사회의 모순이나 부패를 과학적인 방법으로 표현하여 사회참여의 제 문제를 이끌어내는 데에도 기여하였지만 한 분야의 문학 유파로 우뚝 서기에는 미흡하였다.
6. 상징주의(Symbolism),
- 보다 성숙한 생각을 입히다
상징주의는 리얼리즘이라 일컫는 사실주의나 자연주의에서 식상해있던 사람들이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한 문파이다. 어찌 보면 서정성을 주조로 하는 낭만주의 흐름에다가 상징이라는 생각을 덧씌워놓은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어느 정도 형이상학적이기도 하고 신비적 내용도 깃들어 있다. 상징 그 자체에 이미 신비적인 요소를 눈치챌 수 있기 때문이다.
산문적인 요소를 배제한 것은 소설에 대한 반동적 작용도 있다고 보여진다. 언어의 지적 요소를 배제한 점은 사실주의에서 멀어지고자 한 것이기도 하다. 순수한 정서를 중심으로 율동과 가락을 표출하고 언어의 의미보다는 음악성과 다양한 내적 아날로지(analogie:유추)에 기능한다.
상징이 개인의 인간 내면세계를 투영하며 이미지를 창출하면 개인적 상징주의라 하고 보편적 이데아(이상세계)를 암시하면 초월적 상징주의라 부른다.
아래의 작품은 개인적 상징주의 작품의 한 예이다.
日沒
남진원
어둠은 숲이었다. ‘어둠 숲’ 그 속으로 점점 깊숙이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다른 이들과 함께 부드러운 바위가 되었다. 아주 물렁한 어둠 속에서 나도 물렁해진다. 반죽을 해도 괜찮을 것 같은 벌레 소리가 국수처럼 뽑아져 나오고, 칡을 씹는다. 흉보던 어둠, 조금씩 익숙해지며 스스로 더 깊은 곳으로 내려선다. 사탕 맛 같던 빛은 어디에도 없었다.
눈이 오면 좋았다. 지저분하던 것을 덮어주고 뾰족한 것도 두툼하게 씌워주고 세상이 꿈꾸는 것처럼. 그러나 만지면 차거워 자꾸 손이 빨개지는 것처럼. 눈도 어두워졌다.
어둠 안에서 모난 것도 지저분한 것도 한 덩어리 되었다. 그냥 뽀얀 가루만 냄새처럼 맡았다. 그걸 만지면 매끄러웠다. 눈 내리는 날처럼 화안히 몸뚱이가 떴다.
상징(象徵)은 사물과 사물의 유기적인 관계에 의해 새로운 의미를 창출해 내는 힘이다. 그래서 이인복(李仁福)교수도 상징은 단순해야 하며 머무르지 않고 시대를 따라 흘러가는 것으로 파악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시인은 언어와 언어 속에서 상징이란 황금 무늬를 꺼내어 들 때 빛을 발하는 것이다. 시인 또한 한 시대의 정신, 한 시대의 양심, 한 시대를 지키는 상징적인 존재가 되어야 한다.
상징에는 인습적 상징과 창조적 상징이 있다. 인습적 상징은 표상어(겉으로 드러난 어떤 낱말) 안에 담긴 뜻이 널리 알려져 있어서 고착화되어 있는 상징을 의미한다. ‘여우’하면 ‘간사한 사람’을 ‘호랑이’하면 ‘무서운 사람’이라는 것 쯤은 누구나 알 수 있다. 이런 상징을 인습적 상징이라고 한다. 반면 창조적 상징은 문장의 구조를 통해서 드러나게 된다. ‘풀’을 예로 들면 어떤 글에서는 ‘풀’이 고귀함의 상징으로 나타날 수 있고 어떤 글에서는 ‘민초들’을 나타낼 수도 있다. 즉 문맥이나 전체 구조를 통해 드러나는 상징이 ‘창조억 상징’이다.
시에서 상징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사용하는 것은 주로 창조적 상징이다. 그러나 인습적 상징이 함께 나타내는 경우도 많이 있다.
사실 상징은 인류의 발생에서부터 간헐적으로 뿜어져 나온 사유나 감정의 형태이다. 의사전달의 기호는 1차적 상징이라 볼 수 있다. 그러한 기존의 내용에 새로운 기호 내용이 관계에 의해서 생겨나게 되는데 이것이 2차적 상징이고 문학과 예술의 상징이라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이미 우리들은 일반생활이나 언어생활에서 무한한 상징이 있었음을 뒤돌아보면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우리들이 무심하게 스쳤기 때문에 간과한 것들인 것이다.
영국의 예이츠나 독일의 릴케 프랑스의 보들레르, 베르레느, 랭보, 말라르메 등이 상징주의 시인에 속할 수 있다.
가을의 노래
베를렌(1844-1896)
가을 날
바이올린의
긴 흐느낌
하염없이
내 마음 아리어라
고요히 들려오는 종소리에
가슴이 메어
지난 날 그리움에
눈물지어라
쇠잔한
내 모습
바람 부는 대로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낙엽 같아라.
10살이나 위인 사촌 누나를 사랑했던 베를렌은 사촌누나와의 사랑을 이을 수는 없었다. 그녀는 이미 다른 남자의 아내였기 때문이다. 그의 쓸쓸함과 슬픔은 가을날의 허무함으로 이어져있다.
7. 모더니즘( modernism)의 표현주의( Expressionism)
19세기 사실주의에 대한 반발로 일어났다. 기존의 종교적 신념이나 가치관을 부정하면서 새로움을 추구하였다. 지금까지의 가치관을 배제하고 문명의 폐해인 인간성 상실을 문제 삼았다. 교회의 권위, 봉건성을 비판하고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것을 중시하였다.
모더니즘은 표현주의, 미래파,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주지주의 등의 양상을 보인다.
우리의 경우 1925년대를 전후하여 감각적 여러 표현의 경향으로 나타났다. 양주동, 김기림, 정지용, 최재서, 김광균, 이상, 김춘수 등의 작가들이 활동하였다.
김기림은 <오전(午前)의 시론(詩論)>(朝鮮日報, 1935.4.20.~30.), <포에지와 모더니티>(新東亞 21호) 등을 통해서 지적 정신에 의한 문명비판, 풍자(satire), 당위의 시, 시각적 회화성의 시를 강조했으며, 장시(長詩) <기상도(氣象圖)>(1936)를 지어 이론적인 것을 실천으로 옮기기도 하였다. 최재서는 <비평(批評)과 과학(科學)>(조선일보, 1934.8.31.~9.7.), <현대주지주의문학이론건설(現代主知主義文學理論建設)>(조선일보, 1934.8.6.~12.) 등을 통해서 엘리어트(Eliot,T.S.)의 역사의식, 리드(Read,H.)의 정신분석, 리처즈(Richards,I.A.)의 <시와 과학(Sience and Poetry)(1926) 등을 중심으로 소개하였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견고한 이미지 제시를 강조하는 이미지즘에 정지용의 <바다>(詩文學 2호), 김광균(金光均)의 <추일서정(秋日抒情)>(人文評論 10호), 주지주의에 김기림의 <기상도>,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에 이상의 <오감도(烏瞰圖)>(조선중앙일보, 1934.7.24.~8.8.), <날개>(朝光 9호) 등을 꼽는다. 이러한 모더니즘은 1950년대를 전후하여 새로운 진전을 보이는데, 조향(趙鄕)의 초현실주의시, 김춘수(金春洙)의 무의미시에 이르러서는 세계 상실과 허무주의라는 후기모더니즘의 극단적 양상을 띠기도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문학사조 [文學思潮] (국어국문학자료사전, 1998., 한국사전연구사)
정지용의 시[바다]는 감각적인 언어로 표현되었다.
‘바다는 뿔뿔이 / 달아나려고 했다.’ 등이나 ‘푸른 도마뱀 떼같이 / 재재발렀다.’ ‘흰 발톱에 찢긴 / 산호보다 붉고 슬픈 생채기!’ 등 당시는 매우 혁신적이었다.
추일서정(秋日抒情)
김광균
낙엽은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
포화(砲火)에 이지러진
도룬 시의 가을 하늘을 생각하게 한다.
길은 한 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일광의 폭포 속으로 사라지고
조그만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새로 두 시의 급행 열차가 들을 달린다.
포플러나무의 근골 사이로
공장의 지붕은 흰 이빨을 드러낸 채
한 가닥 구부러진 철책이 바람에 나부끼고
그 위에 셀로판지로 만든 구름이 하나
자욱한 풀벌레 소리 발길로 차며
호올로 황량한 생각 버릴 곳 없어
허공에 띄우는 돌팔매 하나
기울어진 풍경의 장막 저 쪽에
고독한 반원을 긋고 잠기어 간다.
『인문평론』(1940.7)
길
김기림
나의 소년 시절은 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喪輿(상여)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잃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푸른 하늘 빛에 호젓 때없이
그 길을 넘어 江가로 내려갔다가도
노을에 함북 자주 빛으로 젖어서 돌아오곤 했다.
그 江가에는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나의 나이와 함께 여러 번 다녀갔다.
까마귀도 날아가고
두루미도 떠나간 다음에는 누런 모래둔과
그리고 어두운 내 마음이 남아서 몸서리쳤다.
그런 날은 항용 감기를 만나서 돌아와 앓았다.
할아버지도 언제 난 지를 모른다는 마을 밖
그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나는 지금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계집애,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가 돌아올 것만 같아
멍하니 기다려본다.
그러면 어느새 어둠이 기어와서
내 뺨의 얼룩을 씻어준다.
8.표현주의( Expressionism)
표현주의는 르네상스 이래 유럽의 전통적인 규범을 무시하였다. 왜냐? 인간의 정신과 그 속에 내재한 순수한 감정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하였기 때문이었다. 그간은 규범과 위엄 등으로 인간의 외형적인 측면을 귀족과 권력 계급들이 요구하였다. 그러나 과학이 발달하고 인간의 합리성이 중시되면서 각성이 일었다.
표현주의는 1880년 대 이후부터 일어났으나 1905년 프랑스에서 활발해졌다.
불안, 공포, 증오, 애정…
이러한 근본적인 인간의 감정을 인간의 위선적인 근엄함에서 꺼내왔다. 따라서 그러한 감정을 강렬한 색채와 왜곡된 선으로 표현하고 원근법, 해부학, 균형, 미학 등의 규범을 무시하였다.
왜곡도 필요하였다. 그것은 내용을 강조하기 위한 주요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우리의 경우, 일전에 초청시인으로 모신 정영애 시인의 몇 편 시들은 그러한 표현주의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송이
정영애
어째 낯설지는 않은데
불경스럽게도 화끈거리느냐, 나는
족보 있는 뿌리로 우뚝 선 채
나를 일으켜 세우겠느냐
감히 함부로 할 수 없는 귀골의 희디 흰 뼈
깊은 몸속을 더듬듯 그 아득한 속을
물을 길이 없구나
붉은 소나무의 강렬한 입김 같기도 한
흰 밤꽃의 내밀한 숨 막힘 같기도 한
혀끝으로 살살 어루어 부풀어가는 맛이란
저린 손발 쯤이야 무순 눈치를 채겠느냐마는
아무 이유도 모르는 이랫도리는 왜 뻐근해오는지
입 속 가득 묵은 때 벗겨내고
아찔한 향
목젖 깊숙이 밀어 넣는다.
(2017년 4월 18일 ‘행복한 시 읽기’ 강좌에서 ‘작가의 시 읽기’ 작품)
9. 실존주의, 개인의 의지로 선택하는 삶
20세기에 들어와서 가장 영향력 있게 지배했던 흐름, 실존주의이다. 인간이 무엇인가? 살기 위해서 먹고, 먹기 위해서 생산에 참여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산업화사회에서 사람은 생산자와 소비자로 전락? 또한 군중의 무리 속에서 ‘나’ 하나는 무엇인가? 에 대한 고민도 생긴다. 현대문명의 가장 큰 성과가 획일성이라면 그것이야말로 현대문명의 가장 큰 위험성이기도하다.
이런 피폐한 사회의 적폐를 바라본 사람은 샤르트르이다. 그는 『존재와 무』(1943)에서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인류 역사는 인간들이 모여 살면서부터 제도나 관습이 형성되었다. 질서 유지를 위한 목적도 있지만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도 있으리라. 제도나 관습의 틀은 사람들의 편리와 행복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어느새 사람들의 정신을 구속하기에 이르렀다. 실존주의는 이런 제도나 관습에 반기를 드는 것이다.
제도나 관습 속에 묻혀 살면 허무하기 짝이 없다. 까뮈는 ‘한계상황’을 발한다. 그것은 삶에서의 마지막 인간이 겪어야 하는 ‘죽음’이다. 그것이 있기에 인간은 삶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나날이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헛된 명분이나 맹랑한 이상에 쫓겨 무책임하게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덴마크 출신인 키에르케고르는(1813-1855)는 저서『이것이냐 저것이냐』에서 인간의 삶을 3단계로 제시하였다.
1단계는 미적 단계로 감각적 쾌락을 따라 사는 삶이다. 이것으로는 행복을 얻지 못한다. 곧 권태와 절망에 빠지기도 하니까. 2단계는 윤리적 단계이다. 지켜야 할 기본적인 도덕이나 윤리를 지키며 사는 단계이다. 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2단계에 의해 살아간다. 그러나 죽음의 불안에서 벗어나지는 못한다. 그래서 3단계를 말한다. 3단계는 종교적 단계이다. 신을 믿고 따르면서 완성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종교를 믿는 많은 사람들은 수긍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하다. 그러나 신을 믿고 안 믿고의 문제는 또 다른 여러 가지 인생문제에 부딪치는 일이다. 키에르케고르가 말한 것처럼 그리 단순한 문제는 아니다.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는 『존재의 시간』에서 말한다. 사람은 동물이나 무생물과도 다르다. 인간이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스스로 결단을 내릴 수 있고 그 결단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실현시킨다고 한다. 특히 인간에게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죽음’을 알면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자신이 유용하다고 생각하거나 좋아하는 것을 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사람들의 생활을 보면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가거나 동조해 가는 삶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는 신이 죽었다고 선언했다. 현대문명은 목표와 의미를 잃고 허무주의에 빠졌다. 사회는 미래를 향한 능력을 상실 했으며 사소한 이익 다툼으로 인해 매몰되었다. 이같은 문명의 타락은 낡.은 가치에 목메고 있다. 그래서 초인 중심의 새로운 질서가 필요하다고 한다. 니체가 말하는 낡은 가치는 겸손, 순종, 친절, 선함 등의 가치를 말한다. 그러한 가치는 이미 ‘노예의 도덕’이라 한다. 이런 가치들은 당연히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초인은 지성과 긍지의 인물이다. 위험을 무릅쓰고 운명을 개척해 가는 삶의 새로운 기준을 세우고 인류를 이끌어가는 지도자이다.
오늘날은 거대한 가치의 창조보다는 개인 개인의 작은 이익이 우선되고 있는 사회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를 보더라도 청년들의 실업문제나 개개인의 결혼문제 등에서 볼 때도 개인의 일이 곧 거대한 사회문제가 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제는 니체가 말하는 초인의 시대가 아니라 한 사람 한사람의 가치 있는 삶과 창조적인 생활이 중요한 시점이라 보여 진다.
철학은 그 시대에서 부족한 곳을 비쳐주는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한다. 20세기의 실존주의 시대는 이미 가버렸지만 아직도 부분적으로 실존주의의 생활방식은 유효하다.
강인한 의지와 철저한 자기 성찰로 책임지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은 개의의 책무이면서 시대의 요구이기도하다. 내가, 이웃이, 사회가 본질에 앞서 실존하고 있다는 엄중한 사회를 안다면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하게 보내야 할 시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실존주의라는 것이 삶에 대한 반성과 새로운 생존을 위한 탐색이라면 그리스 비극에서부터 현대문학에 나타나는 대다수의 작품에다 실존주의 또는 실존적이라는 형용사를 붙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차라리, 문학인의 자세나 태도가 실존주의적 모습에 서 있을 때 더 소중한 가치를 획득할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대표적인 실존주의 작가로는 독일의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가 있다. 그는 유대계 독일인으로 1883년에 태어나 1924에 사망하였다.
현대인의 실존적 체험을 극한에 이르기까지 표현하였다. 작품 <<변신(變身)>>(1916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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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네이버 지식백과] 신고전주의 [新古典主義, Néo-Classicisme] (미술대사전(용어편), 1998., 한국사전연구사)
[네이버 지식백과] 사실주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자연주의 문학 [自然主義 文學, naturalism, naturalism literature]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안광복, 『청소년을 위한 철학자 이야기』,신원문화사
_____, ‘히틀러를 위한 철학자, 니체’(고교독서평설), 2005년 2월호
[두산 백과] 실존주의 문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