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3.29
호미지맥
오른 산 : 마석산, 토함산
위치 : 경북 경주
산행거리 : 17km 산행시간 : 5:30 날씨 : 맑음
산행 길 : 외동-마석산-복토리-현대중공업-순지마을회관(산행거리 : 9km, 산행시간 : 3:15)
불국사-석굴암-토함산-추령(산행거리 : 8km, 산행시간 : 2:15)
산행후기 :
천년 신라의 고도 경주에 있는 마석산과 토함산을 간다.
수많은 왕릉과 섬세하고 화려한 불교 유적과 유물들이 산재한 경주를 3번을 방문 했지만
토함산의 석굴암은 보지 못하였다. 그 석굴암의 탐방기회가 오늘 왔다.
호미지맥의 한 구간으로 산행을 겸한 탐방 길이다. 오늘 산행 길은 석굴암 탐방이 목적이므로
지맥길을 버리고 마석산에서 내려와 북토리에서 버스로 불국사주차장으로 이동하며 도중에 괘릉을 경유 한다.
06:30 잠실을 출발한 버스는 문경휴게소에서 휴식 후 경주나들목을 나와 지맥팀을 들머리에
먼저 내려놓고 경주시관내우회도로공사중인 외동리에
10:55 도착한다.
지맥팀은 송전탑이 있는 봉을 넘어서 내려온다.
기온이 20도로 예보되었으며 바람이 없어 무척 더울 것이다. 진달래가 만개하여 반겨준다.
멀리 마석산이 보인다.
경주의 산에는 크고 작은 바위들이 많아 남산에는 야외 불상 많이 볼 수 있다.
다른 지방의 송이 자생지는 철책으로 둘러 사나웠지만 이곳은 부드러운 로프로 되어있다.
알림에 뜻이 담겨있다.
12:10 마석산 정상
북토리, 순지 마을 전경
보리밭
13:07 북토리 마을회관 앞
마을 어귀나 들판에는 느티나무가 많은데 이곳은 보기 좋은 소니무가 있다.
버스 주차장소가 변경되어 많은 시간을 소모하고 현대중공업 옆 순지마을회관에서
14:05 버스로 불국사 주차장으로 이동한다.
14:33 원성 왕릉을 잠시 돌아본다.
서역인의 무인석
단정한 모습의 사자상
웃으며 장난기가 보이는 사자상
토암산 구간
14:55 불국사 도착
시간부족으로 불국사정문에서 석굴암주차장으로 바로 간다. 2.3km 구간의 넓은 도로는 인도
전용으로 너무 좋다. 머지않아 싱그러운 나뭇잎이 피어나면 최상의 산책길이 되겠다.
15:35 석굴암주차장 도착, 불국사에서 2.3km 37분 소요되었다.
입장료 4,000원은 문화재 관리비용인가? 아니면 사찰의 수익인가?
조계종 신도증이 있으면 무료이다.
15:38 석굴암탐방길 들어선다. 도로는 포장을 하자않고 마사토 바닥이라 옛길을 걷는
기분으로 걸음이 가볍다. 몇 굽이를 돌아서니 석굴암을 가리고 있는 전각이 보인다.
석굴암의 옛 모습은 석굴이 개방되어 동해를 바라보는 부처님을 볼 수 있었으나 지금은
석실 앞에 전각이 있어 부처님을 답답하게 한다. 과학이 발전하였지만 조상님들의 지혜는
따를 수 없어 내부의 온습도 관리를 위해 온갖 방법이 동원되고 있다. 전각 앞에는 또 다른
공사가 진행 중이며 콘크리트 구조물이 널려있다.
1910년대의 모습
현재의 모습
천년을 이어온 부처님의 자비광명이 천세만세 불국토로 지켜주시기 축원합니다.
나무석가모니불!
1910년대의 전경
15:47 처음 친견하는 부처님이시다. 칸막이 유리창이 가려서 더 가까이 대하지 못함이
아쉽기 만하다. 석굴암은 우리나라 불교미술의 꽃이다.
천년의 미소
토함산에 올랐다 하산하는 시간에 쫒기어 걸음을 빨리한다.
15:56 석굴암일주문을 나와
우리나라의 문화제 70% 이상은 불교문화 유산이다. 종교를 초월하여 천년을 이어온 민족의
혼과 조상님들의 숨결이 담긴 소중한 민족유산이 우리들것만이 아닌 세계의 유산으로 우리들은 길이길이 보전하여야 된다.
토함산으로 오른다.
16:08 채화대
토함산 헬기장
16:18 토함산 정상
망루를 돌아서 추령삼거리로 내려간다.
16:25 추령 갈림길
17:10 추령, 백년다원이 고풍스럽다.
19:15 경주의 야경, 저녁을 마치고 출발에 앞서
밤 11시가 넘어서 잠실도착 하였다.
신라(新羅, 기원전 57년 ~ 935년)
고구려, 백제와 함께 삼국시대의 하나로, 992년간 지배하였던 국가이며, 세계에서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존속했던 왕조들 중 하나에 속한다.
경주 지역에서 기원전 57년경에 건국, 삼국 중 가장 먼저 세워졌지만 국가의 틀을 세우는
데는 가장 늦었다. 6세기 경 법흥왕 때 불교를 받아들여 왕권 강화와 백성의 단결을
꾀하였으며, 당(唐)과 동맹을 맺어 660년에 백제를, 668년에는 고구려를 차례로 멸망시켰으며,
또한 한반도를 지배하려던 야욕을 드러낸 당나라를 나당 전쟁을 통해 몰아내었다. 말기에
이르러 왕과 귀족이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고, 내부 분열이 이는 와중에 지방에서 자리 잡고
있던 호족의 세력이 성장하여, 900년 견훤이 후백제를, 901년 궁예가 태봉을 세움과 함께
후삼국 시대가 시작되었다. 고려와 후백제의 공세에 국가의 유지가 위태로워 신라 경순왕은
935년 고려의 왕건에게 항복하여 56대 992년 만에 멸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