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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 38:1) 그 때에 여호와께서 폭풍우 가운데에서
욥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제 창조주께서 정하신 욥의 징계의 시간이 끝난 것이다.
이때는 창조주께서 생각을 통하여서 깨달음을 주신다.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것인지, 아니면 욥에게 그냥 생각으로
알려주신 것인지는 모르지만 창조주는 나의 생각에
창조주에 대해서 창조주의 지식을 넣어주시면 그냥
나열하지 않아도 알게 된다.
창조주를 직접 만나면 사람으로서 자기의 낮은 처지와
부족함을 저절로 처절하게 느끼게 된다.
과학자든, 발명가든, 박사든, 교수든, 전문가든
사업가든, 종교인이든 아무 상관없다.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정말 쥐구멍에 숨고 싶다.
그런 죄 성을 알게 해주시면 저절로 통회 자복하는
회개를 하게 된다.
(욥 38:2)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하는 너는 누구냐
창조주에 대해서 창조주께서 직접 욥에게 말씀하신다.
(욥 38:3)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
내가 너에게 물어볼테니 너는 당당하게 대답해 보거라.
(욥 38:4)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창조주의 천지창조를 말씀하신다. 그 정도의 능력이 있으신
창조주임을 밝히신다. 창조주의 능력은 측량도 할 수가 없고
생각조차도 느낌조차도 가질 수 없다.
그 정도의 창조주께서 천지창조에 대해서 성경에 아주
먼지 만큼 짧게만 말씀하셨다.
창조주는 그런 창조주의 능력에 관한 신비스러움을 공부하고
밝히고 가르치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성경 거의 전부를
사람들이 행해야 하고 갖춰 나가야 하는 올바른 사회성을
말씀하신다.
나에 대해, 부부에 대해, 가족에 대해, 친구에 대해, 친척에 대해,
효에 대해, 교회에 대해, 사회에 대해, 나라에 대해, 창조주에 대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말씀하시고 그대로 살라고 하신다.
그런 올바른 사회성을 잘 가르쳐야 한다.
(욥 38:5) 누가 그것의 도량법을 정하였는지, 누가 그 줄을
그것의 위에 띄웠는지 네가 아느냐
창조주의 창조는 그냥 ‘돈 나와라 뚝딱 하신 것’이 아니라
완전한 과학법칙에 의해 하셨다.
속도, 농도, 전산정보 단위, 길이, 무게 등 물리량을 측정하기
위한 표준 단위를 정의하는 개념을 '도량법' 이라고 한다.
창조주가 그냥 대충 여기 저기 매달고 하신 것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정확히 조금도 틀리지 않은 단위에 의해 하셨다는 것이다.
만약 창조주를 완전한 과학자로 보지 않고, 그저 도사님 정도로
생각하거나, 성경말씀이 지어낸 것이라고 한다면,
창조주가 없다고 한다면, 사람이 과학자라고 한다면,
지금 과학자들이 이런 세상을 하나 만들어내면 된다.
땅 바닥에 주추를 만들지 않고, 공중 어딘가에 주추를 세우고
그것들을 와이어 줄로 묶어 놓지 않고도 스스로 떠있는 은하계를
하나 만들어 내면 그야말로 과학자가 창조주인 것이다.
하늘에 떠 있는 지구, 해 달 별 등 구름 비 우박 눈 이런 것을
하나 만들 줄 알면 창조주가 필요가 없다.
사람이 창조주가 되는 것이니까.
(욥 38:6) 그것의 주추는 무엇 위에 세웠으며 그 모퉁잇돌을
누가 놓았느냐
이 우주가 공중에 떠 있는데 그 주축은 누가 세웠으며 그 주축은
어디다 세웠느냐? 건물의 기초를 튼튼히 하기 위해 기둥 밑에 괴는
돌을 주춧돌이라고 하는데 그 돌은 어디다 세웠느냐?
땅에서야 집을 지을 때는 그 주춧돌을 땅에다 세우지만
공중에 떠 있는 주춧돌은 과연 어디에다 세울까?
(욥 38:7) 그 때에 '새벽 별'들이 기뻐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뻐 소리를 질렀느니라
이런 천지창조가 있을 때에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기뻐 노래했고
천사들이 기뻐 소리쳤다. 새벽별은 사람에게 붙여주신 애칭이다
(계시록 22:16).
(욥 38:8) 바다가 그 모태에서 터져 나올 때에
문으로 그것을 가둔 자가 누구냐
바닷물이 어디선가에서 나올 때, '거기까지'라고 정하셨다.
우리는 창조주의 창조는 '어디서엔가 나온다' 로밖에 말을
할 수가 없다. 나머지는 창조주의 권한이시기 때문에.
계속 바닷물이 나온다면 지구가 어떻게 될까?
그 짠물은 도대체 어떻게 만드셨을까? 소금을 얼마나 타셨을까?
소금을 타셨나? 우리는 바닷물을 말려서 소금을 만들어 먹고 있는데.
바다니까 짜지! 그런 소리는 사람이 그냥 하는 소리이고.
항상 딱 그 짜기만큼 짜다.
그런데 사해는 짜도 너무 짜서 쓰고 혀도 아프고 할 정도다.
아무리 갈릴리 바닷물이 흘러 들어오고 사해 자체에서는 어디로
흘러갈 데가 없다고 해서 그렇게 짜질까?
아니면 소돔 고모라 성 자리라서 그런가? 롯의 아내가
소금기둥이 되었다는데 그 기둥이 계속 짠맛을 내나?
멍청한 소리 같지만 사람은 창조주께서 하신 일에 대해서 그런가보다
해야지 사람의 과학으로 푼다고 나서는 게 아니다. 증명 같은 것을
안 해준다고 창조주께서는 답답해하시지 않으신다.
사람이 지혜롭다 하는 것을 창조주는 무시하신다.
신경도 안 쓰신다.
(욥 38:9) 그 때에 내가 구름으로 그 옷을 만들고
흑암으로 그 강보를 만들고
땅에서 수증기가 올라가도록 하시고 그 물방울들이 모여서
구름이 형성되게 하시고 지구를 어둠으로 두르시고
(욥 38:10) 한계를 정하여 문빗장을 지르고
창조주께서 창조하신 것들이 딱 한계들이 있다. 태양을 돌던,
달이 돌던, 지구가 돌던, 별들이 돌던, 딱 거기까지.
그래서 밤도 있고 낮도 있고 사계절이 있도록 하셨다.
하루가 있고, 한 달이 있고, 일 년이 있고.
머리는 계속 자라되 속 눈썹은 딱 거기까지 자라라.
손톱이 계속 자라도 뽑히면 없어져야 하는데 다시 손톱이 나온다.
정자도 계속 만들어지고 난자도 계속 만들어지고, 서로 만나면
하나가 되고, 사람이 되든 생물이 되든 자기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
여자의 가슴도 똑 같은 피로 되어 있는데
아기를 갖게 되면 젖이 만들어진다. 신기하다.
창조주께서 정해 놓으신 대로 창조물이 스스로 움직인다.
창조주께서 만드신 원본의 중요도에 따라, 손상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
재생도 되고 안 되고 한다. 원본이 많이 손상이 되면 죽기까지 한다.
(욥 38:11) 이르기를 네가 여기까지 오고 더 넘어가지 못하리니
네 높은 파도가 여기서 그칠지니라 하였노라
과학적으로 밀물과 썰물을 알아냈다고 해서 사람의 힘으로 밀물과
썰물을 조절하고 만들 수 있다면 사람이 창조주지.
바다는 딱 고만큼 물러갔다가 고만큼 온다.
그런데 쓰나미나 해일이 일어나는 것은?
하나님의 징계용이시다(아모스 5:8).
(시편 104:32) "그가 땅을 보신즉 땅이 진동하며 산들을
만지신 즉 연기가 나는 도다" 아멘.
하나님께서 지진도 일어나게 하시고 화산도 터지게 하신다.
(욥 38:12) 네가 너의 날에 아침에게 명령하였느냐
새벽에게 그 자리를 일러 주었느냐
네가 아침더러 오라고 했냐? 오지 말라고 했냐?
새벽은 네 자리에 그냥 있으라고 했냐?
(욥 38:13) 그것으로 땅 끝을 붙잡고 악한 자들을
그 땅에서 떨쳐 버린 일이 있었느냐
아무 때고 아침이 오도록 명령해서 나쁜 짓 하는 녀석들을
잡은 적이 있느냐?
(욥 38:14) 땅이 변하여 진흙에 인친 것 같이 되었고
그들은 옷 같이 나타나되
밝은 아침이 오니 나쁜 녀석들이 드러나게 된다.
(욥 38:15) 악인에게는 그 빛이 차단되고 그들의
높이 든 팔이 꺾이느니라
나쁜 녀석들의 나쁜 짓은 끊어지게 된다.
(욥 38:16) 네가 바다의 샘에 들어갔었느냐
깊은 물 밑으로 걸어 다녀 보았느냐
네가 바다의 근원을 아느냐? 그 깊은 바닷 속을 걸어 다녀 보았느냐?
(욥 38:17) 사망의 문이 네게 나타났느냐
사망의 그늘진 문을 네가 보았느냐
영의세계의 죽음이라는 장소인 '스올'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영의세계에서 '스올' 이라는 죽음의 문으로 그 사람의 영을
들어가도록 명하시면, 그 영은 그 곳으로 자동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의 육체가 이 땅에서 죽는 것이다.
그런다고 그 영까지 죽어버리는 것은 아니다.
이 사망의 문을 지나 ‘스올’로 들어가는 것인데 들어가서 무엇을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이 곳은 창조주룰 믿는 유대인이나 기독교인이나
타 종파나 무신론자들이나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다 들어가야 하는 곳이다.
누구는 스올 옆에 있는 문으로 들어 가고 누구는
'스올의 정문'으로 가고 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는 죽어서 천국에 가고 누구는 죽어서 지옥에 간다고 하면서
이 '스올'이라는 곳이 지옥이라고 교육받았는데, 이제 보니 이 '스올'
이라는 곳은 영의세계의 죽음의 장소로서, 개나 소나 다 들어가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고 이 '스올'로 들어가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자는
이 땅에서 영원히 죽지 않고 산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창조주께서 그 곳으로 들어가게 하셨어도 꺼내주시고자 하시면
나오도록 명하시는데 그러면 이 땅에서 그 육체가 죽으려다
살아나는 것이다(시편 30:3).
예수님은 그 '스올'로 들어가셨다가 스스로 나오신 것이다.
그것을 우리로 볼 때는 '죽음의 권세를 이기셨다'고 하는 것이지,
예수님이 '스올'의 대장과 싸우시고 이기셨다는 것이 아니다.
그 '스올'이라는 것은 창조주께서 관리하시는 것이지 사탄이나
마귀에게 하청 준 것이 아니다.
자꾸 한분밖에 안계시고 전지전능하신 창조주신 예수님과
사탄이나 마귀와 싸우시는 존재로 하락시키지를 말라.
(욥기 26:6) "하나님 앞에서는 스올도 벗은 몸으로 드러나며 멸망도
가림이 없음이라" 아멘.
그러니 보는 것에 한계가 있는 이 육체의 눈으로 그 끝도 없는 영의세계의
'스올'의 문을 보고 온다면, '스올'의 사자가 자기를 죽이려고 오는 것을
본다면 기절할 일이다.
육의세계의 눈으로 영의세계를 보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무서울 뿐이다.
개미가 사람의 세계를 보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한국 사람도 그 저승사자를 많이 보았다고 하는데, 그 모습이 거의가
한국 사람이 죽을 때의 모습인 것 같다. 하얗게 화장도 되어있고,
죽으면 핏기가 없어지기 때문에 하얗다. 검은 도포를 입고 갓 쓰고,
치부책 하나 들고 있다.
옛날에는 이런 모습이었는데 현대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나도 내가 어렸을 때 돌아가신지 얼마 안 된 엄마가 꿈에 나를 보러 왔는데
어떤 일반 아저씨 두 명에 의해 양쪽으로 팔짱을 끼고 나를 보고 왔던 길로
걸어서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엄마! 어디가!” 소리치며 울면서 따라가려고
한 적이 있었다.
그 아저씨는 이런 도포 쓰고 눈동자도 없고 째려보는 아저씨가 아니었다.
그냥 그 때 당시 스타일대로 입었던 아저씨들의 모습이었다.
가난했는지 그닥 멋있게 차려입은 것은 아니었다.
저승사자가 꼭 이렇게 생겨야 한다면 다른 온 나라들의 저승사자도
이렇게 생겨야 한다. 하지만 각 나라별로 저승사자를 보는 모습이
다 다르다. 사람마다도 다르다.
각 나라별로 나타나는 귀신의 모습도 다 다르다.
(욥 38:18) 땅의 너비를 네가 측량할 수 있느냐
네가 그 모든 것들을 다 알거든 말할지니라
지구의 넓이를 네가 측량 할수 있느냐? 알거든 말해봐라.
(욥 38:19) 어느 것이 광명이 있는 곳으로 가는 길이냐
어느 것이 흑암이 있는 곳으로 가는 길이냐
어느 길이 빛의 길이며 어느 길이 어둠의 길이냐?
어느 길이 '탄생'의 길이냐? 어느 길이 '죽음'의 길이냐?(욥기 3:4~5)
(욥 38:20) 너는 그의 지경으로 그를 데려갈 수 있느냐
그의 집으로 가는 길을 알고 있느냐
네가 그를 출생의 길로나 죽음의 길로 데려갈 수 있느냐?
(욥 38:21) 네가 아마도 알리라 네가 그 때에 태어났으리니
너의 햇수가 많음이니라
네가 참 알겠구나. 너는 아주 오래전에 창세 때 태어났으니까.
나의 영체는 창조 때를 안다. 하지만 지금 이 육체는 모른다.
(욥 38:22) 네가 눈 곳간에 들어갔었느냐 우박 창고를 보았느냐
이 눈과 우박은 홍수 이전에는 사용되지 않았었다.
하지만 처음 창조 때 지금까지 있었던 것, 앞으로 나올 것들
모두가 아예 다 창조되어 있었다.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모를 뿐이고, 앞으로 무언가
문명으로든 징계로든 축복으로든 나타나는 것들은 처음부터
창조되어 하늘 곳간 어딘가에 있었던 것이다.
'진화' 라는 말처럼 정말 무언가 끝도 없이 계속 나오고,
계속 만들어지고, 계속 변하고, 계속 탄생되어지고 있다.
(욥 38:23) 내가 환난 때와 교전과 전쟁의 날을 위하여
이것을 남겨 두었노라
환난을 주신다는 것은 사람들이 잘못했을 때의 상황이다.
무조건 주시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환난의 종류는 수없이 많고
사람마다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다.
앞으로 어떤 희귀병으로 환난을 준비하셨건,
교전과 전쟁의 날을 위해 남겨놓으셨건
처음부터 창조되어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전쟁을 할 때 처음에는 말로 했을 것이다.
그리고 손을 사용했고, 도구를 사용했고, 칼을 만들고,
총을 만들고, 이제는 미사일에 핵무기에 원자탄에
각종 신무기들이 개발되고 있다.
창조주신은 안 만드셨는데 사람이 개발하고 있다고 하면
사람이 창조주가 되는 것이다.
원래 무엇이든지 다 창조되어 있다.
쓸데가 있어서 남겨두신 것이다.
그 남겨두신 것들이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창조주의 세계는 무한의 세계이다.
(욥 38:24) 광명이 어느 길로 뻗치며 동풍이 어느 길로
땅에 흩어지느냐
빛이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로 어떻게 뻗치며, 바람이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흩어지는지 아느냐?
(욥 38:25) 누가 홍수를 위하여 물길을 터 주었으며
우레와 번개 길을 내어 주었느냐
창조주께서 노아 홍수 때 사람들을 다 죽이시기 위해서 하늘의
물 창을 여시고, 땅에 있던 물도 열어서 솟구쳐 오르게 하셨다.
그 많은 비가 왔을 때 번개와 천둥은 없었을까?
땅에 있는 수증기가 올라가 물층이 되고 그 많은 물방울들이 모여서
구름이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만들어지고, 먹구름이 형성이 되면 땅으로
쏟아지는데 그것이 이슬비일 수도 있고, 보슬비일 수도 있고, 가랑비일
수도 있고, 지나가는 비일 수도 있고, 소나기일 수도 있고, 홍수일 수도
있다.
소나기 정도 되면 번개와 천둥이 동반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욥 38:26) 누가 사람 없는 땅에, 사람 없는 광야에 비를 내리며
사람도 사람이 살고 있는 어느 지경까지는 물을 모아놓았다가
필요할 때 물을 줄 수가 있다. 비가 안 올 때를 대비해서 웅덩이를
파 놓고 비가 와서 물이 고이면 그 물을 논에다 대주고 밭에다 대주고
해서 농사를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다. 계속 창조주께서 비를 주시지
않으시면 그 웅덩이 물도 말라버리는 것이다.
(욥 38:27) 황무하고 황폐한 토지를 흡족하게 하여 연한 풀이
돋아나게 하였느냐
하지만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나 광야나 산이나 이런 곳에는
누가 물을 줄 수가 있을까? 창조신께서 주시는 것이다.
그냥 흙만 있었는데 어느 날 보면 잡초가 자라고 꽃이 자란다.
누가 심었을까? 아니다. 창조신께서 심으시고 기르시는 것이다.
사람이 심는 거야 나무 몇 그루 몇 천 그루 할 수 있지만,
잡초 몇 개, 잡풀 몇 개, 이끼 몇개를 심을 수는 없다.
창조주께서 심으시는 것은 무대포 이시다.
틈만 있으면 잡초가 생기고 바위에서도 나무가 자라고,
풀이 있으면 안 되는 곳이고 있을 수 없는 곳에도 있고,
사람이 심을 수 없는 곳에 창조주는 심으시고 정말 무대포 이시다.
(욥 38:28) 비에게 아비가 있느냐 이슬방울은 누가 낳았느냐
사람이라는 것과, 생물이라는 것은 어미가 있고 아비가 있다.
그들의 짝짓기로 인해 자녀와 새끼를 낳는 것이고, 계속 그런
시스템으로 번성하고 있는 것이다.
꽃 조차도 꽃봉오리가 생기고 꽃이 피고 꽃가루받이(수분)를 하여
수정이 되고 꽃이 지고나면 씨나 열매가 생기고. 수술의 꽃가루가
바람에 의해서든(풍매화), 새에 의해서든(조매화), 곤충에 의해서든
(충매화), 물에 의해서든(수매화), 다른 꽃의 암술머리에 가고
꽃가루가 씨방으로 내려가 수정이 되고, 꽃이 시들고,
씨가 완성되고, 꼬투리가 터져 여러 곳으로 간다.
조매화와 충매화는 유혹을 위해 화려하고, 수매화와 풍매화는
씨가 가볍다. 꽃과 나무들도 꽃씨가 날라 가고, 옮겨주고 하는
방법으로 사람들이 심지 않아도 번성하고 있다.
비나 이슬방울은 아비 어미가 있어서 그 자체를 낳는 것이 아니라
계절에 의해 자동으로 만들어지게 되어 있다.
따뜻한 계절에 의해 비가 되고 이슬방울도 된다.
(욥 38:29) 얼음은 누구의 태에서 났느냐 공중의 서리는 누가 낳았느냐
얼음이나 우박이나 서리나 눈이나 이런 것들은 아비 어미가 있어서
그 자체를 낳는 것이 아니라 '추위' 라는 계절에 의해 자동으로
만들어지게 되어 있다.
같은 비나 이슬방울이라도 추운 계절에 의해 눈도 되고,
얼음도 되고, 서리도 된다.
(욥 38:30) 물은 돌 같이 굳어지고 깊은 바다의 수면은 얼어붙느니라
추운 계절에 의해 물이 돌 같이 굳어지는데 '얼음' 이라고 한다.
엄청 추워야 강이 언다. 그런데 바다까지 얼 정도면 너무 너무 춥다.
지금 우리 주변에서는 보기 힘들고 북극이나 남극에 가면 바다가 아예 얼어서
땅처럼 되어 있다. 지금은 그 얼음이 기후변화에 의해 녹고 있다고 한다.
그 얼음의 크기가 얼마나 큰지 바다의 수면이 높아질 정도라고 한다.
노아 홍수 이전에는 이런 얼음이라는 것이 없었다.
대 홍수 이후에 지각 변동도 있었고 기후변화도 있게 되었는데
남극과 북극이라는 곳에 얼음 동네가 생긴 것이다.
(욥 38:31) 네가 묘성을 매어 묶을 수 있으며 삼성의 띠를 풀 수 있겠느냐
창조주께서 별들이 공중에 그렇게 둥둥 떠 있게 하시는 것은 무슨 줄로
묶으신 것일까? 우리세계에도 보면 와이어 줄인가 묶어놓고 매달고 하던데
창조주는 어떤 줄로 묶으시고 매달아 놓으셨을까?
창조주께서 묶으신 줄을 사람이 풀 수나 있을까?
묘성이 한 두 개도 아니고, 그 큰 태양계에, 수를 셀 수도 없는 그
은하계를 어떻게 다 이어놓고 묶어놓고 연결시켜 놓으셨을까?
(욥 38:32) 너는 '별자리'들을 각각 제 때에 이끌어 낼 수 있으며
북두성을 다른 별들에게로 이끌어 갈 수 있겠느냐
'별자리'를 사람들이 찾고 만들어 낸 것일까?
창조주께서 알려주신 것일까?
많은 별들의 자리 이름까지 지어 놨다.
지금은 각자 먹고 살기 바쁘고, 자기가 맡은 것 연구하기 바쁘다.
과거에는 천문학이 제일 먼저 발달했는데 지금처럼 바쁘지 않은
시대에 하늘을 보면서 연구를 많이 했다. 하늘의 움직임에 따라
땅에서는 무슨 일이 발생됐기 때문이다.
비가 와야 물도 먹을 수가 있고 농사도 짓고 먹고 살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늘의 움직임은 사람들의 목숨이었다.
동방박사들도 별을 연구하던 학자들인데 알 수 없는 확연히 큰 별이
나타나서 움직이니까 그것을 따라 베들레헴까지 오게 된 것이다.
창조주가 은하계를 어느 줄에 묶으셨던 자동으로 떠 있게 하셨던,
어느 기준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셨든, 하나님은 별 한 개도 따로
움직이시는 분이시지, 원칙대로 그대로 해놓으시고 꼼짝 못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창조주는 별자리를 통해서도 말씀하시나보다.
우리 같은 사람은 아무리 하늘을 쳐다봐도 그 별이 그 별이다.
무슨 별자리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 별자리가 사람의
운명과 무슨 연관이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자기는 무슨 별자리
무슨 별자리라고 하는데 그런 것도 관심이 없으면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런 부분을 알게 하시는 분도 창조주 이시고
그 별자리를 통하여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인지를 연구하게
지혜와 총명을 주시는 분도 창조주이시다.
▶큰곰자리(북두칠성)
‘큰곰자리’는 북극을 도는 큰 별자리로서 유명한 북두칠성(北斗七星)이 등과 꼬리를 형성하고 있다.
가을을 제외하고는 거의 1년 내내 볼 수 있는데 북극성 위에 높이 자리 잡는 5월 초가 가장 볼 만하다.
두말할 것도 없이 여기서는 북두칠성이 가장 뚜렷하게 보인다.
북두칠성이란 말은 중국에서 전해온 것이고,
영어(英語)권 사람들은 이것을 빅 디퍼(Big Dipper), 즉 큰 물 주걱이라고 부른다.
이 북두칠성은 북쪽 하늘에서 1년 내내 구경할 수가 있어서 그 높이와 움직임으로부터 시각을 알 수
있다. 별의 움직임은 1시간에 15°가 된다. 예를 들어 북극성 바로 위에 있었다가 왼쪽으로 움직였다고
하면 90°이동한 것이니까 90÷15=6으로 되어 6시간 경과한 것이 된다. 이처럼 시계로도 사용할 수가
있어서 북두칠성을 북두의 대시계라고도 한다.
큰곰자리는 비교적 찾기가 쉽다. 북극성 주위에서 가장 크고 밝은 별자리이다. 우선 북쪽으로 향하여
북두칠성을 찾자. 이것은 1년 내내 볼 수 있어서 쉽게 눈에 들어온다. 그 북두칠성을 물 주걱으로
상상하면서 손잡이를 곰의 꼬리로 연상해 보자.
그리고 물 주걱으로부터 곰의 몸을 그려나가면 되는데, 물 주걱의 밑바닥으로부터 양쪽으로 뻗은 것이
곰의 뒷다리 별들이고 물주걱 옆의 세 개 별들이 곰의 머리 부분이다. 그 아래로 앞다리가 달려 있다.
물 주걱 둘레 길이를 다섯 배 연장한 곳에 밝은 별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북극성이다.
▶작은곰자리
작은곰자리는 북극성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별자리는 큰곰자리의 북두칠성과는 비교가 안 되지만
그래도 북두칠성과 많이 닮은 작은 물 주걱 모습을 하고 있다. 그래서 북두칠성을 북쪽 하늘의 큰
물 주걱이라 하고, 이것을 작은 물 주걱 이라고 부른다. 북극성이 거의 진북 하늘에 보이는 것은 하늘의
북극으로부터 북극성은 1°밖에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북극성도 하룻밤 내내 관찰하면 하늘의 북극 주위를 작은 원을 그리며 돌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옛날에는 바다로 고기잡이를 나간 어선들이 이 별을 보고 배의 방향을 잡았고, 하늘을 날던
비행기도 이 북극성으로 항로조정을 했다. 그리고 육지를 가던 사람도 이 별을 길잡이로 삼았다.
북극성이 작은 물 주걱의 손잡이 끝에 매달려 있으므로 북극성만 찾으면 이 별자리는 쉽게 찾을 수 있다.
북극성은 북두칠성의 물 주걱 변두리의 두 별의 길이를 다섯 배쯤 연장시킨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북두칠성이 지평선에 걸려서 잘 보이지 않을 경우에는 북극성 너머 반대편에 자리 잡고 있는
카시오페이아자리를 찾자.
그 별자리는 영어문자의 W 모양이다. 이 W자의 정점으로부터 중심에 위치한 별을 연결하여 이 거리의
다섯 배쯤 연장시켜 보면 하나의 밝은 별에 도달한다. 이것이 바로 북극성이다.
▶목자자리
하지는 1년 중에 낮의 길이가 가장 길고 밤의 길이가 가장 짧은 날이다. 이 무렵은 우리나라에서는
장마철이기 때문에 별들을 보기 어렵지만, 그래도 구름 사이로 머리 위에서 엄청나게 밝게 반짝이는
별 하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별은 오염된 공기가 비로 말끔히 씻어진 대기를 뚫고 보기
때문에 더욱 아름답게 보일 것이다.
이 별자리는 가장 밝은 별, 아크타우루스를 포함하여 6개의 별이 서양의 연 또는 배의 돛같이도
보이지만 옛 성도(星圖)에 따르면 두 마리의 개를 이끄는 목동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이 별자리는
또한 하늘에 올라올 때는 누워 있는 것같이 보였다가 거의 우리 머리 위까지 이른 다음, 서북쪽의
지평선에 발부터 빠지면서 천천히 사라진다. 그렇게 되는 때가 10월 초이다.
목자별자리를 찾기는 그리 힘들지 않다. 초여름에 머리 위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0.1등급의 별,
아크타우루스를 찾아서 그 별의 북쪽으로 다섯 개의 별들이 5각형으로 모여 있는 것을 확인하면 된다.
또는 이 별자리가 나온 다음에 등장하는 남쪽의 처녀자리 가운데에서 가장 밝은 별, 스피카를 찾고,
이어서 등장하는 사자별자리의 꽁무니에 달려있는 밝은 별, 데네보라 하고 서로 연결하면 큰 삼각형을
그릴 수 있다. 이것을 봄의 대삼각형이라 부른다. 또한 북두칠성의 손잡이를 남쪽으로 연장시키면
목자자리의 가장 밝은 별, 아크타우루스를 발견하게 된다.
▶왕관자리
배의 돛같이 생긴 목자자리와 H자의 모양을 한 허큘리스자리 사이에 그렇게 밝지는 않지만 7개의
별들이 작게 반월(半月) 모양을 하고 있는 별자리가 보인다. 이것은 장마철이 지난 7월 중순경에
겨우 머리 위에서 반짝인다.
α성만이 2등급이고 나머지 별들은 모두 4등급 이하의 광도이지만 비교적 눈에 잘 띄는 별자리이다.
차성(車星), 도깨비의 머리 등으로도 불리고 있다. 특히, 중국에서는 감옥으로 봐서 관색(貫索)이라고도
한다. 남쪽에도 이와 비슷한 별자리가 있는데, 궁수자리의 남쪽에 있어서 남쪽의 왕관자리라고 한다.
그래서 학명(學名)도 남쪽 것을 Corona Austrina(남쪽의 왕관)라 하고 북쪽의 것은 Corona Borealis
(북쪽의 왕관)라고 구분하고 있다.
왕관자리는 비교적 어두운 별들로 구성되어 있고 크기도 크지 않지만, 7개의 별들이 반월(半月) 모양이
라는 특이함 때문에 널리 알려진 별자리이다. 이 별자리는 바로 양쪽에 목자자리와 커다란 규모의
허큘리스자리 사이에 끼여 있으면서도 그 특별한 모습 때문에 찾기는 힘들지 않다.
특히 목자자리의 아크타우루스라는 밝은 별을 우선 찾아서 그 별의 북동쪽을 찾는다든지, 아니면
허큘리스의 북동쪽에 자리 잡고 있는 거문고자리의 베가성을 찾아 그 별로부터 반대로 허큘리스
자리를 지나 목자자리로 시선을 옮기면 쉽게 발견된다.
▶까마귀자리
까마귀자리는 컵자리와 나란히 바다뱀자리의 등에 올라타고 있는 별자리이다. 4개의 3등급별이 약간
일그러진 사각형을 이루고 있는데 서쪽(우측)의 8개 별로 구성된 컵자리보다 더 눈에 잘 띄는 별자리
이다.
이 까마귀자리를 동양권에서는 돛을 단 별 로도 부르고 있는데, 영국에서도 이 4개의 별을 범선(帆船)의
돛으로 보고 'Spica's Spanker' 라고 부르고 있다. 여기서 스팽커 라는 말은 처녀자리의 스피카를
뜻하는데, 실제로 γ성에서부터 δ성을 연결하여 그대로 연장해 나가면 스피카로 이른다.
스팽커 라는 말은 큰 범선의 가장 뒤에 있는 종범(縱帆)을 뜻한다. 망망대해에서 항해하던 옛 영국의
선원들 사이에 이 말이 전파되어 있었다. 언뜻 보면 까마귀하고는 거리가 멀지만 α성이 까마귀 주둥이
이다. 까마귀자리는 γ, δ성이 까마귀의 날개를 이루고 있고 α성이 주둥이라는 구상이다.
이 별은 봄의 대삼각형 중의 한 별로 처녀자리에서 가장 밝은 별인 스피카에서부터 남서쪽으로 약간만
내려가면 곧 까마귀자리에 도달한다. 그것에 자신이 없으면 다시 그 별자리의 우측에 8개의 별로
이루어진 물 컵 모양의 컵자리가 있음을 확인하면 된다.
또 다른 방법은 처녀자리를 스피카 중심으로 찾아보아라. 그 처녀자리 바로 남쪽에 일그러진 사각형의
작은 별자리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까마귀자리이다. 그 바로 밑으로는 바다뱀자리가 길게 동서로 뻗어
있을 것이다.
▶사자자리
4월 하순이 되면 봄을 대표하는 별자리인 사자자리가 남쪽 하늘 높이 뜬다. 사자자리는 태양의 겉보기
궤도인 황도의 제5번째의 별자리로서 옛날부터 유명한 것이다. 사자의 머리와 앞다리 부분을 그리는
큰 낫은 유럽에서 사용하는 큰 풀베기 낫과 닮았기 때문에 영어로도 Lion's Sickle이라 부른다.
그래서 보통 the Sickle이라 하면 이 사자자리를 뜻한다.
사자자리는 1등성 한 개, 2등성 두 개를 포함한 밝은 별자리이지만, 이 별자리를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은 매년 11월 18일 전후 새벽에 γ성 부근을 복사점으로 하여 유성이 많이 날기 때문이다.
이 유성군은 사자자리 유성군(Leonids)이라고 부르며 33년마다 한 번씩 엄청난 유성우를 쏟는다.
1833년에는 1시간에 10,000개나 쏟아졌다. 1998년 이 유성을 볼 수 있었다.
사자자리는 주위의 별이나 다른 별자리로부터 찾을 필요가 없이, 4월 하순이면 남쪽 하늘 높이 그야말로
사자를 상상할 수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므로 쉽게 발견할 수가 있다. 굳이 다른 방법을 이야기하자면
먼저 북두칠성을 찾아보자.
그 북두칠성의 물주 걱 밑바닥과 곰 자리의 다리들로부터 남쪽으로 눈을 돌리면 그곳에는 틀림없이
사자자리가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다시 그 밑으로(남쪽 지평선 가까이) 내려가면 육분의자리가
보이며 그 바로 밑으로는 바다뱀자리가 자리 잡고 있다.
▶처녀자리
처녀자리도 옛날 프톨레미(Ptolemy, 프톨레마이오스)가 정한 별자리에 수록된 것으로서 두 날개를 단
처녀가 옆으로 몸을 누인 채 늦은 봄에 나타난다. 이 별자리는 바다뱀자리 다음가는 큰 별자리이며
태양의 겉보기 궤도인 황도의 제6번째에 해당하는 별자리이다.
이 별자리에서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밝은 별은 스피카라는 이름의 1.0등급의 별이다. 목자자리의
아크타우루스가 오렌지색으로 반짝이는 것에 비해, 이 별은 백색의 빛을 내며 처녀다운 청백색을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옛날에는 이 두 개의 별들을 한 쌍으로 보고 봄의 부부성(夫婦星)이라고도 불렀다. 스피카라는
이름은 보리의 이삭이라는 뜻으로서 이 처녀의 왼손 끝에 자리 잡고 있다. 크게 눈에 띄는 별이 이밖에도
6개 정도가 있는데 모두 인상적이다.
처녀자리를 찾는 방법은 두말할 것도 없이 ‘봄의 대삼각형’을 찾는 방법에서부터 시작하면 된다.
사자자리의 데네보라와 목자자리의 아크타우루스, 그리고 처녀자리의 스피카를 연결하면 ‘봄의
대삼각형’을 이루는데, 그 세 별 가운데 청백색으로 빛나는 가장 남쪽에 자리 잡은 별이 스피카이다.
이 별이 바로 처녀자리의 α성이니 그 별의 북서쪽을 찾아서 6개의 육안으로 뚜렷하게 보이는 별들을
모아보면 처녀자리가 된다. 그리고 북쪽 하늘에 떠있는 북두칠성의 손잡이를 남쪽으로 연장시키면
목자자리의 아크타우루스, 처녀자리의 스피카로 이루어지는 ‘봄의 대곡선’을 그릴 수 있다.
▶게자리
게자리가 하늘 높이 나타나면 봄도 중간쯤으로 접어든다. 그런데 이 게자리에는 볼만한 별도 없고
가장 밝은 별이라 해도 3.5등급 정도이다. 하지만 이 별자리는 5,000년 전 바빌로니아 시대부터
등장하는 가장 오랜 별자리이다. 그리고 태양의 겉보기 궤도인 황도(黃道)의 통로가 되는 제4번째의
별자리이다.
4등급 이하의 별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확실하게 보이는 별자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 별자리
양쪽, 즉 서쪽에는 쌍둥이자리, 동쪽에는 사자자리가 뚜렷하게 박혀 있어서 그 사이에 놓인 게자리도
덩달아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나름대로의 존재를 과시하고 있다.
이 게자리의 뚜껑에 작은 망원경을 가져다대면 100개 이상의 별들이 마치 보석을 깔아 놓은 것같이
모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이 유명한 플리세페 산개성단이다.
게자리를 직접 찾기는 힘들기 때문에 간접적으로 찾는 방법이 중요하다. 우선 쌍둥이자리를 북쪽
하늘에서 찾아라. 그리고 그 쌍둥이자리의 머리를 형성하고 있는 캐스터와 폴락스를 직선으로 이어서
그 선을 남동쪽으로 연장해 나가자.
또 한편으로는 늦봄의 별자리인 사자자리를 찾아라. 그 사자의 발목에 있는 가장 밝은 별인 레굴루스로
부터 북서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그렇게 해서 캐스터와 폴락스로부터 연장해 내려온 선과 부딪치는
곳에 연하게 보이는 게자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거문고자리
8월도 거의 지나갈 무렵, 우리들이 서 있는 머리 위에 너무나도 밝게 반짝이는 한 개의 별을 볼 수 있다.
이것이 거문고자리이며 또한 그 밝은 별이 유명한 견우와 직녀 이야기의 한 주인공인 직녀성인 것이다.
베가라는 서양이름의 이 별은 천문학적으로도 아주 중요한 별이다.
이 별을 엄격하게 0.0등급의 표준별로 정하고 다른 별들의 등급을 정한 것이다. 음력 7월 7일(칠석날)
밤, 1년에 한번 견우와 직녀가 만나서 앞의 은하수라는 강을 건너야 하기 때문에, 까치와 까마귀들이
모여서 날개를 펴서 오작교(烏鵲橋)를 만들면 직녀가 그 다리를 건너 남편 견우를 만나는 것이다.
그래서 낮에 마을에서 놀고 있는 까치들을 보면 애들이 “빨리 가서 오작교를 만들어라”하고 까치들에게
돌을 던졌다고 한다.
우선 8월 말에는 머리 위에 엄청나게 밝은 별 하나가 반짝이는 것이 보이는데, 바로 그 별이 베가
(직녀성)이다. 이 별을 중심으로 그 별에 달린 일그러진 모양의 사각형을 찾으면 바로 그것이
거문고자리이다.
밝은 별, 베가 옆에 또 하나의 별이 붙어 있는데 그 옆으로 계속 연장해 나가면 백조자리의 가장 밝은
별인 데네브와 마주친다. 반대로 베가의 남쪽에 붙어 있는 일그러진 사각형 쪽으로 계속 연장해 나가면
또 하나의 밝은 별에 부딪친다. 이 별은 독수리자리의 가장 밝은 별, 알타일(견우성)이다. 이 세 개의
밝은 별들을 연결하면 ‘여름의 대삼각형’을 그릴 수 있다.
▶백조자리
초가을 저녁, 머리 위에 다섯 개의 별들이 은하수의 가운데에 큰 십자(十字)형을 그리고 있는 백조자리는
찾기가 쉽다. 가장 밝은 별이 백조의 꼬리에 위치하여 반짝이는 데네브라는 별인데, 이것과 거문고
별자리의 베가, 독수리자리의 알타일을 연결하여 여름의 대삼각형을 이룬다.
이 백조자리는 프톨레마이오스(Ptolemy)가 만든 48별자리의 하나로 희랍의 엘라토스테네스가 2,000년
전부터 이것을 백조라고 불렀다. 특히 γ성과 β성 사이에는 블랙홀(Black Hole)이 있다고 하여 화제가
되었으며, 이것을 ‘백조X-1’이라고 한다. X-1은 높은 에너지의 X선을 방사하며 며칠에 한 번씩 밝기가
변하고 있다. 두 개 별 중의 하나가 옆의 별의 대기를 흡수하면서 블랙홀 효과를 낸다.
9월 하순경에 머리 위로 떠오르는 십자(十字)형의 백조자리는 찾는데 그리 힘들지 않다. 또 하나의
방법은 앞서 소개한 여름의 대삼각형을 찾는 방법이다. 이것도 은하수를 중심으로 가장 밝은 별 셋을
찾으면 되는데, 서로 인접해 있는 백조, 거문고, 독수리의 세 별자리에 박혀 있는 1등급 성을 골라서
연결시키면 삼각형을 이룰 수가 있다. 그 정점에 있는 데네브가 속해 있는 별자리가 바로 백조자리이다.
이 백조자리의 α, β, γ, δ, ε의 다섯 개의 별들을 이으면 하나의 십자가가 생기는데 이것은 남쪽의
십자에 대하여 ‘북쪽의 십자성’ 이라고도 부른다.
▶독수리자리
독수리자리는 여름 하늘의 은하수가 둘로 나눠지는 남쪽 은하수 중심에 자리 잡고 있으며 이것도
프톨레마이오스(Ptolemy) 때부터 채택되었던 오래된 별자리이다. 이 근처에도 성운, 성단이 많이
보인다. 전체적으로 낙하하는 독수리 같은 모양이며, 알타일 이라는 말도 날으는 독수리란 뜻이다.
독수리자리는 비교적 찾기 쉬운 별자리이다. 여름에 머리 위를 날으는 백조자리를 우선 찾자. 그리고
은하수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백조자리와 비슷한 모양의 별자리가 또 하나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생김새도 방향도 똑같다. 바로 이것이 독수리자리이다.
또 다른 방법은 백조자리의 데네브라는 가장 밝은 별을 우리 머리 위에서 찾고, 다음에는 거문고별자리
의 베가(직녀성)와 남쪽에 또 하나의 밝은 별인 독수리자리의 알타일(견우성)을 찾아 연결하면 ‘여름의
대삼각형’을 이룬다. 바로 이것의 남쪽별이 속해 있는 곳이 독수리자리이다.
▶궁수자리
여름도 끝날 무렵, 남쪽 하늘 아래에 은하수가 아주 짙게 보이는 곳이 있다. 이곳이 바로 반은 사람이요,
반은 말 형태를 한 케이론을 형상한 별자리로서 궁수자리라 한다. 이 별자리는 전갈자리의 바로 동쪽에
자리 잡고 있어서 찾기가 쉽다. 또한 태양의 겉보기 궤도인 황도(黃道)의 제9번째의 별자리로서 옛날부
터 잘 알려진 별자리이다.
이 별자리에서 눈에 띄는 것은 북두칠성과 아주 닮은 물 주걱 모양을 한 남두육성(南斗六星)이다.
젖먹이 아기가 사용하는 스푼을 닮았다고 하여, 유럽에서는 밀크 디퍼(Milk Dipper)라고도 한다.
남두육성은 중국에서 유래된 용어로 북두칠성은 ‘죽음’을 다루는 별자리라는 것에 대하여,
남두육성은 ‘삶’을 다루는 별자리라고 생각해왔다.
궁수자리에서 가장 뚜렷하게 보이는 것은 11개의 육안으로 보이는 별들 가운데서도 단연 남두육성이다.
그 남두육성을 발견하려면 우선 전갈자리의 ε성에서부터 동쪽으로 S자를 그리는 꼬리부분에 자리 잡은
λ성으로 이어나간다.
그 λ성에서부터 다시 동쪽으로 이동해 나가면 궁수자리의 ε성에 이르게 된다. 이 ε성은 궁수자리
중에서 가장 밝은 별인데 묘하게도 ε이란 부호가 붙어 있다. 여기서 다시 동쪽으로 이동하면 남두육성에
도달하게 된다. 이 궁수자리는 바로 전갈자리의 동쪽에 자리 잡고 있어서 독립적으로 발견하기도 그리
힘들지 않다. 또 하나의 확인방법은 바로 밑에는 지평선 가까이 남쪽의 왕관자리가 있다.
▶뱀주인자리
남쪽 하늘에 크게 펼치는 전갈자리 위(북쪽)에서, 더 크게 버티고 있는 별자리가 의학의 신
아스클레피오스를 그린 뱀주인자리이다. 이 별자리는 밝은 별들이 그리 없는데다가 상당히
큰 별자리이기 때문에 뱀주인 같은 그림을 그리기는 힘이 드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 사진에 붉은 선으로 그린 뱀 별자리와 함께 전체의 모습을 잡았을 때에는 그 규모가
웅대하다는 것에 감탄할 것이다. 그런데 한 때는 ‘포니아토프스키의 황소자리’라는 별자리가 여기에
있었다.
그 장소는 뱀 주인의 오른편 어깨 가까이에 66, 67, 68, 70, 73번 별이라는 5개의 별들이 작은 V자(字)
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것을 겨울의 플레아디스 성단과 닮게 하여, 1777년에 폴란드의 천문학자가
‘포니아토프스키의 황소자리’를 만들었던 것이다. 뱀 주인 별자리는 황도별자리가 아니다.
육안으로 보이는 10개의 별로 구성된 뱀주인자리는 그 좌우로 6개의 뱀 머리, 3개의 뱀 꼬리를 붙잡고
서 있는 모습이다. 중앙의 머리 부분에 2등급 별인 라스 알하게(뱀을 가진 자의 머리)라는 이름의 α성이
가장 밝은 별이다. 이 별은 뱀주인자리 밑에 있는 전갈자리의 안타레스로부터 북동쪽으로 선을 그려
올라간다.
또 반대로 거문고자리의 베가에서부터 남서쪽으로 선을 그려 내려온다. 이 두 선이 거의 같은 길이로
달려서 마주치는 곳에 바로 뱀 주인의 가장 밝은 별, 라스 알하게인 α성이 자리 잡고 있다.
이 별을 갖고 그 아래로 펼쳐지는 뱀자리를 그려보자.
▶전갈자리
한여름 밤 하늘에 남쪽 지평선 위로 크게 S자(字)를 그리며 걸려 있는 별들을 볼 수 있다.
이것이 여름을 대표하는 별자리의 하나인 전갈자리이다. 이 별자리는 아주 근사하게 펼쳐지는 여름의
은하수가 우리들의 머리 위에서부터 빛의 고리같이 연속적으로 흐르면서 남쪽 지평선으로 흐르며,
점점 짙어지면서 마치 빛의 홍수같이 지평선 아래로 떨어지는 곳 근처에서 볼 수 있다.
이 별자리는 태양의 겉보기 궤도인 황도의 제8번째의 것으로서 옛날부터 주목받아왔으며 이렇게 멋진
전갈 모양의 별자리는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그야말로 별의 예술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이 별자리에는 전갈의 심장부에 자리 잡고 있는 붉은 색의 안타레스라는 1등성이 있고 양쪽에 3등급
성을 거느리고 있다.
전갈자리는 남쪽 하늘을 향하여 서면, 은하수가 장엄하게 지평선으로 떨어지는 곳에서 발견되는 별자리
이다. 너무나도 아름답고 뚜렷하게 보이기 때문에, 그리고 주위에는 이에 대항할 만한 밝은 별들이 모여
있는 별자리가 없어서 쉽게 찾을 수가 있다.
이쪽으로는 붉게 반짝이는 가장 밝은 별, 안타레스라는 1등급별이 하나밖에 없으므로 이것을 찾아서
그 주위를 살펴보면 15개의 별들이 S자(字)를 이루며 구불거리는 별자리를 발견할 것이다. 바로 이것이
전갈자리이다. 이 별자리 주위에는 유명한 구상, 산개성단들이 많다.
▶천칭자리
초여름 하늘에 처녀자리에 이어서 천칭자리가 올라온다. 3등급별 3개와 4등급별 1개가 약간 비틀어진
사각형을 이루는 별자리이다. 이것은 처녀자리와 전갈자리 사이에 끼여서 눈에 잘 띄지 않는 별자리
이지만, 태양의 겉보기 궤도인 황도(黃道)상에 있어서 옛날, 프톨레마이오스(Ptolemy) 때부터 주목
되어 온 별자리이다.
이 별자리는 황도의 제7번째의 별자리로서 기원전 2,300∼700년까지 밤과 낮을 이등분하는 추분점이
있었던 곳이다. 현재는 세차 때문에 옆의 처녀자리에 이동하여 버렸다. 그런데 이 별자리가 천칭자리
라고 불리기 전에는, 이곳을 전갈자리의 가위로 보았다. 천칭자리로 독립한 후에도 한동안 전갈자리의
가위와 천칭자리라는 두 이름으로 불렸다.
처녀자리의 스피카를 찾아라. 물론 스피카는 목자자리의 아크타우루스와 사자자리의 데네보라 라는
별과 ‘봄의 대삼각형’을 이루는, 남단에서 반짝이는 별이다. 이 스피카가 늦은 봄을 상징하듯이 목자
자리의 아크타우루스와 하늘에서 빛을 내지만, 그 스피카로부터 동쪽으로 이동하면 바로 천칭자리에
도달한다.
반대로 한여름에는 눈에 잘 띄는 남쪽 하늘의 전갈자리를 찾으면 된다. 특히 전갈자리의 안타레스에서
부터 서쪽으로 시선을 옮기면 전갈의 머리를 형성하는 세 개의 별에 이른다. 다시 시선을 서쪽으로
옮기면 일그러진 사각형의 천칭자리에 이르게 된다.
▶안드로메다자리
늦가을의 밤하늘에 머리 위로 떠오르는 대사각형의 한 모퉁이에서부터 두 줄로 영어의 V자(字)로
벌어지면서 북동쪽으로 죽 뻗어 있는 별자리이다. 이것은 옛날의 에티오피아왕국의 안드로메다라는
공주를 형성한 안드로메다자리이다.
이 별자리에는 2등급의 별이 세 개나 되며 별자리 크기에 비하여 별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래도 이
별자리가 유명한 이유는 안드로메다공주의 허리 부분에 있는 안드로메다은하와 M31이 있기 때문이다.
M31은 우리 태양계가 속해 있는 은하와 가장 비슷하고 또 가까이 있는 은하로 유명하다.
우리 은하에도 크고 작은 마젤란성운이 붙어 있는 것처럼 이 M31에도 M32와 M110(NGC205)이
붙어 있다. 안드로메다의 발에 해당하는 곳에는 2.0등급의 알마크(구두)가 달려 있다.
페가수스자리의 세 개의 별과 안드로메다자리의 머리 부분을 이루고 있는 별(α성= 알페라츠)과
'가을의 사각형’을 이루고 있는 것을 발견하라. 그 중의 북동쪽의 별이 바로 안드로메다자리의 α성이니,
이곳으로부터 북동쪽으로 V자(字)를 그리며 갈라져 보이는 7개의 별들이 바로 안드로메다자리이다.
‘가을의 대사각형’에 자신이 없으면 양쪽 변두리를 그림과 같이 은하수 쪽으로 연장시켜보면 그 연장선
은 북극성에서 합쳐진다. 그리고 안드로메다자리에서 북쪽으로 보면 영 W자(字) 모양의 카시오페이아
자리를 발견한다.
▶카시오페이아자리
늦가을 북쪽 하늘 높이 다섯 개의 별들이 W자(字)를 거꾸로 매달은 것 같은 모양을 하고 밝게 빛나는
별자리가 있다. 이것이 바로 카시오페이아자리이다. 이 별자리는 고대 에티오피아의 아름다운 왕비,
카시오페이아를 형상화한 것으로 본다.
이것은 거의 1년 내내 북쪽 하늘에서 볼 수 있는 주극성인데, 늦가을에는 특히 높이 북쪽 하늘에 떠
있기 때문에 발견하기가 쉽다. 특히 북극성을 사이에 끼고 북두칠성과 정반대에 마주하고 있어서 가을
부터 겨울에 걸쳐 북두칠성이 지평선 가까이까지 내려와 보기 힘들 때에, 대신 북극성을 찾는 데 이용
되는 아주 중요한 별자리이다. W자의 α성과 δ성을 W자 뒤로 연장시켜 마주친 점으로부터 반대쪽으로
중심 성을 통한 연장선을 그려 내려가면 밝은 별에 부딪친다. 그것이 북극성이다.
카시오페이아자리 근처에는 작은 망원경으로도 즐길 수 있는 성운, 성단 그리고 이중성(二重星)들이
많이 있다. 아주 독특한 W자(字)로 나열되어 있어서 북두칠성과 함께 우리들에게 너무나도 잘 알려진
별자리이다. 그래서 이 별자리를 찾기는 아주 쉽다.
다른 방법을 소개하자면, 우선 북두칠성을 찾아보자. 북두칠성의 물주걱 변두리에서 그림과 같이 변두리
길이의 약 5배쯤 연장시킨 곳에 북극성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그 연장선만큼의 길이를 반대편으로
연장시켜 나가면 W자(字)를 형성한 별자리에 마주치게 된다. 바로 이것이 카시오페이아자리이다.
▶염소자리
은하수와 더불어 ‘여름의 대삼각형’이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하면 본격적으로 가을이 온다. 9월이 지나면
남쪽 하늘에 삼각형을 거꾸로 한 별자리가 눈에 띈다. 이것이 염소자리이다. 이 별자리는 3등급의 별로
만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지만 발견하는 힘들지 않다.
이것도 희랍시대의 프톨레마이오스(Ptolemy)가 설정한 오래된 별자리이다. 이곳은 은하수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성운, 성단보다는 이중성(二重星)이 많이 보인다. 이 염소자리는 태양의 겉보기
통로인 황도(黃道)의 제10번째의 별자리이다.
기원전 6∼7세기쯤엔 여기 염소자리에 동지점이 있었다. 현재의 동지점은 물고기자리에 있지만 그것은
세차(歲差)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동지점은 태양의 황경(黃經)이 270°로 된 것을 말한다.
염소자리는 가을 초에 나타난다. 남쪽 지평선 위에서 삼각형이 거꾸로 서 있는 별자리를 찾자. 육안으로
는 8개의 별들로 구성된 것처럼 보일 것이다. 또 하나의 방법으로는 백조자리의 데네브, 거문고자리의
베가, 그리고 독수리자리의 알타일을 서로 연결하면 ‘여름의 대삼각형’을 이룬다.
그 대삼각형 가운데의 베가와 알타일을 연결하는 선을 남쪽으로 연장시켜보면 염소자리와 마주치게
된다. 염소자리부터 동쪽(좌측)에 있는 별자리들은 물병자리, 남쪽의 물고기자리, 고래자리 등 모두가
물에 관련된 별자리들로 이루어져 있다.
▶물고기자리
‘가을의 사각형’의 동쪽(좌)과 남쪽(아래)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어두운 별들이 하나둘씩 이어지며
L자(字) 비슷하게 형성된다. 이것이 바로 두 마리의 물고기가 리본으로 연결되어 있는 모습의 물고기
자리이다. 그리 눈에 잘 띄지 않는 별자리이지만 태양의 겉보기 통로인 황도(黃道)의 제12번째의
별자리로서 옛날부터 중요하게 여겨왔다.
물고기 가운데 북쪽의 것을 ‘북쪽의 물고기’, 남쪽의 것을 ‘남쪽의 물고기’ 라고 부른다. 지금부터
2,000년 전에는 춘분점이 양자리에 자리 잡고 있었으나 세차(歲差) 현상으로 지금은 ‘남쪽의 물고기’
자리 바로 밑에 있다.
3월 21∼22일에는 태양이 여기에서 빛난다. 춘분점은 적경(赤經) 0시의 자오선이 통과하기 때문에
본초자오선이라고도 한다.
이 물고기자리를 찾기 전에 먼저 ‘가을의 사각형’을 찾는 것이 좋다. ‘가을의 사각형’은 페가수스라는
천마(天馬)의 별자리 중에서 몸통 부분을 이루고 있는데, 그것을 L자(字)로 에워싸듯이 8개의 별들이
나열되어 있는 것이다. 바로 그 밑(남쪽)에 고래자리가 있다.
L자(字)의 매듭 부분에 자리 잡고 있는 3.6등급의 α성 동남쪽에 붉은 별이 밝게 반짝이고 있다. 이것이
유명한 고래자리의 미라라는 별이다. 이 별을 찾은 후에 그 위(북쪽)에 배열되어 있는 L자(字)의 별자리
를 찾으면 바로 그것이 물고기자리이다. 여기에는 역시 은하와 이중성도 보인다.
▶페가수스자리
10월 말, 머리 위 가까이 4개의 별이 사각형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이것이 페가수스자리의
동체이다. 페가수스란 희랍신화에 등장하는 등에 날개를 단 천마(天馬)이며, 밤하늘에서는 누워 있는
형태로 보인다. 봄, 여름, 겨울에는 각각 대삼각형을 형성하는 별들이 있지만 유독 가을만은 삼각형
대신 사각형이 있다.
그런데 이 사각형을 그리는 4개의 별 가운데 배꼽에 해당하는 북동쪽의 별은, 이 별자리의 별이 아니고
안드로메다자리의 α성이다. 옛날에는 두 별자리가 공유하고 있었지만 현재는 분리되어 있다. 가을에는
그리 뚜렷한 별들이 없는 가운데에 이 사각형 별자리는 비교적 눈에 잘 띈다.
또 재미있는 점은 안드로메다자리의 α, β, γ의 세 별을 합치면 큰 물 주걱으로 된다는 점이다.
이 사각형은 ‘페가수스의 사각형’ 이라고도 부른다. 그리고 이 사각형 안에는 육안으로 보이는 별이
한 개도 없다. 늦여름 은하수 속에 있는 백조자리가 지나가고 이어서 나타나는 별자리가 바로 페가수스
자리이다.
바로 페가수스자리의 머리 부분 아래(남쪽)에는 10개의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물병자리가 있으므로
이것의 북쪽에 13개의 별과 안드로메다자리의 α성과 합친 별자리를 찾으면 된다.
또한 이 페가수스자리의 α 및 β성을 이어서 북쪽으로 연장시키면 은하계를 넘어 케페우스별자리를
지나 북극성으로 연결된다. γ성과 안드로메다자리의 α성을 북으로 연장시켜도 북극성에 이른다.
▶양자리
안드로메다자리 바로 남쪽에 작은 삼각형 별자리가 있다. 이 삼각형 별자리의 남쪽으로 내려가면
별 3개가 나란히 서 있다. 이것이 하늘을 나는 금색 빛의 털을 지닌 양의 머리 부분을 형성하는
양자리이다.
양자리는 태양의 겉보기 궤도인 황도(黃道)의 첫 번째의 별자리로서 지금부터 2,000년 전에는 춘분점이
이 별자리에 있었다. 기원전 150년 희랍의 천문학자인 힙파르코스는 황경(黃經)이 0이 되는 곳(춘분점)
에 자리 잡은 별자리를 황도 12궁의 첫 궁으로 삼았다. 그 제1궁에 해당하는 별자리가 그 당시 양자리
였던 것이다.
현재는 세차(歲差) 때문에 그 춘분점은 서쪽(우측)에 자리 잡은 물고기자리 바로 밑에 와 있다. 그렇지만
지금도 춘분점을 '백양궁의 원점' 이라는 이름으로써 양의 머리모양을 한 라는 마크로 표현하고 있다.
양자리는 여러 별자리가 엉켜 있는 가운데에 놓여 있기 때문에 처음 하늘을 보는 사람에게는 찾기가
어려운 별자리이다. 가장 쉬운 방법은 안드로메다자리의 남서쪽에 있는 ‘가을의 사각형’을 찾는 것이다.
그 사각형을 찾은 다음에 동쪽으로 눈을 돌리면 세 개의 별들이 나란히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바로
이 별들이 양자리의 머리 부분을 형성하는 것이다.
또 하나의 방법은 안드로메다자리의 γ성에서부터 남쪽의 삼각형별자리의 β성을 연결하고 다시 남쪽으로
내려오면 양자리의 가장 밝은 별인 α성에 도달한다.
▶물병자리
천마(天馬)인 페가수스의 바로 남쪽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물병자리이다.
이 별자리 역시 프톨레마이오스(Ptolemy) 때부터 알려진 것인데 면적이 큰 것에 비하여 밝은 별들이
거의 없어서 물병을 걸쳐멘 미소년, 가뉴메데스의 모습을 밤하늘에 그려보기에는 약간 힘이 들 것 같다.
이것은 태양의 겉보기 궤도인 황도(黃道)의 제11번째의 별자리이다. 이 별자리에는 4개의 별들이
삼각형을 이루고 중앙에 또 하나의 별이 있는데 그 모양이 아주 예쁘다.
학명(學名)은 Aquarius로 ‘물의 사나이’ 라는 뜻이다. 그리고 고대 아랍에서는 이 물병자리를 알달루
(Al Dalw/천수의 물독)라고 불렀고 물을 담은 두 개의 물독을 실은 말로 보았다. 이처럼 물과 관계가
있는 것은 이곳에 태양이 오면 지중해 연안국들이 우기에 접어들기 때문이었다.
물병자리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물병에 해당하는 삼각형의 별과 그 중앙에 박혀 있는 별이다.
이것을 찾기 위해서 ‘가을의 사각형’을 찾자. 이것을 찾은 다음에 페가수스자리를 다시 찾은 후 그
페가수스의 머리에 해당하는 부분에서부터 남쪽을 바라보면 거기에 이 4개의 별이 보일 것이다.
아니면 남쪽 지평선 가까이 자리 잡은 남쪽물고기자리를 찾자. 그곳에 있는 1등급별 포말하우트라는
별을 지닌 물고기 모양의 별자리를 확인한 다음, 그 위(북쪽)를 보면 물병자리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고래자리
12월 중순쯤 되면 남쪽 하늘에 떠오르는 것이 이 고래자리이다. 이것은 하늘의 88개 별자리 가운데
네 번째로 큰 별자리여서 남쪽 하늘의 주요 부분이 온통 이 고래자리로 채워지는 착각마저 든다.
그렇지만 이 별자리에는 밝은 별이 없어서 전체의 모습을 파악하기에는 약간 힘이 든다.
이 고래는 보통 우리들이 보는 고래가 아니고, 희랍신화에 등장하는 티아마토라는 괴물 고래이다.
카시오페이아가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도 예쁘다고 자랑하는 바람에 바다의 신인 포세이돈이 화가 나서
희생물로 바쳐진 안드로메다공주를 공격하라는 명령을 받았던 고래이다. 결국 이 바다를 지나가던
페루세우스한테 퇴치당하고 만다.
이 별자리의 기원은 아주 오래되었으며, 아틀라스(BC315∼240)의 파이노메나(별하늘)란 책에도
케토스로서 기입되어 있었다.
고래자리를 찾기는 힘들지 않다. 12월 중순 남쪽 하늘에는 이것이 판을 치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우선 물고기자리와 양자리를 찾아라. 그리고 L자(字) 모양의 물고기자리에서 수직으로 내려오는
선을 따라 연장시켜 나가면, 미라라는 별에 도달한다. 여기를 중심으로 비틀어진 Y자(字) 모양의 9개의
육안별자리를 찾아보면 된다.
또 하나의 방법은 ‘가을의 사각형’의 동쪽 변두리를 아래(남쪽)로 비슷하게 남동쪽으로 커브를 그리면서
내려가 본다. 그렇게 하면 고래자리 중의 가장 밝은 별인 네브 카이토스에 부딪칠 것이다.
여기서 고래자리의 윤곽을 잡으면 된다.
▶오리온자리
1년 중에 가장 화려하고, 가장 찾기 쉬운 별자리를 꼽으라면 단연 겨울 하늘에 보이는 이 오리온자리
일 것이다. 3개의 2등급별이 약간 기울어져 한 줄로 서고, 그것을 가운데에 두고 큰 사각형을 이루고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겨울 하늘의 왕자다운 품격을 지니고 있다.
너무나도 뚜렷하게 보이는 까닭에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δ, ε, ζ성의 세 별은 삼광(三光),
삼대성(三大星), 삼정(三丁)의 별, 효행성(孝行星) 등의 이름이 붙어 있고, 또 한편 사각형을 이루고 있는
α, β, γ, κ성은 사성(四星)이라고도 한다.
또한 오리온자리의 띠라고도 부르는 δ, ε, ζ성 바로 밑에는 육안으로도 볼 수 있는 대성운(M42)이 있다.
이것은 5cm 정도의 망원경으로 보면 새가 날개를 편 것같은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차부자리
겨울의 오리온자리에 공격을 가하는 황소자리의 뿌리 끝인 북쪽(위쪽) 하늘에 5각형을 이룬 별자리가
있다. 이것이 바로 아테네의 왕이 된 에릭토니우스를 나타내는 마차부자리이다. 작은 염소새끼를 가슴에
껴안고 앉은 마부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이 별자리에서 가장 밝은 별인 카펠라가 바로 가슴에 품은 작은 암컷 염소이며 머리 바로 위에서
0.1등급 별로 아주 밝게 반짝이고 있다. 여기서 5각형의 남단에 있는 밝은 별 γ성은 황소자리의
β성을 겸한 것이다.
이 별자리는 옛날부터 눈에 띄어 동양권에서도 5각성(角星), 중국에서는 오차(五車)라고도 부르고
있었다. 북쪽 하늘 높이 떠있는 카시오페이아자리를 흐르고 있는 은하수의 남쪽을 살펴보면 이
마차부자리에 도달할 수도 있다. 비교적 밝은 별들로 구성되어 있다.
은하수에 두 발을 담그고 앉아 있는 모습의 마차부자리는 비교적 찾기가 쉽다. 우선 머리 위에서 크고
밝게 반짝이는 0.1등급의 카펠라를 발견하여 그것을 포함한 5각형의 별들이 모여 있는가를 확인하면
된다. 아니면, 은하수를 따라 발을 은하수에 담그고 있는 남동쪽의 쌍둥이자리를 찾아도 된다.
더 쉬운 방법은 눈에 가장 잘 띄는 겨울의 오리온자리를 서쪽 하늘에서 발견한 뒤에 오리온자리로부터
위(북쪽)로 눈을 옮긴다. 그러면 황소자리의 뿌리 일부를 겸하고 있는 5각형의 별자리에 곧 부딪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마차부자리인 것이다.
▶큰개자리
투명한 겨울의 밤하늘에 엄청나게 밝게 반짝이는 별 하나가 있다. 이 별은 4계절을 통하여 모든 별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밝은 별, 시리우스이다. 누구나 간단히 발견할 수 있는 별이다.
이 별을 정점으로 하여 7개의 밝은 별들이 모여서 큰개자리를 이룬다. 여기의 δ, ε성도 1등급에 가까운
별들이어서 바로 북쪽에 있는 오리온자리한테도 그리 모자라지 않는 모습의 별자리이다.
특히 희랍, 로마시대에는 태양이 시리우스에 가까이 오면, 유행병들이 극성을 부리기 시작해서 불길한
별로 여겼었다. 동양권에서는 이 별이 유난히도 밝아서 대성(大星), 청성(靑星)이라고 불렀다.
특히 중국에서는 먹이를 바라보는 늑대의 눈빛과도 같다고 하여 천랑(天狼)이라고도 이름 지었다.
겨울 밤하늘에 가장 밝은 별을 남쪽 하늘에서 찾아보자. 겨울 하늘뿐만 아니라 1년 동안 보이는 모든
별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밝은 별, 시리우스가 눈에 쉽게 띌 것이다. 그 별을 찾은 뒤에 그 별 밑(남쪽)
으로 6개의 밝은 별들이 뿌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바로 그것이 큰개자리이다.
그리고 이 시리우스 북쪽으로 은하수 너머 작은개자리의 프로키온을 찾고 다시 그 별로부터 은하수를
건너오면 오리온자리의 베텔기우스에 부딪친다. 이 세 별들을 서로 연결하면 ‘겨울의 대삼각형’이 된다.
그 중에서 가장 밝은 별이 있는 곳이 큰개자리이다.
▶쌍둥이자리
이른 봄 하늘 높이 우리의 머리 위에 두 개의 밝은 별들이 사이좋게 나란히 서서 반짝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자세히 보면 그 두 개의 별로부터 각각 5, 6개의 비교적 밝은 별들이 매달려 있는데 그것이
바로 쌍둥이자리이다.
그 밝은 두 별 가운데 약간 어두운 별이 형의별이고, 밝은 별이 동생별로서 각각 캐스터와 폴락스 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이 쌍둥이자리는 태양의 겉보기 행로인 황도(黃道)의 제3번째의 별자리로서 옛날부터
‘큰 쌍둥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그리고 이것은 한때 지중해 연안지방을 항해하는 배들의 수호신으로서 큰 역할을 해왔다.
이렇게 두 개의 별은 너무나도 뚜렷하여 동양에서도 ‘두 개의 별’ ‘개 눈’ ‘고양이 눈’ ‘안경 성’
‘형제 성’ 등으로 불린다.
늦은 겨울이나 이른 봄에 우리의 머리 위에 두 개의 밝은 별들이 반짝이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에 각자의 밝은 별로부터 5, 6개의 별들이 줄줄이 매달려 있는지 확인해 보자.
만일 그렇다면 바로 이것이 쌍둥이별자리인 것이다.
그 쌍둥이자리 발등으로 은하수가 흐르는데 그 은하수를 끼고 작은 개 자리의 프로키온이라는 별과
오리온자리의 베텔기우스, 그리고 남쪽에 자리 잡은 큰개자리의 시리우스를 서로 연결하면
‘겨울의 대삼각형’을 그릴 수가 있다. 이 대삼각형의 북쪽을 보면 쌍둥이자리를 볼 수 있다.
▶황소자리
추운 겨울 밤하늘에 머리 바로 위를 쳐다보면 V자(字)를 그리는 별들과 그 옆에 6∼7개의 별들이
한 장소에 모여 있는 곳이 있다. 이것이 바로 대신(大神) 제우스의 화신(化身)으로 불리는
황소자리이다.
V자를 그리는 별 줄기는 하이아데스 성단이고, 6∼7개의 별들이 모여 있는 곳은 플레아디스 성단이다.
이 플레아디스 성단은 서양에서는 Seven Sisters(7명의 자매)라는 이름으로도 불리고 작은 망원경으로
보면 푸르게 빛나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성단이다.
황소자리는 태양의 겉보기 궤도인 황도(黃道)의 두 번째의 별자리로서 옛날부터 잘 알려진 것이다.
이 황소자리는 겨울의 왕자인 오리온과 함께 화제가 풍부한 별자리로서 알데바란이라는 0.9등급의
별과 옛날에 나타났던 신성(新星)의 잔재라고 불리는 게성운(M1)이 있다.
황소자리를 찾기는 힘들지 않다. 우선 오리온자리를 찾아라. 그 별자리의 북서쪽으로 V자를 한 별자리를
찾으면 되는데, 특히 알데바란이란 밝은 별을 찾고 그 주위의 7개별들이 V자를 형성하고 있는지를 확인
하면 된다.
또 다른 방법은 겨울의 은하수에 발을 담그고 있는 마차부자리를 북쪽 하늘에서 찾자.
그 요령은 카펠라타 라는 마차부의 α성을 찾으면 된다. 이 α성은 북쪽 하늘에 유일하게 또 가장 밝게
반짝이는 0.1등급별이므로 찾기가 쉽다. 이 별을 포함한 5개의 별이 5각형을 이루고 있는 것을 확인
한 다음 그 별자리로부터 남서쪽으로 내려오면 된다.
(욥 38:33) 네가 하늘의 궤도를 아느냐 하늘로 하여금 그 법칙을
땅에 베풀게 하겠느냐
창조주의 은하계를 움직이시는 법칙을 우리는 알 수가 없다.
원래 있었던 대로 꼼짝없이 있는 것인지, 하나의 별도 따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인지, 조금 이탈했다가 깨져서 분리되고 운석이 지구까지 날아오는
것인지 그 거대함을 사람의 눈으로 볼 수가 없다.
개미가 사람의 세계를 볼 수 없듯이.
과학자들이 말하기를, '운석' 이라는 것이 매일 지구로 떨어진다고 하는데,
그 운석이라고 하는 돌덩어리는 어떻게 알고 사람이 살지 않는 곳, 산이나
나대지나 바다나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는 곳을 골라서 떨어진다고 한다.
우연일까? 우연도 한 두 번이지 창조주의 궤도법이 아니고, 사람들이 믿고
있는 '그냥' '우연히' '재수 법' 으로 따진다면 그 몇 천 년 동안,
아니 수백억 년이라고 치자, 그래 그 수백억년 동안 운석이 눈이 달렸나?
사람들이 어디 사는 줄 알고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하고 떨어질까?
옛날에는 인구 밀도가 적었다고 치자. 지금은 사람들이 다닥다닥 있는
것도 모자라 아파트를 지어놓고 하늘로 올라가면서 다닥다닥 붙어 있는데,
그 운석은 어떻게 알고 사람들을 피하여서 그렇게 몰래 떨어져 가지고
과학자들이 찾으러 다니게 할까?
하지만 창조주께서 사람을 징계하시겠다고 하시면 사람을 향하여서도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창조주의 영은 창조 당시 그 때만 운행하시고 마신 것이 아니라,
지금도 온 우주를 운행하시고 계신다. 대기권에서 지구를 보호해
주시고 계신다.
지구는 창조주께서 사람에게 형벌을 내리시고 살게 하신 감옥인데,
대기권은 그 성벽과 같은 것이다.
(창세기 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아멘.
*과학자의 눈으로 보는 지구로 떨어지는 유성 조각 ‘운석’
유성은 매일 지구로 떨어집니다. 하지만 3분의 2가 바다에 떨어지고,
대부분의 땅에 사람이 살지 않아 거의 발견되지 않습니다.
과학자들은 각종 최신 장비를 동원하여 이 운석들을 찾아냅니다.
운석에는 태양계의 발단과 다른 행성의 생명체에 관한 비밀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우주 역사의 메신저와 같습니다.
대부분의 운석은 지구에서 약 4억km 떨어진 화성과 목성 사이에
위치한 소행성대에서 옵니다.
거대한 우주 암석들이 빽빽이 모여 있는데 크기가 트럭만한 것에서부터
텍사스 전체만한 것도 있습니다. 이것들은 45억 년 전 태양계가 형성될
때부터 존재해 온 물질들입니다. 소행성이 충돌하면 작은 돌들이
떨어지면서 그 중 일부가 지구와의 충돌 침로로 들어섭니다.
바로 이 작은 돌들이 ‘운석’ 입니다.
운석은 지구와 생명의 기원을 알려주는 표본입니다. 유성은 3분의 2가
바다로 떨어지고, 대부분의 육지에는 사람이 살지 않아 거의 발견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떨어지는 유성을 보고 운석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굉장히 넓은
지역을 계속 감시하거나 아주 좁은 범위의 대기를 오랫동안 관찰해야 합니다.
여러 대의 카메라를 설치하고 몇 년 혹은 몇 십 년을 가동해야 합니다.
하나의 유성에서 하나의 운석을 회수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과학자들은 이 운석들을 추적해서 특정한 혜성, 소행성, 행성까지
거슬러 올라가 생명의 기원과 형성을 이해하고자 합니다.
운석이 지구에 가까워져 중력의 영향을 받으면 암석의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합니다.
암석이 대기권으로 진입할 때, 속도는 음속의 수십 배 정도가 됩니다.
소총 총알 속도의 10~20배로 움직이는 것과 같습니다.
이때의 암석은 약 1천도의 온도로 타오르고 있습니다.
그 속도가 되면 공기 분자가 표면을 달구기 시작합니다.
표면이 점점 뜨거워지면서 각종 물질이 떨어져 나가고 이때 우리가
하늘에서 보는 밝은 빛을 내기 시작합니다.
밝은 섬광이 보이는 동안 많은 조각들이 떨어져 나옵니다.
더 작아진 유성들은 속도가 느려져 약 시속 1만 km의 속도가 됩니다.
온도도 떨어져 불길이 꺼지면 카메라에 보이지 않는 ‘검은 비행’이 나타납니다.
그 뒤 운석은 땅에 떨어집니다. 과학자들은 여러 대의 카메라와 사운드,
레이더 기술까지 활용하여 운석을 찾아냅니다.
그리고 초저주파 기록, 최신 엑스레이 장비 등을 통해 운석이 지구에
떨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재구성해서 소행성대의 어디쯤에서 왔는지를
추측해 봅니다.
앨런 힐스 운석은 지금까지 가장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 운석입니다.
과학자들이 1984년에 남극의 빙하에서 이 운석을 발견해 NASA로 보냈습니다.
과학자들은 이것이 소행성의 파편이 아니라 화성의 돌이라고 결론지었습니다.
앨런 힐스 운석의 가장 놀라운 점은 이 운석이 다른 외계 생명체의 존재에
관한 증거일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운석에서 ‘화석’으로 보이는 것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텍사스 주 휴스턴에 위치한 NASA 존슨 우주 센터에서 데이비드 맥케이
(David McKay)는 다른 우주 생물학자들과 함께 이 화성 운석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최신의 연대 측정 기술을 이용해 지구까지의 여정을 복원한 결과,
앨런 힐스 운석은 1천 6백만 년 전에 화성에서 떨어져 나왔습니다.
1만 3천 년 전까지 우주를 여행하다가 지구의 중력장 안으로 들어왔고,
대기권을 통과해 남극의 빙하지대에 떨어졌습니다.
겉으로 보면 아주 평범해 보이는 자몽 크기의 흐린 초록빛 돌로 보이지만
그 안에는 탄산염이라는 미세한 금빛 입자가 있습니다.
이 금색 원은 화성 생명체에 관한 비밀을 품고 있습니다.
지질학에서 탄산염이 존재한다는 것은 보통 물이 있는 장소에서
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화성에는 한때 물이 있었고, 지금도 있을지 모릅니다.
물이 있는 곳에는 생명체도 있을 수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화성 생명체의 증거가 이 탄산염 안에 숨어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욥 38:34) 네가 목소리를 구름에까지 높여 넘치는 물이
네게 덮이게 하겠느냐
네가 해일을 일으키겠느냐 쓰나미를 일으키겠느냐?
폭풍에 의한 해일은 태풍·강풍·강풍고조(强風高潮) 등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다.
해저지진이나 화산폭발에 의한 해일은 쓰나미(津波, tsunami) 라고
하는데, 전파속도가 빠르고 파장과 존속기간이 길어 광범위하게
피해를 준다.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해일은 대부분 폭풍에 의한 것이며,
지진에 의한 해일도 몇 차례 있었다.
강풍해일은 겨울철에 대륙성고기압의 확장과 관련되어 나타나며,
강풍고조는 서해안의 만조와 관계되는 것으로 판단된다.
해일에 관한 역사적 기록은 '증보문헌비고'에 1088년(고려 선종 5)부터
1867년(조선 고종 4)까지 11회의 기록이 있으며, '조선왕조실록'에
1392년(태조 1)부터 1903년까지 44회의 기록이 있다.
지진에 의한 해일은 1741년(영조 17)의 기록에 "강원도 평해 등
9개 군에 바닷물이 밀려나가 평평한 땅이 드러났고, 이어 많은 물이
넘쳤는데 하루에 7, 8회 넘쳐 들어와 연해의 많은 민가가 유실되었으며
배들이 부서졌다"고 하였다.
근래에 와서는 1940년 8월 2일 당시의 나진항과 묵호항에서 지진
해일이 있었고, 1983년 동해안에서 지진해일이 발생하여 다수의
인명피해와 선박·도로·항만시설의 파괴 등으로 총 4억 원 정도의
피해를 본 바 있다.
해일의 발생을 지역별로 보면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44회의
해일 중 34회가 서해안, 7회가 동해안, 3회가 남해안 지역이었으며,
1904년 이후 현재까지는 동해·남해·황해에 걸쳐 모두 발생되었다.
폭풍해일 중 태풍해일은 남해에서 가장 많았고, 동해·황해의 순서로
발생되었다. 강풍에 의한 해일은 동해안은 겨울철에, 강풍고조에
의한 해일은 서해에서 여름철 만조시간에 가장 많이 발생되었다.
최근의 기록할 만한 해일 발생은 1993년 일본부근 해역에서 발생한
지진의 영향으로 해일이 일어 동해안지역이 피해를 입은 사례가 있다.
(욥 38:35) 네가 번개를 보내어 가게 하되 번개가 네게
우리가 여기 있나이다 하게 하겠느냐
네가 번개에게 오라 가라 하겠느냐?
(욥 38:36) 가슴 속의 지혜는 누가 준 것이냐 수탉에게
슬기를 준 자가 누구냐
사람이 창조주 닮아 많이 똑똑하고 지혜롭다.
특히 과학자, 의사, 판사 검사 변호사, 교수 등 공부를 많이 해야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는 사람들은 더 많이 똑똑하다. 머리가 좋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하신 분이 창조주이신 것을 알기를 바랄 뿐이다.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창조주께서 머리 회로를 잠깐 건드시면
불구자가 되어 요양원에 있는 것을 본다.
창조주를 믿는 사람들이야 창조주께서 주셨다고 하지만
창조주를 안 믿는 사람들은 자기 능력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럴지라도 너무 내 것이라고 자랑하지 말기를 바란다.
자랑은 금물이다.
이런 사람도 필요하고 저런 사람도 필요하고, 누구는 그렇게
살아야 하고 누구는 저렇게 살아야 하고가 있다.
사람의 사는 것이 다 똑같지가 않은 관계로 말이다.
다 서로 돕고 서로 잘 사는데 보태 쓰라고 하시는 것이다.
(욥 38:37) 누가 지혜로 구름의 수를 세겠느냐 누가
하늘의 물주머니를 기울이겠느냐
구름이 어느 정도 모이면 비가 되어 내려온다.
누가 그 구름을 기울여 땅으로 떨어지게 하겠느냐
(욥 38:38) 티끌이 덩어리를 이루며 흙덩이가 서로 붙게 하겠느냐
어떤 흙은 달라붙지 않고, 어떤 흙은 달라붙고, 어떤 것은 아예
돌이 되고 바위가 되고 산이 된다.
(욥 38:39) 네가 사자를 위하여 먹이를 사냥하겠느냐
젊은 사자의 식욕을 채우겠느냐
동물의 세계를 관장하시는 창조주의 모습을 말씀하신다.
그들을 사람이 기른다고 생각하나? 저절로 큰다고 생각하나?
창조주께서 사자, 까마귀, 산 염소, 암사슴, 들 나귀, 들소, 타조,
말, 매, 독수리, 베헤못(공룡), 레비아단(용)을 대표적으로 말씀하시면서
그 동물들을 사람들이 기르고 새끼를 낳게 하고 먹이를 주고 하지 않아도
온 들과 산에 충만할 수 있는 것은 다 창조주께서 관리하시고 기르시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신다.
(욥 38:40) 그것들이 굴에 엎드리며 숲에 앉아 숨어 기다리느니라
자기 먹이를 잡는 법은 누구에게서 배웠을까? 어미에게서?
본능으로 주셨다. 물론 처음에는 어느 정도 어미가 보호하고
가르친다.
(욥 38:41) 까마귀 새끼가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으며 먹을 것이
없어서 허우적거릴 때에 그것을 위하여 먹이를 마련하는 이가 누구냐
아무리 어미를 잃은 새끼라도 창조주께서 키우신다.
사람도 부모가 어려서부터 없으면 곧 죽을 것 같은데 그래도 잘 커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도 하고 결혼이라는 것도 하고 자녀도 낳고 사는
것을 보면 정말 그냥 죽으란 법은 없는 것 같다.
창조주께서 사망을 보내시지 않는한.
(욥 39:1) 산 염소가 새끼 치는 때를 네가 아느냐 암사슴이
새끼 낳는 것을 네가 본 적이 있느냐
이런 사실은 창조주만 아시는 사실인가보다.
사람이 없는데서 새끼를 치고 낳는다.
중동지방에서 산염소나 암사슴은 접근하기 힘든 곳에 서식한다고 한다.
(욥 39:2) 그것이 몇 달 만에 만삭되는지 아느냐 그 낳을 때를 아느냐
동물들이 몇달만에 새끼를 낳는지는 동물원에 가둬놓고 키워봐야
알 수가 있다. 야생의 생활은 모르고 있었지만 학자들에 의해
밝혀지기도 한다.
(욥 39:3) 그것들은 몸을 구푸리고 새끼를 낳으니 그 괴로움이 지나가고
야생이나 집 짐승이나 자기 스스로 새끼를 낳고 처리까지 한다.
사람은 누구의 도움을 받는다.
(욥 39:4) 그 새끼는 강하여져서 빈 들에서 크다가 나간 후에는
다시 돌아오지 아니하느니라
야생의 세계는 잠깐 부모 밑에 있다가 어느 정도 크고 나면
제 갈길을 간다. 집을 나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고 어느 곳에서
각자 죽음을 맞는다.
사람들도 불쌍하지만 사람 때문에 이런 삶을 사는 동물들도 너무 불쌍하다.
(욥 39:5) 누가 들나귀를 놓아 자유롭게 하였느냐
누가 빠른 나귀의 매인 것을 풀었느냐
들 나귀는 사나워서 집에서 기르기 부적합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집에서 기르는 나귀는 주인의 말을 따라 일을 잘하지만.
(욥 39:6) 내가 들을 그것의 집으로, 소금 땅을 그것이
사는 처소로 삼았느니라
창조주께서 들을 들나귀의 집으로 소금 땅을 그들의
처소로 삼게 하셨다.
창조주께서 들나귀에게 집을 주시고 돌보시며 기르신다.
우리는 전혀 모르는 일들이다.
(욥 39:7) 들나귀는 성읍에서 지껄이는 소리를 비웃나니
나귀 치는 사람이 지르는 소리는 그것에게 들리지 아니하며
들 나귀는 사람이 하는 소리를 비웃는다고 한다.
사람이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무슨 뜻인지 알아 들을 길도 없고
관심도 없다. 자기들 사는 길로 살 뿐이다.
길들여지지 않은 나귀를 길들일 수 있을 거라고
큰 소리 치지만 사람은 할 수 없다고 한다.
(욥 39:8) 초장 언덕으로 두루 다니며 여러 가지 푸른 풀을 찾느니라
먹을 것을 찾아 스스로 돌아다닌다.
(욥 39:9) 들소가 어찌 기꺼이 너를 위하여 일하겠으며
네 외양간에 머물겠느냐
들소는 버팔로라고 부르는데 집안의 소보다 힘세고 훨씬 크다.
고대의 강인한 힘을 가진 야생동물 중 하나다.
들소가 사람의 말을 듣게 할 수 없다고 한다.
사람의 능력 밖의 일이다.
(욥 39:10) 네가 능히 줄로 매어 들소가 이랑을 갈게 하겠느냐
그것이 어찌 골짜기에서 너를 따라 써레를 끌겠느냐
들소를 사용해서 논을 갈고 밭을 갈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욥 39:11) 그것이 힘이 세다고 네가 그것을 의지하겠느냐
네 수고를 그것에게 맡기겠느냐
들소가 아무리 힘이 세도 사람은 들소를 이용할 수가 없다.
(욥 39:12) 그것이 네 곡식을 집으로 실어 오며 네 타작 마당에
곡식 모으기를 그것에게 의탁하겠느냐
들소를 소 같이 곡식을 나르겠느냐 곡식 모으는데 사용하겠는냐
(욥 39:13) 타조는 즐거이 날개를 치나 학의 깃털과 날개 같겠느냐
타조도 날개가 있어 퍼덕거리나 우아하지는 않다.
(욥 39:14) 그것이 알을 땅에 버려두어 흙에서 더워지게 하고
암 타조는 알을 아무데나 까고 방치시킨다고 한다.
수컷 타조가 품고 까게 한다.
(욥 39:15) 발에 깨어질 것이나 들짐승에게 밟힐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아무데나 깐 자기 알이 위험할 것이라는 것도 모른다.
(욥 39:16) 그 새끼에게 모질게 대함이 제 새끼가 아닌 것처럼 하며
그 고생한 것이 헛되게 될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나니
새끼를 키우는 것을 보지 못했지만 얼마나 모질게 대하는지
남의 새끼라도 그렇게는 못 하겠다 라고 하신다.
알을 낳고 품고 까고 기르고 한 것들이 헛짓이 될지라도
상관하지 않는다.
(욥 39:17) 이는 하나님이 지혜를 베풀지 아니하셨고
총명을 주지 아니함이라
'들개 만도 못한 타조' 라고 하는데 이것은 창조주께서 새끼를
잘 키울 수 있는 자상함을 주시지 않아서 그렇다.
암놈 타조는 아무데나 알을 까고, 알은 수컷이 품고,
새끼를 함부로 대하고 그러나보다.
사람 부모도 그런 사람이 있다. 타조엄마 같은.
자기 새끼가 배고프던 말던 게임 방에서 며칠을 지새고
그러다 새끼는 배고파 죽고, 지새끼 아파 죽는 줄도 모르고
두들겨 팼다가 맞아 죽고, 아 이런 것은 동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도 있구나.
사람도 창조주께서 지혜를 주시지 않으시고
총명을 주시지 않으시니 타조 같이 되는 구나.
(욥 39:18) 그러나 그것이 몸을 떨쳐 뛰어갈 때에는 말과
그 위에 탄 자를 우습게 여기느니라
타조가 서 있을 때는 말 탄 사람보다 크다고 한다.
(욥 39:19) 말의 힘을 네가 주었느냐 그 목에 흩날리는
갈기를 네가 입혔느냐
말은 힘과 속도를 의미한다. 영의세계에서 보면 타고 다니는 것을
말로 비유한다. 우리는 자동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무인기를
타고 다니는데 창조주께서는 말만 타고 다니실까?
성경을 쓰실 때의 제일 빠른 속도를 내고 전쟁에 사용되었던
말로 표현하신 것 뿐이다.
지금이야 제트기도 있고, 로켓도 있고, 무인기도 있지만
성경을 쓸 때 만해도 동물 중 사람을 태우고 멀리 빨리
갈 수 있는 동물이 '말' 이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전부 말을 타고 달린다고 표현했다
(하박국 3:15/ 스가랴 1:8/ 계시록 6:1, 4, 8/ 계시록 19:11).
영의세계는 우리는 상상도 못하는 빠른 속도의 것을 타고
다니든지, 그냥 날라다니든지, 생각의 속도로 다닌다고 한다.
(욥 39:20) 네가 그것으로 메뚜기처럼 뛰게 하였느냐
그 위엄스러운 콧소리가 두려우니라
사람이 말을 마구 뛰게 할 수는 없다. 야생으로 있었던 말은
잡아서 훈련을 시켜야 사람의 뜻대로 뛰게 할 수가 있다.
말의 '히힝~' 하는 콧소리는 무섭다.
(욥 39:21) 그것이 골짜기에서 발굽질하고 힘 있음을 기뻐하며
앞으로 나아가서 군사들을 맞되
말은 전쟁용으로 사용되었고, 사람을 태우고 멀리 가는 운송용으로
사용되었다. 지금은 지동차가 있고 버스가 있고 기차가 있고 비행기가
있고 배가 있으니 말을 타고 가는 일이 없어졌다.
지금은 말을 타고 전쟁을 하지 않는다.
무인기가 출동하고 미사일이 출동한다.
(욥 39:22) 두려움을 모르고 겁내지 아니하며 칼을 대할지라도
물러나지 아니하니
말은 정말 내가 지금 전쟁터에 있는지, 그냥 달리는 것인지,
목적지가 어딘지도 모르지만 겁도 없이 사람이 달리라는 대로
달린다. 도망갈 줄도 모른다.
야생마 같으면 사람이 길들이기도 어렵고
혼자 살 길을 찾아 다니겠지만.
그래도 얼룩말이 아니고는 말들이 혼자 사는 것은 못 본 것 같다.
항상 사람들이 길들였다.
(욥 39:23) 그의 머리 위에서는 화살통과 빛나는
창과 투창이 번쩍이며
사람들이 말을 타고 화살을 쏘고 창과 투창을 던지고 했다.
(욥 39:24) 땅을 삼킬 듯이 맹렬히 성내며 나팔 소리에
머물러 서지 아니하고
말은 맹렬히 뛰고 훈련 받은 소리에 달리고 멈추고 한다.
(욥 39:25) 나팔 소리가 날 때마다 힝힝 울며 멀리서 싸움 냄새를
맡고 지휘관들의 호령과 외치는 소리를 듣느니라
전쟁 말들의 모습이다. 자기들이 칼 맞고 총 맞고 죽는지도 모른다.
그저 힘차게 달릴 뿐이다.
(욥 39:26) 매가 떠올라서 날개를 펼쳐 남쪽으로 향하는 것이
어찌 네 지혜로 말미암음이냐
매가 남쪽으로 날라가는 것이 네가 한 것이냐
(욥 39:27) 독수리가 공중에 떠서 높은 곳에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이 어찌 네 명령을 따름이냐
창조주께서 야생 짐승들이 스스로 본능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다
처지에 맞게 시스템화 하셨다.
사람들이 각 짐승들이나 새들이나 곤충들이나, 꽃이나 나무들이나
데려다가 "너희들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친 것이 아니다.
(욥 39:28) 그것이 낭떨어지에 집을 지으며 뾰족한
바위 끝이나 험준한 데 살며
독수리는 높고 뾰족한 바위 끝이나 헌준한 곳이나, 낭떨어지에
집을 짓고 산다.
(욥 39:29) 거기서 먹이를 살피나니 그 눈이 멀리 봄이며
그 높은데서 땅과 하늘을 살피며 먹을 것을 찾는다.
독수리는 눈이 좋아 멀리서도 볼 수 있다.
(욥 39:30) 그 새끼들도 피를 빠나니 시체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있느니라
자연 속에서 죽어나간 짐승들의 시체가 그대로 있으면 어떻게 될까?
썩는다 해도. 독수리는 동물 시체 청소부인 것이다.
(욥 40:1) 여호와께서 또 욥에게 일러 말씀하시되
(욥 40:2) 트집 잡는 자가 전능자와 다투겠느냐 하나님을
탓하는 자는 대답할지니라
너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창조주 탓으로 돌리는 자야
대답해 보거라
(욥 40:3)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욥 40:4) 보소서 나는 비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
창조주를 만나기 전에는 내가 잘난 것 같고, 똑똑한 것 같고,
한 몫 감당하는 것 같고, 높은 존재 같고, 위대한 것 같고,
내가 부자 같고, 내가 잘 한 것 같고, 잘 못한 것이 없는 것 같고,
다른 사람하고 비교해볼 때 불공평한 것 같고, 나는 일이 안되고
저 사람은 잘 되는 것이 형평성에 어긋나는 것 같다.
하지만
창조주를 알고 나면 "사람은 다 똑 같아" "그가 나고 내가 그야"
"나도 그 사람이라면 나도 똑 같이 그래" "그 사람은 그래도 잘
한 것이 있으니 창조주께서 우두머리로 세우시고 부유를 주셨고
리더자로 세우셨지" "그래 나는 그 사람보다 훨씬 부족하고
나는 사업가 감이 아니고, 나는 리더자 감이 아니야"
"창조주는 정확하셔" 라는 고백을 하게 된다.
(욥 40:5) 내가 한 번 말하였사온즉 다시는
더 대답하지 아니하겠나이다
할말이 없습니다.
(욥 40:6) 그 때에 여호와께서 폭풍우 가운데에서
욥에게 일러 말씀하시되
(욥 40:7)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겠으니
내게 대답할지니라
내가 너한테 물을 것인즉 당당하게 대답해 보거라.
(욥 40:8) 네가 내 공의를 부인 하려느냐 네 의를
세우려고 나를 악하다 하겠느냐
그래 너는 죄도 없는데 창조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라고,
창조주는 불의하시다고 주장하느냐?
(욥 40:9) 네가 하나님처럼 능력이 있느냐 하나님처럼
천둥 소리를 내겠느냐
욥아! 네가 창조주처럼 능력이 있느냐? 천둥소리도 내느냐?
(욥 40:10) 너는 위엄과 존귀로 단장하며 영광과 영화를 입을지니라
그래 네가 창조주처럼 위엄과 존귀로 단장하고 영광과 영화를 입어봐라
(욥 40:11) 너의 넘치는 노를 비우고 교만한 자를 발견하여 모두 낮추되
네가 그렇게 악인이 아닌데 징계를 받는 것이라고 우기면서
창조주가 잘못하셨다고 주장한다면
(욥 40:12) 모든 교만한 자를 발견하여 낮아지게 하며
악인을 그들의 처소에서 짓밟을지니라
모든 교만한 자들을 찾아 낮아지게 하며 악인들을 찾아
그들을 짓밟고
(욥 40:13) 그들을 함께 진토에 묻고 그들의 얼굴을 싸서
은밀한 곳에 둘지니라
그들을 죽음으로 응징 하거라
(욥 40:14) 그리하면 네 오른손이 너를 구원할 수 있다고
내가 인정하리라
그리하면 너도 네가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내가 인정하마.
(욥 40:15) 이제 소 같이 풀을 먹는 '베헤못'을 볼지어다
내가 너를 지은 것 같이 그것도 지었느니라
베헤못 같이 그렇게 큰 짐승을 보았느냐?
내가 너를 지은 것 같이 그것도 지었다.
우리는 창조주께서 직접 베헤못(공룡)과 리워야단(용)을 만드셨다는데
아니라고 알고 있고 신화 정도로 알고 있다. 너무 오래 돼서 그런 것은
이해가 되지만 창조주께서 그런 것은 못 만드셨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창조주도 그런 것은 못 죽이신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창조주께서 이 동물들에 대해서는 신화 정도로 넘어갈 것을 아시고
다른 동물들을 말씀하실 때는 내가 그들을 지으셨다고 굳이 강조를
안 하시지만, 베헤못(공롱)과 리워야단(용)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는
창조주께서 그들도 지으셨다고 강조를 자주 하신다.
태양을 만드시고 그 안에 천사가 주관하고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성경에 무슨 말씀을 하셨든 불신자야 어짜피 안 믿으니까 내버려
두고라도 창조주를 믿는다고 하는 성도들은 무조건 믿어야 한다.
이것은 믿고 저것은 안 믿고 할 바에야 불신자처럼
성경을 아예 안 믿는다고 해라.
(욥 40:16) 그것의 힘은 허리에 있고 그 뚝심은 배의 힘줄에 있고
베헤못은 허리에 힘이 있고, 그 힘있는 배의 뚝심은
힘줄에 있다. 다른 짐승보다 굉장히 세다고 강조하신다.
(욥 40:17) 그것이 꼬리 치는 것은 '백향목'이 흔들리는 것 같고
그 넓적다리 힘줄은 서로 얽혀 있으며
‘백향목’은 구약성서에 70번이나 등장하는 귀한 나무이며 당시에는 ‘백향목’을
수목의 왕으로 숭배했다. 백향목은 '튼튼하게 뿌리를 내리는 강인한 수목'이라는
뜻을 지닌 아랍어가 어원이며, 레바논산맥 표고 2천여m의 눈 덮인 높은 산에
자라는 광대한 교목이다.
‘백향목’은 높이가 40m이며 줄기의 지름이 3m씩 자라는 웅장한 침엽수이다.
달걀 같은 솔방울이 달리는 큰 나무이며 모양이 아름답다. 우산을 편 듯 수려한
외관으로 수명은 2,000~3,000년 정도이다.
‘백향목’은 짙은 향기를 풍겨서 향기롭고 나무진이 많아서 병충해가 없으며
방부력이 있어서 내구력이 뛰어나다. 아름답게 윤을 낼 수 있어서 가장 귀한
건축재였다.
나무줄기가 곧고 크게 자라므로 레바논 근방 나라들의 궁전을 짓는데 사용되었다.
꼬리가 ‘백향목’ 같이 튼튼하고 웅장하다.
그런데 이런 공룡과 용은 얼마나 크고 전천후인지 다른 짐승들이
살아남지를 못하겠다.
욥이 아브라함 시대의 사람이라면 홍수 이후인데 홍수 때에
창조주께서 방주에 이 공룡들과 용을 넣으셨는지는 모르겠다.
이 때만해도 짐승들을 사람에게 붙이시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이 짐승을 먹이로 잡아먹지 않았을 것 같은데.
홍수 이후에 부정한 짐승은 먹지 못하게 하셨고
정한 짐승은 먹으라고 하셨다.
아니면 이것들은 시체들도 먹고 살 수 있고 물 속에서도
살 수 있어서 배를 타지 않았어도 그 홍수 속에서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것인지,
아님 홍수 때 다 죽었다는 것인지.
만약 홍수 때 다 죽었다고 한다면
(호흡을 하는 모든 생물은 다 죽었다고 하셨는데-창세기 7:22),
창조주께서 말씀하실 때 보면 용을 사람들이 잡으려고
많이 애를 썼는데 헛수고였다고 하신다.
몽둥이도 소용없고, 칼도 소용없고, 화살도 소용없고,
창도 소용없고, 화살촉도 소용없다고 하셨다.
그러면 문명이 칼과 화살이 있을 때도 용이 있었다는 것인데
이때도 죽이지 못했던 용을, 홍수 이후에도 살아있었다면
무엇으로 죽일 수 있었다는 것인지.
언제부터 칼로 죽여서 전멸시켰다는 것인지.
모르는 부분을 알려고 시간을 소비할 필요는 없다.
너무 오래전 동물이라 신화로 남아있는 것을 보면,
홍수도 신화로 알고 있을 정도인데, 혹시 대 홍수 전
동물인지 모르겠다.
어딘가에 살아있을 수도 있다고 추정하겠지만
그렇다면 벌써 번성했을 것이고 또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전쟁이 벌어졌을 것 같다.
이제는 총이 있고 대포가 있고 미사일이 있어서
다행이지만 말이다.
(욥 40:18) 그 뼈는 놋관 같고 그 뼈대는 쇠 막대기 같으니
그 공용의 뼈와 뼈대와 살이 얼마나 튼튼하고 단단하고
쇠붙이 같은지 사람은 도저히 상대할 수가 없다.
(욥 40:19) 그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 중에 으뜸이라
그것을 지으신 이가 자기의 '칼'을 가져 오기를 바라노라
창조주께서 만드신 이런 거대한 짐승은 사람의 칼로 죽일
수가 없다.
창조주의 칼로 창조주께서 직접 죽이셔야만 한다.
사람이 무기를 사용해서 동물들이 두려워하지
사람 하나만 놓고 보자면 몸의 무기적으로는
다른 짐승들만도 못하다.
인류가 사용한 최초의 무기는 돌멩이나 나무 몽둥이였을 것이다.
다음 단계에서는 돌과 나무가 복합된 형태의 무기가 생겨나게 되었을
것이고 상호 보완적 작용을 통해 차츰 다양한 모양의 무기가
개발되었다고 볼 수 있다.
칼은 이 중에서도 효용성이 뛰어난 것으로 인간과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도구이자 무기로서 특별한 상징성까지 가지게 되어,
인류가 멸망하는 날까지도 어떤 형태로든 인류의 곁에 남아 있을
유일한 물건이 될지도 모른다.
칼은 치고 찌르고 베는 기능을 모두 할 수 있다. 처음에는 치는 무기로서
주로 몽둥이의 구실을 해왔으며, 간 돌칼 즉 마제석검이 나타나면서부터는
주로 찌르는 무기가 되어 이 기능은 청동검의 시기까지 이어져 내려온다.
그러다가 철기시대가 열리고 검(양날 칼)이 도(외날 칼)로 변하면서
베고 자르는 몫까지 다하게 된 것이다. 칼은 날의 외형상 검에서
도로 발전되어 왔다.
신석기시대의 마제석검이 바로 검의 원형이 된다. 칼몸 양쪽의 날을
세우고 칼끝은 뾰족하게 하며 접촉시 칼이 부러지는 것을 막으려고
두껍게 능각을 세워 칼 몸의 단면이 럭비공이나 다이아몬드 모양이
되게 한 것이다.
이 형태의 원형은 청동 검에도 거의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그 이유는 청동 검 역시 주조물로서 거푸집에 부어 만들기 때문에
합금된 재질이라도 심하게 부딪치면 부러지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같은 이유로 칼은 전체의 길이가 50cm를 넘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철제 칼은, 초기에는 검으로 시작되었고 주조된 것도 있으나 곧
단야, 즉 불에 달구어 두드려 만드는 것으로 바뀌면서 칼의 길이가
길어지고 한쪽에만 날이 있는 도로 바뀌어 진다.
도는 단면이 다이아몬드 형을 반으로 짜른 형태로 옆면이 칼등에서
날까지 평면으로 처리된 것이 대개 초기의 것이고, 다음은 대패와 같이
날 끝부분을 옆으로 갈아낸 것 이며, 마지막 단계가 검에서 한쪽 날의
반을 없애고 칼등화한 모양으로 칼 옆이 능각으로 처리된 것인데,
시대와 나라에 따라 많은 변형이 있으며 칼날은 직선형에서
곡선형으로 바뀌어 왔다.
세계적으로 동검은 BC 4000년경에 이미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나타나고 BC 3500년경에는 청동검이 출현하였으며 BC 2000년경에는
이집트에서 철검이 만들어졌다.
(욥 40:20) 모든 들 짐승들이 뛰노는 산은 그것을 위하여
먹이를 내느니라
모든 들 짐승들의 먹이는 그들이 뛰노는 산에 있다.
(욥 40:21) 그것이 연 잎 아래에나 갈대 그늘에서나 늪 속에 엎드리니
이 동물은 강물이나 갈대 숲이나 늪 속에 있다.
악어다.
(욥 40:22) 연 잎 그늘이 덮으며 시내 버들이 그를 감싸는도다
악어는 강 주변 수풀 우거진 곳에 숨어 있다.
(욥 40:23) 강물이 소용돌이칠지라도 그것이 놀라지 않고
요단 강 물이 쏟아져 그 입으로 들어가도 태연하니
악어는 강물이 소용돌이 쳐도 아무렇지 않고
강물이 쏟아져와도 몸에 큰 영향을 못끼치고
입으로 강물이 몰아쳐 들어와도 끄떡도 않는다.
(욥 40:24) 그것이 눈을 뜨고 있을 때 누가 능히 잡을 수
있겠으며 갈고리로 그것의 코를 꿸 수 있겠느냐
악어가 눈을 뜨고 있으면 얼마나 두려운지 잡을 수도 없다.
(욥 41:1) 네가 낚시로 '리워야단'을 끌어낼 수 있겠느냐
노끈으로 그 혀를 맬 수 있겠느냐
'리워야단' 은 '용'을 말씀하신다.
용을 낚시로 잡겠느냐 노끈으로 묶겠느냐.
(욥 41:2) 너는 밧줄로 그 코를 꿸 수 있겠느냐 갈고리로
그 아가미를 꿸 수 있겠느냐
리워야단을 밧줄을 사용해 잡을 수 있느냐
(욥 41:3) 그것이 어찌 네게 계속하여 간청하겠느냐
부드럽게 네게 말하겠느냐
리워야단은 사람이든 무엇이든 두려워 하지 않기 때문에
도망을 간다든지, 상대를 안한다든지, 협상을 한다든지
하지 않는다. 인정사정 보지 않는다.
(욥 41:4) 어찌 그것이 너와 계약을 맺고 너는
그를 영원히 종으로 삼겠느냐
리워야단은 사람이 길들일 수가 절대로 없다.
(욥 41:5) 네가 어찌 그것을 새를 가지고 놀 듯 하겠으며
네 여종들을 위하여 그것을 매어두겠느냐
네가 그 용을 애완용으로 네 옆에 두겠느냐?
너의 여종의 노리게로 쓰겠느냐?
(욥 41:6) 어찌 장사꾼들이 그것을 놓고 거래하겠으며
상인들이 그것을 나누어 가지겠느냐
물고기를 잡아서든 좋은 물건을 놓든 상인들이 ‘경매’에
붙이는 것처럼, 용을 잡아 놓고 경매에 붙이겠느냐?
(욥 41:7) 네가 능히 많은 창으로 그 가죽을 찌르거나
작살을 그 머리에 꽂을 수 있겠느냐
아무리 많은 창을 던지고 해도 꽂히지를 않는다. 얼마나 날쌔고
불도 뿜고, 날개는 없어도 얼마나 몸에 힘이 좋은지 반동으로
날라 다니고, 바다고 육지고 전천후이기 때문에 사람이 잡으려고
쫓아다닐 수도 없다. 작살을 던져도 소용이 없다.
잡기는커녕 오히려 용 앞에 사람으로 보여 지지를 말아야 한다.
(욥 41:8) 네 손을 그것에게 얹어 보라 다시는 싸울 생각을 못하리라
너 사람이라는 존재는 그 용에게 손도 댈 수도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한 번 네가 손을 댈 수 있거든 대 보라는 것이다.
손을 대 보기는 커녕 그 앞에 서 있을 수도 없다.
(욥 41:9) 참으로 잡으려는 그의 희망은 헛된 것이니라
그것의 모습을 보기만 해도 그는 기가 꺾이리라
용을 잡으려고 아무리 노력했어도 그것은 헛짓뿐이었다.
용의 모습만 보아도 질려 죽을 판이다. 우리가 뱀을 보아도 그렇다.
작은 뱀이야 잡아다 뱀 주를 해먹고 봄 보신을 한다고 난리지만
조금만 큰 뱀이어도 우리는 질려버린다.
그럴지라도 그런 뱀이라도 잡는 선수들이 있다.
무기가 없는 사람이 무슨 수로 뱀을 잡았을까 싶지만,
이 용이라는 것은 무기로도 상대가 되지를 않았던 것이다.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
(욥 41:10) 아무도 그것을 격동시킬 만큼 담대하지 못하거든
누가 내게 감히 대항할 수 있겠느냐
'베헤못' 같은 거대한 동물 하나도, '리워야단' 같은 거대한
동물 하나도 상대할 수 없는 인간 주제에 누가 감히 그런
짐승을 만드신 창조주께 대항하겠다고 하는 것이냐?
"욥아! 네가 아무 잘못도 없는 의인인데 창조주가 쓸데없이
함부로 징계해서 네가 괴로워 죽을 지경이라는 것이냐?
창조주가 잘못했고 네가 잘했다는 것이냐?”
(욥 41:11) 누가 먼저 내게 주고 나로 하여금 갚게 하겠느냐
온 천하에 있는 것이 다 내 것이니라
너희 사람들 중에 누가 창조주께 먼저 주면서 "나중에 갚으세요" 했느냐
온천하가 다 나 창조주 것이다.
사람들이 창조주의 것을 빌려 쓰고 있으면서 주인이 누구인지 모르고
산다. 주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는 기독교인들 조차도 말로는 창조주의
것이라고 하면서 몸으로는 자기 것을 자기 마음대로 쓰고 있다.
내가 능력이 있어서 잘 벌고 있다고 착각하고 살고 있고, 내게 있는
돈이 내 것인 줄 알고 남에게 선심도 쓰고 있고, 내 것이 내 것인줄
알고 항상 내게 있을 줄 안다.
그 물질과 몸과 마음과 건강과 재능과 능력은 내 것이 아니므로
언제든지 창조주의 계산에 의해 다른 사람에게 양도되기도 하고
뺏기기도 하고 여러 가지 모양으로 살게 된다.
내 것이 뺏긴 것 같거들랑 창조주께서 빼앗아 가셨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이럴 때 창조주께 왜 그러셨냐고, 나 같이 착하고 도덕적인
사람에게 어떻게 이러실 수가 있으시냐고, 나 같은 사람이 왜 아파야
하느냐고 불평불만하지 말고
내가 어떻게 했는지, 내가 어떤 마음을 먹었는지, 내가 어떻게 말을
했는지, 내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내가 왜 그랬는지, 내가 잘했는지,
내가 잘못했는지를 빨리 돌아보아야 한다.
그런 것도 창조주께서 깨닫게 해주시지 않으시면 계속 자기는 잘 한
것으로 생각하고, 창조주께서 잘 못 계산 하셨다든지, 나는 창조주께
사랑 받는 자로서 당연히 이런 고난은 받아야 하는 것이고, 창조주께서
너무 나를 사랑하셔서 나는 이렇게 아파야 하는 것이라고, 나는 의로운
고난을 받아 마땅한 존재라고 착각하고 살게 된다.
언제나 이런 착각에서 정신을 차릴까?
그래도 창조주께서 목숨을 살려주신 것만도 감사하긴 하지만 계속
수술에 재발에 입원에 몸의 아픔과 마음의 고통과 경제의 고통에서
벗어날 길은 없다.
(욥 41:12) 내가 그것의 지체와 그것의 큰 용맹과
늠름한 체구에 대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리라
창조주께서 욥에게 용의 지체와 용맹과 늠름한 체구에
대해 계속 말씀하시겠다고 하신다.
이 리워야단을 말씀하실 때는 다른 동물들 보다
많이 설명하신다. 다른 것들은 그래도 지금까지
존재한다든지, 사라져버린 공룡도 신화까지로
생각하진 않는데. 이 '용'은 그야말로 신화적인
존재로 여길까봐 많이 자세하게 설명하신다.
이것을 상징이라고 주장하면 안 된다.
창조주의 말씀을 무시하는 행위이다.
(욥 41:13) 누가 그것의 겉가죽을 벗기겠으며 그것에게
겹재갈을 물릴 수 있겠느냐
사람 그 누가 용의 가죽을 벗기겠느냐, 용에게 재갈을
물리겠느냐
(욥 41:14) 누가 그것의 턱을 벌릴 수 있겠느냐 그의 둥근
이틀은 심히 두렵구나
누가 용의 턱을 벌리겠느냐, 용의 이만 보아도 심히 두렵다.
(욥 41:15) 그의 즐비한 비늘은 그의 자랑이로다 튼튼하게
봉인하듯이 닫혀 있구나
이 용의 비늘이 얼마나 튼튼하고 정밀하게 붙어 있는지 봉인한 것
같다고 하신다. 그러니 몽둥이로 때려도 소용이 없고, 칼을 휘둘러도
들어가지도 않고, 활을 쏘아도 튕겨나가고, 화살촉을 쏘아도 박히지가
않는다.
(욥 41:16) 그것들이 서로 달라붙어 있어 바람이 그 사이로
지나가지 못하는구나
비늘이 얼마나 정밀하게 붙어있는지 바람도 들어가지를 않는다.
그것은 창조주의 정밀도이시다.
(욥 41:17) 서로 이어져 붙었으니 능히 나눌 수도 없구나
비늘과 비늘이 서로 이어져 붙어있어서 나눠지지를 않는다.
(욥 41:18) 그것이 재채기를 한즉 빛을 발하고 그것의 눈은
새벽의 눈꺼풀 빛 같으며
용이 재채기를 하니 빛이 나오고 눈에서도 빛이 발한다.
(욥 41:19) 그것의 입에서는 횃불이 나오고 불꽃이 튀어 나오며
용의 입에서 불이 나오고
동ㆍ서양의 신화나 전설에 등장하는 상상의 동물로 거대한 뱀을
닮은 형상을 하고 있으며 신성한 힘을 지닌 상서로운 존재로 여겨
지지만 기독교 문명에서는 악과 이교(異敎)를 상징하는 퇴치의
대상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상상의 영수(靈獸)인 용의 존재는 많은 문명에서 발견된다.
지역이나 문화에 따라 다양한 형상으로 나타나지만 거대한 뱀이나
도마뱀과 닮았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한국ㆍ중국 등
동아시아에서는 몸에 비늘이 있고 네 개의 발에 날카로운 발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매우 큰 눈과 긴 수염을 지니고 있는데
코와 입으로는 불이나 독을 내뿜으며 여러 개의 머리를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다.
몸의 색깔은 녹색[綠], 붉은색[赤], 누런색[黃], 흰색[白], 검은색[黑]
등으로 나타난다. 중국 위(魏)나라 때 장읍(張揖)이 지은 자전(字典)인
'광아(廣雅)'에는 용이 아홉 가지 동물들과 비슷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곧 머리는 낙타[駝], 뿔은 사슴[鹿], 눈은 토끼[兎], 귀는 소[牛],
몸통은 뱀[蛇], 배는 큰 조개[蜃], 비늘은 잉어[鯉], 발톱은 매[鷹],
주먹은 호랑이[虎]와 비슷하다고 되어 있다.
또한 비늘은 81개이며, 소리는 구리쟁반[銅盤]을 울리는 소리와 같고,
입 주위에는 긴 수염이 있고, 턱 밑에는 구슬이 있으며, 목 아래에는
거꾸로 된 비늘[逆鱗]이 있다고 한다.
용은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지만 날개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박쥐와 비슷한 날개와 가시가 달린 꼬리를
지닌 존재로 묘사된다.
(욥 41:20) 그것의 콧구멍에서는 연기가 나오니 마치 갈대를
태울 때에 솥이 끓는 것과 같구나
용의 콧구멍에서 연기가 나온다.
(욥 41:21) 그의 입김은 숯불을 지피며 그의 입은 불길을 뿜는구나
"무슨 동물의 입에서 불길이 나가? 장난 하냐? 만화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실제 동물이 아니라 상징적인 것이라니까" 할지 모르겠지만 창조주께서는
못 만드시는 것이 없으시고, 못 하시는 일이 없으시다는 말 밖에 할 말이 없다.
현재는 이 '용'이 존재하지를 않으니까.
이런 사납고 무섭고 위대한 존재가 왜 죽어서 다 없어졌을까?
창조주를 안 믿는 사람들이나 성경을 안 믿는 사람들이야 어짜피
아무 것도 안 믿으니까 그렇다 치고, 기독교인 조차도 '용'이라는
것을 상징적인 동물이라고, 신화 같은 이야기라고, 만화 같은
이야기라고, 비유해서 얘기하는 것이라고 치부한다면,
지금 욥기 41장에서 말씀하시는 분이 '창조주' 이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을 믿어야 한다. 욥이 얘기하는 것도 아니고,
세 어르신이 얘기하는 것도 아니고, 엘리후가 얘기하는 것도 아니다.
창조주께서 그런 거대한 짐승도 만드셨다고 직접 말씀하신다.
이 내용을 실제가 아니라 상징 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성경 모든 말씀이 실제가 아니라 상징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꼭 명심해야 한다.
그러면 예수의 십자가 죽음도 상징이 되어 버린다.
사람인 우리도 대포도 만들고 탱크도 만들고 화약도 만들고
미사일도 만들고 폭죽도 만들고 폭탄도 만들고 다이나마이트도
만들고 로봇도 만들고 인공지능로봇도 만들고 염색체로 복사도
하고 컴퓨터도 만들고 하는데 하물며 창조주 신께서 무엇을
못하시겠는가.
(욥 41:22) 그것의 힘은 그의 목덜미에 있으니 그 앞에서는
절망만 감돌 뿐이구나
용은 온 몸이 힘 덩어리고 무기 덩어리고 방패 덩어리라서 사람이나
짐승이나 용 앞에서는 죽음밖에 없었기 때문에 절망만 있었다.
(욥 41:23) 그것의 살 껍질은 서로 밀착되어 탄탄하며 움직이지 않는구나
이 용은 얼마나 튼튼하고 단단한지 살을 무기로 자를 수 있거나
살을 무기로 꽂거나 해야 죽을텐데 꽂히지를 않고 잘라지지를 않는다.
(욥 41:24) 그것의 가슴은 돌처럼 튼튼하며 맷돌 아래짝 같이 튼튼하구나
용의 가슴부붙은 단단한 맷돌짝 같다.
(욥 41:25) 그것이 일어나면 용사라도 두려워하며 달아나리라
아무리 용감한 사람이 나서서 싸우려고 해도 용이 일어서는
모습만 보아도 36계 줄행랑을 치게 된다.
(욥 41:26) 칼이 그에게 꽂혀도 소용이 없고 창이나 투창이나
화살촉도 꽂히지 못하는구나
용에게는 칼도 소용없고, 창이나 투창이나 화살촉도 소용이 없다.
(욥 41:27) 그것이 쇠를 지푸라기 같이, 놋을 썩은 나무 같이 여기니
용은 그런 것들을 지푸라기 다루듯이 한다.
(욥 41:28) 화살이라도 그것을 물리치지 못하겠고
물맷돌도 그것에게는 겨 같이 되는구나
화살도 소용없고 돌맹이를 던져도 겨 같이 여긴다.
(욥 41:29) 그것은 몽둥이도 지푸라기 같이 여기고
창이 날아오는 소리를 우습게 여기며
이 용은 사람이 어떻게 때릴 수도 없고 잡을 수도 없었는데
몽둥이가 지푸라기 같고 창도 우습게 여겼다. 칼이나 창이나
투창이나 화살촉이나 그 어떤 것이 그 단단한 비늘을
통과하지를 못해 몸에 꽂히지를 않았다.
(욥 41:30) 그것의 아래쪽에는 날카로운 토기 조각 같은 것이
달려 있고 그것이 지나갈 때는 진흙 바닥에 도리깨로 친
자국을 남기는구나
(욥 41:31) 깊은 물을 솥의 물이 끓음 같게 하며 바다를
기름병 같이 다루는도다
바다 물속에 깊이 힘 있게 쑥 저절로 들어가기가 상당히 힘들다.
어느 정도의 힘이 아니고는 스스로 들어갈 수가 없다.
물고기라 하더라도 헤엄쳐서 유유히 갈 뿐이다.
고래도 힘이 있긴 하다. 하지만 지금 창조주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고래가 아니라 '용' 이라는 것이다.
용은 깊은 물속에 힘 있게 들어가므로 물거품이 상당히
일어난다. 바다를 이리 저리 다니는 것이 어느
걸림돌도 없이 자유자재로 다닌다는 것이다.
(욥 41:32) 그것의 뒤에서 빛나는 물줄기가 나오니 그는
깊은 바다를 백발로 만드는구나
바다에서나 강에서나 위로 솟구쳐 올라갈 수 있는 힘이 있었다.
그렇게 솟구쳐 오르면 물이 따라 올라갔다가 하얀 물거품을
이루는 모습이다.
날치도 상당히 높이 뛴다.
연어는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힘이 있다.
이런 작은 물고기들도 물을 치고 올라가는 힘이 있는데
저렇게 큰 용은 얼마나 하늘로 치솟아 올라갈까?
그 거대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것이다.
(욥 41:33) 세상에는 그것과 비할 것이 없으니 그것은
'두려움이 없는 것'으로 지음 받았구나
창조주께서 리워야단(용)도 지으셨다고 다시 강조하신다.
만약 이렇게 강하기가 전무후무한 짐승이 죽어야 했다면
창조주께서 죽이셨던지, 사람은 약한 것 같지만 그래도
창조주께서 지혜를 주셨고 총명을 주셨고 꾀도 주셨기 때문에
무기라는 것을 만들 수 있었고, 그것을 계속 발전해서 쓸 수가
있었기 때문에 그런 사람에 의해서 죽이셨던지 어쨌든
지금은 용이 없다.
하지만 여러 곳에 용의 모습을 그려 놓은 것이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보고 오는 각자 자기의 지옥으로 알고 있는
'죄의 법' 영의세계를 창조주신은 ‘용’의 모습으로 표현하신다.
죄가 쌓인 것은 '죄의 법'이고 대장은 '용'이고,
선함이 쌓인 것은 ‘창조주의 법’이고 대장은 '미가엘’이다.
(욥 41:34) 그것은 모든 높은 자를 내려다보며 모든 교만한
자들에게 군림하는 '왕'이니라
동물의 왕이 ‘용’ 이었다. 지금은 동물의 왕을 사자라고 한다.
그 무서운 사자도 지금은 동물원에 있다.
이런 용이 살아있다면 동물원에 넣어 놓을 수가 없다.
용을 만드신 창조주는 세상의 '왕'을 비유하시려고 하셨다.
말은 빠른 속도로 달리는 존재로 비유되고. 사자는 무서우신
창조주신으로 많이 비유되고, 뱀은 교활하고 꾀가 많은 존재로
비유되었다.
용이 상징적인 동물인줄 알았더니 창조주께서 세상에서 용과
비교할 것이 더 이상 없다고 하실 만큼 거대하게 만드셨구나.
창조주께서 왜 '리워야단'에 대해서는 그렇게
자세하게 많이(30귀절) 말씀해 주셨을까?.
그런 위대하리만큼 거대한 동물도 창조주께서 만드셨고,
필요에 의해서 죽이셔도 사람이 죽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께서 죽이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말씀하신다.
용을 만드신 것처럼 세상에서 인생에 있어서도 힘 센 자를
창조주께서 일으키시는데, 그 용을 죽이시는 것처럼 그 힘센
자를 또 창조주께서 죽이실 수 있으시다는 것을 말씀하시려고
하신다.
힘센 자, 부유한 자, 왕들, 높은 자들도 다 창조주께서 세우셨지만,
함부로 권력을 휘두르고, 백성이 자기 것인 양 함부로 백성들을
죽이고, 거만하게 군림하고, 교만한 자나 악행을 일삼는 자는
창조주께서 부숴 뜨리고 넘어뜨리고 꺾으시고 멸절시키시고
죽이신다(이사야 14:16, 17, 20).
사울이 처음에는 준수한 자였기에 창조주께서 왕으로 추대했지만
나중에는 변질되어 창조주께서 꺾어버리시는 것처럼,
욥도 처음에는 제대로 된 인격으로 살았기에 창조주께서
욥을 높은 위치로 세우셨지만 나중에는 잘못됐기 때문에
창조주께서 꺾어버리신다는 것이다.
이제 세상을 전천후로 군림했던 용이 없어진 것처럼,
세상을 전천후로 군림했던 '왕' 이라는 직위가 없어지고,
각 사람이 동등한 위치에서 나라를 다스리는 '대통령'을
만드신 창조주,
그동안 왕이라는 것 때문에 수많은 백성들이 시도 때도 없이
죽어 자빠졌다. 전쟁으로 왕의 권력으로. 정권다툼으로.
당파싸움으로.
왕의 먹이 감이 백성들이었다.
산에 사는 들짐승들이 다 용의 먹이 감이었던 것처럼.
(사무엘상 8:18) "그 날에 너희는 너희가 택한 ‘왕’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되
그 날에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응답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니" 아멘.
창조주께서 왕을 세우시고 왕권을 얼마나 주셨냐하면 창조주 같이 주셨다.
백성들을 다스릴 수가 있었고, 전쟁에 출전시킬 수가 있었고, 죄로 묻고
죽일 수도 있었고, 부릴 수도 있었고, 마음대로 후궁도 들일 수가 있었고,
백성들의 수확 중 10%를 거두어 자기의 양식으로 삼을 수가 있도록
하셨다(사무엘상 8:11~17).
그래서 백성들이 왕 밑에서 시달려도 창조주는 마땅하다 하셨다.
그 권세 창조주께서 주셨다.
하지만 너무 자만의 권세를 휘두르고, 폭력이 난무하고, 전쟁 중 죽이지
않아도 될 백성들까지 무참하게 짓밟고, 자기의 영광을 위해서 전쟁을
즐기고, 성읍을 초토화 시키는 교만한 왕이나, 자기가 신인 줄 아는 왕이나,
자기의 왕권이 하늘이 허락하신 것인 줄 모르고 자기의 것인 줄 알고
날뛰는 교만한 왕은 창조주께서 꺾어버리셨다.
‘용(리워야단)’과 ‘공룡(베헤못)’이 있으므로 모든 짐승들이
남아나지 않겠기에 이제는 다 없어지고, 힘만 있는 나쁜 존재,
세상의 나쁜 왕으로서의 상징적인 동물의 모습으로만 역사
그림으로 남아 있다.
왕의 모습도 그렇다. 이제 좋은 왕이든 나쁜 왕이든 ‘왕’ 들은
없어지고 역사 그림으로만 남아 있다.
이제는 상징적인 것 뿐이다. 왕의 권력은 없어졌다.
창조주께서 없애버리셨다.
조선시대 선배들은 어떻게 알고 왕에게 '용'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을까. 용안(임금의 얼굴), 용루(임금의 눈물), 용변
(임금의 똥), 용포(임금의 옷), 곤룡포(임금의 옷) 등 등.
(욥 42:1)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욥 42:2)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베헤못과 리워야단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창조주의 뜻을 깨달은 욥은
자신이 그토록 리워야단 같이 전천후로 휘집고 다니고, 왕처럼 군림하고
다스리고 대우받고 가르치고, 손 비빔을 받고, 사람들을 괴롭게 했던
잘못을 깨닫게 된다.
자기가 그동안 어떻게 했기에 사람들이 그토록 원성을 높였으며,
지금 아파 죽을 것 같은 자신을 불쌍하게 여기지를 않고 그토록 놀리고
조롱하고 침을 뱉을 정도가 됐는지를 처절하게 깨닫게 된다.
욥이 창조주를 만나는 순간 무슨 잘못을 한 것인지를 정확하게
알게 된다. 이것은 일일이 말로 가르쳐 주지 않아도 원래 알고
있었던 것처럼 알게 되는 것이다.
창조주는 정말 광대하시다는 것을 저절로 알게 된다.
사람의 입으로는 할 말이 없어진다. 그동안 창조주에 대해서
아는 척하고 자랑하고 떠들고 했던 것들이 부끄러워진다.
창조주는 못하시는 일이 없으시고 못 이루시는 것이 없으신데,
지금 우리 삶을 보면 전혀 개입하시지 않으시는 것 같다.
그래서 전부 우리 힘대로, 우리 뜻대로, 우리 마음대로,
우리 계획대로 사는 것 같지만 내 생각대로 모든 일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이상하다. 누가 꼭 있는 것 같다.
나의 복은 딱 여기까지인 것을 보면.
나는 40년 이상 경력의 기독교인으로서 그 동안에는
기독교에서 가르쳐 준대로, 설교하는대로 거의 100%
흡수했다고 볼 정도였다. 성경공부도 좋아했다.
그렇다고 성경을 100% 다 믿는다고 주장할 수도 없고,
어느 부분은 안 믿는다고 할 수도 없는 상태였다.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체크해 보지도 못하고
믿음이 있는 줄 알고 아무 생각 없이 종교생활만
열심히 했다.
하지만 2011년 8월 29일 방언을 받음과 동시에
기드온용사 훈련이라는 것을 가족이 동참한 가운데
평상시 삶을 그대로 살면서 받았다.
그 이후 창조주 신께서 직접 성경을 풀어주시는데
7년 이상이 걸리면서 기독교 기본에서
양파껍질 한꺼풀씩 벗기듯이 벗겨내셨다.
그리고 성경을 100% 믿어지게 하셨다.
나도 이 욥 같은 고백을 할 수 있다.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으시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압니다. 이 세상 돌아가는
모든 상황은 주께서 명하신대로 이십니다"
(욥 42:3)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제가 여태까지 산 것을 생각하니 부끄럽기가 한이 없습니다.
남이 어떻든 말든 나 좋으면 된다고 살았고,
개 같이 벌어 정승 같이 써도 상관없다고 살았고,
남이 상처가 되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고,
돈이 들어오는 일은 하고 돈이 들어오지 않으면
과부건 고아건 돌보지 않았고,
나무뿌리를 먹고 흙을 먹고 살아야하는 거처할 곳도 없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고 쫓아버리고 돈이 되지 않는
일이라고 나 몰라라 했던 저의 삶이 부끄럽습니다.
그래도 나는 정직하게 살았고 음흉스럽지 않았다는
자부심으로 살았습니다.
창조주께서 엄청 쏟아 부어 주신 재물, 그것은 내 것이
아니었는데 내 것처럼 썼고 '주신 이도 창조주' 이시라는
것은 말로 만이었습니다.
정말 나는 아무 것도 아닌데, 창조주께서 주신 지혜와 총명으로
사업도 하고 그 얻은 부요로 권세를 잡고, 잘난 척하고 아는 척하고
나를 높이고 자랑하는데 사용 했습니다.
'가져가실 수 있는 분이 창조주' 이시라는 것은 알겠는데
왜 가져가셔야 하는지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제 잘못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를 못했습니다.
창조주를 경험하지도 못한 제가 창조주신을 많이 안다고
이론으로만 떠벌였습니다. 정말 저는 무지했습니다.
(욥 42:4)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는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욥 42: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욥이 여태까지는 창조주에 대해서 공부하고 구전으로 듣고,
누구에게 가르치면서 귀로만 듣고 알았던 창조주를 이젠
직접 만나게 된 것이다.
직접 보여주시지는 않으셨을 것이다.
이 느낌이 무슨 느낌이지는 안다.
그냥 느낌으로 다 알게 하신다.
말씀하시는 것처럼 알게 하시는데 들리지 않는 그냥 알게
되는 것이다. 생각을 공유하는 것 같다.
이렇게 창조주신을 직접 만나니 그동안 나에게
"주신이도 창조주이시오 거두시는 이도 창조주 이시오" 라는
말을 이론으로 알았던 것을 몸으로 처절하게 느낀 것이다.
진짜 주인이 계셨구나.
(욥 42:6)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 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 하나이다
내가 아무리 이 땅에서 권세가 크고 잘 배우고 잘 났다고 해도
창조주 앞에 서면 그렇게 초라할 수가 없고 비참할 수가 없다.
지금 내가 잘난 척 하면서 곧잘 하던 일도 당장 내려놓고 싶어진다.
우리가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사는 것이 창조주께서
아무렇지도 않다는 느낌을 주셔서 그렇지 만약 우리의 모습대로
느끼도록 하신다면 우리는 잠깐이라도 살 수가 없다.
바보 같고, 멍청이 같고, 부족하고, 창피하고, 모자란 것
투성이기 때문에 함부로 누구 앞에 리더자로 설 수가 없다.
창조주께서는 그렇게 하려면 당장 그만두라고 하시는 것은
아니시다. 창조주 앞에 서면 자동으로 그렇게 느끼게 된다는
것을 알려주신 것이다. 하지만 내가 부족함을 느낄 때는
더 공부하고 노력해야 된다.
이 느낌은 왕이든, 세계 대통령이든, 세계 갑부이든,
무슨 박사든 교수든 판사든 의사든 대기업 사장이든,
영성의 대가인 주의 종이든, 신학박사든 신학교 교수든,
대형교회 주의 종이든, 성경을 많이 알고 있는 성도든,
하나님을 잘 믿고 예배를 잘 드렸든, 예물을 많이 드렸든,
봉사를 잘했든, 찬양을 잘했든, 기도를 많이 했든,
새벽예배를 평생에 한 번도 안 빠지고 드렸든,
구제와 선행을 제일 많이 했든, 제일 착하고 바르고
정직하게 살았든 상관없다.
창조주 앞에 서면 그냥 죽은 듯이 된다.
창조주 앞에서 잘난 척을 할 수가 없다.
창조주께서 말씀하시지 않으셔도
내 몸이 스스로 처절하게 깨닫는다.
욥이 얼마나 이 땅에서 큰 존재이었나.
하지만 창조주 앞에서 창조주의 말씀을 들으니
자기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니고,
자기가 여태까지 했던 모든 자랑스러운 일들이
정말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처절하게 느낀 것이다.
(욥 42:7)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 말씀을 하신 후에 여호와께서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니라
창조주께서 엘리바스에게 대표로 말씀하신다.
너와 너희들이 창조주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욥 같지 않았다고.
창조주께서는 창조주께서 사람을 정죄하셔도, 사람은 사람끼리
정죄하지 말고 중보기도를 원하신다. 위로와 격려해주기를 원하신다.
아무리 그 환자 앞에서 그 사람의 죄를 찾아주려고 발버둥을 쳐도
그 사람은 모른다. 왜냐하면 그 죄 값으로 징계를 하신 창조주께서
그 징계가 끝날 때 깨닫게 해주시는 것이라서 그렇다.
사람이 깨닫게 해주는 것으로 착각해서 아무리 강단에서 소리 지르고
설교를 해도 성도들은 모른다. 우리의 할 일은 위로해주고, 칭찬해주고,
격려해주고, 도와주고, 일으켜주고, 손을 잡아주는 역할이 있을 뿐이다.
설교를 듣고 깨달았을지라도 창조주의 때가 됐기 때문이지 주의 종이
설교를 잘해서가 아니다. 그 설교를 사용하셨을 뿐이다.
엘리바스나 빌닷이나 소발 어르신이 말한 것이 틀린 것이 없다.
아주 적나라하게 욥의 죄목을 다 밝혀주었다.
그래도 욥은 절대적으로 깨닫지를 못한다.
내가 그 환자 앞에서 의로운 척하고, 나는 죄가 없어서 지금 이렇게
멀쩡한 것 같이 이야기를 해도, 나도 나중에 창조주께서 정죄하실 때는
그 때 그 사람처럼 나도 죽을 맛으로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남이 와서 똑 같이 나에게 정죄성 발언을 할 것인데,
누구든 그러지 말라는 것이다.
그 사람은 창조주께서 ‘죄 값’을 물으셔서 그런 상황에 있을지라도
같은 죄인인 우리는 위로해주고 격려해주고 도와주고 중보기도 해주고
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중보기도도 창조주께서 쓰실 때가 있으시고 쓰시지 않으실
때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 중보기도를 드렸는데도 불구하고
그 사람이 회복되지 않았다든지, 죽었다든지 해가면서 시험에 들면 안 된다.
우리는 그냥 우리의 할 일을 했을 뿐이고,
창조주는 창조주으로서의 하실 일을 하셨을 뿐이다.
욥이 그래도 "너희들의 말이 욥 같지 않았다" 라고 창조주께 칭찬을
받았던 것은 그렇게 두들겨 맞고도 왜 맞았는지 이유를 절대적으로
모르겠을지라도 끝까지 참고 기다려 보겠다고 창조주를 떠나지 않고
버텼던 것이다.
(욥 42:8) 그런즉 너희는 수소 일곱과 숫양 일곱을 가지고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
너희가 우매한 만큼 너희에게 갚지 아니하리라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라
이들도 창조주를 정확하게 영성으로 만나보고 안 것이 아니라
많이 듣고 배우고 연구하고 알고 있었던 것이다.
너희들이 잘 못한 것에 대해 수소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를
가지고 욥에게 가서 욥이 너희들을 대신하여 번제를 드리게 하라.
회개의 제물을 받으시겠다는 것이다.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데 내가 그 기도를 기쁘게 받을 것이다.
너희들의 말은 우매했지만 그 우매함을 너희들에게 갚지 않겠노라.
너희가 창조주를 가리켜 한 말이 욥 같지 않았다.
이 수소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를 제단에 드리려면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을 것이다. 그 짐승 다 죽여서 피 빼서 껍질 벗겨서
내장 빼고 씻고 몬가 태우고 하면서.
그런데 나는 그동안 신앙생활 하면서 창조주신은 왜 그렇게 동물들을
잡아 죽이라고 하셨을까? 그렇게 짐승 태우는 냄새가 창조주께 향기가
될까?
물론 그 사람의 죄 값을 상계 시키는 이 땅에서의 과정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허구헌날 동물 잡아서 태우고,
그럼 그 냄새를 맡으실까? 그리고 좋아하실까? 했다.
아니었다. 성경을 읽어보니 창조주께서 ‘그 동물’을 바치라고 하시는 것은
‘그 사람의 죄 값의 크기’인 것이고, 그 동물을 죽이고 제단에 바칠 것 바치고
태우고 삶고 하면서 고기는 사람들을 먹으라고 하신 것이었다.
제사장도 먹고 성전을 섬기던 자들도 먹고 그 제물을 갖고 온
가족들도 먹으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즐거워 하라고 하신다.
이 때도 엘리바스, 빌닷, 소발 어르신이 합쳐서 수소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를 창조주께 바치라고 하셨는데, 일단 창조주께 제사를
드리고 나면 그 짐승을 가지고 동네 잔치하라고 하시는 것이다.
그것을 먹고 즐거워 하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신명기 27:6~7) “너는 다듬지 않은 돌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을
쌓고 그 위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릴 것이며 또 화목제를
드리고 거기에서 먹으며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라” 아멘.
(욥 42:9) 이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 가서 여호와께서 자기들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욥을 기쁘게 받으셨더라
창조주께서 욥의 회개를 기쁘게 받으셨다.
욥과 이 세 사람에게 동시에 말씀하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기드온용사 훈련이라는 것을 창조주께 직접 받아보니
나에게만 창조주의 명령이 들리는데 가족은 그냥 나를 100%
믿고 따라오게 하셨다.
나중에 그 훈련의 관계를 끝내시니 이제 가족은 원래 대로 돌아갔다.
그렇게 욥하고 논쟁을 했던 사람들이 동시에 창조주의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간 것이다. 그리고 제물을 드리라는 명령에 순종한다.
(욥 42:10)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이론으로만 알고 있었던, 그 이론을 가르치고 주장했던 욥이
창조주의 존재를 바로 깨닫고 창조주를 직접 만나고 나니
철저한 회개를 하게 되고 그의 환난에서 건짐을 받는다.
그리고 과거보다 훨씬 더 제대로 살게 되니
전보다 갑절의 복을 받게 된다.
(욥 42:11) 이에 그의 모든 형제와 자매와 이전에 알던 이들이
다 와서 그의 집에서 그와 함께 음식을 먹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내리신 모든 재앙에 관하여 그를 위하여 슬퍼하며 위로하고
각각 케쉬타 하나씩과 금 고리 하나씩을 주었더라
욥이 죽을 줄 알고 그동안 마음에 상처들을 입은 형제 친척들이
멀리하고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창조주께 치유함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 모였다. 즐거운 파티를 연 것이다.
이렇게 파티를 연 것도 욥의 마음이 온화하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동안 욥이 얼마나 아팠는지, 얼마나 서러웠었는지,
얼마나 두려웠었는지를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렇게 혼나기도 했지만 창조주께서 깨닫게 해주시면서
그동안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처절하게 회개하고 알게 된
욥은 성격이 유해졌다. 가족이나 사람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도 갖게 됐다.
그런 마음으로 과거를 이야기를 하니 그동안 슬퍼하지도 않고
위로하지도 않았던 지인들이 이제는 같이 슬퍼하며 위로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재물들 중 하나씩 선물해줬다.
우리도 누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면 입원비에 보태고 맛있는
것이라도 사 먹으라고 봉투를 주는데 이런 마음인 것 같다.
빨리 쾌차하고 다시 부자가 되라는 마음으로.
(욥 42:12) 여호와께서 욥의 말년에 욥에게 처음보다 더
복을 주시니 그가 양 만 사천과 낙타 육천과 소 천 겨리와
암나귀 천을 두었고
징계 후에 욥은 그 전보다 갑절의 부자가 되었다.
얼마나 부자인 것인지 모르겠다.
현재돈으로 소 값만 대략 60억원이 됐다.
(욥 42:13) 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두었으며
욥이 징계 후에 전과 같이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나았다.
(욥 42:14) 그가 첫째 딸은 여미마라 이름 하였고
둘째 딸은 긋시아라 이름 하였고
셋째 딸은 게렌합북이라 이름 하였으니
이제는 욥의 딸들 이름이 기록이 됐다. 이름이 불리었다.
우리나라도 옛날에는 딸은 거의 이름이 없었다.
아무렇게나 부르는 것이 이름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여미마, 긋시아, 게렌합북 이란 이름으로 불리었다.
사랑을 담은 이름인 것이다.
(욥 42:15) 모든 땅에서 욥의 딸들처럼 아리따운 여자가
없었더라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그들의 오라비들처럼
기업을 주었더라
욥은 징계 후에 먼저처럼 10명의 자녀들을 낳았는데 이번에는
딸이 그 지역에서 가장 예뻤다고 한다. 자녀들을 사랑으로 키우면
성격이 밝고 명랑하고 잘 웃는다.
그렇게 큰 아이들은 모습도 아름답다.
먼저는 창조주께 제사지내기에 급급했던 욥이 이제는 자녀들과도
잘 지낸 것이다. 유산 상속도 아들이나 딸이나 같이 주었다.
(욥 42:16) 그 후에 욥이 백사십 년을 살며 아들과 손자 사 대를 보았고
욥은 그 징계가 끝 난 후에 140년을 살며 손자 4대를 보았다.
(욥 42:17) 욥이 늙어 나이가 차서 죽었더라
창조주께서 사람에게 주신 생명 년 수가 있는데 누구는 짧고
누구는 긴 것인지, 누구나 똑 같은 것인지, 누구는 잘 살아서
오래 살고, 누구는 잘 못 살아서 일찍 죽고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창조주께서는 너무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 말며 지나치게
우매한 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기한 전에 죽으려고 하느냐 하신다
(전도서 7:17).
욥은 기한이 차도록 산 것이다.
그래도 욥이 원래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창조주께서 누구를 높이실 때는 '의로운 자'를 선택하셔서 높은
자리에 앉히시는데, 욥이 그렇게 창조주께 선택 받아서 그 높은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그 높은 자리에 있는 자신이 어느 날, 일이 안되고,
질병에 시달리고, 환난이 닥친 것 같은 때는 자신을 돌아보라고
하신다.
아무리 창조주께서 선택하셔서 높은 자리에 세우셨어도
교만하면 땅에 곤두박질쳐 버리신다.
내 행실이 나빴는지, 내가 교만했는지, 쓸데없는 권력을 휘둘렀는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알았으면 가져가시는 것도 알고 조신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창조주께서 욥이 정녕 나빴다면 그냥 징계하시지도 않으시고
죽여 버리셨을텐데 그래도 징계를 내리시고 근신하도록 하시고
기다리셨다가 다시 살려주셨다는 것은 그래도 욥을 다시
살려주실 가치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창조주께서는 창조주의 징계를 업신여기지 말라고 하시는구나
그래도 너를 죽여버리지 않으시고 살려주시려고 하시는 것이니까.
내가 좀 높아지고, 내가 좀 갖게 되고, 내가 좀 알게 되면 주위에서
나를 칭찬해주고 따르고, 위해주고, 받들어주고, 손을 비비고 하게 된다.
그럴 때 나는 빨리 정신을 차려야 한다.
"아! 이러다가 나에게 재앙이 닥친다"는 것을.
내가 곧 교만해질 것이니까.
교만해지면 악행이라는 것이 달라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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