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양화의 정수 사군자*
매화는 추위를 이기고 가장먼져 피는 꽃으로 그 향기 또한 일품이니 선비들이 그를 좋아 했고 추운 겨울의 세 벗이라 하여,송(松)죽(竹) 매(梅)를 세한삼우로 불렀다. 난(蘭);여름-남,예(禮)의 뜻이 있다,
연약한 풀이지만 굳게 솟은 꽃대 에서 피는 꽃은 그향기가 천하 일품이다. 국(菊);추-서,의(義)의 뜻이있고 모든 식물이 시들고 낙엽이 지는마당에 홀로 피는 꽃,
서리를 맞아 가면서도 굳게 피는 그 절개를 높히 평가 한다. 죽(竹);동-북,지(智)를 상징한다.
사철 푸르고 곧은 형체가 선비의 성격 이라고 모두 좋아한다. 사군자는 정권의 혼돈기에 특히 발전하였다, 불사이군의 유교적 충절사상에 의미를 찾을 수 있고, 은둔생활을 하며 즐길수 있었던 문인들의 소일에도 큰 몫을 하였을 것이다. |
요조숙녀 같은 고요한 난초.
선비의 그윽한 품격, 난(蘭)
난은 이름도 많다,
유향, 향조, 왕자향, 도량향, 대백향, 지란등으로 불려지고 있다.
그윽한 산 골작에 홀로 향기를 뿜는 난은 고결한 선비가 명수돈행(明修敦行) 하는 것과 같아 이욕과 공명을 초개같이 여기는 선비의 자세로 비유되었다.
이렇듯 시인묵객들의 노래 속에서 총애를 받고 난은 성장했다 , 난을 치기 시작 한것은 명확치는 않으나 송나라의 정소남의 로근난은 유명하다, 나라가 망하여 심을 땅이 없어 뿌리를 노출상태로 그렸다는 이야기다.
암향부동의 전령사,매화
차가운 눈바람 속에서도 꿋꿋하게 피어나는 매화,
모든 식물이 동면에서 아직 깨어나지 않고 있을때 밝고맑은 향기를 뿜어내며 매화는 핀다.
우리는 흔히 한가지의 매화를 볼수있다, 화개 천하지춘 즉 꽃이 피었음을 보니 천하에 봄이 왔구나 했고 한해의 출발을 알리는 것이 매화다.
요즘에는 사시 사철꽃을 피우는 온상이 있어 꽃 나무들도 계절을 잊어가고 있지만 야생의 매화는 역시 멀지않아 봄을 알리는 첫 전령이다.
설한풍 눈발 을 헤치고 피어나는 매화 그 가지 위에도 사쁜이 눈이 얹혀있지만 매화는 눈을 털며 새 생명의 찬란한 빛을 천하에 비추는 것이다.
아름답고 고귀한 자태 문자로 표현하기 보다는 역시 그림이 적합했을지도 모른다,
사군자 중에서 매화는 대 나무 그림보다 늦다, 동양화의 소재로는 오대 부터이며 산수화에서 분리되는 것은 묵매의 독립된 발전을 의미한다,
천연적으로 아름다운 사계절을 지닌 우리나라는 세계의 어느나라 사람 보다도 계절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니 한해가 시작되는 첫달(1월)에 의미를 부여해 왔고 매화가 피는것을 보며 새해 소망을 빌며 만복의 은혜를 생각했을 것이다.
자연의 신비, 선바들이 지향하고 있는 궁극의 목표인 어진(仁) 마음에 비유 된 매화는 결국 지조있는 문인화가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고 그같은 심성을 표현하는 품격있는 그림으로 살아난 것이다.
매화는 백매,홍매,설중매,설죽매,월매등으로 부르며,
송죽매(松竹梅) 의 세가지를 합하여 세한삼우(歲寒參友)라 한다.
오상고절(傲霜孤節)의 청렴한 심성 국화.
은자의 정절, 국(菊)
국화가 사군자중의 한자리를 차지하여 절기있는 꽃으로 찬양받고 있지만
국화만을 소재로한 옛 그림은 찾기란 쉽지가 않다.
오히려 그림보다는 시로 더 많은 사랑을 받은것 같기도 하다. 꺾꽂이로도 땅에 뿌리 내리는 강인한 국화는 다른 꽃들이 만발하는 좋은 시절을 참으며 서리내리는 늦은 가을에 인내를 꽃 피운다 .
이같은 생태를 절개로 보아 온 옛 선비들은 국화를 오상고절(傲霜孤節)이 라며 사랑해 왔다,
현세에서 외면당하는 굳은 지조를 그렇게 비유하며 국화를 아꼈는지도 모른다.
조선조 중기이후 채국(彩菊)으로 등장한 우리국화는 고절한 선비들의 사랑을 받으며 묵화로 더 빛을 발한것 같다, 그도 그럴것이 국화의 생태와 절기를 사랑하는 선비들이니 그 빛갈을 탐 했을리 없고 그져 마 음 가는데로 쳐서 족자나 병풍에 절기를 담아 가까히 하려 했을것이니 시 쓰던 붓으로 그 정절을 옮겨 찬(讚)하고 홀로 즐겼을 것이다.
이같은 정경은 묵국을 평할때 매력과 절기를 으뜸으로 치는 것으로도 쉽게 떠 올려진다, 따라서 묵국은 화려함 보다 오히려 오만스런 자태를 더 높히 본다, 묵국에는 절개를 높혀 본 한국인의 정신이 담겨야 한다는 이야기다.
대쪽 같은 선비의 곧은 의 지 대나무.
저항 지조의 절개,죽(竹)
대나무를 사군자 중의 으뜸으로 치는 것은 청청불변(靑靑不變)한 기품있는 자태의 정취있는 선비들과 화가들이 사랑했기 때문이다, 늘 푸르고 곧고 강인한 줄기를 가진 대나무는 그래서 충신 열사나 열녀의 절개에 비유되기도 했다.
죽화의 기원은 중국의 삼국시대로 올려잡는 학자도 있다,
관우의 죽석각을 들어 시원을 올려보고 있는 것이다,
죽화에서는 용필, 위치, 자태, 기운을 중시 하고 있다. 또한 대나무의 생태가 들어나야 한다, 곧은 줄기, 아픔을 이겨 새 생명을 탄생시켜 가는 마디, 늘 푸른 잎새, 그런중에도 튀어 나오는 가지가 살아 있는듯 표현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자태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사실적인 습화의 단계도 중요하지만 그 색갈을 먹의 한 빛갈로 단지 농담으로 표현해야하는 묵죽화는 결국 사의화의 성격이 더욱 강하다고 본다,
대나무 그림을 대할때 기운을 중시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50년을 그린후에야 마음에드는 죽화를 쳤다는 이야기는 이 같은 묵죽화의 깊은 맛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화가의 집약된 멋,낙관( 落款)
제발(題跋),화제(畵題 ),낙관인(落款印)을 합하여 낙관이라 하는데 이외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쓴 시기,장소,이유,인용구 출처도 밝힌다.
서,화에 작가의 이름도 쓰지만 아호를 쓰며, 때로는 별호를 쓰기도 하는데 요즘엔 아호와 별호를 같이 쓰는 경우가 많다. 이는 작가의 개성일 뿐 규정은 없다.
별호는 옹(翁) 산인(山,散人) 도인(道人)노인(老人) 거사(居士) 퇴사(退士) 은사(隱士)일사(逸士) 포의(布 衣) 두타(頭陀) 외사(外史) 초부(樵夫) 초자(樵者) 어부(漁夫)등의 별호를 쓰는데 산인은 속세를 떠났다는 뜻이고 山人의 합자가 仙이니 신선이라 자칭하는 뜻이다.
散人은 어디에도 얽메이지 않은 자유롭게 사는 사람이란 뜻이며,두타는 승려를 말한다.
별호대신 당호를 쓰는경우도 있는데 신사임당이 호다, 서재 화실의 이름을 쓰기도 한다, 초당(草堂),재(齋),서옥(書屋),헌(軒),관 (館),정(亭),각(閣),누(樓),산방(山房),실(室)등이다.
낙관은 작가의 이름을 쓰고 인장을 찍는 것인데 양화의 싸인과 같은 것이나 화제 제발과 인장을 찍으므로서 싸인보다 더 의미가 깊은 동양 서화의 특징을 이룬다.
특히 인장은 전각(篆刻)예술 이라는 한 분야를 형성하고 있다.
인장은 도장 도서 라고 하고 서화에 쓰는 인장은 낙관인(落款印)이라 하며 성명인(姓名印)과 호인(號印),사구인(詞句印),수인(首印),유인(遊印),감장인(鑑藏印)등이 있다.
성명인은 음각, 호인은 양각으로 하는 것을 원칙으로한다
-------------------------------------------- ------------------------------------
낙관시 붙이는 월별 명칭 이외에도 월별 이름을 각자 즐 겨쓰는 별도의 이름들을 알고 있다가 사용하고 꼭 월별뿐 아니라 절기를 적는 경우도 있다.
먹은 뼈요,색은 살이다 남화에서는 엷은 먹물과 색이 혼합되도록 소위 수묵담채라는 기법이 쓰인다.
동양의 신비 수묵화,그 종류 먹과 물울 잘 조화 시켜 한폭의 그림으로 탄생시키는데 몇가지 용어와함께 표현방법을 정리한다.
따라서 작가의 의중이 깊히 베인 상징적인 표현이다.
즉 형상에 충실한 기법으로 객관성을 갖는다. 작업중에도 먹물이 화선지를타고 번지면서 형상의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다분히 주관적이다. 그러나 발묵은 형태를 주관적으로 표현하지만 몰골화는 형태를 없게하는 일종의 추상화에 가깝다고 보는것이 옳다. 화선지에 물을 뿌려놓고 그리는 기법에 잘 활용한다. 얼핏 보면 채색만 보이는경우도 있다.
|
한국화의 감상
두루미(학)의 기상
한국화는 산수화, 화조화, 인물화등 다양한 분류를 하는데 그림의 내용을 보면 자연과 맞지 않는 구성을 하고 있는것을 종종 볼것이다.
그림은 화가의 마음을 담아 그리는 것이 자연 그대로 그리는 것 보다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즉, 눈으로 보고 그리는 것이 아니고 마음으로 보고 그린다는 심화(心畵)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화조의 모란꽃은 부귀를 뜻하고 바위를 곁들여 그리면 장수까지 포함된다,
두루미 ,학(鶴)은 일품을 뜻하고 파도는 조(潮)라는 글자를 적용하여 조(朝)의 음과 같다하여 조정의 벼슬 에 나가면 일품까지 오르라는 뜻이 담긴것이다.
또한 학은 학문하는 선비들의 상징으로 장수와 인격을 표현한다. 그래서 인지 선비들이 입는 두루마기 형식의 옷도 학창의(鶴彰衣)라고 한다.
그리고 문관의 벼슬아치들의 흉배에 학이 수놓아 져 있음도 학문의 뜻이다.
학을 그리는 몇가지 형식이 있는데 바닷가에 외롭게 서 있는것은 이미 말했듯이 입신을 기원하는 것이고 학만을 그려 놓은 것은 천수도(千壽圖)라 하고 소나무와 같이 그리면 백령도(百齡圖)가 된다.
소나무에 학이 있는 경우에 화제(畵題)도 대개의 경우 학수송령(鶴壽松齡)이라 적는 이유가 장수하라는 뜻이 있기에 그렇다.
십장생도에 학이 들어가는 것도 장수의 새라는 증거다.
연하장에 소나무와 학을 그려놓으면 새해에는 건강하고 무병하라는 뜻이다, 소나무는 그림에서는 새해를 뜻함으로 나무만 그린 병풍에서도 멘 첫 장에 소나무가 나오는 것 또한 새해, 정월을 의미하여 첫번쩨로 등장한다.
백학도(百鶴圖)와 같이 산수화에 학을 넣어 그리거나 그냥 학만 그려도 의미는 같아서 장수의 복을 기원함이다.
흔히 백로를 학으로 착오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무위에 서식하는 것은 백로요, 학은 소나무나 여타 나무에는 살지않고 늪지대나 바닷가 갈대밭에 서식한다.
그럼에도 소나무와 합께 그리는 것은 어디까지나 심화(心畵)일뿐 자연풍경은 아니라는점을 알아야한다
민화는
우리 민화는 전래의 풍습을 지역 민가에서 재주있는 사람들의 솜씨로 전해진다.
지금에도 그때의 그림을 전문화가가 그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민화다.
민화는 보편적인 풍습을 그림으로 표현하여 지방이나 가문, 가정의 안녕과 행복을 추구하는 부적과 같은 용도로 사용되었고 장식이나 감상용으로는 미흡한 점도 있다.
그림을 감상할때는 화제를 가장 중시하는데 화제(畵題)에 그 그림의 전부를 요약해서 작가가 뜻을 남기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림에 나타나는 뜻을 동음이어(同音異語)로 해석하여 좋은 쪽으로 설정하여 보면 의미를 알수가 있다.
호랑이는 삼재(三災)를 쫓아내는 목적으로 많이 그렸고, 모란은 부귀를, 소나무와 대나무는 정절을 표현하기위하여 열녀와 선비의 방에 많이 걸었다.
그러나 원래는 호랑이가 아니라 표범을 그렸고 소나무에 까치가 앉아 있는것을 같이 그렸는데 호랑이로 변질되었다는 이론도 있다.
표범과 소나무, 까치 를 해석하자면,
소나무(松)는 신년(新年), 표범은 보(報), 까치는 희(喜)를 상징하는데 신년희보 (新年喜報),새해를 맞아 기쁜 소식을 기대한다는 뜻으로 읽을수 있다.
나무도 계절과 시기가 있는데 소나무는 정월을 뜻하기 때문이다.
어해도(魚蟹圖)는 무슨 의미로 그리는가
게(蟹) 그림은 장원 급제의 소원
게는 우리 농촌의 논두렁 밑에서 흔히 보았던 참게를 말한다,
물론 게를 모두 그렇다는것은 아니고 그림에 따라 다르지만 보편적인 게 그림은 참게를 많이 다루었고 그 의미는 장원 급제를 축원하기 위함이였다.
두마리의 게는 한쌍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란다, 두번의 장원을 바란다는 뜻이라는데 요즘 에 와서는 양과, 즉 행정 사법고시에 모두 합격하라는 뜻이 담긴 것이라고 보면 좋겠다.
외무고시까지 바란다면 세 마리를 그리면 좋겠지, 그러나 꼭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갈대를 같이 그린다든가, 꽃을 그려서 보충하는 것은 그림의 조화를 구성하는데도 좋고 미적 감각을 높히는 의미도 있다.
꼭 주술적인 의미로만 그린다면 그림의 본래 예술성이나 미의 개념이 손실되기 때문이다 .
국화꽃을 함께 하였다면 지조와 급제를 뜻 함이니 굳은 심기를 굽히지 말고 불의에 타협하지 말고 오직 한길로 나가 뜻을 성취하라는 것이다.
다음에 언급을 하겠지만 잉어는, 특히 뛰어오르는 잉어는 등용을 뜻하는것으로 출세를 하라는 의미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 면 좋겠다.
죽(竹)과 난(蘭)은 자손번성
사군자 중의 대나무는 여성에게는 절개와 선비의 지조를 뜻한다는것은 일반화 된것이고,죽순은 자손 번성과 효(孝)의 의미가 있다는 점도 알아야 한다.
효의 개념은 죽순이 성장한다는 것은 자손이 번성한다는 것이니 부모에게 손을 안겨 준다는 것이야 말로 효중의 효라고 옛 선조들은 생각히였다.
난(蘭) 또한 많은 잎이 생기고 오래가는 식물이다.
잎이 여러개 뻗어나는데 그중의 한 두잎을 길게 그리므로써 많은 형제들 중에 뛰어난 사람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래서 입신양명을 기원하며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을 바라는 것이다.
선비를 격려 하는데는 가는 청죽을 주로 그리는데 비록 가늘고 허약하고 속은 비었다 하나 그 지조는 굳게 지킨다는 것이다
휘어질 망정 부러지지않는 선비의 지조를 의미하고 여성의 절개를 상징한다.
또한 대나무는 사철 푸르게 그 색을 지니고 있으니 절대로 변절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왕죽(王竹)은 신으로 섬기는 풍습도 있었다.
그래서 굵고 큰 대나무는 귀신을 부르는 의미로 주로 무속인들의 집에 잎을 그대로 둔체 세워 둠으로써 신의 왕래를 편하게 하였다.
그래서 왕죽은 신으로 하여금 어떤 음덕을 바라는 소원에서 응용하였다.
돌(石)과 함께 그리면 장수(長壽)의 뜻이 더 있으니 어른들께 장수를 자손들의 번창과 입신 출세를 기원 가 화태평을 바라는 그림이된다.
갈대밭의 기러기.
노후(老後)의 평안,노안도(蘆雁圖)
기러기와 갈대 를 그리는 서정적인 가을풍경을 우리는 자주 보게 된다.
꺾어지기도 하고 쓸어지고 시들어 가는 갈대밭에 기러기가 오붓하게 앉아있고 그 기러기를 향하여 날아드는 그림이야 말로 늦가을 강변이나 해변의 정서를 잘 표현하여 주며 우리의 심성을 안정시켜 주기도 한다.
누가 봐도 편안한 감을 주는 그림이다.
그래서 그 노안은 발음이 노안(老安)과 같다하여 노후(老後)에 평안(平安 )을 의미한다.
만약 기러기가 갈대를 물고 가는 그림이 있다면 그것은 차후의 양식을 대비하는 것으로 처세의 신중성과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의미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
고양이 그림은 축하의 뜻
영모화(羚毛畵) 중에서 고양이 그림은 노인의 장수와 특히 고희(古稀)인 70세의 노인의 생신 축하 그림으로 많이 그렸다.
다른 새와 더불어 그리면 환희를 의미하는것이 많아서 항상 기쁜 마음으로 건강하게 살면서 노후를 안락하게 지내라는 의미가 많다.
주로 참새나 까치가 모두 등장 하는데, 같이 있는 경우나 따로따로 있는 경우 다 기쁨과 행복을 추구하는 그림이다.
고양이를 나비와 같이 그리면 더 오래 살아서 80세를 넘기라는 뜻이된다.
그리고 국화옆에 있는 고양이는 역시 장수와 평안 을 의미한다.
국화는 은자의 꽃으로 오상고절(傲霜孤節)의 찬바람 속에 늦도록 홀로피는 꽃이니 언제까지라도 삭풍에 구애 없이 건강하게 잘 살아가시라는 의미로 고양이와 국화를 그리기도 한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책걸이는 관직을 소망(所望)
민화중에 많이 등장 하는 것이 책걸이다.
서가에 책을 가지런히 정돈하여 저장해 놓은 그림이다.
현대 서적은 서가에 세워서 꽂아두는 것이 보통인 반면에 옛 서적은 한지에 붓글씨로 되어있는 것이 어서 세워 두는것은 적절치 못하여 그대로 쌓아두는 형식을 취한다.
그래서 서가에 가지런 하게 쌓아둔 서적은 안정 감과 지식의 넉넉함을 느끼게 한다.
이렇듯 서적이 정돈되어있는 서가, 즉 책걸이를 그림으로 그려 주로 사랑방에 병풍으로 만들어 비치하는데 이는 판서에 이르는 벼슬에 오르라 는 염원이 담겨있다.
그리고 새 중에 부엉이는 노인의 장수를 의미하고 오리는 장원급제를 기원하는 뜻이잇다.
도자기에 그리는 그림이나 병풍화나 액자 할것 없이 그 의미는 한결같다.
어해도에서 쏘가리 그림도 장원급제를 염원하는 그림이나
만약 쏘가리를 두마리 그렸다면,
즉 한자리에 두마리의 쏘가리가 있는 그림은 왕정의 제국에서 역모에 해당하는 그림이란다.
우리의 그림,특히 민화에서는 독음을 중시하여 의사를 표현하엿다,
전주에서 명산물로 생산되는 합죽선에 등장하는 박쥐 그림은 복을 의미한다,
박쥐의 복(박쥐복)자가 복(福)자와 음이 같다하여 복을 주는 그림으로 그린다.
기명 절지도(화)는
그릇이 주변에 있고 꽃이나 과일 나무 가지를 뚝 꺾어다 소품으로 이용한 그림이다.
이 그림들을 살펴보면 똑같은 계절에 나오는것 뿐 아니라 생성의 계절이 다른것 끼리도 함께 그려져 있는 것을 볼수 있다.
소품을 대강 소개하여 보면,
구리 그릇은 평안(平安), 도자기는 굳은 의지와 청렴, 풀줄기의 바구니는 안락과 자연의 친함, 무나 배추 고추등은 무병장수,다남(多男)을 기원, 백합꽃(뿌리)는 백(百), 모란은 부귀, 불로초는 여의(如意), 콩(땅콩등)은 장수, 귤은 대길(大吉), 수석은 수(壽), 국화꽃은 유유자적(悠悠自適), 밤이나 대추는 자손을 원하는뜻, 서책과 문방사우는 학문과 입신양명(立身揚名), 복숭아는 천도(天挑)라 하여 동방삭의 장수를 의미한다. 여러개의 복숭아가 달린 가지를 그려 놓으면 다수(多壽)를 뜻한다.
이래서 모든 기명절지도는 장수와 부귀를 뜻하고 자손의 번영과 영광을 기원하는 뜻이 많이 담겨있다.
어느것과 함께 그리든지 상관없이 그 속에는 부귀 영화와 입신양명,그리고 자손 번창과 자자손손 영광을 축원하는 뜻이 가득하다는 점을 알아야한다.
이렇듯 우리 한국화는 단순한 그림으로써의 역할보다 그 안에 담긴 의미로서 더 역할을 하게 된다.
입신양명의 출세,잉어도
폭포 아래서 용트림을 하 며 힘차게 솟구치는 잉어의 그림을 자주대하게 된다.
이런 그림은 용기를 잃지말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면서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라는 뜻이며,
그렇게 하겠다는 의지의 표상이다.
잉어는 꼭 한마리만을 그리라는 것도 없고 두마리든 세 마리든 화가의 의도데로 그려서 그 뜻을 전하게 된다.
한마리는 홀로서서 독립을 의미하며 굳게 전진하고 성공을 이루라는 뜻이며,두마리는 소과(小科)와 대과(大科)를 다 통과 하라는 뜻이다.
또 세마리를 그리는 뜻은 소시적 생활을 극복하고 더 큰 사람이되어 성공에 이르라는 성장을 의미한다.
피라미나 부평초를 겻들여 구성하는데도 그 의미는 있다.
잡다한 난관을 극복하고 학업 과정을 주변에 나열하여 그 의미를 부여했다.
타향살이의 설움과 대소의 난관을 이기고 학업을 훌륭하게 마치고 대과에 이르라는 과정을 담은것이다.
대과에는 문무(文武)의 양과가 있는데 문과는 지방에서 보는 초시(初試)와 복시(覆 試) 회시(會試)가 있고 대궐에서 보는 전시(殿試)가 있다.
그래서 잉어의 그림은 종합적으로 가난과,객지의 고생을 극복하고 학문에 힘써 소과와 대과를 두루 합격하여 등용되기를 기원하는 그림이라 보면 된다.
근대 6대화가
청전 이상범(靑田 李象範)
1897년 음력 9월21일 충남공주군 정안면 석송리 생.
17세에 경성서화 미술회 강습 소 화과에 입학.
21세에 심전선생님의 배려로 심산과 함께 경묵원에서 기거.당시는 선농(仙農) 이라함.
30세에 조선일보사 입사,삽화시작.
31세에 동아일보로 옮김,
53세에 홍익대학 전통회화 교수(10년근속)
65세 대한민국 문화훈장 대통령장 수상.
66세에 3,1 문화상 수상 .
1972년(75새) 타계.
청전은 동아일보 기자로 재직당시 일제의 설움 속에 손기정 마 라톤선수의 베르린 올림픽 우승당시 가슴에 그려진 일장기를 제거하고 태극기를 그려 신문에 게재 한 사건,즉 일장기 말소 사선으로 유명하다.
독특한 기법을 창안하여 한국적 산수와 분위기를 간결하게 그려내는 청전은 가장 적은 필치로 가장 많은 내용을 표현하여 보는이를 감동케 하는 산 수화를 많이 남겼다.
이당 김은호, (以堂 金殷鎬)
1892년6월24일,경기도 부천군 문학면 문학리,지금 인천시 관교동에서 출생.
1906년 (15세)관립 일어학교 입학
1908년(17세) 사립 인흥학교에서 측량을 공부
1912년(21세) 경 성서화미술원 회화과 입학
22세에 안중식(心田 安中植) 선생으로 부터 이당의 호를 받음
23세 초상화 공부
25세 창덕궁에 들어가 이왕의 반신상을 제작 함.(어용화가 칭호를 받음)
27세 김규진 오세창 이도영등과 발기한 조선 서화협회 정회원.
46세 조선 미술원을 건립, 기념전
60세 6,25 한국전쟁으로 부산 영도에서 피난생활
74세 3,1문화상 예술부문 수상.
77세 대한민국 예술원상 수상
1978 별세.
*현대 한국화의 화단에 가장 큰 업적을 남긴 분이다.
아직도 활동중인 대가들 중에 이당의 제자가 많으며 그 제자들로 구성된 후소회 라는 화가들의 모임이 많은 일을 하고 있으며 후학의 양성에도 큰 공을 세우고 있다.
다양한 장 르에 탁월한 재능이 있으며 어전에서 황제의 초상화를 그릴정도의 인물화에 일인자였다.
친일파 로 매도되어 명성에 다소 흠이 있기는 하지만 그의 예술성만은 누구도 탓하지 못하리라.
의재 허백련(毅齋 許百鍊)
1891년 음력 11월2일 전남 진도군 진도면 쌍정리 생.
무정 정만조가 의재라는 호를,오래살라고 백년으로 했다함.
20세에 상 경 서화미술원에 출입 소림선생을 만남.
23세에 귀향,운림산방에 출입 미산(米山 許鍊)께 그림 공부.
24세에 일본 입명관대학 법학과에 입학.
25세에 대학중퇴후 인촌 고하와 교우,명치 대 법학과에 청강생.
26세 명치대 중퇴,일본 선생께 남화수업.
27세 부친위독으로 귀국.
31세 상경 인촌 김성수 선생댁에 기거 작품활동.
33세에 금강산 유람.
37세에 이당과 북경여행.
47세에 광주 금동으로 이사.
48세에 연진회관 건립 추진 전람회.
56세에 농 업기술학교 설립(1회 21명 입학)60세에 해남에서 회갑 후 의도인(毅道人)이라 함.
71세에 대한 민국 문화훈장 문화보장 수상.
75세에 대한민국 예술원상 미술부문 수상.
83세에 전남대학 교 명예 철학박사 학위 받음.
1977년(86세) 타계.
*우리나라의 현대 미술에서 남종화 의 위치를 확고하게 뿌리 내린 화가로써 현대 산수화 작가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거의 의재선생의 제자들이다.
남농과는 친척으로써 남종화의 양대 산맥을 형성하여 각축을 다투며 한 시대를 석 권 하였다.
광주에서는 연진회라 하는 미술인의 단체가 있는데 이들이 의재 선생의 제자들이며 그림의 맥을 지켜가는 후학들이다.
소정 변관식(小亭 卞寬植)
1899년 음력 3월 19일 황해도 옹진 생.
16세에 관립 조선총독부 공업전습소 도기과에 입학.
19세 서화미술회에 연구원으로 들 어감.
25세에 조부의 정자와 외조부의 소림에서 소정을 지었다.
29세에 동경미술학교 청강 생으로 3년수학.
39세에 금강산에 입산 랑인생활.
45세에 전주에 정착.
52세에 6,25가 발발 처가인 진주로이동.
66세(1964년) 대한민국 문화훈장 국민장 수여.
69세에 수도여사 대에 강사출강.
70세에 문화예술원상 수상.
1976년(78세) 타계.
*미술의 격식이나 관념에서 탈피하여 먹과 구도를 자유자재로 활용하고 금강산을 많이 그렸던 화가.
인물의 묘사 에서 걸음걸이를 어긋나게 보조를 맞추어 그림으로써 역동감을 살렸다는 평이 있다.
즉,왼발이 나갈때 오른손이 나가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왼손이 나가도록 그림속의 인물 묘사를 살피는 재미가 감상의 즐거움을 준다
심향 박승무(深香 朴勝武)
1893년 음력 8월26일 서울 효자동 생.
16세에 소림 선생께 그림공부.
20세에 정식으로 서화미술회에 입학.
24세에 상해 로 유학 3년간 공부.
30세에 만주로 가 간도지방에서 영어를 가르침.
32세에 서울로 돌아 옴.
1980년(87세) 타계.
*많은 저항운동과 미술계의 부조리 척결을 위해 힘썼으며 공 모전에 거부하며 뚜렸한 개성을 보였다.
노년에는 무척 외롭게 지내다가 진도로 내려가 남농과 기거를 같이 하며 목포등으로 남농과 같이 생활을 하였다.
심산 노수현(沁山 盧壽鉉)
1899년 음력 3월16일 황해도 곡산 생.
16세에 심전과 소림( 小琳 趙錫晋)선생님 으로부터 그림공부.
20세에 청전 이상범과 함께 심전의 경묵당에 기거 사 사,이때 심산이라는 호를받음.
23세에 동아일보에 입사,삽화와 사단만화를 시작 원조가됨.
25세에 동아일보는 청전에게 물려주고 조선일보로 옮김.
50세(1948년)에 서울대학교 예술 학부 미술과 강사.
64세(1962년) 대한민국 문화훈장 대통령장수상.
76세(1974년) 문화훈장 수여.
1978년(80세)로 타계.
*심산은 점을 찍어 묘사하는 기법이 뛰어나고 말년에 는 산수화를 추상적 개념으로 신비스러운 형상을 구상하는 초 현실적 묘법에 몰두하였다.예를 들어 제주도 용두암을 진짜 용처럼 형상화하는 작업 등을 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