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4주간 금요일 7월 10일 마태10,16-23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아버지의 영이시다."(마태10,20)
+찬미예수님
사람들은 말을 잘하기를 원합니다. 말을 잘하기 원한다면 침묵 속에서 들려오는 하느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위대한 침묵"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영화 줄거리는 프랑스 알프스 정상에 있는 그랑드샤르트뢰즈 수도원에 사는 카르투시오 수사들의 일상생활을 담고 있습니다. 작년 성탄 때 텔레비젼에서 상주에 있는 "카루투시오 봉쇄수도원을 상영했습니다. 철저한 침묵, 가난, 단순한 봉헌을 사는 수사님들의 삶을 보여줍니다. 수사님들의 삶은 철저한 침묵 속에 하느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영화에 맹인 수사님의 말씀이 나옵니다." 사람이 하느님께 더 가까이 나아갈수록 더 행복한 사람이 되지. 죽음을 두려워해서는 안 돼. 우리에게 일어나는 어떤 일에도 걱정할 이유가 전혀 없네. 나를 장님으로 만들어주신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들곤 하네. 내 영혼에 이롭다고 여기셔서 배려하신 것이라고 믿어. 세상이 주님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네."
말을 하기 전에 먼저 들어야 합니다. 듣지 않고 하는 말은 빈약합니다. 말은 하느님의 선물이기 때문에 하느님의 뜻이 담겨있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뜻은 생명입니다. 말은 그래서 살리는 말, 생명이 담긴 말, 힘이 되는 말이 되어야 합니다.
이기주씨의 글에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딱 세 부류의 말을 구사합니다. 평상심에서 하는 말은 언어입니다. 악한 마음으로 하는 말은 비수 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하는 말은 소음입니다."여러분은 어떤 말을 합니까? 비수나 소음은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마태10,19)
옛날 박해 시대, 일자 무식꾼의 할머니가 관헌에 붙잡혀와 심문을 받을 때 관장이 말했습니다. "일자 무식꾼의 여인이 무슨 지식이 있어서 서양 사교를 믿는가? 배교하라." 그러자 할머니가 말하길 "사또의 머리가 얼마나 크기에 온 세상 지식을 다 담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할머니의 대답은 성령의 도움이라고 생각합니다. 할머니의 말도 먼저 하느님의 음성을 들었기에 말할 수 있었습니다.
말을 잘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살리는 말, 생명의 말은 적어지고 자신을 드러내는 말만 많습니다.
말하기 전에 하느님의 음성을 먼저 듣고자 내 귀를 열어야 합니다. 아멘
무태 성당 이민락 라우렌시오 신부
첫댓글 아멘!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