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충식의
' 클래식은 영화를 타고 '
< 다가오는 것들 - L' Avnier ,
- Things to come >
여기,
언제나 내 곁에 머물러 주리라 믿었던,
그 모든 것들이 나를 떠나갈 때,
새롭게 '다가오는 것들' 을 마주한 '한 여성' 의
서사가 있습니다.
그 주인공은 파리의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나탈리(이자벨 위페르 분)...
그녀의 마음에 어린 파동을 천천히, 그리고
깊게 담아낸 감독 미아 한센-뢰베의 작품
< 다가오는 것들 > 은 제목부터가 자못
예지적이죠.
프랑스 판의 원 제목도 ‘미래(L’Avenir)’
입니다. 누구에게나 닥쳐올 일이란 뜻일
테지요.
영화는 프롤로그에서 나탈리가 가족과 함께
비바람이 강하게 몰아치는 남편의 고향
프랑스 북부 브르타뉴 해변을 찾아가는
오프닝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가족으로부터 떨어져 홀로 선실에 앉아
‘남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은 가능한가’ 를
주제로 글을 쓰고 있는 나탈리.
그리고 '파도와 바람소리를 듣는 걸 좋아했던
그의 마지막 소망을 존중해 주시길' 의 유언이
새겨있는 영원한 방랑 시인 샤토브리앙의
묘지 앞에서,
혼자 우두커니 서 있는 남편 하인츠 (앙드레
마르콩 분)의 모습을 대조적인 실루엣처럼
교차시키고 있지요.
나탈리가 마주할 균열과 상실의 조짐을
에둘러 암유하고 있는 시퀀스로
다가옵니다만...
그렇게 몇년 후, 어느덧 오십을 넘어선
나탈리는 여전히 한 남자의 부인이자
두 아이의 엄마 , 그리고 홀어머니의 딸로서
행복한 날들을 보내고 있지요.
열정적인 교사인 그녀는 '사고하는 즐거움' 을
가르치는 것을 좋아합니다.
시간을 쪼개 자신의 가족, 가르쳤던 제자
학생들, 또 집착이 심한 어머니를 만나며
분주한 날들을 보내지요.
그러던 어느 날... 그 역시 철학교사로서
'칸트의 맑고 정직한 윤리' 를 강조하던
남편은,
다른 여자가 생겼다며 나탈리에게 불쑥
결별을 고합니다.
그녀의 삶에 갑작스런 위기가 찾아온
게지요.
"왜 그걸 말해?", "그냥 묻어둘 순 없었어?"
하릴없이 따져보지만...
나름대로 균형잡힌 삶을 이어가던 그녀의
일상에 심상찮은 균열이 생긴 셈으로,
나탈리는 격렬하게 요동치는 생활의 중심을
다시금 되잡으려 애씁니다.
감독은 그토록 지독한 갈라짐 앞에서
나탈리에게 격앙된 감정을 부여하지
않지요.
청천벽력 같은 남편의 고백 장면에서조차
영화는 감정의 파국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습니다.
당혹감 속에서 끊긴 부부 사이의 대화 직후,
교정의 나무 그늘 아래 혼곤스레 낮잠에
빠졌던 나탈리가,
때마침 불어온 바람에 서류들이 흩날리자,
이를 황망하게 주우러 다니는 장면으로
무연스레 대신할 뿐입니다.
영화는 이미 많은 것을 경험해서 인생에
더 이상 새로울 것은 없다고 생각하던
철학교사 나탈리가,
전혀 예상치 못한 변화와 맞딱드리게 되는
이야기를 그렇게 열어가고 있지요.
학생들은 교육이란 교실이 아니라 사상의
실천을 위한 시위 현장에서 이뤄진다며
가시 돋친 말을 던지고 나탈리의 권위에
맞섭니다.
출판사 또한 젊은 독자의 구미에 맞추려
철학 교재의 개정판을 내면서 오래도록
저자로 참여해온 그녀를 배제하죠.
철학을 가르치긴 하지만 그저 평온한 삶을
누리는 듯 했던 나탈리는,
스스로가 불쌍해져 신세 한탄의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또 교사와 저자로서의 특권을
상실해가는 것에 당혹스러워 하지요.
결정적으로 남편이 불륜을 고백한데다
엄마마저 세상을 떠나면서, 혼돈스런 위기
앞에 내던져진 나탈리... 그녀의 삶은
송두리째 흔들립니다.
중년 여성이 자신의 삶에 속절없이 닥쳐오는
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아니 '받아들여야 하는지' 에 대해 섬세하고도
담백한 시선으로 풀어내고 있는 작품
< 다가오는 것들 >.
영화 속 나탈리는 일방적으로 헤어짐을
통보한 남편 외에는 누구나 겪을 수 밖에
없는 상실,
즉, 부모의 죽음, 자녀의 독립, 직업에서의
세대 교체 등을 하나씩 경험해 갑니다.
이렇듯 감독은 < 다가오는 것들 > 을 통해
내 삶의 근본을 지탱하고 있던 것들이
하나 둘 떠나가면서 새롭게 찾아오는 것들에
대해 세심하게 짚어가지요.
그리고 '변화된 삶과 그 행복' 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건넵니다.
모델이었던 나탈리의 어머니(에디스 스콥
분)는 자신의 젊은 시절을 잊지 못한 채
현재를 받아들이지 못하지요.
어렸을 때 부모님의 사랑을 받지 못했던데다
세 번씩이나 이혼했던 탓의 애정 결핍으로
보여집니다만...
심한 불안증 때문에 수시로 나탈리를 찾는
엄마는 거듭 자살을 시도하다 급기야
요양원에 들어가게 됩니다.
나탈리는 당연히 그런 엄마를 귀찮아하며
어쩔 수 없는 짐처럼 여겨왔죠.
하지만 철학교사가 된 딸을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겼던 엄마가 막상 세상을
뜨자,
나탈리는 아이러니하게도 엄마와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68세대' 로서 급진적 운동에 참여한 적
있는 나탈리는,
전원에 파묻혀 대안적 사회 공동체를
고민하는 제자 파비앙(로망 쿨랭카 분)의
모임에도 잠시 머무르기도 하지요.
나탈리는 공동체 캠프로 가는 차에서
파비앙에게 털어놓습니다.
"이런 생각을 해. 애들은 독립했고, 남편도
엄마도 떠났지.
나는 자유를 되찾은 거야. 한 번도 겪지
못했던 온전한 자유... 놀라운 일이야.
이건 낙원이잖아!"
하지만 젊은이들 사이에서 자신의
나이 듦과 그 유리됨을 속절없이 확인하고
되돌아올 뿐입니다.
선생님 덕분에 대학에 갈 수 있었다고
고마워했던... 자식처럼 아끼는 제자
파비앙마저,
'사적인 영역에서만의 생각과 행동의 일치,
그 위선적 처신' 에 대해 나탈리를 질타하며
그녀의 마음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지요.
하지만 그녀 역시, 영화 초반 퇴직 문제로
시위하던 학생들을 이해하지 못하던
것처럼,
세상을 바꾸자는 젊은이들에게 "난 됐어.
이미 해봤거든!" 이라고 무심하게 답할
뿐입니다.
파비앙과의 '철학적인 동시에 물리적인
결별' 후 눈으로 덮인 길을 나탈리가
혼자 걸을 때,
도노반의 영적인 노래 '깊은 평화(Deep
Peace)’가 마치 레퀴엠(진혼곡)처럼
연주되죠.
그렇게... 영화는 혁명을 원하는 젊은 세대와
균형을 지향하는 중장년층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일정 거리를 둔 채 관조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대신, 좀더 따스하고 휴머니즘적인 눈길로
다가올 세계를 불안스레나마 수용하는
쪽으로 서서히 이동하는, 나탈리의 미묘한
심리변화에 그 초점을 맞추고 있지요.
그녀는 엄마가 키우던 고양이 '판도라' 를
처음엔 귀찮아하다가, 결국엔 외로움에
시달리면서 의지하게 됩니다.
나탈리가 바라보는 중년의 자신은 엄마가
기르던, 늙고 뚱뚱해서 아무도 맡으려 하지
않는 고양이 판도라같은 처지로 자리한 채,
자신에게 다가온 상실, 그에 따른 변화를
망연(茫然)스레 감내하죠.
원치는 않았지만 변화가 꼭 재앙인 것만은
아닐 터...
그녀는 남편과 함께 있는 이십여 년동안
쭉 같이 들었던 브람스와 슈만이 ‘지겨웠다’ 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아울러. 젊은 제자의 차에서 나오는 우디
거트리의 포크 송 'My daddy flies a ship
in the sky' 를 흔연스레 좋다고도 느낄 수
있게 되죠.
그 변화한 생활에서 자유와 해방감을
얻게되는 나탈리...
그녀의 쓰라린 상처를 덮지 않고 그저
지켜보는 감독의 의도된 연출은 이 변모의
결들을 뭉뚱그리지 않고 세심한 손길로
포착해냅니다.
자신의 직업이 철학교사(?)라 그런 걸까요...
나탈리는 어머니처럼 늙음에 대해 한탄만
해대거나 가족에게만 기대지 않지요.
또한 지나간 세월 앞에서 운명을 탓하며
마냥 욕을 퍼붓지만도 않습니다.
대신, 그녀는 새로운 인생으로부터 다가오는
것들을 다름아닌 '철학' 으로 견뎌내죠.
이른바 지적 만족감으로 승화시키고 있는
셈으로,
나탈리는 철학자의 글귀 한 줄 한 줄로
새롭게 펼쳐지는 하루하루를 의연하게
품어냅니다.
나탈리는 혼자말처럼 되뇌죠.
"중요한 소식이 있어. 남편하고 이혼할 거야.
25 년을 함께 했는데 새 애인을 만났대.
실은 나도 각오하고 있었어. 괜찮아,
잘 적응하고 있어. 지적으로 충만하게
살잖아. 그거면 족히 행복해..."
극 중 루소의 정부론과 사회계약론 속의
민주주의, 쥘리의 가식적 행복과 관능적
쾌락, 진리의 존재와 확립 기준 등의
개념이 펼쳐지며,
쇼펜하우어의 저서 '의지와 표상으로부터의
세계' 와 레비나스의 책이 의미심장하게
언급되고,
파스칼의 '팡세' 또한 길게 인용되기도
하는데요.
드라마 속 이런 대목들은 나탈리가 철학
교사라는 점에서 그녀의 일상과 정체성을
은연중 드러내는 효과적인 미장센이
되어줍니다.
영원히 사랑할 줄 알았던 남편과도 일순간에
남이 되어버리고,
딸 역시 아기를 낳고 나서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다 자기 아기를 달라고 말하는
장면은...
같은 핏줄의 가족일지라도 각자 자신이
짊어져야 할 몫과 나가야 할 길이 따로
주어진다는 걸 공감케 하지요.
설사 그 '몫' 과 '길' 이 말도 못하게 무겁고
고통스럽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나탈리의 삶에 결정적 충격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보였던 사랑의 상실은 또 다른
로맨스의 도래로 간단히 대체되지 않죠.
"애인을 찾아보시라" 는 파비앙의
충고(?)어린 격려로 나탈리가 보러간
영화는,
다름아닌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연출에
줄리엣 비노쉬가 나오는 < 사랑을 카피하다
- Certified Copy > 이지요.
사랑을 기억하고 싶은 여자와 사랑에
무관심한 남자의 그 마법같은
러브 스토리를,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허무는 지적이고도
은유적인 유희로 직조해낸 그 작품
말입니다.
중년의 참된 사랑의 약속, 그 서사에 대한
소통과 그에 따른 소동을 다룬 이 영화를
보러갔다는 점에서,
언젠가 다가올 사랑을 향한 그녀의 은밀한
욕망을 시사하고 있기도 합니다만...
막상 극장에서 남자가 적극적으로 대시하자
나탈리는 거절하고 말지요.
그녀는 자신의 삶 본연의 문제를 새로운
'사랑 놀이' 만으론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짐작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장례를 치른 후 돌아오는 버스안에서 엄마를
떠올리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나탈리는,
우연찮게 남편과 새 여자의 데이트 장면을
목격하고 "맙소사" 라며 어처구니없는
실소를 짓지요.
이렇듯, 위기 앞에서 갈팡질팡했던 평범한
여성 나탈리는 이젠 외부로부터 불어닥친
거대한 충격에 대항해 자신의 내부에서
길어 올린 힘으로 맞서며 그 위엄을
드러냅니다.
그녀의 '힘' 은 하인츠나 파비앙 같은
남자와의 관계나 그 로맨스가 아니라,
바로 그녀가 읽어왔고 가르쳐왔던 책,
그리고 다름아닌 ‘다가오는 것들’ 을
두려움 없이 직시하는 삶의 상상력에서
오는 게지요.
그렇게... 일상으로 돌아온 나탈리는
학생들에게 알랭의 '행복론' 을 얘기해
줍니다.
"우리는 행복을 기대한다. 만일 행복이
안 온다면 희망은 지속되며 이 상태는
자체로서 충족된다.
그 근심에서 나온 일종의 쾌락은 현실을
보완하고 더 낫게 만들기도 한다.
원하는 게 없는 자에게 '화'(禍)있으라!
그는 가진 것을 모두 잃는다.
원하는 것을 얻고 나면 덜 기쁜 법.
행복하기 전까지만 행복할 뿐..."
이토록 책과 인간의 관계를 섬세하게
다뤄낸 작품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영화는 나탈리가 언제 어디서나 틈틈히
책을 읽는 모습을 비추며 순간순간을
책으로 달래는 그녀의 고독하고도 힘겨운
분투를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지적 토론과 아카데미에 대한 묘사가
생생하게 살아있어 지적이고 시적이면서도
감각적인 위트로 넘쳐나는 영화
< 다가오는 것들 >.
화면 속 나탈리가 '역겨운 스탈린주의자'
라고 독설을 내뱉거나,
개정한 철학 교과서 표지가 'M&M 초콜릿'
같다고 비꼬는 장면들,
그리고 죽은 어머니가 남긴 검은 고양이의
알레고리 등 관련된 유머적 상황 또한
자못 해학적으로 다가옵니다.
장례식장에서 어머니를 추도하기 위해
그녀가 블레즈 파스칼의 < 팡세 > 속 구절을
읽는 시퀀스는,
철학교사로서 삶과 죽음에 대처하는 방식을
오롯이 보여주지요.
"사방을 둘러봐도 보이는 건 암흑 뿐이다.
자연은 내게 회의와 불안의 씨만 제공한다.
이것이 내가 보고 괴로워하는 것이다.
내가 놓여있는 상태에서 내가 뭔지, 뭘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나는, 나의 신분도 의무도
모른다.
내 마음은 진정한 선을... 그것을 따르기를
온전히 바란다.
이편, 저편, 어느 편에 서야 할지
결정해줬으면...
영원을 얻기 위해서라면 어떤 것도
비싸지 않다."
지난 40여년 간 최고의 프랑스 배우로
마치 영화 같은 삶을 불살랐던 이자벨
위페르...
바로 그녀만의 부드럽지만 강인하고 때론
무심하지만 감성이 풍부한 연기는,
도시에서 교외로, 계절에서 또 다른
계절로의 변화 속 빛의 흐름을 정밀하게
잡아낸 영상미와 오묘하게 어우러지며,
물흐르듯 풀어지는 영화의 완벽한
자연스러움을 탄생케해주죠.
절제된 대사 속에 흐린 하늘, 나뭇잎들의
속삭임, 비오는 소리 등으로 감정을
보완하는 식으로,
화면은 마치 한 폭의 풍경화처럼 파스텔
톤으로 켜켜이 쌓인 그 은은한 속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곱씹을수록 다르게 느껴지며 철학적으로,
또한 은유적으로 다가오는 대사들과 함께,
영화는 "우리 각자 앞에 놓인 삶, 현재를
둘러싼 것들에 대해 사유해 보라" 라고
넌지시 재촉하고 있지요.
<모든 것이 용서되었다>(2006) 에 이어
<내 아이들의 아버지>(2011> 등의 장편을
연출했던 감독 미아 한센- 뢰베.
그녀는 직전 작품 < 에덴 : 로스트 인 뮤직 >
(2014)에서도 그랬듯이 일상의 섬세한
순간들을 잡아내는 데 탁월한 솜씨를
발휘합니다.
나탈리라는 인물을 통해 삶속으로 느닷없이
밀려오는 변화와 그 감성, 그리고 외로움에
대한 공기를 세밀하게 품어내고,
나탈리가 자신의 내면에 꼭꼭 숨겨져 있었던
그녀의 참 모습과 대면하며 스스로를
알아가게 해주죠.
그렇게... 그녀는 온통 '낯선 처음' 으로
가득한 새로운 인생을, '설레이는 두려움' 과
함께 시작해 봅니다.
극중 주요 장면을 유려하게 감싸주는 OST들
또한 단순한 배경음악의 틀을 넘어 제2의
캐릭터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지요.
먼저, 슈베르트의 가곡 '물 위에서 노래함'
(Auf dem Wasser zu singen, D.774).
이 가곡은 3일간 식사를 거부했다는 엄마를
나탈리가 애타게 요양원으로 찾아가는
길목에서, 또 마지막 엔딩 크레딧에
처연하게 흐릅니다.
'다가오는 것' 들을 향해 '변화하는 시간' 과
더불어 떠나는 나탈리의 심정을 절절하게
표현해주고 있지요.
"아, 시간은 이슬의 날개를 달고
흔들리는 물결위로 사라져 가는구나
시간은 내일도 빛나는 날개로
어제와 오늘처럼 다시 사라지겠지
마침내 나도 고귀하고 찬란한 날개를 달고
변화하는 시간을 떠나서 사라지겠구나"
영화의 피날레...
나탈리는 가족과의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플라톤의 비밀' 이라는 진중(?)한
철학서적을 선물로 받아서 그런지
칭얼대는 어린 외손녀를 달래며,
프랑스 민요 '맑은 샘물에서'(A la claire
fontaine)를 노래합니다.
"오랜 세월 그대를 사랑했고
영원히 잊지 못할 거라네.
- - - -
나는 연인으로부터 버림 받았네.
그럴 일은 아니었는데..."
세자르 프랑크의 '전주곡, 푸가와 변주
Op.18, FWV 30' 이 사유적으로
바리아시옹되는 영화 <다가오는 것들>은,
플리트 우즈의 아카펠라 버젼으로 청아하게
흐르는 'Unchained Melody' 와 함께
그 막을 내리지요.
1. 영화 < 다가오는 것들 - L' Avnier> 트레일러
https://youtu.be/0n7k_eUQMeQ
- 티저 예고 영상 : feat. 플리트 우즈의
아카펠라 버젼 'Unchained Melody'
https://youtu.be/ABsK1b4yC4o
젊고 잘생긴 제자 파비앙과의 교류가
그녀의 결혼생활이 종말을 맞는 과정과
병치되는 극 초반을 보면서...
관객은 또 다른 사랑 이야기를 기대하게
되지요.
그러나 감독 미아 한센-러브는 달콤하고도
손쉬운 해결책에는 눈길조차 돌리지
않습니다.
극 중 파비앙으로 대변되는 세계는 이전에
나탈리가 놓여 있던 세계와 정반대 방향에
놓여 있죠.
그 세계는 도시가 아닌 전원이고, 이념적으로
하인츠와 대조되는 좌파적 지향을 가지며,
또 개인주의적인 나탈리 가족의 삶과 달리
공동체적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파비앙은 사실상
나탈리의 과거죠.
하인츠로 대변되어온 세계가 사라졌지만,
그렇다고 나탈리는 파비앙의 세계로
접어들 수도 없는 것입니다.
영화 < 다가오는 것들 > 은 피해자와
가해자로 간단히 나뉘어 역할 놀이를 하는
멜로 드라마가 아니죠.
바람 불어오는 삶의 한 지점에서 온전히
자유와 품위를 찾아낸 한 인간의 여정을
다룬 탁월한 여성 영화이면서,
동시에 감동적인 휴먼 드라마로
자리합니다.
2 . 슈베르트의 가곡 '물 위에서 노래함'
(Auf dem Wasser zu singen), D.774
가난과 병마에 시달리던 슈베르트에겐
'내일' 이란 없었지요.
'아침' 이 오면 그저 하루를 시작했을 뿐으로,
아침이란 그에겐 하루 더 살 수 있는
신호였습니다.
'아침 햇살에 힘을 얻어 숲으로 간다.
허기진 배를 맑은 물 한잔으로 속이고
이슬이 채 가시지 않는 숲으로 간다.
나뭇잎 사이로 간간히 내려오는
햇빛에 눈이 시리고 어지럽지만,
나뭇가지 사이로 떨어지는
투명한 빛을 맞이하러 간다.
여인의 치맛자락 처럼 흔들리는
물결위로 가볍게 일렁이는 빛의
희롱에
마냥 즐거운 기분이 들고
잠시라도 사는 것이 즐거운 때,
작은 새가 노래하는 울림이 물결에
떠다니는 숲에서 그는 행복을 얻는다.'
서른 나이 초반에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맞본
청년의 일상은 그렇게 축쳐진 어깨와 푹 패인
주름 사이로 배어버려,
더 이상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낼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요.
슈베르트는 31년이라는 짧은 생애 동안
남들이 거들떠보지도 않은 가곡을 마치
사명감에 불타는 듯 작곡했지만 무명의
설움 속에 스러지고 말았습니다.
가곡 '물위에서 노래함' 은 그의 나이 26세였던
1823년에 작곡한 곡으로, 저녁 무렵의 뱃놀이를
그려낸 곡이지요
우리가 즐겨 듣는 곡은 슈베르트가 세상을 뜬 후
리스트가 편곡한 것으로,
애수 어린 선율의 피아노 반주 위로 부드럽게
물결치듯 오르내리는 성악가의 음색이
매력적인 가곡으로 울려옵니다.
슈베르트에겐 '내일(morgen)' 이 필요했지만...
그 내일을 눈부시도록 환하게 빛내줄
'아침(Morgen)' 은 끝내 오지 않았죠.
하여, 슈베르트가 남긴 아름답고 슬픈
노래들은 오늘도 그를 한없이 그리워하게
만듭니다.
3절의 유절 형식이며 슈톨베르크 백작의 시에
곡을 붙인 노래 '물위에서 노래함' 은,
유려하게 흐르는 물처럼 아름다운 선율과
리드미컬한 부분을 절묘하게 구성한
기교적인 곡으로 아련한 애수가 서려있지요.
슬픔 속에 깊이 가라앉은 이 아름다운 음악은
오직 슈베르트만이 담아낼 수 있는 것으로,
수려한 운율 속에 눈물도 흐르지 못할
비애가 가득합니다.
"거울처럼 비추는 물결의 빛 가운데
백조처럼 흔들리며 미끄러지는 작은 배.
아, 기쁨으로 은은히 빛나는 물결위에
내 마음도 그 배처럼 미끄러져 가는구나.
하늘에서 내려온 붉은 저녁 햇살은
배를 에워싸고 물결 위에서 춤추네.
서쪽 숲의 나무들 위에서
붉은 햇살이 정답게 손짓하니,
동쪽 숲에선 나무 가지들 아래
창포가 붉은 빛을 받고 살랑거리는구나.
내 영혼은 붉은 햇살 속에서
하늘의 기쁨과 숲의 안식을 들이마시네.
아, 시간은 이슬의 날개를 달고
흔들리는 물결위로 사라져 가는구나.
시간은 내일도 빛나는 날개로
어제와 오늘처럼 다시 사라지겠지.
마침내 나도 고귀하고 찬란한 날개를 달고
변화하는 시간을 떠나서 사라지겠구나... "
- 바리톤 피셔 디스카우 : 제럴드 무어 피아노
https://youtu.be/srLP11tZ7-4
3. 도노반의 'Deep Peace'
- 빌 더글라스 연주
https://youtu.be/oEmvQqg_EpQ
4. '맑은 샘물에서'(A la claire fontaine)
' 오랜 세월 그대를 사랑했고
영원히 잊지 못할 거라네...'
중국 출신 스위스 작곡가 더칭 원(溫德青)은
프랑스 민요인 '맑은 샘물에서'(À la claire
fontaine)를,
당나라 시인 왕유(王維)의 색채로 재해석한
'노스텔지아' 로 변주한 바 있지요.
- 영화 < Painted Veil >의 OST
https://youtu.be/kckejxrCDI0
- https://youtu.be/9MV-Pov6JTQ
5. 우디 거트리의 'My daddy files a ship
in the sky'
https://youtu.be/2jKDexJMjDA
- 李 忠 植 -
첫댓글
영화 < 다가오는 것들 - L'Avenir > 예고편
https://youtu.be/0n7k_eUQMeQ
PLAY
< 다가오는 것들 > 티저 예고편
- feat. 플리트우즈 Unchained Melody
https://youtu.be/ABsK1b4yC4o
PLAY
슈베르트 가곡 '물 위에서 노래함'
(Auf dem Wasser zu singen)
- 바리톤 피셔 디스카우
https://youtu.be/srLP11tZ7-4
PLAY
'맑은 샘물에서'(A la claire fontaine)
https://youtu.be/9MV-Pov6JTQ
PLAY
'My daddy flies a ship in the sky'
- 우디 거트리
https://youtu.be/2jKDexJMjDA
PLAY
좀 느끼해서 그렇지만...
토요일 밤 OBS '전기현의 씨네뮤직' 프로
참 좋지요.
마침 그제 이 <다가오는 것들> 소개하길래,
4년 전 쓴 자료 수정해 다시 올린 겁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세월과 함께 감흥이 자못 다르더군요.
저도 나이를 먹었다는 얘기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