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가나자와 수학여행기/전 성훈
5박 6일 일정으로 도봉문화원 일본어반 학생들과 가나자와 지역에 수학여행을 다녀왔다. 지난 3월 시코구 여행에 이어서 두 번째 여행이다. 이번에 찾아간 곳은 얼마 전에 화산이 폭발한 온타케산과 인접한 곳이라 마음이 조금 불안했다. 여행을 계획한 리더에게 물어보니 안전하다고 하여 마음이 놓였다. 10월 5일(일) 흐림, 여행을 떠난다고 들떠서 그런지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새벽 3시 50분경 일어나서 짐을 다시 확인하였다. 새벽 5시 5분 수락버스터미널을 출발한 공항버스는 새벽이라서 붐비지 않고 50분 만에 인천공항에 도착하였다. 제18회 인천 아시안게임 종료 후 귀국하는 외국선수들과 해외나들이 하려는 사람들로 새벽녘 공항은 북새통이었다. 오전 8시 대한항공 여객기는 일본 고마츠 공항으로 떠났다. 비행기는 약 1시간 25분 정도 날아간 후에 비가 조금씩 내리는 고마츠 공항에 도착하였다. 고마츠 공항 일대는 태풍의 진행방향에서 비켜난 지역이라서 가랑비만 내리고 있었다.
고마츠 공항의 입국심사 공무원들은 아주 친절하였다. 그들은 여권검사를 마치면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으로 돌려주었다. 뻣뻣하기 그지없는 인천공항 근무자들과는 무척 대조적이었다. 첫날 묵을 예정인 ‘오오노야’료칸 직원이 미니버스를 가지고 마중을 나와 카가온천역까지 데려다 주었다. 이곳에는 캔버스라고 부르는 마을순환버스와 해변순환버스가 있는데 우리 일행은 마을순환버스를 탔다. 맨 처음 10만 평이 훨씬 넘는 크기의 아름다운 정원 ‘유노쿠니노모리’를 찾았다. 매혹적인 경치에 모두가 매료되었다. 길가에 김이 무럭무럭 나오는 구멍이 있어서 손을 대어보니 매우 뜨거웠다. 정원구경을 마치고 이곳의 유명한 음식점에서 점식식사를 하였다. 그런데 자판기처럼 생긴 기계에 돈을 집어넣고 원하는 메뉴판 버튼을 눌러서 식권을 받은 다음에 주인에게 식사를 주문하는 방식이라서 불편하였다. 점심을 마치고 다시 캔버스를 타고 계속 마을 순례를 하면서 일본전통과자를 전시 판매하는 곳과 유리제품을 판매하는 곳을 구경하였다. 그러는 중에 우리가 탄 버스 바로 앞에 일본극우파의 혐한시위를 하는 자동차가 지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의 주장은 알 수 없지만 스피커 소리가 아주 커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시위와는 달리 질서를 지키면서 의사 표현하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해질 무렵 숙소인 ‘오오노야’ 료칸에 도착하여 아담한 홀에서 ‘가이세키’요리로 저녁 식사를 하였다. 서빙하는 여자 분들이 정성껏 음식을 차례차례 상에 올려놓았다. 짧은 일본어 실력으로 몇 마디 건네고 웃었다. 가져 간 소주를 마시면서 일행들과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여행을 함께한 22명이 한 자리에 모여서 친교의 시간을 가졌다. 왕초급반, 초급반, 중급반 학생들이 일본어 배우는 동기와 각자의 경험들을 무용담 전하듯 재미있게 이야기 하였다. 얼마나 웃고 또 웃었는지 나중에는 눈물까지 나왔다. 친교 모임을 마치고 료칸 대욕장을 찾았는데 온천탕 물의 감촉이 아주 좋았다. 어제 서울에서 선잠을 잤고 저녁에 소주를 마시고 온천 목욕을 한 덕분에 잠자리에 들자마자 곤히 잠들었다.
10월 6일(월) 흐림, 잠을 푹 자고 나서 새벽에 일어나 샤워를 하니 몸이 아주 개운하였다. 정갈한 맛의 료칸 아침식사를 마치고 가랑비 속에 1300년 전에 창건된 절(나타데라)구경에 나섰다. 물안개 속의 숲속 경치가 기가 막히고 매우 인상적이었다.
절 옆에 있는 시골 마을을 걷다가 감나무에서 떨어진 홍시와 밤도 주워 먹었다. 마을은 너무나 조용하고 깨끗하였다. 아이들이 전혀 보이지 않고 마을이 조용한 것은 우리나라처럼 일본도 심각한 노령화 사회에 들어서고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4일간 머무를 가나자와를 향하여 저녁 무렵 카가온천역에서 보통열차를 탔다. ‘가나자와’라는 지명은 ‘사금(砂金)을 씻는 연못’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약 55분정도 달려 JR가나자와역에 도착하여 APA HOTEL에 짐을 풀었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호텔 근처 식당에서 스시정식에 정종 한잔을 걸쳤다. 정종 한 잔 값이 상당히 비쌌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일행과 호텔부근의 밤경치를 구경하면서 일본어 간판 읽기에 빠졌다.
10월 7일(화) 맑음, 호텔 조식은 맛이 괜찮았다. 밥 대신 죽 그리고 달걀 반숙 두 개와 과일을 먹었다. 가나자와 성(城)과 켄로쿠엔 공원 그리고 몇 곳을 구경하는 일정으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지도 한 장 들고서 걸었다. 일행이 있어 길을 헤매는 것도 전혀 걱정이 되지 않았다. 파출소에 들어가 길을 묻는 일행 옆에 끼어들어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대충 알아들었다. 혼자서도 일본 여행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나자와’성은 성곽을 보수하거나 새로이 단장 공사를 하고 있어서 특별히 볼 만한 것은 없었다. 캔로쿠엔 공원의 아기자기한 조형미를 느낄 수 있었다.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곳이었다.
10월 8일(수) 맑음, 호텔 로비에서 일행을 기다리면서 요미우리신문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에 대한 기사를 읽고 해석하려고 씨름하였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시라카와고’(白川鄕)를 구경하려고 고속버스를 탔다. ‘시라카와고’에는 손바닥을 합장한 모양의 지붕(한자:入)을 한 전통 가옥들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청명한 가을 날씨에 전망대에서 바라다 본 전통가옥들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 해발 2000m에서 3000m에 이르기까지의 높은 산들이 연이어 있고 눈이 아주 많은 고장으로 유명한 곳으로 알려져서 그런지 동서양 관광객들도 많았다.
10월 9일(목) 맑음,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가나자와’를 걷는 날. 우리 동네 중랑천보다 폭이 작은 ‘야사노카와’ 강변을 걸었고, 영화 ‘게이샤의 추억’을 촬영한 ‘히가시차야가이’ 골목에서 사진도 찍었다. 혹시 게이샤를 볼 수 있을까 하였지만 그것은 한낮 꿈이었다. 20세 이상의 기생은 게이샤(藝者), 20세 이하의 동기(童妓)는 ‘마이코’(舞子)라고 부른다.
이 동네 가게에는 문 입구에 옥수수가 달려있었다. 옥수수는 악귀를 물리치고 옥수수 알이 다산과 풍요의 의미가 있어 가게의 번창을 염원하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수없이 흩어져 있는 절과 신사의 고장인 ‘우다쓰야마’ 산록의 사원군(寺院群)을 찾으면서 마음을 수양한다는 의미의 ‘고코로노 미치’를 걸었다. 40년 간 아주 협소한 장소에서 라면가게를 하고 있다는 친절한 노부부에게서 담백한 일본산 라면 맛을 보았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오미초’시장을 구경하였다. 생선과 과일과 포목을 주로 팔고 있었다. 우리나라 재래시장처럼 주전부리를 파는 곳이 눈이 띄지 않아서 아쉬웠다. 백화점을 두 곳이나 구경하면서 백화점 입점가게들의 광고 문구를 열심히 읽어가면서 발품을 팔았다.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모르는 문구들이 많았지만 나름대로 재미있었다. 일본에서의 마지막 저녁 식사는 일행들과 근처 식당에서 몇 가지 음식과 술을 주문하였다. 마침 우리 옆 자리에 앉아 있던 나이 많은 점잖은 일본인 신사 한 분이 말을 걸어왔다. 술이 들어가니까 입이 잘 떨어져서 겁도 없이 한동안 말을 주고받고 웃었다.
10월 10일(금) 맑음, 출국하는 날, 오전 9시에 호텔 체크아웃 후 호텔 옆에 있는 공항버스 정류소에서 리무진버스를 타고 고마츠 공항으로 이동하였다. 자유여행은 패키지여행과 달리 시간에 구속받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두 번의 일본 여행으로 말문이 조금 트였다는 것도 기쁘다. 잠시 동안 서울의 일을 모두 잊어버리고 나만의 세계 속에서 치유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 여름철 두 달간 아르바이트를 하여 벌은 돈을 전부 여행 경비에 날려버린 것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이번 모임을 이끌고 온 정성으로 마무리를 잘 해준 최윤선씨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아울러 이러한 기회를 허락해준 도봉문화원 담당자 여러분에게도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2014년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