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쓴다는 것은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금요수필반 최상섭
요즈음 문학을 즐기거나 문학을 하는 문학가들이 부쩍 늘어나 우리 사회에서 문학인들의 사회 공헌도가 높아지고 있다. 이는 문학인들의 삶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보인다는 이야기다.
전북문인협회에 등록된 시인의 수만 해도 시조시인을 포함해서 440 여명에 달한다. 이 시인들은 등단의 절차를 거쳤고, 시집을 출판한 사람들이니 그 간의 노고가 얼마나 컸을까 짐작이 간다. 우리 사회에 이렇게 많은 시인들이 배출되고 있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문학도 예술의 한 장르다. 문학이 현대인들의 정서순화와 복지사회의 등불이 되어야 함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그 문학의 장르 중에서도 시나 시조는 읽는 이에게 그리운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지나간 날들의 아름다운 사고를 불러일으키거나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한 희망의 속삭임을 전해 줄 수 있는 이미지(image)가 담겨있는 게 바로 시다.
한 때 많은 독자를 가지고 있던 시가 요즈음엔 외면을 당하면서 수필이나 다름 문학 장르에게 밀리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그것은 감수성이 예민한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배운 시들이 대부분 서정시였는데 요즈음의 시들은 난해하여 몇 번을 읽어도 그 뜻을 헤아리기 쉽지 않다. 그런 시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 일반 독자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있다. 2000년대 후반에 혜성처럼 나타나기 시작한 이해인 수녀나 류시화 시인 등은 이러한 외면으로부터 독자 주변으로 돌아올 수 있어 다행이다. 나는 여가서 어려운 시가 좋은 시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고 싶다.
공자께서는 당시 정치인들이 국민의 뜻을 알게 하기 위해서 그 시대 유행하던 시 300편을 편집하여 세상에 내놓았다. 이는 백성의 소리인 국풍(國風)과 귀족들의 이야기인 아(雅) 그리고 신과 조상을 찬양하는 송(頌)으로 구성된 “풍아송(風雅頌)”으로서 공자께서 편집한 백성들의 소리였다.
그러면서 시 삼백(詩 三百)을 일언이폐지(一言以蔽之)하면 왈(曰) 사무사(思無邪)라 하였다. 이는 사실 시인들은 사람들의 속마음과 생각을 정제된 언어로 세상에 내놓는 백성들의 진실한 소리라는 뜻이다.
유신 시절 오적을 써서 우리사회의 배고픈 군중에게 자유의 눈을 뜨게 했던 한 소설가가 독재의 칼날에 항거하며 투옥까지 되었다. 그 문인은 최근 권력의 정점에 오른 그 독재자의 딸에게 자기의 사상을 송두리째 팔아서 금의환향(錦衣還鄕)하던 모습을 우리는 참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시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인간의 내면에 잠재한 기억을 아름다운 언어로 문자를 빌려 표현한 사고(思考)라고 말하고 싶다. 평생 시를 가까이 하고 내가 본격적으로 시를 공부한 지가 십 수 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시다운 시를 쓰기에는 부족함이 많다. 불철주야 노력하지만 마음처럼 쓰여 지지 않는 시가 원망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럼에도 왜 이렇게 나는 집념을 가지고 몰두하고 있는 것일까? 생각해 보면 그 언젠가는 내게도 남들이 기억할 수 있는 한 편의 시를 남길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으로 오늘도 혼신의 노력을 다한다. 사실 그렇다. 그 날이 올 수도 있고, 한갓 변두리 시인으로 생을 마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내게는 목숨처럼 아끼며 나의 진력(盡力)을 기울이는 시야말로 나의 처절한 승부요 필사의 정신으로 노력하는 고귀한 시간이다. 더러는 온밤을 새기 일쑤고 새벽녘에는 그 밤새도록 습작한 습작품을 지워버리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어쩌다 조금 괜찮다 싶으면 어느 구절인가 알지도 못하는 유명인의 詩語(낱말)가 끼어 있음을 뒤늦게 발견하고 후회의 늪에 빠진다. 시를 쓴다는 것은 각고의 아픔과 철두철미한 노력이 있어야겠지만 그것보다도 더 영혼을 불어넣는 영감을 얻어야 함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그 영감이란 것이 어찌 말로 할 수 있는 영역인가? 난 여기서 또 한 번 좌절과 회의를 맛본다. 그럼에도 오늘 자판을 두들기며 한 편의 시를 만들려는 생각은 오늘이거나 또 내일이면 어떨까, 혹 훗날에는 내게도 오리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극광(오로라.aurora)을 찾아 헤맨다.
본명이 동탁인 청록파 조지훈 시인은 승무(僧舞) 한 편의 시를 완성하기 위해 8년의 세월을 소비했고, 점 하나를 찍는데 1년이 걸렸다고 한다. 승무를 보러 안 가본 선방이 없을 정도로 노력했다는 이야기는 좋은 본보기로 들린다. 그래서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리고, 모든 국민들에게 애송되는 좋은 시가 되었다. 나는 그러한 노력의 의미와 하늘이 주는 영감을 기대하며 오늘도 촛대에 불을 밝히듯 새로운 각오를 가슴에 새기며 나의 시어를 찾아 방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