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4권 실제 정체와 그 변형들
제1장 정치학의 과제와 대상
특정 부분에 국한되지 않고 분야 전반을 포괄하는 모든 기술과 학문(episteme)에 적용되는 규칙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기술과 학문이 저마다 제 분야에 적합한 방법이 무엇인지 고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197쪽)
학문의 한 영역인 정치학도 포괄적이어야 한다. 말하자면 정치학은, 첫째, 어떤 정체가 최선의 것인지, 외적인 장애 요인이 없을 경우 이상적인 정체에 가장 부합하는 정체는 어떤 종류인지, 둘째, 개별 국가들에 어떤 정체가 적합한지 고찰해야 한다. (...) 훌륭한 입법자와 진정한 정치가는 절대적 최선의 정체뿐만 아니라 상대적인 최선의 정체에 관해서도 알고 있어야 한다. 셋째, 정치학은 실재하는 정체에 관해 그것이 처음에 어떻게 생겨났으며, 일단 생겨난 뒤에는 어떻게 해야 오래오래 존속될 수 있을지 고찰해야 한다. (...) 끝으로, 정치학은 그 밖에도 어떤 정체가 대부분의 국가에 가장 잘 맞는지 알고 있어야 한다. (...) 최선의 정체뿐 아니라 가능한 정체와 가장 쉽게 실현될 수 있고 모든 국가에 가장 잘 맞는 정체도 고찰해야 하기 때문이다. (198쪽)
정체를 새로 도입하려면 그것은 기존의 정체에서 쉽게 받아들일 수 있고 쉽게 받아들일 마음이 내키는 그런 정체여야 한다. 그래서 낡은 정체를 개혁하는 것은 새로운 정체를 만드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마치 어떤 것을 고쳐 배우는 것이 처음 배우는 것만큼 어렵듯이 말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정치가는 앞서 말했 듯이, 방금 언급한 미덕들에 덧붙여 기존의 정체들을 개선할 줄도 알아야 한다. (198쪽)
우리는 각 정체의 상이한 변형이 얼마나 많으며, 그것들이 얼마나 다양한 방법으로 구성되는지 명심하고 있어야 한다. 이런 통찰력을 갖게 되면 최선의 법은 어떤 것이며, 각각의 정체에 맞는 법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실제로 그렇하듯, 정체에 법을 맞춰야지 법에 정체를 맞춰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정체는 공직들이 어떻게 배분되며 국가의 최고 권력은 누가 가지며 각각의 공동체가 추구하는 목표(telos)가 무엇인지를 결정하는 국가의 제도(taxis)인 반면, 법은 정체의 이런 규정과는 달리 치자들이 거기에 따라 통치하고 위반자를 감시하고 제지하는 규칙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각 정체에 맞는 법을 제정할 수 있기 위해서라도 정체들의 변형과 그것들의 수를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한다. (199쪽)
제2장 정체들의 질적 순위
정체에 관한 앞서의 논의에서 우리는 정체를 세 가지 올바른 형태 즉 왕정, 귀족정체, 혼합정체(politeia)와 이것의 세 가지 변형 즉 왕정이 왜곡된 참주정체, 귀족정체가 왜곡된 과두정체, 혼합정체가 왜곡된 민주정체로 구분한 바 있다. (200쪽)
세 가지 올바른 정체 가운데 으뜸가는 가장 신적(神的)인 정체가 왜곡된 것이 필연적으로 가장 나쁘다. 왕정은 유명무실한 것이 아니라면 반드시 왕의 걸출한 미덕에 근거해야 한다. 따라서 참주정체가 최악이고, 올바른 정체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 과두정체는 귀족정체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만큼 그다음으로 나쁘고, 민주정체가 가장 견딜 만하다. 선배 중 한 분이 이미 이 문제에 관해 같은 견해를 피력한 바 있다(플라톤, [정치가] 303a 이하). 그러나 그분은 나와 시각을 달리하고 있다. 그분의 판단에 따르면, 과두정체를 위시하여 모든 정체가 좋은 것일 때는 민주정체가 최악이고, 모든 정체가 나쁜 것일 때는 민주정체가 최선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주장은, 이 세 가지 정체 모두 어디서나 잘못된 것이고, 과두정체가 다른 정체보다 더 낫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고 다른 정체보다 덜 나쁘다고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201쪽)
제3장 정체는 왜 여러 가지인가?
정체는 공직에 관한 제도이며, 공직은 언제나 상이한 계층(이를테면 부자와 빈민)이 갖고 있는 힘에 따라 또는 양자 사이의 어떤 평등의 원칙에 따라 배분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분들의 우월성과 차이에 따른 조합만큼이나 많은 정체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204쪽)
잘 구성된 정체는 한두 가지뿐이고, 나머지는 최선의 정체 또는 조화롭게 혼합된 정체의 변종인데, 이 변종이 너무 엄격하고 지배적이면 과두정체라 부르고, 너무 규율이 없고 너무 느슨하면 민주정체라 부른다. (204족)
제4장 국가의 여러 부분과 민주정체의 여러 종류
자유민이 최고 권력을 가지면 민주정체고, 부자들이 최고 권력을 가지면 과두정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한쪽이 많고 한쪽이 적은 것은 우연이지만, 실제로는 자유민이 많고 부자들은 적기에 하는 말이다. (...) 하지만 민주정체와 과두정체는 가난과 부라는 판단 기준만으로는 충분히 구별되지 않는다. 민주정체도 과두정체도 여러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두 정체를 적절히 구별하기 위해서는 다른 판단 기준을 사용해야 한다. (...) 다수자인 가난한 자유민이 최고 권력을 잡을 때는 민주정체고, 소수자인 부유한 귀족들이 최고 권력을 잡을 때는 과두 정체다. (206-207쪽)
불가능한 일이 한 가지 있는데, 같은 사람이 가난하면서 부자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부자와 빈민이야말로 국가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게다가 대개 부자는 적고 빈민은 많은 까닭에 이들은 서로 적대적인 부분으로 보인다. 그리고 어느 쪽이 우세하냐에 따라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정체를 세운다. 그래서 사람들은 정체는 민주정체와 과두정체의 두 가지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210쪽)
민주정치의 첫 번째 유형은 무엇보다도 평등의 원칙에 근거하는 경우다. (...) 두 번째 유형은 재산등급에 따라 공직을 배분하되 낮은 재산등급을 요구하는 경우다. (...) 세 번째 유형은 결격 사유가 없는 시민이면 누구나 다 공직에 참여하되 법이 지배하는 경우다. (...) 네 번째 유형은 시민이기만 하면 누구나 공직에 참여하되 법이 지배하는 경우다. 민주정치의 다섯 번째 유형은 다른 점에서는 같지만 법이 아닌 대중(plethos)이 최고 권력을 갖는 경우다. 이런 일은 법 대신 민중의 결의가 최고 권력을 가질 때 발생한다. 그리고 그렇게 되는 것은 민중선동가(demagogos) 탓이다. 법이 지배하는 민주정치에서는 민중선동가가 나타나지 않고, 가장 훌륭한 시민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이 최고 권력을 갖지 못하는 국가에서는 민중선동가들이 나타난다. 이것은 민중이 다수로 구성된 독재자(monachos)가 되기 때문이다. (211-212쪽)
* 빨간색의 '민주정치'는 '민주정체'로 되어 있었으나, 제4권 제6장의 민주정체의 네 가지 유형을 감안하고 다른 번역을 참조하여 '민주정치'로 바꿈. (박희택)
법이 모든 보편적인 것에 대해 최고 권력을 가져야 하고, 공직자들은 개별적인 경우들을 조정하면 된다. 그러한 경우는 정체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민주정체가 정체 가운데 하나라면, 모든 것이 민중의 결의에 따라 결정되는 이런 체제는 진정한 의미의 민주정체가 아님이 명백하다. 민중의 결의에는 보편타당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213쪽)
제5장 과두정체의 여러 유형
과두정체에는 여러 유형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공직 취임에 매우 높은 재산등급이 요구되어 빈민은 다수자라도 공직을 맡을 수 없는 반면, 조건을 충족시키는 자는 누구나 공직을 맡을 수 있는 유형이다. 두 번째 유형은 공직 취임에 높은 재산 자격 요건이 요구되고, 결원은 이런 높은 자격 요건을 갖춘 자들에 의해서만 보충되는 유형이다. (...) 세 번째 유형은 아들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세습하는 경우다. 네 번째 유형은 세습한다는 점에서는 세 번째 유형과 같지만, 법이 아닌 공직자들이 지배하는 유형이다. (214쪽)
이상이 과두정체와 민주정체의 여러 유형이다. 그러나 법적으로는 민주정체가 아닌 정체들이 실제로는 습관(ethos)과 훈련(agoge)에 의해 민주정체처럼 운용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반대로 정체가 법적으로는 민주정체의 요소가 더 강한데 습관과 훈련에 의해 과두정체처럼 운용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일은 특히 정체의 변혁(metabole) 후에 일어난다. (115쪽)
제6장 민주정체의 네 가지 유형과 과두정체의 네 가지 유형
농민이나 중산층이 정체에서 최고 권력을 갖게 되면 그들은 법에 따라 다스릴 것이다. 그들은 노동으로 살아가는 터라 여가가 없어서, 민회는 필요한 경우에만 소집하고 나머지는 법이 지배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여타 주민들은 법에 규정된 재산 자격 요건만 취득하면 국정에 참여할 수 있다. 그러니까 재산이 있는 자는 누구든 국정에 참여할 수 있다. (216쪽)
두 번째 유형은 그다음의 판단 기준, 즉 가문에 근거한다. (...) 세 번째 유형은 모든 자유민이 국정에 참여할 권리가 있지만 방금 말한 이유에서 실제로는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다. (...) 민주정체의 네 번째 유형은 국가에서 시기적으로 맨 나중에 생겨난 유형이다. 국가가 처음보다 규모가 커지고 세입도 많이 늘어나 시민들이 대중의 수적 우위에 힘입어 모두 국정에 참여하고, 국가에서 수당을 받는 빈민을 포함하여 모두가 여가를 갖게 되어 정치 활동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사실은 빈민 대중이 가장 여가가 많다, (...) 그리하여 법이 아닌 빈민 대중이 정체에서 최고 권력을 갖는다. (217쪽)
민주정체의 유형들의 성격과 수는 이러하며, 이런 원인들에서 생겨난다. 과두정체의 유형들에 관해 말하자면, 첫 번째 유형은 시민들의 다수가 재산을 갖고 있지만 그 재산이 그다지 많지 않은 경우다. 이 경우 이들 시민은 필요한 재산을 취득한 자에게는 누구든 국정에 참여하는 것을 허용한다. 그리하여 국정에 참여하는 자들의 수가 많아지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사람이 아닌 법이 최고 권력을 갖게 된다. (...) 재산을 가진 자들이 앞의 경우보다 더 적은데도 그들이, 가진 재산이 더 많으면 두 번째 유형의 과두정체가 생겨난다. 그들은 강자인 만큼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 그들의 수는 줄어들고 재산은 늘어나는 경향이 강화되면 세 번째 유형의 과두정체가 생겨나는데, 이 경우 그들은 모든 공직을 독점하며, 법은 아들이 아버지를 게승하도록 명령한다. 마지막으로 그들의 부와 영향력이 월등하면 이런 종류의 족벌정체는 독재정체에 가깝다. 그렇게 되면 법이 아닌 인간이 최고 권력을 갖는다. 이것이 네 번째 유형의 과두정체로 마지막 유형의 민주정체(극단적 민주정체)와 유사하다. (217-218쪽)
제7장 귀족정체의 여러 변형
민주정체와 과두정체 외에도 아직 두 종류의 정체가 더 있다. 이 가운데 한 종류(왕정)는 널리 인정받아 네 가지 주요 정체에 포함되는데, 네 가지 주요 정체란 독재정체, 과두정체, 민주정체 그리고 이른바 귀족정체다. 그 밖에도 다섯 번째 종류의 정체(혼합정체, politeia)가 있는데, 정체라는 포괄적인 이름으로 불린다. 그러나 이 정체는 흔하지 않다. 그래서 정체의 종류를 열거하려는 저술가들은 이를 간과하고, 정체에 관한 자신들의 저술에서 플라톤처럼([국가]) 대개 네 종류만 인정하고 있다. (219쪽)
가장 훌륭한 자들로 구성되어 있는 정체만이 진정한 의미의 귀족정체라고 불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귀족정체에서만 훌륭한 사람과 훌륭한 시민은 무조건 일치하고, 다른 정체에서 훌륭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정체의 기준에 따라서만 훌륭하다. 하지만 과두정체와도 다르고 이른바 혼합정체와도 다르면서 귀족정체라고 불릴 수 있는 정체들도 있다. 그런 정체들에서는 공직자를 선출할 때 부만 보는 것이 아니라 미덕까지 고려한다. 그래서 이런 유형의 귀족정체는 앞서 말한 두 종류의 정체, 즉 과도정체와 혼합정체와 다르며, 그래서 귀족정체라고 불리는 것이다. (...) 그러므로 귀족정체에는 첫 번째 최선의 형태 외에도 이 두 가지 변형이 더 있으며, 세 번째 변형은 이른바 혼합정체가 과두정체의 경향을 띠는 경우다. (219-220쪽)
제8장 혼합정체와 귀족정체의 차이
혼합정체는 간단히 말해 과두정체와 민주정체의 혼합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민주정체 쪽으로 기우는 혼합만 혼합정체라 부르곤 한다. 과두정체 쪽으로 더 기우는 혼합은 귀족정체라 부르곤 하는데, 교양과 좋은 가문은 일반적으로 부유층과 함께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부자들은 그 때문에 범죄자들이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것들을 이미 갖고 있다고 간주되기에 신사(紳士) 또는 귀족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그래서 귀족정체는 공직 배분에서 가장 훌륭한 시민들에게 우선권을 주려고 하기에, 사람들은 과두정체도 신사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222쪽)
미덕에 따라 공직을 배분하는 것이 귀족정체의 주된 특징이다. 귀족정체의 원칙은 미덕이고, 과두정체의 원칙은 부(富)이며, 민주정체의 원칙은 자유민 신분이니 말이다. 물론 다수결의 원칙은 이 모두에서 발견된다. 과두정체에서나 귀족정체에서나 민주정체에서나 국정 참여자의 다수가 결정하는 것은 최고 권력을 갖기 때문이다. (222-223쪽)
혼합정체에서 동등한 몫을 요구할 수 있는 요소는 사실은 세 가지 즉 자유민 신분, 부, 미덕이다. 흔히 네 번째 요소로 간주되는 좋은 가문은 마지막 두 요소의 결과이며 세습된 부와 미덕의 혼합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혼합정체라는 이름은 두 가지 요소 즉 부자와 빈민의 혼합에만 사용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귀족정체라는 이름은 세 가지 요소의 혼합에 국한해야 하는데, 이런 정체야말로 첫 번째의 진정한 귀족정체 말고는 어떤 유형의 정체보다 귀족정체라 불릴 자격이 있다. (223쪽)
제9장 과두정체와 민주정체의 혼합으로서의 혼합정체
혼합정체를 만들려면 먼저 두 정체의 차이를 알아보고 나서 각 정체에서 일부를 취하여 마치 부절(符節)인 양 그 두 가지를 하나로 조립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조립 또는 혼합을 가능케 하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는 민주정체의 법규와 과두정체의 법규를 동시에 받아들이는 것이다. (...) 이 두 가지 법규를 결합하는 것은 양자에게 공통된 중도를 취하는 것으로, 혼합정체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 두 번째 방법은 두 가지 상이한 법규의 평균 또는 중간을 취하는 것이다. (...) 이 경우 양자에게 공통된 것은 둘 중 어느 한쪽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양자의 중간을 취하는것이다. 세 번째 방법은 일부는 과두정체의 법규에서, 일부는 민주정체의 법규에서 취하는 것이다. 예컨대 공직자를 추첨으로 임명하면 민주정체로, 선거로 임명하면 과두정체로 간주된다. (224-225쪽)
제대로 혼합된 혼합정체는 민주정체의 요소와 과두정체의 요소를 모두 포함하는 것처럼 보이면서, 동시에 그중 어느 쪽 요소도 포함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외부의 지원이 아니라 자력으로 살아남아야 한다. (226쪽)
제10장 참주정체의 세 가지 유형
왕정에 관해 논의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또 두 가지 유형의 참주정체를 구분했는데, 두 가지 모두 법에 따라 지배한다는 점에서 그 성격이 정에 가깝기 때문이다. 실제로 몇몇 이민족은 절대 권력을 행사하는 독재자들을 선출하고 있으며, 헬라스에도 옛날에 아이쉼네테스라는 그런 유형의 독재자들이 있었다. 이 두 가지 유형은 조금씩 다르지만, 자진하여 복종하는 자들을 법에 따라 지배한다는 점에서는 왕정이라 할 수 있고, 주인이 노예를 대하듯 자의적으로 지배한다는 점에서는 참주정체라고 할 수 있다. (227-228쪽)
세 번째 유형의 참주정체는 절대왕정(제3권 제14장 끝부분과 제16장)과 정반대되는 것이기에 극단적인 참주정체로 간주된다. 세 번째 유형의 참주정체는 필연적으로 독재자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자기와 동등한 자들과 더 훌륭한 자들을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지배하는 독재정체다. 그래서 그것은 강압적이다. 자유민이라면 그런 통치를 자진하여 감내할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228쪽)
제11장 대부분의 국가를 위한 가능한 최선의 정체
[윤리학]에서 말했듯이([니코마코스 윤리학] 제1권 제10장, 제2권 제2장 및 제6장, 제7권 제13장, 제10권 제7장 등), 행복한 삶이란 방해받지 않고 미덕에 따라 사는 삶이며, 미덕은 중용(mesotes)에 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중도적인 삶이, 누구나 도달할 수 있는 중용의 삶이 최선의 삶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좋고 나쁨을 결정하는 이런 판단 기준은 국가에도 정체에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 정체는 말하자면 국가의 삶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229-230쪽)
모든 국가에는 세 부분이 있는데, 매우 부유한 자들, 매우 가난한 자들, 그리고 세 번째로 그 중간계급(hoi mesoi)이 그것이다. 그런데 중도(to metrion)와 중용(to meson)이 최선이라는 것이 인정된 만큼, 행운의 선물을 소유하는 데서도 중간 상태가 최선임이 명백하다. 이런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이성(logos)에 가장 잘 복종하기 때문이다. (230쪽)
중간 형태의 정체가 최선임이 분명하다. 거기에는 파쟁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산계급이 많은 곳에서는 시민들 사이에 알력이나 반목이 생길 가능성이 가장 적다. 같은 이유로 큰 국가가 파쟁에서 자유로운 것은 그곳에 중산계급이 많기 때문이다. 반면 작은 국가는 전 주민이 두 계층으로 갈리기 쉽다. 그러면 중산계급은 남지 않고 거의 모두가 빈민이거나 부자다. (...) 가장 훌륭한 입법자들이 중산계급 출신이라는 사실도 중산계급의 가치를 입증해주는 증거로 볼 수 있다. (232-233쪽)
왜 대부분의 국가들이 민주정체가 아니면 과두정체인지 설명해준다. 그 이유는, 첫째, 대부분의 국가에는 대개 중산계급의 수가 적어서, 유산계급이든 민중이든 어느 한쪽이 우세해지면 중용을 버리고 정체를 자기들 의도에 따라 개편하기에 과두정체 아니면 민주정체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둘째, 민중과 부자 사이에는 파쟁과 다툼이 일어나게 마련인데, 둘 중 어느 쪽이 이기든 공동의 이익에 기초한 공정한 정부를 세우는 대신 정권을 전리품으로 여기고 민주정체 아니면 과두정체를 도입하기 때문이다. 셋째, 헬라스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던 두 국가가 자신들의 정체에만 관심을 갖고, 자신들의 영향권 아래 있는 국가들에 이들 국가의 이익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만을 고려하여 민주정체 아니면 과두정체를 세웠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들로 중간 형태의 정체는 전혀 세워지지 않았거나, 드물게 소수의 국가에서 세워졌다. (233쪽)
제12장 정체에서의 질과 양의 균형
모든 국가는 질(to poion)과 양(to poson)으로 구성된다. 여기서 질이란 자유·부 · 교육 · 좋은 가문을, 양이란 대중의 수적 우위를 뜻한다. 질은 국가를 구성하는 부분 중 어느 한쪽에, 양은 다른 쪽에 속할 수 있다. 이를테면 미천한 자는 고귀한 자보다, 빈민은 부자보다 수가 더 많을 수 있다. 그러나 한쪽의 양적 우위가 다른 쪽의 질적 우위를 상쵀하지 못할 수도 있다. 따라서 질과 양은 서로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235쪽)
빈민의 수가 다른 쪽의 질적 우위를 상쇄하고도 남는 곳에서는 자연스럽게 민주정체가 생겨난다. (...) 부자와 귀족의 질적 우위가 양적 열세를 상쇄하고도 남는 곳에서는 자연스럽게 과두정체가 생겨난다. (235-236쪽)
입법자는 언제나 정치적 결정권을 가진 계층에 중산계급을 포함시켜야 한다. 그의 입법이 과두정체의 성격을 띨 경우에는 중산계급을 배려해야 하고, 민주정체의 성격을 띨 경우에는 자신의 법으로 중산계급의 환심을 사야 한다. (236쪽)
중산계급이 다른 두 계층을 합한 것보다, 또는 둘 중 어느 한쪽보다 수가 많은 곳에서는 혼합정체가 지속될 수 있다. 그럴 경우 부자들이 빈민과 결탁하지 않을까 염려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 두 계층은 어느 쪽도 다른 쪽에 종속되기를 원치 않을 것이고, 혼합정체보다도 더 두 계층의 이익에 부합하는 정체를 찾아내려 해도 찾아내지 못할 테니 말이다. (236쪽)
* 이러한 논지는 제11장에서도 개진된 바 있음(232쪽). (박희택)
제13장 다수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한 올바른 전략과 그릇된 전략
정체가 그럴듯해 보이도록 민중을 기만하는 술수는 다섯 가지로, 민회 · 공직 · 법정 · 무기 소지 · 체력 단련에 관련된다. 민회에 관해 말하자면, 민회에는 모두 다 출석할 수 있지만, 출석하지 않을 경우 부자에게만 벌금을 부과하거나, 부자에게는 훨씬 더 많은 벌금을 부과한다. 공직에 관해 말하자면, 재산 자격 요건을 갖춘 자들은 맹세를 하고 공직을 거절할 수 없지만, 빈민은 그것이 허용된다. (...) (237쪽)
혼합정체는 중무기를 가진 자들로만 구성되어야 한다. 절대적인 재산 자격 요건을 정하거나, 어떤 경우건 재산의 액수가 얼마여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국정 참여자의 수가 국정에서 배제된 자의 수보다 많게 할 최고 액수가 얼마인지 그때그때 찾아내어 그 액수로 정해야 한다. (...) 우리가 지금 혼합정체라고 부르는 정체는 전에는 민주정체라고 불렸던 것이다. 옛날 정체는 당연한 일이지만 과두정체나 왕정이었다. (238-239쪽)
제14장 정체와 심의권
모든 정체에는 세 부분이 있는데, 훌륭한 입법자는 이와 관련해 각 정체에 어떤 것이 유익한지 고려해야 한다. (...) 첫 번째는 공무(koina)에 관해 심의하는 부분이고, 두 번째는 공직에 관한 부분이다. 말하자면 공직에는 어떤 것이 있어야 하고, 그 권한은 무엇이어야 하며, 공직자들은 어떻게 선출되어야 하느냐는 문제에 관한 부분이다. 세 번째는 재판에 관곤한 부분이다. (240-241쪽)
심의하는 부분은 전쟁과 평화, 조약의 체결과 폐기, 입법, 사형, 추방형, 재산 몰수형, 공직자 임명, 임기 만료 시 공직자들에 대한 감사에 관해 최고 권력을 갖는다. 이 모든 결정권은 필연적으로, 첫째, 시민 전체에게 주어지거나, 둘째, 몇 사람에게만 주어지거나, 셋째, 어떤 권한은 시민 전체에게 주어지고 어떤 권한은 몇 사람에게만 주어질 수밖에 없다. (241쪽)
시민 전체가 모든 공무를 결정하는 것은 민주정체의 특징이다. 민중이 추구하는 평등은 그런 종류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민 전체가 심의한다는 이 원칙은 여러 방법으로 운용될 수 있다. 첫 번째 방법은 시민 전체가 심의하되 교대로 하고 모두가 동시에 하지 않는 것이다. (...) 두 번째 방법은 시민 전체가 함께 심의하되 공직자들의 선출과 감사, 입법, 전쟁과 평화에 관해 심의하기 위해서만 모이고, 다른 안건들은 그런 목적으로 임명된 공직자들에게 심의를 위임하는 것인데, 이들 공직자는 시민 전체에서 투표나 추첨에 의해 선출된다. 세 번째 방법은 시민들은 공직자들의 임명과 감사, 그리고 전쟁과 조약에 관해 심의하기 위해서만 모이고, 나머지 안건은 가능한 한 투표로 선출된 공직자들에게 위임하는 것이다. 이때 이 공직자들에게는 전문지식이 필수조건이다. 네 번째 방법은 시민 전체가 한데 모여 모든 안건을 심의하고, 공직자들은 결정하지는 않고 예비조사만 하는 것이다. (241-242쪽)
시민 몇 명이 모든 안건을 심의하는 것은 과두정체의 특징이다. 이 원칙 역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운용될 수 있다. 첫째, 심의기구의 구성원이 그리 높지 않은 재산 자격요건만 갖추면 선출될 수 있어 그들의 수가 많다면, 또한 그들이 바꾸지 못하도록 법으로 금지된 것을 바꾸려 하지 않고 법에 복종한다면, 그리고 필요한 재산 자격요건만 취득하면 누구나 심의기구에 참여할 수 있다면, 그런 정체는 과두정체이긴 하지만 절제되어 있기에 혼합정체의 성격을 띤다. 둘째, 재산 자격요건을 갖춘 모든 시민이 아니라 선출된 자들만이 심의기구에 참가하되 그들이 앞의 경우처럼 법에 따라 지배한다면, 그것이 과두정체다. 셋째, 심의권을 가진 자들이 자기들 중에서 결원을 보충하고 아들이 아버지 자리를 세습하고 그들이 법을 지배한다면, 이런 제도는 필연적으로 극단적인 과두정체가 될수 밖에 없다. (242쪽)
특정한 안건을 특정인들이 심의할 수도 있다. 예컨대 전쟁, 평화, 임기 만료 시 공직자 감사에 관해서는 시민 전체가 심의하고, 다른 안건은 공직자들이 심의하되 공직자가 투표나 추첨에 의해 선출된다면, 이런 제도는 귀족정체다. 끝으로 어떤 안건은 투표로 선출된 공직자들이, 다른 안건은 추첨으로 선출된 공직자들이 결정하거나 아니면 투표로 선출된 자들과 추첨으로 선출된 자들이 공동으로 결정한다면, 이런 제도는 일부는 귀족정체의, 일부는 진정한 의미의 혼합정체 성격을 띤다. (242-243쪽)
제15장 정체와 집행권
공무는 세 가지 종류로 분류될 수 있다. 첫 번째 종류의 공무는 정치에 관한 것으로, 특정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싸움터의 장군처럼 시민 전체를 보살피거나, 부녀자와 어린이의 감독관처럼 특정 시민들만을 보살핀다. 두 번째 종류의 공무는 경제에 관한 것이다. 곡물 배급관도 가끔은 선출되기 때문이다. 세 번째 종류의 공무는 천역(賤役)에 관한 것으로, 부유한 국가에서는 노예들이 맡아본다. 일반적으로 말해 특정 안건에 대한 심의권과 결정권과 명령권, 그중에서도 특히 명령권을 위임받은 공직을 공직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명령하는 것이야말로 공직자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246쪽)
공직자 임명에 관해 처음부터 다시 검토해 보기로 하자. 여기에는 세 가지 요인에서 서로 차이가 있는데, 이 차이를 조합해 보면 필연적으로 공직자 임명의 모든 가능성이 밝혀질 것이다, 세 가지 요인이란, 첫째, 누가 공직자를 임명하며, 둘째, 어떤 사람 중에서 임명하며, 셋째, 어떻게 임명하느냐다. 이 세 가지 요인에는 각각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 (249쪽)
전 공직자가 전 시민 중에서 투표에 의해, 또는 추첨에 의해, 또는 두 가지 방식 모두에 의해, 다시 말해 일부 공직자는 추첨에 의해, 다른 공직자는 투표에 의해 선출되는 방법은 민주정체의 특징이다. 모든 시민이 한꺼번에 공직자를 임명하지 않고 일부 시민이 모든 시민 또는 일부 시민 중에서 추첨이나 투표나 이 두 가지 방식 모두에 의해 공직자를 선출하거나 또는 어떤 공직자는 전 시민 중에서, 다른 공직자는 일부 시민 중에서 추첨이나 투표나 이 두 가지 방식 모두에 의해, 다시 말해 어떤 공직자는 추첨에 의해, 다른 공직자는 투표에 의해 선출되는 방법은 혼합정체의 특징이다. (250-251쪽)
그리고 한정된 계층이 공직자를 전 시민 중에서 투표에 의해 또는 추첨에 의해 또는 두 가지 방식 모두에 의해, 다시 말해 어떤 공직자는 추첨에 의해 다른 공직자는 투표에 의해 임명하는 방법은 과두정체의 특징이다. 한정된 계층이 어떤 공직자는 전 시민 중에서, 어떤 공직자는 한정된 계층에서 임명하는 방법은 더욱 더 과두정체의 특징이다. (...) 끝으로 한정된 계층이 전 시민 중에서, 그리고 전 시민이 한정된 계층에서 투표로 공직자를 임명하는 것은 귀족정체의 특징이다. (251쪽)
제16장 정체와 재판권
법정은 세 가지 요인에서 차이가 나는데, '어떤 사람들 중에서'와 '무엇에 관해서'와 '어떻게'가 그것이다. '어떤 사람들 중에서'란 전 시민 중에서 임명할 것이냐 한정된 계층에서 임명할 것이냐는 뜻이고, '무엇에 관해서'란 법정의 종류가 얼마나 많으냐는 뜻이고, '어떻게'란 추첨으로 임명할 것이냐 투표로 임명할 것이냐는 뜻이다. (253쪽)
법정의 종류는 여덟 가지다. 그중 하나는 임기 만료 시 공직자 감사에 관한 것이고, 두 번째는 공익 침해 사건을 다루고, 세 번째는 정체에 관련된 사건을 다루고, 네 번째는 벌금 부과에 관한 공직자와 사인(私人) 간의 분쟁을 다루고, 다섯 번째는 규모가 큰 사적인 계약을 다루고, 여섯 번째는 살인 사건을 다루고, 일곱 번째는 외국인 문제를 다룬다. (...) 그 밖에도 1에서 5드라크메 또는 그보다 약간 많은 소액 거래를 다루는 법정이 있다. (253-254쪽)
* 여섯 번째 살인 사건을 다루는 법정에는 4종류가 있고(253쪽), 일곱 번째 외국인 문제를 다루는 법정에는 2종류가 있다(254쪽)고 서술하고 있음. (박희택)
전 시민 중에서 배심원을 임명할 경우 이렇게 네 가지 방법이 있다. 배심원이 한정된 계층에서 임명될 때도 역시 네 가지 방법이 있다. (...) 배심원이 전 시민 중에서 임명되어 모든 사건을 재판하는 처음 언급한 방법들은 민주정체의 특징이다. 배심원이 한정된 계층에서 임명되어 모든 사건을 재판하는 두 번째 언급한 방법들은 과두정체의 특징이다. 배심원이 어떤 사건에는 전 시민 중에서 임명되고 다른 사건에는 한정된 계층에서 임명되는 세 번째 언급한 방법은 귀족정체의 특징이자 혼합정체의 특징이다. (254-25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