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 찾기(서울 헌릉과 인릉)
◇ 헌릉(獻陵) : 서초구 내곡동 산 13-1 (사적 제194호) / 신도비(보물 제1804호)
- 조선 초의 태종과 원경왕후 민씨를 모신 쌍릉(雙陵)
헌릉은 조선 3대 태종(재위 1400∼1418)과 원경왕후 민씨(元敬王后 閔氏 : 1365∼1420)의 능이다.
태종은 태조 이성계의 5남으로서 고려 공민왕(恭愍王) 16년(1367) 함흥부 후주(厚州)에서 탄생하였다. 휘(諱)가 방원(芳遠)이고, 자(字)가 유덕(遺德)이며, 어머니는 신의고황후 한씨(神懿高皇后 韓氏)이다.
조준(趙浚), 정도전(鄭道傳), 남은(南誾) 등과 함께 아버지인 이성계를 추대하여 1392년 7월 조선왕조를 개국하는 데 공이 컸다. 왕위 계승권을 둘러싼 1차·2차 왕자의 난을 주도적으로 평정하며 실권을 장악하고, 정종 2년(1400)에 왕위를 넘겨받아 개성의 수창궁에서 등극하였다.
태종은 토지와 조세제도ㆍ군사제도를 비롯하여 숭유억불책 등을 통하여 왕권을 강화하고 중앙집권제를 확립함으로써 건국 초기의 왕정과 민생의 안정을 이룩하였다. 태종 18년(1418)에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세종 4년(1422) 5월 10일 연화방(蓮花坊) 신궁(新宮)에서 돌아가니 춘추 56세였다. 이 해 9월 묘호(廟號)를 태종, 능의 이름을 헌릉이라 하고, 9월 광주부(廣州府) 대모산(大母山) 원경왕후 민씨의 헌릉 서쪽 언덕에 예장(禮葬)하였다.
태종의 비 원경왕후 민씨(1366∼1420)는 본관이 여흥(驪興)으로 여흥부원군 민제(閔霽)의 딸로서 공민왕 14년(1366) 개성 철동(鐵洞)에서 탄생하였으며, 어머니는 삼한국대부인 송씨(三韓國大夫人 宋氏)이다. 고려 우왕 8년(1383) 태종에게 출가한 후, 태종의 즉위에 내조가 컸다.
태종이 즉위함에 정비(靜妃)로, 세종 즉위년(1418) 후덕왕대비(厚德王大妃)라 올려 부르게 되었으며, 태종에 앞서 세종 2년(1420) 7월 10일, 수강궁 별전(壽康宮 別殿)에서 승하하니 춘추 56세였다. 소생은 4남 4녀가 있다. 이해 8월, 능의 이름을 헌릉이라 하고, 9월 광주 고을의 대모산 아래 언덕에 예장(禮葬)하였다.
헌릉은 같은 언덕에 무덤을 달리한 쌍릉(雙陵)으로 두 능의 아랫부분을 병풍석(屛風石)을 둘러 세웠으며, 그 밖으로 각 무덤에 12간의 난간석으로 서로 연결하였다. 능의 형식은 태조의 건원릉을 따랐다. 각 능침에 12칸의 난간석을 둘러서 서로 연결하였고, 능침 앞에는 양석과 호석·문인석·마석을 배치하였다.
헌릉의 석물은 고려시대 현릉·정릉(玄陵·正陵), 조선시대의 후릉(厚陵 : 정종)과 같이 망주석 이외에 각각 하나씩을 더 갖추고 있다. 능침 언덕 아래에는 정자각(丁字閣), 2기의 신도비(보물 제1804호)가 있는 비각(碑閣), 그리고 입구에 홍살문[紅箭門]이 있다.
◇ 인릉(仁陵) : 서초구 내곡동 산 13-1 (사적 제194호)
- 조선 후기 순조와 순원왕후 김씨를 모신 합장릉
인릉은 23대 순조(재위 1800∼1834)와 순원왕후 김씨(1789∼1857)의 능이다.
인릉에 묻힌 순조는 정조의 둘째 아들로서 정조 14년(1790) 6월 18일 창경궁 집복헌(集福軒)에서 탄생하였다. 휘(諱)가 공(蚣)이고, 자(字)는 공보(公寶), 호는 순재(純齋)이며, 어머니는 가순궁(嘉順宮) 수빈 박씨(綏嬪 朴氏)이다.
1800년 6월 정조가 승하함에 이해 7월 창덕궁 인정문(仁政門)에서 즉위하였으나 춘추 11세로 나이가 어려, 대왕대비인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 김씨(貞純王后 金氏)가 순조 4년(1804)까지 수렴청정을 하였다. 이 때에 신유사옥(辛酉邪獄)과 을해박해(乙亥迫害)로 천주교인이 많이 처형되었으며, 외척에 의한 세도정치는 극성을 이루어 국가 기강이 추락하고, 사회가 혼란하여 홍경래(洪景來)의 난과 같은 민란이 빈발하였다.
순조 34년(1834) 11월 13일, 순조가 경희궁 회상전(會祥殿)에서 승하하니 재위 34년이고, 춘추 45세였다. 헌종 즉위년(1834) 11월 19일, 무덤의 이름을 인릉(仁陵)이라 하고, 묘호를 순종(純宗)이라 하였다가 광무(光武) 3년(1899) 12월 19일 순조(純祖)로 고쳤다.
순조는 처음에 헌종 원년(1835) 4월에 경기도 교하군 인조의 장릉(長陵) 왼쪽 산줄기 언덕에 예정하였으나, 능 터가 불길하다고 하여 철종 7년(1856) 10월 헌릉 오른쪽 언덕으로 옮겨 모셨다.
순조의 비 순원왕후 김씨(1789~1857)는 본관이 안동(安東)으로 영돈녕부사 영안부원군(永安府院君) 김조순(金祖淳)의 딸로 정조 13년(1789) 5월 15일 한성부 서부 양생방(養生坊)에서 탄생하였으며, 순조 2년(1802) 10월 13일 왕비로 책봉되었다.
순원왕후 김씨는 순조가 1834년에 승하하자 손자인 헌종이 8세에 즉위하였으므로 수렴청정(垂簾聽政)을 하였다. 헌종이 후사 없이 헌종 15년(1849)이 승하함에 장조(莊祖)의 손자로 왕위를 잇게 하였으니, 이가 바로 철종이다. 순원왕후 김씨는 철종 8년(1857) 8월 4일, 창덕궁 양심각(養心閣)에서 승하하였다. 춘추 69세였고, 이해 12월 순조의 인릉에 합장하였다.
인릉은 같은 언덕에 합장한 능으로서 병풍석 없이 12간의 난간석을 둘렀으며, 그 주위로 양석과 마석 각 2쌍, 상석 1좌, 망주석 1쌍을 3면의 곡장(曲墻)으로 에워쌌다. 한 단 아래에 문인석과 마석 1쌍, 명등석 1좌를 설치하고, 그 아래에 무인석과 마석 각 1쌍을 배치하였다.
문인석과 무인석의 조각은 사실적으로 새겨져 섬세하고 아름답다. 무덤 언덕 아래에 정자각, 2기의 비석이 있는 비각, 그리고 입구에 홍살문이 있다. 제사를 지내는 건물인 홍살문 남쪽 도로변의 재실(齋室)은 애초에는 능 구역 안에 있었으나, 그 중간 부분이 6·25 전쟁 이후에 농지로 개간되어 서로 떨어져 위치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