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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8월 9일 주일대예배 설교문 / 막 6:1-29 / 제자의 삶의 자리 – 헌신
할렐루야! 사랑하고 축복하고 존경합니다.
지난 시간 나누었던 마가복음 5장 말씀을 다시 상고해봅시다. 예수께서 본동네 가버나움에서 거라사로 가셨다가 다시 가버나움으로 오시는 일련의 과정 속에 일어난 일입니다. 귀신들의 동네 거라사로 갈 때에 풍랑이 일어 거역이 일어나며, 귀신들린 사람들은 무덤 사이에서 거하여 귀신에게 운명을 지배당하며, 돼지치기 산업에 얽매여 있다가, 질병으로 고통 받으며 결국 사망하게 되는 것이 한 사람의 인생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반대로 우리의 소망 예수님. 주님을 믿고 주님과 함께 한다면 귀신은 떠나가고, 정결하고 깨끗한 인생을 살 것이요, 질병에서 치유함 받으며 사망권세가 아닌 영원한 생명권세의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될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인 마가복음 6장은 거역, 귀신, 돼지치기 산업, 질병, 사망의 세상과 반대입니다. 이제 그러한 세상나라를 떠나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을 때 우리도 예수님처럼 공생애의 삶을 살아야하는데 그것이 제자입니다. 본문은 예수님의 제자의 삶을 살아가는 자가 가져야할 헌신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1. 제자 헌신의 근거 – 보혈의 피 값으로 사심
예수님의 제자가 되라는 말씀은 설교시간에 누누이 들었지만 사실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과연 내가 제자인지 아니면 무리에 불과한지 분간이 안 될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제자입니까? 무리입니까? 그렇다면 한 가지 더 질문하겠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까? 아니면 그저 어쩌다보니 교회에 나왔습니까? 부름을 받았지요? 한 가지 명확한 사실은 제자는 주님의 부름을 받은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부름 받았다고 믿는 우리 모두는 주님의 제자입니다. 아멘.
제자는 반드시 헌신이 필요합니다. 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예수님이 어디로 가시든 그 길을 함께 따라다니는 자가 제자라는 것입니다. 따라다니려면 내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내 쟁기도, 내 식구도, 내 생각 내 감정 내 의지도... 그것이 헌신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내가 종교생활의 일환으로 교회는 다니지만 어떤 근거로 제게 헌신을 요구하십니까? 저는 못합니다. 그냥 교회만 다니면 안 됩니까?” 그렇습니다. 헌신의 근거가 없으면 제자가 아닌 종교생활로도 만족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셨기 때문에 무조건 헌신해야 한다.”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도 온당치 못합니다. 내가 내 자식 낳았다고 무조건 내 말을 따라야 합니까? 아니지요.
우리가 하나님께 헌신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값을 주고 사셨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6: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모든 것은 대가가 치러져야 합니다. 우리가 어느 집으로 이사를 갈 수 있다는 것은 그 집을 빌렸거나 샀기 때문입니다. 매매계약서든 전세계약서든 계약서에 적힌 대로 값을 치러야지만 이사를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 것이니 모든 집이 다 내 집이다.” 이건 도둑놈 심보지요. 하나님도 이걸 아시기 때문에 대가를 치러서 우리를 사셨다는 것입니다. 서점에 책이 있습니다. 제가 돈을 주고 책을 사면 이때부턴 누가 뭐래도 제 책입니다. 헌신의 근거도 똑같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을 믿는 사람들이 구원받은 사람들이지요. 다르게 말하자면 우리를 예수님이 피 값으로 사셨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시려고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셨습니까? 목숨 값으로 치렀다는 것입니다. 밤낮 참소하는 사탄이 하나님께 우리를 정죄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쟤는 내 아들 목숨 값으로 산 영혼이야, 여기서 뭘 더 바래?”라고 물으신다면 사탄은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좋아하면 결혼하고 싫어하면 이혼합니다. 그들은 소유권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없기 때문에 그들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결혼은 서로가 서로에게 돈을 주고 산 계약관계입니다. 그래서 예물반지를 나누지 않습니까? 이제부터 검은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죽음이 서로를 갈라놓을 때까지 같이 살겠다는 거래, 계약인 것입니다.
참된 의가되시며, 법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기 피로 사셨다는 것은 영원히 버리지 않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요즘 코로나에다가 환경재앙으로 세상 사람들도 말세라고 아우성입니다. 말세에는 예수님께서 재림하시지요. 그때 염소와 양을 구분하듯, 알곡과 가라지를 구분하듯 구원받은 자를 구분하시는데 주님은 무엇을 보십니까? 당신 피 값으로 산 영혼들만 보십니다. 보혈의 피 값으로 사신 우리들... 이제 우리는 내 것이 아닌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도 자가 자신 자신을 바쳤는데 우리도 우리 자신을 헌신할 것 외에는 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헌신의 근거입니다. 굳건한 반석 되는 이 헌신의 근거에 온전히 서십시오. 예수님께서 나를 피 값으로 사셨다! 이 굳건한 반석 위에 올라서서 헌신의 자리에 이르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2. 제자 헌신의 동기 – 사랑
헌신의 근거는 법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법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지요. 법적으로 결혼은 해도 사네 마네 하는 것은 같이 살 마음이 힘들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흔들릴 때 무엇을 찾습니까? ‘사랑’입니다. 자식 때문에 – 자식에 대한 사랑이지요.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어서 – 아직 사랑이 식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의리 때문에 – 내가 힘들 때 그렇게 간호해주고 돌봐주었고 이제껏 그래도 챙겨 주었는데, 이것도 아직 사랑이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다 필요 없고 하나님 때문에 – 이것도 아직 사랑이 남이 있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겉으로 말하기는 쑥스럽지만 그 마음에 사랑이 있기 때문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과 나는 법적으로 결혼했기 때문에 무조건 살아야 한다. 맞는 말이지만 사랑이 있어야 행복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헌신의 근거가 예수님의 피 값이라 할지라도 마음이 따라와야 하나님도 기뻐하십니다.
고린도후서 5:14-15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15절은 헌신의 말씀입니다. 그 동기가 14절 사랑으로 강권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마치 밀려오는 홍수처럼 사랑을 느낄 때가 있을 것입니다. 다 간증거리가 있잖아요? 예배를 드리다가 나도 모르게 그 사랑에 빠져서 은혜를 경험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사랑은 언제 오느냐? 접촉 때 옵니다. 주님 오른 손으로 우리를 붙드시고, 두 손으로 우리를 드시고, 안아 주시고...
이사야 63:9 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사 자기 앞의 사자로 하여금 그들을 구원하시며 그의 사랑과 그의 자비로 그들을 구원하시고 옛적 모든 날에 그들을 드시며 안으셨으나
예수님의 제자로서 헌신해야 할 근거는 우리가 예수님의 피 값으로 팔렸기 때문에, 그러나 동기는 오로지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3. 제자 헌신의 의미 – 제물이 되는 것
제물이란 제단에 양이나 소를 잡아서 올려놓는 것을 말합니다. 이제부터는 내 것이 아닙니다. 제물로 올려드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 제물이 소든, 양이든, 고운 가루이든, 기름이든 일단 올려놓으면 드리는 자의 손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속하며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위치가 바뀌는 것이고, 용도가 바뀌는 것입니다. 내 손 안에 있던 것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것이고, 내가 쓰고 싶어서 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쓰시고 싶은 대로 쓰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제자로 헌신하게 되면 이제 우리가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쓰시고 싶으신 대로 쓰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사장님이요 교수님이요 박사님이라 할지라도 교회에서는 집사님이요 권사님이 되는 것입니다. 위치가 하나님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을 때도 비문이나 관보에 무슨 교수, 무슨 박사라 쓰지 않습니다. 집사 아무개, 권사 아무개 이렇게 쓰는 것입니다. 또한 내용적으로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것입니다. 왜? 위치가 하나님의 것이 된 것입니다. 용도란 주님의 것이니까 주님 원하시는 대로 쓰이는 것입니다. 예배 때 제물로 드린 헌금이 쓸데없는 곳으로 이리 저리 흘러간다면 나중에 큰 분쟁이 생길 것입니다. 오로지 용도가 주님 뜻대로...
내가 누군가에게 선물을 준다고 합시다. 내가 좋아서 선물로 주지만 선물을 주고 나면 더 이상 주장할 권리가 없습니다. 받는 사람이 쓰고 싶은 대로 쓰고,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입니다. 선물로 주는 그 순간 위치와 용도가 완전히 상대에게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물을 남에게 주면 뭐가 남지요? 기쁨이 남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제자로서 헌신을 하게 되면 남은 것이 하나 있는데 ‘기쁨’이 남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12-1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우리가 부르심을 받아 제자로서 헌신하면 이러한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 항상 기쁨이 충만할 것입니다.
4. 제자 헌신의 목적 –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것
선물은 왜 할까요? 내가 기쁜 것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선물을 받는 그 사람이 기쁜 것으로 나는 만족하는 것입니다. 학이 여우를 초대했는데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을 차려준다고 긴 호리병에 담긴 음식을 준다면 여우는 잔뜩 화가 날것입니다. 학이 여우를 초대했으면 여우가 먹을 수 있게 해주어야 합니다. 내가 선물로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을 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따라합시다.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 위해” 이 마음 변치 맙시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오시기 전 예수님의 오실 길을 예비했던 선지자였습니다. 세례 요한의 메시지는
마태복음 3:11-12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즉 예수님은 구원주이시며 심판주인 삼일일체 하나님이신 것을 전했던 것입니다. 누가 구원주가 다르고 심판주가 다르다고 합니까? 다 이단들의 어리석음입니다. 세례 요한은 헌신의 목적을 분명히 알았고, 온전하게 예수님이 오실 길을 예비하여 하나님의 기쁨이 되었습니다.
5. 제자 헌신의 결과 – 모든 것을 내어 맡기라
세례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습니다. 요즘말로 하면 산속 자연인으로 산 것입니다. 아버지는 당대 유명한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러면 세례 요한도 앞길이 보장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보다 6달 먼저 태어나 주님이 오실 길을 예비하며 세상이 주는 영광과 안위를 탐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오늘 말씀처럼 억울한 죽음을 죽었던 것입니다. 마케루스라는 헤롯 안티파스의 여름궁정의 지하 감옥에 갇혀 있다가 목이 베어서 33살 젊은 나이에 순교하고 말았습니다.
27-28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것뿐입니까? 1-6절 말씀을 읽어보면 예수님도 고향 나사렛에서 인정을 못 받았으며, 7절부터는 12제자를 세우셨는데 이 열두 제자들을 영접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결과를 예단하고 내가 보기에, 사람에게 자랑하기에 좋은 결과를 얻으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그저 모든 것을 맡기고 부르심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기쁨이 되기만을 소망하십시오. 오늘 세례 요한은 비록 억울한 죽음을 죽었을지라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이 헌신의 사명을 제대로 잘 감당한 의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을 이렇게 칭찬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1: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사랑하는 동문교회 예배자 여러분, 제자로 헌신하는 이 길은 결코 내 마음에 맞지 않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하루하루 먹고 살기 힘든 이 시대를 살면서 사치라는 생각이 들 때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복의 근원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이제 모든 근심 걱정을 내려놓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제자삼아 말씀을 나누며 헌신된 영적인 삶을 살아갑시다. 말씀 그대로 모든 귀신이 떠나가며 치료의 길이 열어지며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어 하나님의 기쁨이 되리라 믿습니다.✞-동문교회 강순욱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