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앙이 펼친 법을 어겼을 시 강한 처벌과 엄격하게 법을 적용하는 엄벌주의는 혼란스러운 전국시대를 진나라가 통일하는데 큰 기반이 되었으나 진승과 오광의 난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어 진나라가 통일이후 빠르게 몰락한 이유가 되기도 하였다.
엄격하고 강한 법이 진정한 부국강병과 국가의 안정을 보장하는가?
우선 법의 통치를 다루어야 한다. 근대 이전 사회도 법에 의한 통치(지배)를 했기에 법치주의이다. 법가의 사상은 이를 대표한다. 그러나 항상 군주(통치자)를 정점으로 한 법치주의이다. 물론 맹자는 군주가 백성의 삶을 어지럽게 하면 군주를 쫓아낼 수 있음(放伐論)을 주장하면서 백성이 천하의 중심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백성의 의지가 반영되어 법을 만든 경우는 드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백성들은 그 법을 왜 지켜야 하는지, 왜 따라야 하는지를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군주(통치자)가 가진 무력이 두려워서 따른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근대는 대다수 나라가 민주주의를 제도로 채택한다. 이는 국민이 주권자임을 명시적으로 나타낸 말이다. 따라서 법에 의한 지배나 통치는 국민의 위임을 받은 대표가 행사하며 설령, 국민의 선택이 잘못되어서 적절하지 못한 사람(무능한 인물)이 ’대표‘가 되어 권력과 권한을 행사할지라도 그것을 수용하는 것이 근대 민주주의적 법치주의이다. 무능한 인물이 권한을 넘어 행사한다면, 맹자의 방벌론처럼 ’대표‘를 물러나게 할 수 있다.
그런데 엄격한 법의 지배가 군주를 위한 것이라면 그 법이 현대 사회에서 적용되기 어려울 것이다. 엄격하고 강한 법의 집행이 문제가 아니라, 법 제정에 민의가 담겨있지 않기 때문이다. 부국강병을 위한 법이 민의가 반영되지 않았다면, 이는 왕조시대(봉건시대)와 같은 것이다. 현대 사회의 대다수 국가는 대체로 민의를 반영해서 법을 제정한다. 물론 법이 완벽하거나 그 자체로 완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인간 사회는 항상 새로운 사람이 태어나고 새로운 상황이 늘 나타나기 때문이다. 즉, 사회는 항상 변하고 있으며, 따라서 법도 변화하는 상황에 맞게끔 수정하거나 개정, 또는 새로운 법을 제정한다. 이 과정도 민의를 충실히 반영하는 것이다. 그래서 민의를 대변하는 국회(의회)가 새로운 법을 제정하거나 개정하는 것이며, 여기에 상반된 입장을 가진 대표들 사이에 치열한 토론과 논쟁을 거쳐 법이 만들어진다. 따라서 국민의 이익이나 관심을 대리하는 국회가 민의를 벗어난 엄격하고 강한 법을 제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 민의가 반영되지 않는 법에 따르도록 하는 것은 왕조시대나 가능한 것이지, 현대 사회는 가능하지 않다. 그리고 국민을 대리하는 국회가 만든 법은 국민이 만든 것과 같기에 ’자신이 만든 법에 스스로 따르는 것은‘ 당연한 행위이다. 따라서 부국강병은 민의에 충실한 법을 만들 때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