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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umerianshakespeare.com/88701.html에서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우르의 군기(軍旗) 중 “전쟁 장면”은 예술작품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역사기록으로서 정말 사실인가에 관한 적절한 신뢰를 인정받고 있지 않다. 세계사(世界史)에서 고대 전쟁의 완전하고 정확하고 디테일한 문서임에도 불구하고, 이 군기의 콘텐츠로서의 매우 적은 논평과 함께 역사가들에 의해 수박 겉핥기식의 검증만 이루어졌을 뿐이다.
판넬의 3열안으로 몰려있는 많은 액션들이 있으나, 눈에 보이는 것들 보다 더 있다.
“전쟁장면”은 엔딩과 더불어 시작된다. “전쟁의 여파로” 시작한다는 의미이다. 승리한 왕은 전차에서 내린다. 왕은 긴 왕의 제복을 입고 전투 깃발을 들고 간다. 장군들은 왕의 뒤에 줄지어 선다. 장군들은 수메르 패션으로 가죽 갑옷을 어깨에 걸쳐 입는다. 장군들은 창과 큰 도끼를 들고 다닌다. 이 것은 일반적인 항복 예식이라 당연히 장군들이 참여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 사람들이 병졸이 아니라 장군들이라는 걸 안다. 왕이 제일 앞에 서야 한다는 규례에 따라, 장군들은 계급의 순서와 귀족의 지위에 따라 왕의 뒤에 선다. 생전(生前)과 마찬가지로 그림에서도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왕의 가까이에 선다.
오른쪽 절반 상단부분은 전투에서 사로잡힌 포로들을 검열하는 왕을 보여준다. 왕 앞에 서있는 사람이 적국(敵國)의 왕인데 왜냐하면 그림에서 제일 처음 보여주는 포로이고 그래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적국의 왕은 한 수메르 병사에게 호위를 받고 있다. 이 포로가 된 왕의 근접 패널은 밑에 있다. 수메르 왕처럼, 그 역시 예복을 입었다.(이 예복에 대해 따로 그려진 그림을 보시오.) 그림에서는 이 예복을 입은 사람이 두 사람뿐이다. 그래서 이 예복은 왕권을 상징한다. 이는 이 포로가 익명의 병졸이 아니라 정말로 왕이라는 걸 의미한다. 그의 예복 밑에 이 사로잡힌 왕은 독특한 “접힌 스커트”를 입었는데, 이 것은 수메르 사람이 입는 주름 장식이 있는 스커트와 다르다. 이 왕은 여전히 옷을 입을 수 있는 포로였고 그래서 보는 사람들에게 적국의 왕이라는 걸 알 수 있게 만들어 준다. 그러나 이 인물은 심하게 훼손되어 군기가 발견된 이후 85년 간 누구인지 불분명했다.
증거가 우세하기 때문에, 이 인물이 정말로 사로잡힌 왕이라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결국, 누가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은 정확하게 패배 한 왕을 찾을 것으로 기대되는 곳이다. 그를 여기에서 찾지 않는 것이 놀라운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수메르 왕의 승리는 불완전하다 : 그는 큰 승리를 얻었지만 적국의 왕은 도망쳤다. 이것은 적국의 왕이 정당한 처벌을 피했고 다른 날에 다시 싸울 자유가 있음을 의미한다.
사로잡힌 왕과 그의 회위 병사 뒤에는 벗고 있고 묶여 있고, 피가 나는 또 다른 죄수가 있다. 포로들이 계급과 중요성의 순서대로 진열되기 때문에 그가 포로로 잡힌 장군이라고 추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계급이 낮은 군인은 수메르 왕 앞에서 진열되지 않는다). 포로는 군기에 묘사된 대부분의 적군들과 마찬가지로 몸에 피가 묻어 있다. 다른 포로는 계급이 높은 순서대로 왕에게 진열된다. 얼굴, 가슴, 허벅지에 상처가 있고, 목과 팔 주위에 로프가 있는 포로들의 고해상도 사진을 보시오.
왕에게 가장 중요한 포로들만이 진열되기 때문에, 앞에 있는 포로들이 모두 고위 귀족이라고 가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들 모두는 알몸이 되고, 밧줄로 조여지고, 굴욕적인 태도로 보이기 때문에, 운명에 대해서는 거의 의심 할 여지가 없다. 승리한 수메르 왕은 그가 과거의 적들로부터 동맹국을 만들기를 원했기 때문에 체포된 일반 병사들을 처형할 사람이 아니었다. 반면에 적국의 귀족들은 그렇게 운이 좋지 않을 수도 있다. 고대 전쟁에서 정복 왕이 때로는 그를 상대로 싸웠던 패배한 영주(領主=귀족)들을 사면했으나, 종종 그들은 처형당했다. 따라서 그들은 왕의 군대가 겪은 전쟁과 사상자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이다. 또한, 이 영주들을 살려준다면, 이 들이 승리한 왕을 공격 할 수 있다. 귀족들이 승리한 왕 앞에서 행렬에 올랐다는 사실은, 그리고 그들의 계급을 구분하지 않고 알몸으로 묶여 잔인하게 진열된다는 사실은 당장의 미래를 위한 좋은 징조가 아니다. 또 다른 불길한 징후는 모든 군인들이 여전히 무기를 휴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죄수들이 묶여있어 더 이상 위협이 아니기 때문에 무기들은 전적으로 필요하지 않는다. 왕이 용서하려한다면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포로들의 삶이 구원받지 못할 것 같다. 이 패널은 아마도 그들이 죽음에 처해지기 바로 전에 발생했을 것이다.
말 머리 아래에 있는 “작은 남자”를 주목하라. 그는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작아서 노예로 묘사되었다. 그러나 그는 노예가 될 수 없는 것이, 노예는 무기를 가질 수 없었다. 그는 또한 말을 돌보는 종류인 마부(馬夫)라고도 한다. 그가 말 앞에 걸어 다니는 것을 제외하고는 마부라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 그는 무기를 들고 있기 때문에 단순한 마부만은 아니며, 갑옷과 투구를 착용하지 않기 때문에 정규 병사처럼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그는 평민이라서 왜 그렇게 축소된 규모로 그려지는지 설명이 될 것이다. 평민들은 자신의 지위가 낮아서, 왕이 있을 때 평소보다 작게 그려졌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패널의 맨 윗줄에 있는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훨씬 작게 그려졌거나 “우르의 군기” 다른 곳에 그려져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왕의 면전에 있는 군기의 뒷면에 있는 하인들보다 작아졌다. 그는 “적” 그리고 “패배한 포로”뿐만 아니라 계급에서 사회적 규모로는 멀리 떨어져있는 “노예”보다 훨씬 작다. 따라서 “작은 사람”이 노예, 마부, 군인 또는 평민이 아닌 경우 실제로는 오직 한 가지 가능성만 남는다. 이 것을 추측하기 전에는 들어본 적이 없었지만, 그 작은 남자가 단순히 소년은 아니다. 그는 왕세자(王世子)이자 수메르 왕의 아들이다. 그는 그의 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르는 전쟁에 그의 아버지가 동행을 시키므로, 왕실의 전통이었던 왕이 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이것은 그가 무기를 들고 왜 투구나 갑옷을 입지 않는지를 설명한다. 그는 실제로 군인이 아니다. 그는 전투하기엔 너무 어리다.
왕자가 어깨 너머로 들고 다니는 물건은 왕의 홀이다. 물론 왕의 홀이 통치권을 상징하고 왕자는 여전히 너무 어려서 군림하는 군주가 될 수 없으므로 그의 아버지에게 속한다. 병정놀이를 하고 아버지의 왕의 홀을 들고 있는 왕자의 예기치 않은 모습은 이 아수라장에서 다소 놀랍고 감동적인 가족 삽화의 일부이다.
이것은 수메르 왕의 뒤에 줄지어 있는 세 장군들이 나이 순서대로 내림차순으로 배열된 그의 아들들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한다.
이 그림은 보통 “수메르 군인들이 전쟁으로 행진함”이라고 해석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침착한 태도로 행진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림의 근접그림은 창이 수평을 이루고 있음을 보여준다. 각 군인의 창은 그 앞에 있는 병사의 망토에 표시되고 있다. 이것은 군인들이 행진 할 때 자신의 창을 나르는 방식이 아니며, 병사들 앞에서 위험 할 수 있다. 병사들은 창을 수직으로 든 체로, 행진한다. 평평한 창은 공격 자세이다. 병사들은 전투에 나서지 않고, 이미 전투에 참여하는 중이고 밀집 대형 중이며 공격 중이다.
그들은 훈련 된 형태로 공격한다. 그들은 똑같이 무장하고 투구, 창, 그리고 알록달록한 망토를 갖추고 있다. 그들의 외투에 있는 반점(斑點)이 왕의 이륜 전차에 있던 반점과 어떻게 일치하는지 주목하시오. 그 반점은 군대의 신원을 확인하는 것이다.(=피아식별) 군인들이 전쟁터에서 쉽게 식별 할 수 있도록 각 도시 국가의 군인 유니폼에는 다른 표시가 있었다.
이들은 일반 병졸들이다. 그들은 어깨에 갑옷을 착용하지 않는다. 독수리비에 묘사된 일반 병졸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어깨에 갑옷을 입은 병사들이 귀족을 의미하는 고위 장교라고 추측할 수 있다. 고대 군대에서, 고위 장교는 항상 귀족이었다. 정예 전투 병력의 일환으로, 모든 전차를 모는 병사들도 또한 이 종류의 갑옷을 착용한다. 전차는 제조비용이 비쌌고 유지비도 비쌌기 때문에 전차 전쟁은 항상 부유한 귀족들의 영역이었다. 어깨 갑옷은 귀족들에게만 의미가 있다는 가장 좋은 증거는 수메르 왕이 착용하는 갑옷이라는 사실이다. (나중에 표시됨). 이 역시 독수리비에서 에난아툼 왕이 착용한다.
이것은 항복 의식에서 포로들을 호위하는 “호위병(護衛兵)”이 착용하는 갑옷의 종류이기 때문에 호위병이 실제로 수메르 귀족임을 의미한다. 이것은 “포로가 단순한 일반 병졸이 아니라 고위 귀족이다.”라는 개념을 지지한다. 수메르의 귀족들은 단순한 일반 포로들에 대한 감시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몸을 굽히지 않을 것이다. 고대 전쟁에서 귀족들 중 반대편 영주들은 종종 개별 전투에 참여하기 위해 서로를 찾아 다녔다. 그들의 계급(혹은 지위)을 알아채고, 그들은 서로 대항하여 싸우기를 원했다. 따라서 우르 군기(軍旗)에 명시된 공식 항복 행사에서 포로들을 표시하는 군인은 단지 “호위병”이 아니라 수메르 귀족이다. 그들은 전투에서 개인적으로 붙잡은 적의 귀족들을 왕에게 자랑스럽게 선물한다.
이 공격은 짧고 날카로운 전투에서 끝난다. 그 곳에서 수메르 군인들이 그 들의 적들을 재빨리 해치웠다. 다른 군인이 그의 창으로 굴러 떨어진 적을 재빨리 해치우는 동안, 한 병사가 적의 포로를 데리고 간다. 오른쪽에서, 한 수메르 군인은 패배한 포로들의 옷을 벗긴다. 이것은 고대 세계에서 일반적인 관행이었다. 새로 붙잡힌 포로부터 먼저 옷을 벗겼다. 그것은 포로들에게 굴욕감을 주며, 포로의 권리와 지위가 전혀 없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우르의 군기(軍旗)에 있는 포로들의 나체는 새롭게 악화된 그 들의 상태와 승리한 수메르인들보다 열등함을 상징한다.
그 패널은 항상 “적의 포로가 인도(引導)된다”고 묘사되어 왔다. 이것은 몇몇 사람들(포로)이 벌거벗고, 일부 사람들 (호위병)이 옷을 입고 무기를 들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설명이 될 것 같다. 그 패널은 완전히 다른 것을 대표한다. 남자들이 입고 있는 “각진 스커트”를 주목하라. 수메르 사람들은 이런 종류의 스커트를 입은 채로 나타나지 않는다. 어떤 남자도 외투, 갑옷 또는 투구를 쓰지 않는다. 비록 그 들이 어디서 왔는지 명시되지 않았지만, 우리는 그 남자들이 “먼 곳”출신(즉, 외국인)이라고 믿는다. 이 경우 수메르 군대를 위해 싸우는 “보조군”이 될 수 있다.(실제로 로마제국 후기에 게르만족들이 로마군의 보조 병력 역할을 한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들이 실제로 수메르 인들을 대신하여 싸우고 죽어가는 동맹국이고 포로를 호송하는 사람들이라면 포로가 왕에게 수여될 때 왜 항복 의식에 나타나지 않는가? 오른쪽 맨 끝의 남자가 머리와 가슴에 상처가 어떻게 나는지 주목하시오. 그 뒤에 있는 다른 군인들도 피를 흘리고 있다. 그들이 정말로 연합군 병사라면 그들은 전쟁에서 승리한 군대에서 부상당한 유일한 존재들이다. 단 한 명의 수메르 군인도 그에게 흠집을 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연합군 병사들이 수메르인들에 비해 어떻게 열등하다고 볼 수 있는가? 이것은 정말로 수메르 동맹국들에게 불필요하게 모욕하려는 예술가의 의도인가? 또한 이미 이 기록에 포로로 잡힌 적의 묘사가 있으며, 포로는 다시 상단 기록에 표시되기 때문에 전쟁 현장에서 포로가 된 또 다른 패널을 보여줌으로써 그 점을 자세히 설명할 이유가 없다.
게다가, 포로들은 항상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선 뒤로 물러난다. 그들은 자신의 영역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 전투 라인에서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고려해야 할 다른 두 가지 중요한 사항이 있다. 우선, 이들이 수메르인들의 보조 병력이라면 적에 대항하여 행동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전쟁에서 싸우는 것으로 보이는 수메르 군인들만이 적군 병사들을 죽이거나 포로로 데려 간다. 전쟁이 수메르인들에 의해 승리 한 후에 포로들을 현장에서 단순히 “호송”하는 것은 보조 병력의 진정한 의무인가? 둘째, 그들이 보조 병력이라면, 수메르 인들 앞에서 왜 전투선 앞에서 볼 수 있을까? 그림처럼, 수메르인들이 그들 뒤에 있으며, 여전히 전투에 참여하고, 여전히 포로를 잡고 있으며, 여전히 어떤 종류의 소탕작전을 수행하는 동안, 그들은 마치 이미 전투에서 싸우고 포로를 잡은 것처럼 보이며, 전쟁터에서 조용히 떠돌아다니는 것처럼 보인다. 왜 어떤 수메르 예술가들이 수메르 군인들을 그런 부차적인 역할로 묘사할 이유가 뭐가 있는가?
위의 패널에 대한 또 다른 설명이 더 의미가 있다. 이 사람들은 수메르 사람의 “동맹국”이 아니다. 그들은 전장(戰場)에서 도망가는 적들이다. 벗은 사람은 상처를 입은 사람이다. (포로들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망자와 부상자는 포로로 잡히지 않았더라도 돌격하는 전차 아래에 짓밟히고 있는 사람처럼 나체로 표시된다.) 그 들은 이미 패전하여 총퇴각할 수밖에 없다. 전장에서 호송되는 쓸데없는 포로들의 묘사보다는 오히려 다음과 같은 해석으로 완성할 수 있다. : 수메르 군인이 적을 공격한다. 그들은 전투에서 적을 물리 쳤다. 적들이 도망간다.
위의 장면에서 일부 사람들은 부상당했고 또 어떤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무기를 가지고 있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공황 상태에 빠져 버렸다. 다른 모든 사람들은 반대 방향을 향하여 도망가기를 원하는 반면, 한 부상당한 적군 병사는 동료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소름 끼치는 시선으로 뒤를 힐끗 돌아본다. 중간에 적군 병사가 상처 입은 동료를 전쟁터에서 호송한다. 그 뒤에 군인이 한 손으로 가슴에 손을 쥐고 다른 손으로는 자신의 벌거벗음을 덮으려고 한다. 칼을 든 또 다른 병사가 그를 따라온다. 이것은 수메르 왕 외에 칼을 든 유일한 군인이다. 그는 수메르 왕 외에 칼을 든 유일한 군인이다. 이것은 그가 고위 장교 일 가능성이 높은 장군임을 암시한다. 장면을 확대하려면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일부 적군 병사가 옷을 입은 이유는 적군 병사를 모두 알몸으로 묘사하는 것이 무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보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 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가? 모든 벌거벗은 사람들은 거의 비슷하게 보인다. 우르의 군기에 있는 모든 얼굴이 똑같이 그려지기 때문에, 적을 확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의 옷에 의한 것이다. 각진 스커트는 적의 유니폼이다. 현대 관람객들은 그의 독특한 각진 스커트로 적을 식별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수메르인은 확실히 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를 다시 적국(敵國)의 왕으로 데려온다. 아래 그림을 다시 한번 보라. 인물의 손상된 상태에도 불구하고, 그가 자신의 가운 아래에 입는 스코트는 옆에 서있는 군인이 착용하는 수메르인의 “주름장식이 있는 스커트”와는 다르다. 전장에서 달아나는 적군 병사들이 입는 것과 같은 “각진 스커트”이다. 이 인물이 새로운 인물이라면, 어떤 수메르 관람객들에게도 그가 전장에서 패배하여 사로잡힌 왕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았을 것이다.
참고 : 이전에 지적한 적은 없지만, 그의 오른쪽 겨드랑이 안쪽에 집어넣은 손의 위치를 주목하라. 이것은 그가 넘어지는 방식이 아니다. 동일한 제스처는 왕의 면전 (군기의 평화 측)과 종교 행렬의 일원에 의해서도 수행된다. 그것은 또한 수메르 예술 작품들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제스처는 항상 왼쪽 팔을 오른쪽 겨드랑 아래에, 오른쪽 팔을 접은 채로 동일한 방식으로 수행된다. 이 제스쳐의 의미는 알려지지 않았다고 항상 생각해왔다. 이것은 복종과 순종의 제스처에 지나지 않는다고 추측한다. 이 특별한 경우에는 항복의 제스처이다.
이런 종류의 각진 스커트를 볼 수 있는 또 다른 곳이 있다. 이것은 우르의 군기의 다른 쪽에 (적절하게) 충분하다. 군기의 “평화 장면”을 살펴보라. 중앙 기록은 백성들이 풍요로운 땅을 가져 오는 행렬을 보여준다. 양, 가축, 염소, 물고기 등을 묘사한 것이다. 묘사된 패널은 “기도의 위치”에 있는 손을 가진 사람이 인도하는 종교 의식의 일부이다. 행렬은 왕의 승리를 기념하는 감사의 축하이다.
상단 오른쪽에 있는 사람은 기도로 손을 접었다. 오른쪽 하단에 있는 사람의 순종의 제스처를 주목하라.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자신들의 생산물들을 가져오고 있고, 묘사된 모든 사람들은 마지막 두 사람들을 제외하고 수메르인(人)들이다. 맨 아래 줄의 왼쪽에서 두 번째는 곱슬머리를 가진 남자이다. 그는 민머리를 가진 수메르인 들과는 모양이 다르다. 그는 다른 종류의 벨트를 착용하고 짧은 스커트를 입는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가 기르고 있고 묶어있는 양을 볼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는 언제나 수메르 인들의 친구이자 동맹국 인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사람들을 대표하는 사람으로 묘사되었다.
이제 하단 기록을 살펴보라. 그곳에는 독특한 각진 스커트를 입은 많은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패배한 적이다. 유일하게 추측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소지하는 물품은 자발적인 기부가 아니라 공물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우르의 군기의 “전쟁장면”에서 전투에서 패배하였으므로 군기의 “뒤집어 놓은 부분”에서 승리자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행렬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이 많은 종류의 물건을 마치 짐을 지고 가는 짐승처럼 짐을 지고 있다는 사실은 수메르 인들에게 왕이 그들을 적들로부터 보호하고 적대적인 외국 땅에서 공물을 제공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복한 왕에게 경의를 표한 패배한 적의 전시는 고대 세계에서 공통적인 모티브였다.
승리 행렬에서, 세 남자는 적의 곱슬머리를 가지고 있지만 귀족들과 고위 관리들이 보통 착용하는 종류의 치마를 입는다. 아마도 이들은 상단 기록에서 처형된 적군들을 대신하도록 임명된 "대체 영주"일 것이다.
마지막 패널은 항상 “기상천외한 패널”로 묘사되었다. 그러나 예술가가 군기의 앞면과 뒷면을 복잡하고 미묘한 뉘앙스의 전쟁과 평화의 이야기로 채우지 못할 것 같다. 그리고 그가 마지막 패널에 왔을 때, 갑자기 손을 내미면서 말했다. “좋아요. 아이디어가 없어지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상천외한 패널이 있다.” 마지막 패널들은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제안한다.
상단 기록에서는 숫양이 나무의 높은 가지를 먹고 있다. 이 이미지는 많은 수메르 유물에서 발견되며 수메르 자체의 상징인 것으로 보인다. 꿇어 있는 발과 꼬리가 있는 오른편에 있는 손상된 생물체의 신원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것은 "황소 / 남자", 수메르 신화에서 반복되는 인물일지도 모른다.
중간 기록에서 수메르 소년은 숫양으로 제물(祭物)을 만들고 있다. 그런 다음 각진 스커트를 입은 적군이 나타난다. 그가 숫양을 가지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가 손에 든 물건은 손상되었지만, 그 끝은 검이나 단검의 칼끝처럼 보인다. 그것은 칼날이 수메르 군인들의 망토를 가로 질러 나타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숫양의 몸을 가로 지르는 것처럼 보인다. 위의 그림에서 적은 전쟁으로 이어진 도발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적의 갑작스런 출현은 최종 패널이 그렇게 “기상천외한”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그런 다음 마지막 기록에 숫양이 없어지고 (?) 나무는 사자 머리의 독수리 인 Anzud의 두 개의 이미지와 나란히 놓여서 “전쟁”을 암시하는 사람 머리 황소를 공격한다. 군기의 앞면과 뒷면처럼, 마지막 패널 역시 “전쟁”과 “평화”를 대표하는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패널의 상단 기록, 중간 기록 및 하단 기록의 고해상도 사진을 보라. Michael Greenhalgh의 고해상도 사진은 opencontext.org에서 구할 수 있다. 한 쪽이 전쟁이면 반대쪽은 평화를 의미한다.
상단 기록에는 수메르 인들에게 상징적으로 중요한 8개의 뾰족한 장미꽃이 달린 두 개의 꽃 식물이 있다. 중간 기록에서 표범이 숫양 (뿔이 손상됨)에게 몰래 접근하고 있다. 그 때 숫양이 위험을 피하는 게 보인다.
수메르의 전차 : 전에는 지적한 적이 없었지만, 랙 하단의 “창”은 사실상 철퇴이다. 손잡이가 더 두껍고 헤드가 위에 그려진 창과 다르다. 이전에 사용 가능한 표준의 저해상도 사진에서는 이 점이 덜 분명했다. 고대 수메르 전차의 현대 드로잉에서, 심지어 다른 모든 세부 사항에서 정확하더라도, 철퇴는 표시되지 않았다. 말의 고삐를 분리하는 데 사용 된 고삐 게시물과 반지를 확인!
그림을 보면서 “저 운전자는 전차를 모는 사람이 되기에는 너무 뚱뚱하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차를 모는 사람이 너무 뚱뚱하면 안된다. 무거운 운전자는 전차의 속도를 늦게 만들고 말을 지치게 한다. 아마도 그가 앉아서 그렇게 뚱뚱해 보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른 모든 운전자는 아래에 묘사 된 것과 같이 일어서 있고, 게다가 전차에는 좌석이 없다. 그 다음 그 다리가 전차의 안쪽에 매달린 채 난간 꼭대기에 앉아 있음을 깨달았다. 아마 앞쪽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더 잘 볼 수 있도록 측면에 기대고 있는 것 같다. 그는 전투에 들어가기보다는 오히려 무심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전차는 전선(戰線)에서 마지막 전차이며 다른 전차와 마찬가지로 “공격 속도”에 도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전차 패널을 재구성하여 인물에게 가한 피해가 보완되었다. 또한 다음 두 전차 패널도 재구성되었다. 우르의 군기의 제일 아래 기록에 있는 4대의 전차 중 오직 이 한 대는 심하게 손상되었더라도 원래 형태로만 사용할 수 있다. 이것은 4,400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전차가 원래 상태와 비슷한 모습으로 볼 수 있는 첫 번째 시간이다. 재구성과정과 고해상도 그림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는 수메르 전쟁 전차를 참조하라.
전차 공격은 천천히 시작된다. 군인들은 무기를 어깨와 팔에 들고 운전자는 약식으로 앉아 있다. 말들이 걷고 있다. 그런 다음 그들은 달려들었다. 그 뒤에 있는 군인이 무기를 휘두르는 동안 공격의 증가하는 추진력을 보여주면서 이제 운전자가 선다. 말은 떨어진 적군의 시체를 짓밟는다.
그리고 그 말은 전속력으로 달리고 시체들은 더 쌓이고 있다. 마침내 그 들은 패배한 적들로부터 승리를 이룬다. 이 역동적이고 사실적인 패널과 1200년 후 완성된 훨씬 과장되고 형식화된 람세스2세의 전차 패널을 비교하라.
이 군기는 반대 순서로 읽어야한다고 제안되어왔다: 전차 공격, 다음에 보병 공격, 다음에 항복 의식. 그러나 전차의 공격 패널에 있는 적들은 대형(隊形)을 이룬 것도 아니며, 무기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저항 할 수 없다는 점에 유의하라. 그들은 이미 패배했다.
우르의 군기에 묘사된 전투에서, 전차는 패배한 적을 추격하고 죽이기 위해 사용되었다. 적군은 이미 보병에 의해 완패 당했고, 그 다음 전차들이 달아난 병사들을 들이 받기위해 출동했다.
이 군기의 시간배열은 뭔가 혼란스러워 연대기 순서대로 배열해보았다. 제일 위 기록에는, 수메르 병사들이 팔랑크스 대형(밀집대형)으로 공격한다. 짧은 전투가 있었고 적들은 후퇴하기 시작한다. 중간 기록에는, 수메르 전차가 도망가는 적들을 들이 받을 때, 퇴각은 패배가 되어 버렸다. 밑의 기록에는, 왕은 그의 전차에서 내리고 공식적인 항복 의식을 관장한다. 위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된다.
고려해야 할 우르의 군기의 또 다른 측면이 있다 : 전투 패널에서 수메르 왕은 어디에 있을까? 전투에 거리를 두면서, 공식적인 항복 의식에서 왕은 수동적인 목조입상(木彫立像)인가?
고해상도 사진에서, 왕은 투구과 갑옷을 입고 잇음을 보여준다. 그는 또한 그의 어깨에 무기(큰 도끼나 낫 모양의 칼)를 들고 그가 전투 중에 있음을 나타낸다.
옛날에는 왕이 군림만 하는 게 아니라 통치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왕들은 행정가일 뿐만 아니라 전사(戰士)였다. 자기가 용감한 전사이자 유능한 장군이라는 것을 증명하지 않는다면, 당시 왕은 그의 백성의 존경심을 얻을 수 없었고 야심적인 영주들을 장악 할 수도 없었다. 왕들은 병사들을 앞에서 이끄는 상남자였다. 이 군기가 제작되고 3백년 후, 18세기까지 전세계에 걸쳐 다른 왕들도 그렇게 했듯이, 우르남무 왕은 전투 중에 부상을 당해 죽었을 것이다.
승리의 비석에서 에안나툼 왕은 남자들을 전장에서 그리고 전차에서 전투에 이끄는 것을 보여준다. 우르의 군기에 나오는 왕은 더 적은 일을 할 수 있는가? 전투 중 영웅적인 전투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놀라운 일이다. 그렇다면 수메르 왕은 전투 패널에서 어디에 있는가?
에안나툼처럼 왕의 휘장을 입지 않았을지라도, 전차를 모는 사람이 왕일 것이다(맨 위 기록에서 왕을 나타내는 것은 오직 예복뿐이다.) 당연히 왕는 선두에 있는 전차에 있는 그 사람이다. 그는 전차를 운전할 뿐 아니라 무기를 휘두르고 있다.(그 인물에 대한 손상 때문에, 그 무기가 철퇴인지 큰 도끼인지 알 수 없다.) 상단 기록에서 왕의 전차가 두드러지게 보이는 이유는 왕이 전차를 이용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선두에 있는 전차를 모는 운전자의 옆모습과 평화패널에서의 왕의 옆모습이 가장 흡사하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군기에 나오는 얼굴들이 포괄적이기 때문에 너무 많지 않는 인물들을 여기에 그려 넣을 수 있고, 그래서 이 것은 각 개인을 구별할 수 있는 초상화가 아닌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과, 왕이라고 가장 정확하게 기대할 수 있는, 선두에 선 전차를 모는 사람과 가장 흡사하다는 것은 우연의 일치를 넘어선다.
왕이 선두에 있는 전차에 있다는 또 다른 암시는 왕의 전차와 또 다른 세 전차들과의 미세한 차이에서 발견할 수 있다.
: 모든 전차는 상단에 독특한 이중 곡선을 가지고 있다. 왕의 전차는 전면 패널 꼭대기에 뾰족한 부분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확대하면 가장 잘 보인다. (비록 그것이 전차의 정면에 보이지만, 뽀족한 부분의 패널은 실제로 전차의 측면을 잘 보여준다, War Chariot Deconstructed 참조). 이 뾰족한 끝이 있는 패널은 다른 전차들로부터 왕의 전차를 구별하게 해준다.
선두에 있는 전차 (부분적으로 복원 됨) 고해상도 사진을 보려면 그림을 클릭하십시오. 원래 상태로 보려면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왕이 선두에 있는 전차에 있다는 가정에 반대하는 두 가지 주장이 있다. 우선, 장식 판넬의 세부 사항은 위의 전차와 위 기록에 표시된 왕의 전차에서 정확히 동일하지 않는다. 이것은 아마도 화가가 한 단순화일 것이다. 왜냐하면 밑의 기록에 있는 전차의 전면 패널 모두가 더 작은 크기로 그려져서, 그들의 장식은 그다지 상세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경우, 패널의 뽀족한 부분은 이것이 왕의 전차임을 암시하기에 충분하며 장식은 작은 전면 패널에서 더 추상적으로 표현된다. 이 것들은 찍어낸 것과 같은 똑같은 전차들이 아니다. 그것들은 각각 개별적으로 생산되었지만 모든 세부 사항과 면적에서 정확히 똑같지는 않다. 그러나 그것은 선두에 있는 전차의 앞쪽 패널인 왕의 전차가 다른 것들과 다르다는 걸 보여주려는 고의적인 효과가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뾰족한 것이 있는 패널은 에안나툼 왕의 전차에서도 볼 수 있다. 그것은 왕의 전차를 다른 것과 구분 짓는 것이다.
둘째로, 왕은 군기의 전쟁과 평화 장면의 위 기록에서처럼 정상보다 더 크게 그려지지 않았다. 이것은 전차 모는 사람이 다만 평범한 남자이고 그러므로 왕이 아닌 것을 의미 할 수 있다. 또는 아마도 이것은 왕이 이미 전차에 서 있었기 때문에, 왕이 키 큰 사람처럼 보여주기는 어색 할 것이다. 왕의 키는 위와 아래 장식 테두리에 의해 제한된다. 우르의 군기 화가는 전투 장면을 현실적으로 묘사하려는 모든 시도를 했다. 그래서 아마도 화가는 당시의 예술적 관례처럼 왕을 비정상적으로 크게 끌어들이는 강박감을 느끼지 않았다. 그는 이미 군기의 다른 부분에서 두 번이나 했기 때문에 전투 현장을 실감나게 보이기를 원했다. 왕을 정상보다 크게 만들지 않으므로 군기의 화가는 모든 역사에서 최초의 진정한 현실적인 전투 장면을 창조했다.
왕이 전차 공격을 주도하는 것으로 보인다면, 보병 전투 중에 그는 어디에 있는가?
독수리비에서 에안나툼 왕은 그의 군대를 도보와 전차로 이끌고 있다. 그는 낫모양 칼을 든 채로 보이기도 한다.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우르의 군기는 전투에서 왕의 역할을 묘사하기 위해 같은 형식을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그림은 적군인 포로를 데려 간 수메르 "군인"을 보여준다. 이 수메르 군인은 전투 선봉, 군대의 선두에서 보인다. 이것은 그가 보병 지휘관임을 나타낸다. 그는 에안나툼처럼 낫모양 칼을 들고 다닌다. 그는 낫모양 칼, 즉 왕의 상징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군인이다. 그러므로 이것이 수메르 왕의 그림이라고 제안할 수 있다. 에안나툼처럼, 그도 몸소 도보와 전차로서 그의 군대를 승리로 이끈다. 이것에 대한 더 깊은 증거는 적군인 포로가 왕 앞에서 수행되는 “복종과 순종의 제스처”를 수행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단지 왕이 아니라, 군대의 머리인 장군일 뿐이라고, 그리고 선두에 있는 전차 안에 있는 남자는 단순히 전차 모는 사람의 지휘관이라고 주장 할 수 있다.; 만약에 장군들이I 전투장면에 표현되고 있다면, 장군들은 왕을 따라가는 중이라고 예상한다. 왕은 항상 도보와 전차로서 선두 지휘한다. 독수리비와 같이, 군기도 모두 왕과 관련되어 있다. 그래서 그렇게 두드러지게 왕이 나타나지 않은 일은 없을 것이다. 왕이 계속 거기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당연히 독자들이 이런 사실을 깨달을 때, 선두에서 병사들을 전투로 이끄는 사람이 바로 왕이다 결국 다른 누가 그럴 수 있는가? 당연히 패배한 적들에게 승리를 거두는 선두에 있는 전차가 왕의 전차이다. 다른 사람은 불가능하다.
위의 그림을 대하면, 실감나는 전투 장면을 묘사는 우르의 군기의 화가의 기술을 볼 수 있다.
전투에서 수메르 왕
: 그는 이제 적군 병사와 싸운다. 그에게 상처를 입히고, 그를 포로로 데리고 오고, 포로의 옷을 벗겨 낸다. 칼을 휘두르며, 그는 이미 공격할 다음 사람을 보고 있다. 이 사람은 극심한 공포에 질려 왕을 뒤돌아보면서 도망가기 시작했다. 이 것은 전투에서 중요한 순간이다. 바로 여기가 왕의 무력(武力)으로 적이 패배하는 장소이다. 바로 이곳이 완패가 시작된 곳이다.
고대 전투는 종종 개별 전투에 종사하는 적군 왕과 함께 묘사되었다. (전투 중 실제로 일어난 것인지 아닌지). 고대 전쟁의 묘사에서 정복한 왕은 단 하나의 계급이 낮은 적군과 시간낭비하지 않는다. 즉 이 사람은 평범한 적군 병졸이 아니다. 왕은 항상 자신의 지위를 의식하고 있다. 전투가 한창일 때도 왕은 다른 고위 신분인 왕족과 싸우길 선호했다. 수메르 왕에 의해 패배 한 남자는 왕의 관심을 보증할 만큼 충분히 중요한 사람이어야 하고, 그가 패하는 것이 그의 부하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그래서 허둥지둥 퇴각을 야기할 만큼 중요한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 항복의 제스쳐를 하는 “굴러 떨어진” 병사는 실제로 적군의 왕이다. 전에는 지적하지 않았지만, 수메르 왕이 하나가 아닌 두 개의 의복을 들고 다님을 주목하시오. 그는 팔에 걸친 채 적의 왕의 스커트를 가지고 있고 예복도 손에 잡은 체 가지고 있다. 다른 적군 병사는 두 벌의 의복이 없다. (적의 옷은 나중에 항복 의식을 위해 그에게 다시 입혀질 것이고, 따라서 그를 체포 된 왕으로 식별 할 수 있게 만들 것이다.) 왕이 굴러 떨어진 것을 보자, 왕의 부하들이 도주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이 자가 사로잡힌 적군의 왕이라는 추가적인 증거가 있다. 우르의 군기에, 전투 군기의 출현은 왕을 예술적으로 식별하는 장치로 사용된다. 수메르 왕과 적군 왕 둘 다 모두 군기를 들고 다닌다. 위에 그려진 적군의 왕은 전투에 들어가면서 자랑스럽게 전투군기를 높이 들고 다녔다. 이제 떨어진 군기는 그의 다리 사이에 누워있다. 이 것은 수메르 왕이 개별적인 전투에서 그의 적수(敵手)를 패배시키고 전쟁에서 승리할 때 잘 알려진 이벤트를 묘사했을 것이다. 패배한 왕의 “의복 벗기기”는 승리의 상징이다. 다음에, 수메르 왕은 전차에 타서 도망가는 적들을 땅에 떨어뜨릴 것이다.
1. 제일 처음에 진열된 포로이기에 제일 중요한 사람이기 때문에, 수메르 왕 앞에 서있는 사람은 적의 왕이다. 그의 옷차림은 적군의 옷차림과 일치한다. 수메르 왕과 마찬가지로 그도 예복을 입었다.
2. 포로들이 신분의 순서와 중요성에 따라 진열되기 때문에, 그 다음 포로는 아마 장군일 것이다. 위 기록에 진열된 모든 포로들은 중요한 고위 신분인 귀족들이다. 그 들은 나중에 처형당했을 것이다.
3. 왕의 말 앞에 걷고 있는 작은 사람은 실제로 소년이며 왕자고 수메르 왕의 아들이다. 그는 앞에 있는 사람들을 흉내를 내면서 병정놀이 하는 중이다. 그도 역시 그의 아버지의 왕의 홀을 들고 있다.
4. 수메르 왕의 뒤에 서있는 사람들은 그의 장군이다. 왜냐하면 왕에게 가장 가까이 서있는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또한 그의 아들들일 수도 있다.
5. 얼룩망토를 입은 보병들은 일반 병사(병졸)들이다. 그들은 전투에 행진하지 않는다. 그들은 창을 들고 밀집대형을 이루고 이미 공격하는 중이다.
6. 어깨에 갑옷을 걸친 병사들은 고위 계급 장교(귀족)들이다. 그 들은 같은 갑옷을 입었기 때문에 포로들을 진열하는 병사들은 호위병이 아니라 수메르 귀족이다. 그 들은 전투에서 직접 사로잡은 포로들을 왕에게 바치고 있다.
7. 전투에서 보병은 적을 패퇴시키는 데 사용되며, 전차는 도망하는 적군 병사를 추적하는 데 사용된다.
8. “각진 스커트”를 입은 사람들은 전쟁 포로를 호송하는 보조 병력이 아니다. 그들은 적이며, 승리하는 수메르 인들에게서 도망가고 있다.
9. “각진 스커트”를 입은 사람들은 수메르 왕의 승리를 표하는 군기의 “평화 장면”에서 종교행렬에서 나타난다. 그 들은 수메르와 동맹을 맺은 친구이자 감사의 선물을 가지러 온 “먼 곳에서 온 사람들”이 아니다. 그 들은 패배한 적이며, 승리한 수메르 왕에게 조공을 바치고 있다.
10. 각진 스커트를 입은 적군은 또한 우르의 군기의 마지막 패널에 상징적으로 전쟁으로 이끄는 도발을 행하면서, 나타난다.
11. 군기의 앞과 뒤와 마찬가지로 마지막 패널 역시 전쟁과 평화를 나타낸다. 이 것들은 단지 기상천외한 장면들이 아니다.
12. 수메르 왕에게 잡혀온 포로는 실제로 수메르 왕과 개별적인 전투에서 진 적군의 왕 그 자신이다. 승리한 왕은 적군의 왕의 스커트를 팔에 걸치고 그의 예복을 손에 움켜잡았다. 떨어진 적의 군기는 그의 다리 사이에 누워 있다.
13. 지금까지 설명 할 수 없었던 겨드랑이 밑에 한 손을 집어넣는 제스처는 복종과 순종의 제스처이다. 또한 포로로 잡힌 적의 왕에 의해 수행된 항복의 제스처이다. 따라서 그는 공식적으로 그의 패배를 인정한다.
14. 수메르 왕은 왕의 상징인 낫모양 칼을 든다. 다른 수메르 군인들 중 어느 누구도 검을 들고 다니지 않는다. 적군 병사 중 단 한 명만이 칼을 가지고 있으며, 그가 고위 관료, 아마도 장군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15. 공격 장면에서 왼쪽 전차의 운전자가 앉아 있기 때문에 실제보다 짧고 무거워 보입니다. 무기 더미의 하단의 "창"은 실제로 철퇴이다.
16. 우르의 군기는 모든 역사에서 최초의 현실적인 전투 장면이다.
17. 공격 장면의 선두에 있는 전차에 있는 뾰족한 것이 있는 앞 패널은 그것이 왕의 전차임을 나타낸다.
18. 수메르 왕은 패널 상단에 딱딱하고 공식적인 명목상의 대표가 아니다. 그는 전투 장면, 도보 및 마차에서 적과의 영웅적인 전투에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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