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당신을 순례자로 만들 것이다
존 번연. (2019). 『 천로역정 』선한청지기
천로역정이란 말을 처음 들은 것은 아마도 학생회 여름수련회였던 것 같다. 저녁집회를 마치고 늦은 밤, 반별로 구석구석을 다니며 어려운 미션을 수행하고 통과하는 그 모든 순간들이 유쾌함과 즐거움으로 가득 찼다. 천로역정의 하이라이트는 관 속에 들어가 자기 임종을 경험하는 순서였다. 선생님의 안내를 따라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얼기설기 짜 놓은 관 속에 누워 보는 것만으로도 감수성 예민한 중학생들은 언젠가 죽는 날이 온다는 것을, 그 때에 나는 어떤 모습일까를 상상하기에 충분했다. 천로역정은 그렇게 그 의미와 뜻을 알기 전, 수련회를 위한 멋진 프로그램이었다.
<천로역정>의 저자 존 번연(1628-88)은 수 백 년 후, 자신의 이름을 딴 수련회 프로그램이 수행될 것을 상상도 못했으리라. 아니, 책 서두에서 ‘이 책에 대한 저자의 변명’을 써야 할 만큼 변변치 못하다고 생각한 그의 책이 기독교 고전이 되어 여전히 애독되고 있는 것을 상상도 못했으리라. 그러나 누구든지 책을 펼쳐서 읽기 시작한다면, ‘이 책은 당신을 순례자로 만들 것’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주인공 ‘크리스천’과 함께 동행하는 순례자로 변모하고 만다.
주인공 ‘크리스천’은 자신이 살고 있던 저주받은 도시를 떠나 영원한 천국을 향한 순례의 여정을 떠난다. 그 과정 속에서 만나게 되는 인물들은 무려 140여 명이나 된다. ‘유순’과 ‘고집쟁이’, ‘세속현자’나 ‘나태’, ‘거만’, ‘천박’, ‘허례’, ‘위선’과 같은 사람들, ‘경건’, ‘자애’라는 아름다운 처녀를 만나고, ‘이단’과 ‘교황’이라는 거인을 거쳐, ‘믿음’, ‘소망’ 등과 동행하기도 한다. 이들의 이름과 그들이 쏟아내는 말과 행동들을 따라가다 보면, 나 역시 언젠가 그들을 만났고 또 만날 것이며 동행하곤 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실은 내가 살아온 삶의 여정이 저자의 말처럼 순례였음을, 지금도 그 순례의 길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등장하는 인물들의 대화를 통해 인용하는 성경구절들은 그 구체적인 상황의 적절성 때문에 놀라움을 자아내게 된다. 저자 존 번연은 존 밀턴과 함께 17세기를 대표하는 청교도 작가이기는 하지만, 겨우 초등교육 정도만을 받았을 뿐이다. 그는 무학자(無學者)는 아니었지만 읽고 쓸 줄 아는 정도의 교육 정도만을 받았을 뿐이다. 그럼에도 그의 문장 속에는 청교도적 삶의 체험과 정신이 녹아 있고 자유자재로 성경을 인용하는 능력은 어느 신학자도 따를 수 없는 탁월성을 보인다. 요즘처럼 성경 프로그램이 있지도 않은 시대에 도대체 성경을 얼마나 읽고 외웠기에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싶다.
<천로역정>의 원서 제목은 ‘Pilgrim Progress’이다. 순례자를 의미하는 필그림은 라틴어 ‘페레그리누스 Peregrinus’에서 나온 말이다. 원 뜻은 ‘낯선 곳에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보다 손쉬운 표현으로는 ‘스트레인저 stranger’, 낯선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낯선 사람, 이 세상을 낯설어 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저자는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묻고 있는 셈이다. ‘당신은 이 세상을 통과하는 순례자인 것을 기억하는가?’ 혹시 ‘이 세상이 너무 익숙하고 친숙하여 정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존 번연은 베드포드 근처 엘스토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설교를 위하여 잠시 런던을 다녀오는 일 외에는, 거의 일평생 그곳을 떠나지 않고 거기서 성장하고 사역을 했다고 한다. 순례자의 삶에 대해 책을 쓰기는 했지만, 정작 본인은 변변한 여행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다. 반면에 우리는 원하기만 한다면 언제든지 낯선 곳으로 떠날 수 있는 시대를 산다. ‘여행자는 요구하고 순례자는 감사한다.’ 중세 라틴 격언이다. 소비하고 스쳐 지나가는 여행자가 아니라 천성을 향해 한 걸음 씩 내딛는 순례자의 삶에는 감사가 있다. 인생의 순례길에 ‘감사’라는 아이템을 얻었으니, 남은 순례길도 잘 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