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다저스 2선발로 데뷔전을 치른 류현진. 비록 패전투수가 됐지만 그는 앞으로 경기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값진 경기였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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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렀던 어제 하루는 저한테 아주 긴 시간들이었습니다. 칭찬과 비난이 공존하는 가운데 결코 잊지 못할 첫 경기가 됐으니까요.
어제 경기 후 인터뷰에서도 말씀드렸지만 많이 노력했는데도 긴장을 떨치지 못하고 마운드에 올랐습니다. 등판하기 전에는 제 자신과 끝없는 대화를 나누며 ‘현진아, 괜찮다. 긴장하지 말자. 부담을 덜어내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즐기며 해보자’라고 마인드 컨트롤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경기 중에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베테랑 타선들과 싸우는 메이저리그 신인 선수만 홀로 마운드를 지키고 있더군요.
데뷔전 이전 까지만 해도 제 야구인생에 있어 최고의 긴장감은 2008베이징올림픽 3차예선 캐나다전, 9회말 만루인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경기에선 그 당시의 긴장감보다 수십 배는 더한 가슴 떨림을 맛보며 마운드에서 제 자신과 싸웠습니다. 입이 바짝바짝 마르면서 공을 어떻게 던져야 할지 몰라 아득해지는 황당한 경험도 하게 되더라고요.
메이저리그는 역시 메이저리그였습니다. 시범경기 때 보인 선수들 실력과 시즌 경기 때와는 천양지차였거든요. 저도, 상대 타자들도 훨씬 더 집중해서 경기를 풀어갔는데 아마 신인인 저보다는 경험 많은 상대 타선이 그런 점에선 유리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개막전 선발로 나가 9이닝 동안 4피안타 1볼넷 7탈삼진 무실점의 완봉승을 따낸 클레이튼 커쇼. 커쇼는 이날 데뷔 6시즌 만에 첫 솔로홈런을 터트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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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전 때 우리 팀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가 정말 완벽에 가까운 피칭을 선보였기 때문에 저도 잘 던져야 한다는 부담이 컸습니다. 데뷔전이다 보니 다저스 팬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고 싶었고, (박)찬호 형 이후로 오랜만에 한국인 선수가 다저스에 합류한 터라 LA 한인 팬들의 뜨거운 관심과 응원에 보답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1회 처음으로 마운드에 올라가면서 ‘무조건 잘 던지자, 나도 점수를 주지 말자’라고 굳게 결심했는데 첫 타자부터 안타를 치고 출루하니까 잠시 ‘이게 뭐지?’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제 경기는 한 마디로 류현진 답지 않은 경기였습니다. 주루플레이에 대한 비난 또한 진심으로 반성했고, 마음은 쓰리고 아팠지만 아주 좋은 경험을 한 것 같아요. 다음부터는 내야 땅볼로 아웃된다고 해도 전력 질주하거나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하겠다는 각오로 최선을 다하는 모습 보이겠습니다. 물론 부상은 조심해야 되겠죠.
7회 주자를 남겨 놓고 마운드에서 내려온 류현진. 좀 더 던지고 싶은 욕심은 있었지만, 감독의 결정을 이해하고 받아들였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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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회 교체돼 마운드를 내려오면서 순간 좀 더 던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투구 수가 많지 않았고, 상대 투수가 타석에 서기 때문에 잘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이란 자신도 있었으니까요. 아주 잠깐의 욕심이 생겼는데 곧 수긍하고 받아들였습니다. 교체 타이밍은 감독님의 고유 권한이니까요. 제가 더 던진다고 해서 잘 하리란 보장은 없잖아요^^.
어제 경기를 통해 얻은 소득이라면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선수들이 훨씬 더 공격적이란 사실입니다. 처음에 카운트를 잡으려고 던진 공들이 많이 맞았거든요. 앞으로는 그런 공을 더 신경 써서 던져야 할 것 같아요. 가운데로 몰리는 공이 많으면서 무려 10개의 안타가 터졌어요. 공을 낮게 낮게 던져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긴장감 때문에 제구가 잘 되지 않은 것 같아요.
값진 경험이었고, 잊지 못할 데뷔전이었습니다. 패전 투수가 된 데 대한 아쉬움보다는 배운 게 훨씬 많아서 소득이 큰 경기였다고 봐요. TV를 통해 지켜보신 한국 팬들의 아쉬운 탄식이 여기까지 들리네요. 너무 실망하지 마시고, 좀 더 지켜봐 주세요. ‘역시 메이저리그구나’가 아닌 ‘역시 류현진’이란 칭찬이 나올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댓글도 좀 ‘예쁘게’ 달아주시고요^^.
그리고 (봉)중근이 형이 자신도 메이저리그 데뷔전 때 다리가 후둘 거리고 포수가 잘 안보일 정도로 떨렸다고 인터뷰하셨던데, 저한테 자신감 심어주려고 일부러 그렇게 말씀하신 거 잘 알아요. 형! 그래도 고맙습니다^^. 형의 따뜻한 조언들, 잊지 않겠습니다!
*이 일기는 류현진 선수의 구술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류현진의 주루 플레이에 대한 비난에 대해 깊이 반성했다. 앞으로는 좀 더 열심히 뛰겠다고 약속한 그는 한국 팬들에게 실망을 안겨드린 것 같아 죄송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사연 많은 데뷔전을 치른 만큼 다음 경기에선 좀 더 여유있게 마운드를 운영해 나가는 류현진을 기대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