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매 선비 놀이 7 코로나 블루에 감염되다.
코로나19가 장기화 되면서 여기저기서 힘들다는 소리가 들린다.
그 동안 여러 가지 면에서 방역당국의 방침에 호응하여 방콕 집콕 하면서 견디어 왔으나 외부적 상황은 좀체 개선되지 않고 있어 정서적으로 지쳐가고 있는 모양새가 되고 있다.
심리학자들은 그런 현상을 코로나 블루라고 부르며 일종의 집단적 우울증으로 진단한다.
방역당국의 방침이 이성적으로 충분히 이해가 가면서도 만날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가야할 여행을 가지 못하는 등 불편한 현실에서 나타나는 각종 욕구 불만이 개인과 사회에 안개처럼 스며들어 평상적 관계를 일그러뜨리는 것으로 보인다. 쓰레기 같은 언론들은 이때다 싶어 매사를 정부탓으로 매도하고 있지만 알만한 사람은 아는 것처럼 이번 일은 전세계적인 현상으로 누가 누굴 탓하기보다는 거만한 인간 종족에 대한 자연의 경고나 훈계로 보는 것이 옳을 듯하다.
백신과 치료제 개발은 단기적 성과는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연이어 나타나는 각종 변이 바이러스의 출현에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우리 인간종의 문명을 변화시키지 않으면 이런 팬데믹은 일상이 되어버릴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렇다면 코로나 블루는 한 번이 아니라 앞으로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6.25 전쟁 이후에 태어나 소위 개발독재시대를 거치며 서구적 성장과 효율성 만능의 시대에 성장한 사람이지만 무언가 길을 잘못 든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그렇다고 지금의 이 익숙한 삶의 방식을 다 팽개치고 과거로 돌아가는 것도 말이 안 되니 그저 조금씩 절제하면서 살 수밖에 없는 것이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일 것이다.
국가 주식회사 같은 경제 성장론을 마뜩찮아 하면서 살아온 나 자신도 알게 모르게 그런 성장경제론의 품 안에서 살아온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차를 팔아 버리고 대중교통과 자전거로만 이동하는 실천력보다는 가까운 거리는 가급적 걸어가거나 카풀로 이동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일 뿐이다.
정신적 도덕적으로 크게 성숙하지 못한 탓이지만 그런 나 또한 평범한 이웃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다 문득 헤아려 보니 예부터 보기 힘든 나이라고 고희(古稀)라고 불렀다는 70살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애초에 내가 사는 세상을 좀 더 아름답고 사람 사는 세상으로 만드는데 자그만 기여라도 하겠다는 뜻에서 교육자의 길을 선택한 후 학교선생, 논술학원 강사를 거쳐 인문학연구소를 만든 뒤 이제 시민들과 함께 독서운동 예술 활동 등을 함께 해보려고 하다가 뜻하지 않게 코로나에 발목이 잡혀 오도 가도 못하고 있는 내 처지가 한심했다.
덕분에 책을 잡고 앉아 있을 기회나 어설픈 붓질을 할 기회는 많아졌으나 눈은 점점 침침해 오고 페이지 넘어가는 진도도 더디기만 하다. 내가 활동을 하면 이제 몇 년을 더 하겠는가.
그나마 주어진 시간을 이렇듯 코로나19라는 뜻하지 않은 장애물에 막혀 있으니 조급함이 더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그런 내 마음을 짝퉁 한시로 어설프게 표현해 보았다.
題 古稀嘆 (제 고희탄)
江山無盡生有限 (강산무진생유한)
珍藏萬卷讀破難 (진장만권독파난)
靑雲所望未半成 (청운소망미반성)
日暮途遠唯悔恨 (일모도원유회한)
자연은 끝이 없는데 사람의 목숨은 한계가 있고
아껴 모은 책은 만 권인데 다 읽어 내기 어렵겠구나.
젊은 시절 바라던 바는 채 반도 못 이루었는데
해는 저물고 갈 길은 아득하니 오직 후회만 남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