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장
첫 번째 표적: 그리스도를 믿음에서 오는 풍성함,
십자가에 달려 죽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참된 예배
(찬송 시편 1편 – 악보는 주보 및 홈페이지 참고)
2024-3-8, 금
맥락과 의미
2장에 세 가지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께서 갈릴리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이야기입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쫓아내신 이야기입니다. 세 번째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의탁하지 않으셨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전체의 주제는 무엇일까요? 세 가지 이야기에 반복돼서 나오는 단어가 믿음입니다(11, 22, 23, 24절). 이 본문은 우리에게 어떻게 예수님을 믿을 것인가를 가르쳐 줍니다. 그때와 상황은 다르지만 우리도 똑같이 이런 방법으로 예수님을 믿으라고 성령께서 말씀하십니다.
1. 가나 혼인잔치: 물로 포도주 만드심-하나님 나라의 풍요 (1-12절)
2. 성전의 상인들을 내어 쫓으심: 그리스도로 충만한 예배 (13-22절)
3. 사람들에게 자신을 맡기지 않으신 예수님 (23-25절)
1. 가나 혼인잔치: 물로 포도주를 만드심-하나님 나라의 풍요 (1-12절)
1절에 ”사흘 되는 날에.” 이것은 앞쪽과 연결되는 이야기입니다. 세례 요한이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 이튿날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로 왔습니다(1:35). 다시 이튿날에 빌립과 나다나엘이 예수님께로 왔습니(1:43).
이제 3일 때 되는 날에 예수님께서 갈릴리 가나의 혼인잔치에 가셨습니다. 잔치의 중요한 음식인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잔치의 기쁨이 덜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잔치의 기쁨이 넘치도록 했습니다.
이 기적은 예수님이 하시는 영적인 일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땅을 풍요롭게 하셨습니다. 사람에게 땅을 다스리고 정복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일할 때 땅이 그 소산을 내고 땅 가운데서 기쁨이 넘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타락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싸움이 생겼습니다.
예언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를 예언했습니다. 산들이 포도주를 낼 것이라는 예언들을 했습니다(요엘 3:18). 산에 포도가 많이 열리고 그 포도로 포도주가 많아져서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예언했습니다.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그 예언을 이루셨습니다. 땅이 풍요롭고 사람들이 먹을 소산을 내고 기쁨으로 즐거워하는 즐거움의 시대를 열어 주셨습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에게도 포도주가 필요할 때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기적이 일어나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때의 기적의 목적을 생각해야 합니다. 11절에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그 기적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메시야라는 것을 보여 주는 표시(표적)으로 행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믿음을 일으키는 수단으로 주어졌습니다.
우리는 이런 표적을 다시 요구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하늘에서 계시는 더 큰 표적과 기적을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복음이 성경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제는 새로운 표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성경 말씀을 배움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셨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특별히 어려움 가운데 있을 때,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고 믿읍시다.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영적 기쁨으로 가득 채워 주실 것입니다. 환경 때문에 오는 기쁨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와의 관계 때문에 오는 기쁨입니다. 초라한 식탁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감사함으로 받읍시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기쁨이 넘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그 말씀을 의지하여 기쁨을 누리길 바랍니다.
2. 성전의 상인들을 내어 쫓으심: 그리스도로 충만한 예배 (13-22절)
1) 성전을 정결케 하심(13-17절)
14절에 성전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팔고 있었습니다. 원래 제사드리는 사람을 돕기 위해서입니다. 멀리서 제물을 가져오기 힘드니까 성전에서 돈으로 짐승을 제물로 사도록 편리를 제공해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성전 제물을 바꾸어 주는 사람들이 영리 목적으로 짐승을 팔았습니다. 파는 사람들이 성전 바깥 뜰을 꽉 채웠습니다.
그 곳은 원래 이방인들이 와서 기도하는 장소였습니다. 이방인들이 기도할 곳을 빼앗아가 버렸습니다. 예배를 돕기 위해서 생긴 것이 엉뚱하게 예배를 방해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쫓아 내셨습니다(15절).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영광만 성전에 가득 차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때 제자들은 구약의 시편 69: 9 말씀을 기억했습니다.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니라.”
이것은 주님의 성전을 사모하는 그 열심 가운데 살아가는 구약 성도들을 노래한 시편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의 기쁨을 아는 성도들이 그 기쁨을 노래했습니다. 이 시편에는 앞으로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어 오셔서 하나님을 열정적으로 예배하시는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어떤 것도 우리의 예배를 방해하지 않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경제적으로 먹고 사는 것은 주께서 주신 복입니다. 그렇지만 물질을 추구하고 또 이 땅의 일을 하는 것에 매여서 예배를 흐트러뜨려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리들 자신이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우리 몸을 돈 버는 일에만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돈 버는 일도, 학생이 공부하는 일도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해야 합니다.
우리 마음 중심이 하나님을 향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목적으로 일을 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교회에 함께 모여서 성도들이 하나님께 찬양하고 예배하는 이 중심을 흐트러뜨리지 말기를 바랍니다.
2) 성전 파괴와 성전 회복: 예수님의 몸 (18-22절)
18절에 성전에 있는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뇨?”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삼일 동안에 일으키겠다.” 사람들이 다시 묻습니다. “네가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는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그때의 대화를 사도 요한이21절에서 해설해 줍니다.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굉장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22절에 예수님께서 땅에 묻히셨다가 삼일 후에 부활하셨습니다. 그 때에야 제자들은 예수님이 바로 성전이란 것을 알았고 그것을 다시 기억했습니다. 그 기억을 가지고 요한은 이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구약의 모든 제사는 예수님의 십자가 제사에서 완성되었습니다. 더이상 구약의 제사도 구약 성전도 없습니다. 이제는 양과 염소의 피가 없는 제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듣고 찬양하며 참된 제사인 예배를 드립니다.
우리가 모여서 예배하는 교회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성전이십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하늘에 계시지만 그 분의 영과 능력으로 우리 예배 가운데 임재하십니다. 신비하게 하나님께서 우리와 친교를 나누십니다.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그 능력이 우리 가운데 있습니다.
예배 드리면서 여러 가지 염려 걱정에 눌려 있는 것은 성전에서 장사하는 일에 바쁜 사람과 같습니다. 성전 마당을 장사하는 일로 사용하는 것처럼 주께서 싫어하십니다. 그런 염려 걱정을 쫓아내기를 원하십니다.
세상을 염려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을 의지하여서 힘껏 예배합시다. 이 땅의 정당한 일이 우리의 예배를 방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그리스도께 온전히 예배를 드립시다. 우리도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복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3. 사람들에게 자신을 맡기지 않으신 예수님 (23-25절)
마지막으로 23-24절에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실 때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분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분의 이름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분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습니다.” 믿고 맡겨 드리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어야 하지만, 예수님이 사람을 믿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사람들 속에는 죄가 있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악한 사람의 인정을 받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예수님께로 가야 합니다. 예수님을 우리에게 끌어내리려 하지 맙시다. 우리에 맞게 뜯어 고치려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권능으로 함께 하십니다.
성경에 나타난 예수님 그대로를 믿읍시다. 우리를 그리스도께 맞춥시다. 굴복합시다. 내 편리대로 하지 맙시다. 주의깊게 성경을 읽고 기도하면서 그리스도를 배우고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되어 가는 것이 우리가 해야 될 일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어야지 사람을 믿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사람의 인정과 격려도 도움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사람의 인정을 신뢰하는 그런 사람들은 되지 말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을 믿으면서 그들의 인정 때문에 우리가 굳게 서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믿어야 될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만 믿고 그리스도의 인정만 바라보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믿고 복종할 일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풍요를 기대합시다. 물질적 풍요가 없고 힘들더라도 오직 중심되신 그리스도를 믿읍시다. 그러면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을 통해서 우리 안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고 혼인잔치의 기쁨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께 예배하는데 방해되는 여러 탐욕들과 의식들을 회개합시다. 오직 참으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며 경배하도록 합시다. 그리스도를 배우고 그리스도가 원하시는 대로 우리 삶을 맞추어 갑시다. 그리스도를 우리 쪽으로 맞추어 가도록 하지 맙시다.
다른 사람들의 인정과 신뢰 가운데에서 내 삶의 기쁨을 찾으려고 하지 맙시다. 그리스도께서 주신 그 길을 가고 그리스도께서 주신 사명을 이루는 거기서 기쁨을 얻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1. 오늘 말씀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2. 오늘 말씀에서 주신 교훈은 무엇입니까? 3. 오늘 말씀에서 순종할 내용은 무엇입니까?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믿음
2장의 세 가지 이야기의 끝 부분은 믿음이라는 말로 끝납니다.
① 가나 혼인잔치 이야기의 끝 부분에 믿음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11절에 ”표적을 보고서 제자들이 예수님을 믿었다.”
② 예수님이 성전을 청결케 하신 사건도 22절에 보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및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그러니까 앞의 두 이야기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었던 이야기입니다.
③ 또 마지막 부분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지만 예수님은 자신을 사람들에게 의탁하지 않았습니다(23.24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