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의도(God's Disire)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셨을 때에는 분명한 하나님의 의도가 있는데, 그것을 모르고 헬라식 사고를 갖고 해석했다가는 하나님의 의도를 도외시한 채 목회자 개인의 의도를 가지고 설교하게 된다.
그래서 그 때 거기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뭐라고 말씀하셨고(Then &There), 그것이 오늘날의 성도들에게 어떻게 말씀하시는가(Now &Here)를 알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도를 알기 위해 히브리 사고를 알아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히브리식 사고로 해석하기 위해 하나님의 의도를 알아야 한다.
그런데 창세기부터 계시록에 이르기까지 내려오는 전체의 하나님의 의도를 통(統)이라고 하며 그 하나님의 의도는 목적(目的)이다.
신,구약 66권 전체의 맥은 통(統)자인데, 우리가 생각하는 통(統)이 아니고 하나님의 의도와 하나님의 목적인 ‘큰 줄기, 실마리’ 가 통(統)자이다.
하나님의 의도를 알기 위한 방법으로는
성경 전체를 통으로 보는 통전(統全, Wholeness)이 있고,
여러 작은 부분들을 물리적으로 합하는 통합(統合, Unity)이 있으며,
큰 줄기를 붙잡고 화학적 반응을 함께 하여 넘나드는 통섭(統攝, Consilience)이 있는데,
앞 자를 따서 ‘우크(WUC)’라 하며, 그래서 ‘우크(WUC)’라 하면 전체가 보여야 한다.
이제는 쪼개는 신학에서 붙이는 신학으로, 분석적 방법에서 3통(통전, 통합, 통섭)의 방법으로 성경을 보아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목적사(目的史)이다.
이제 이러한 방법을 갖고 성경을 구체적으로 들어가자.
통전(統全, Wholeness)
통전이란 하나님의 의도(목적, 계획, 뜻)로 성경 신,구약 전체의 큰 줄기를 통째(하나)로 한 눈에 보게 하는 것이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큰 줄기를 통으로 하나로 보는 것을 통전(統全)이라고 한다.
히브리인들은 무슨 문제를 볼 때 부분적으로 분석해서 보지 않고 통째로 본다.
이와 같이 통전(統全)은 성경 전체를 히브리식 사고로 하나로 보는 것이고,
통합(統合)은 여러 부분과 모양을 물리적인 변화로 서로 합하여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이고,
통섭(統攝)은 성경 전체를 넘나듦으로 화학적인 방법으로 합하여 제 3의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이다.
그래서 통전(統全) 통합(統合) 통섭(統攝)의 넘나듦의 방법을 사용하여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하나님의 의도를 찾았더니 ‘목적(目的)’이라는 한 단어가 나왔다.
통합(統合, Unity)
하나님께서 긴 시간동안에 여러 가지 모든 부분들의 단편적인 것들을 구체적으로 들어가서 시대적으로 다양한 방법들과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합하는 것을 통합(統合)이라고 한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팀을 만들어 서로 의견을 내어 하나의 결론을 만들어 간다.
그래서 조직신학과 실천신학이 서로 합해지면 서로 물리적으로 도와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통합은 미국의 일반학문에서 시작되었는데 1998년 미국 하버드大의 교수인 에드워드 O. 윌슨(Edward Osborne Wilson)이 쓴 『통섭 : 지식의 대통합(Consilience : The Unity of Knowledge)』이라는 책이 지금까지 하버드大를 이끌어 가고 있으며 서울大까지 들어오게 되었다.
그리고 전 세계 대학교에서 통합이라는 학문을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전혀 관련이 없는 경제(經濟)라는 독립적인 학문과 ICT(정보통신기술, Information &Communication Technology)를 서로 통합시키는 경우이다.
그래서 미래는 이렇게 통합하는 시대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통합하는 추세이며, 학문적으로는 이루었지만 ICT 분야의 한계로 이것을 병행하는 사람이 드문데, 한국인 중에서 미국 정부가 탐내는 사람이 얼마 전에 미래부장관으로 내정되었다가 돌아간 사람이 있는데, 만일 그 사람이 한국에 들어왔다면 그 한 사람 때문에 한국이 100년을 살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을 것이다.
또한 휴대폰 하나로 통화는 물론 TV도 보고, 인터넷도 하고, 사진도 찍고, 동영상도 촬영하고, 은행일도 보고, 팩스와 달력, 프린트, 계산기, 시계 등등 과거에는 독립적으로 했던 일들을 휴대폰 하나로 함께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는데, 이것을 가리켜서 지식의 통합, 즉 Unity라고 한다.
구약성경이 형성된 과정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약 1,500 여년에 걸쳐 40여 명의 성경기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것인데, 이 성경은 하나님의 점진적 계시로써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시해 주신 내용이다.
그래서 계시란 헬라어로 ajpokavluyi"(아포칼륍시스)이고 라틴어로는 ‘-을 벗긴다’는 의미의 레벨라티오(revelatio)인데, ‘장독 뚜껑을 벗긴다,
신부의 면사포를 벗긴다’는 의미이다. 계시록(Revelation)도 레벨라티오(revelatio)에서 유래하였다.
영이신 하나님께서 하나님 자신의 의도를 벗기신 것이다.
이것이 단시일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약 1,500 여년에 걸쳐서 이루어졌고, 시편의 경우에는 조각 조각 흩어져 있던 것을 1,500 여년 간에 걸쳐 모아 편집하는 기간만 150 여년이 걸렸다.
그리고 시대별로, 그 시대의 문화와 그 시대에 소수에 의해서 사용되었던 총체적인 언어와 종교 등을 긴 세월에 걸쳐 이루어져 왔다고 하여 점진적 계시(progressive revelation)라고 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벗기신다.
유대인들처럼 구약으로 돌아가면 안되고, 몰랐던 하나님의 의도를 찾아서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신약에 접목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1절 밖에 없게 된다.
초대교회 때 유대인 신자들이 핍박을 받게 되자 믿음이 흔들려 유대교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히브리서 기자가 1C 당시의 유대교 기독교인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기 위한 메시지가 바로 히브리서의 본질이다.
통섭(統攝, Consilience)
통(統)은 ‘큰 줄기, 실마리’라는 의미이고 섭(攝)은 ‘붙잡다, 쥐다’의 뜻인데, 이는 ‘큰 줄기나 실마리를 붙잡다’는 의미로 어떠한 선을 넘어갔다가 다시 나왔다가 반복하는 ‘넘나듦’을 의미한다.
학계에서는 이쪽 저쪽을 같이 붙이는 것에 대하여 융합(融合)이라고 하는데, 이것을 통섭(統攝)이라고 한다.
그래서 조직신학, 성서신학, 역사신학, 실천신학을 넘나들며 서로 융합하면서 하는 신학을 ‘넘나듦 신학’ 또는 ‘융합신학(融合神學)’이라고 한다.
만일 사과와 배가 있다면 두 가지를 하나로 묶을 수가 있는데 이것을 통합이라고 하며, 통섭은 빨간 것과 노란 것을 섞어버리면 제 3의 새로운 시너지를 가지는 것이 나오는데 이러한 화학적 변화를 융합이라고도 한다.
또한 조직신학과 실천신학이 만나면 서로 도움을 주면서 만나는 것이 통합이라면, 조직신학과 실천신학이 만나 새로운 시너지를 가지는 제 3의 새로운 목회신학이 나오는 것을 통섭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줄기를 붙잡는 것이 통섭이며 융합신학이다.
이 부분은 후일에 성서신학과 구약과 신약과 여러 가지 사본들을 가지고 역사신학과 어떻게 통섭이 되어지는가 알아보자,
그러므로 목회는 융합신학(融合神學)을 해야 대성공이다.
앞으로 영혼을 소생시키는 통섭(융합)신학 시대가 올 것이다.
지금은 신학이 4개로 나뉘어져 계속 쪼개고 찢고 분석하지만 그 신학으로는 사람을 살리지 못하고 융합신학만이 사람을 살릴 수가 있다.
다음 세대의 일반 대학생들의 머리 속에는 넘나듦의 학문이 되어 있다.
그래서 요즈음 대학교에서 쓰는 용어로 바꾸면 융합(融合)이다.
그러나 그것은 일반 학문이고, 우리는 히브리식 사고의 핵심을 말하는 것이다.
히브리식 사고가 바로 컨실리언스(Consilience), 즉 ‘넘나듦’이다.
성경 맥잡기는 하나님의 ‘큰 줄기를 붙잡기’이다.
하나님의 큰 줄기인 통((統)이 하나님의 의도요 하나님의 목적이요 하나님의 계획이요 하나님의 뜻이다.
그래서 이것이 하나님의 의도 붙잡기이다.
그런데 성경의 맥잡기라고 한다면 자칫하면 성경을 구속사적으로 본다든지, 성경을 약으로 푼다든지 등 성경을 한쪽으로 치우칠 수가 있다.
성경 전체에서 어떻게 보든지 하나님의 의도를 붙잡는 것인데, 하나님의 의도를 헬라어로 표현한다면 큰 줄기인 통((統)이라고 한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의도하고 계시는가 하나님의 의도에 대하여 넘나듦, 창세기를 보면서도 계시록을 볼 수 있는 것이 넘나듦(Consilience)이다.
(어느 학자의 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