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궁금증은 내가 그곳을 다녀온 후로부터 일주일 뒤에 풀렸다. 그날 나는 직장 일로 바쁜 아내를 대신하여 읍내의 한 마트에 장을 보러 갔는데 마침 그 마트 입구에 그 사내가 있던 것이다. 그는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마트 옆 주차장 쪽에 붙어있는 파라솔에서 소주를 먹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소주만 먹고 있었다. 그가 앉은 테이블에는 그 흔한 컵도 안주도 없었다. 차림새는 그전과 비슷했는데 여전히 허름한 작업복과 고무신을 신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머리⋯, 치렁치렁하여 뒤로 땋은 머리카락은 의외로 잘려져 있었다. 그렇다고 단정하게 정리된 머리는 아니고 마치 파마가 풀린 것처럼 산발이었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차를 주차하자마자 그에게 인사를 했다. 그러나 그 사내는 날 물끄러미 보더니 이내 남은 소주를 입에 붓고 일어서 그가 세워놓음 직한 트럭으로 가버렸다. 그와의 두 번째 만남에도 나는 환대는커녕 무시당했다고 생각하니 이번에는 은근히 화가 치밀었다.
그때였다.
“강 선상님! 마트에 장을 보러 왔심꺼?”
굵직한 목소리에 놀라 돌아보니 그는 내가 사는 마을의 이장이었다.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였지만 농사일에 잔뼈가 굵어, 웬만한 젊은 사람 못지않게 건장한 사람이었다. 우리가 이곳으로 귀촌한 후 제일 먼저 인사를 드리러 간 집이 이장 댁이었다. 그날 이장은 내가 사서 간 술을 다 먹고는 새벽까지 담은 술을 마시고도 끄떡도 하지 않았다.
“아, 네. 이장님. 뭣 좀 살 게 있어서요.”
“잘됐네요. 나도 비료 한 포대만 살라 캤는데, 우리 퍼뜩 사고 나서 요 앞에 국밥집에서 대포 한잔 하입시더.”
아직 대낮이고 오늘따라 몹시 더운 날씨인데다가 몰고 갈 차가 있는 나로서는 선뜻 내키지 않았으나 상대는 마을 이장이었다. 별수 없이 나는 아내가 시킨 대로 몇 가지 생활용품을 산 뒤 그와 함께 국밥집으로 들어갔다. 그곳 읍내의 국밥집에서 마시는 술은 도시에서의 낮술과는 사뭇 달랐다. 읍내 밥집이라 그런지 에어컨을 시원하게 켜 놓았고 생파를 총총 썰어 넣은 뜨거운 선짓국과 그 집에서 담근 막걸리는 속을 풀어주면서 동시에 시원하게 해주는 별미였다. 나는 이왕 이렇게 된 것,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자는 평소 지론대로 이장이 따라주는 잔을 매번 비워냈다. 그렇게 둘이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몇 잔을 마신 후에 나는 이장에게 그 사내에 관해 물었다.
“그런데 이장님. 아까 마트 주차장에서 혼자 술을 먹던 그⋯.”
“아! 그 굴 파는 사람 말이지요. 쯧, 또 머리카락을 팔았구먼.”
이장은 약간 비아냥거리는 투로 말을 했다.
“머리카락을요?”
“아따! 그 양반은 한 번씩 머리카락도 팔고, 시계도 팔고, 책도 팔고 해서 술을 사 먹는 모양 입디더.”
“그렇군요. 그 사람에 대해 좀 아십니까?”
“와요? 강 선상님도 굴 팔라고요? 마! 신경 쓰지 마이소. 그 양반 쪼매 이상한 사람임더. 가족도 없이 한 삼 년 전쯤에 혼자 들어와 가지고는. 뭐라더라? 몇 년 안에 우리나라가 더위 땀에 망한다던가.”
“더위요?”
“야. 지 말로는 올해 아니면 내년쯤에 불볕더위가 심해져서 모두 죽는다, 안 함니꺼.”
더위? 이 말에 나는 신경이 바짝 곤두세워졌다.
“그래서 굴을 판다구요?”
“글타네요. 그 안에 있으면 시원하다고. 그래도 그렇지, 이날 이때까지 아무 이상 없었는데 그놈의 여름 한철 가지고 뭘 그러는지 모르겠다, 아임니꺼. 여기가 어데 공기도 안 통하는 도시가? 한여름이라도 골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는 시골이제. 자자, 그라지 말고 우리 여 나가가지고 옮깁시더. 내가 시원한 맥주 한 꼬뿌 더 살게요.”
그러나 나는 운전을 해야 한다는 말로 이장의 요구를 완곡하게 거절했다. 아무리 시골이지만 낮부터 인사불성이 되어 집까지 운전할 수도 없거니와 이곳은 도시처럼 돈만 주면 어디라도 가는 대리운전도 없었다.
국밥집을 나오니 해는 중천에 걸려 있었다. 아스팔트에서 뿜어 나오는 열기가 훅, 하고 내 앞으로 불어왔다. 몹시 더웠다. 나는 잠시 현기증이 나서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아뿔싸. 낮술에 약한 내가 많이 마신 모양이었다.
“강 선상! 더운데 그라먼 조심해서 가소. 나는 한 잔 더 먹고 갈라요. 그러고 보니 오늘따라 이상하게 더 덥네.”
나는 얼른 마트 쪽으로 건너가서 그늘로 몸을 피했다. 그러면서 내내 지금이 5월 중순임을 상기했다. 그 사내의 동굴에 간지가 겨우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사이에 이렇게 더울 수가. 혹 내가 술이 과해서 그런가. 그러나 갑작스레 찾아온 더위 때문인지 도로에도, 마트 앞에도 사람은커녕 개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오늘 서울을 비롯한 일부 지방에서 낮 기온이 올해 들어 최고치인 35도까지 올라갔습니다. 이는 전년 대비 7-10도 올라간 기온이라, 기상청에서는 폭염주의보를 발행하였으며 정부에서는 전력 사용량의 폭증을 우려해 관계부처와 긴급회의를 가졌습니다. 무분별한 에어컨이나 난방사용은 전력의 절대적인 부족을 가져오기 때문에 시민 여러분들의 지혜로운 대책이 필요한 때입니다. 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도 전력 사용을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내일부터는 전국의 해수욕장이 동시에 개장됩니다.」
6월 30일이 아닌 5월 31일이었다. 라디오에서는 연이어 갑자기 더워진 이유에 대해 기상전문가와의 대담을 서두르고 있었다. 부엌에서 설거지하던 아내는 연방 땀을 닦고 있었다. 나는 모골이 송연해졌다. 아직 계절적으로 봄이라고 믿던 나는 이 이상한 기후 변화에 하릴없이 머리만 저어댔다. 그 순간 갑자기 막내 딸아이가 생각났다. 늦게 낳은 아이라 아직 초등학생이었다.
“나래는 어디 있어?”
“숙제 끝내고 아마 제 방에서 자고 있을 거예요. 여보! 그나저나 우리도 에어컨을 사야 하겠어요. 아까 퇴근 때 오다 보니 아랫마을 집들도 다 사 두었던걸요.”
나는 아내의 말에 짜증이 밀려왔다.
“무슨 소리야? 이런 산골에 무슨 에어컨? 나랑 약속을 잊었어? 자연 그대로 살기로 한 걸 말이야. 그래서 T.V도 인터넷도 안 들여놓았잖아. 그건 나래에도 좋지 않아.”
나는 짐짓 화를 내는 척하며 딸아이의 방에 들어갔다. 아이는 새근새근 잠이 들어 있었다. 얼른 덮고 있던 이불을 들춰내고 나는 아이의 옷을 걷어 몸을 보았다. 다행이었다. 아직은 아이의 피부에 열꽃의 흔적은 없었다. 산골이라지만 여기도 덥긴 마찬가지였다. 며칠 전부터 찾아온 더위는 해가 지고 나서도 밤 10시까지는 가시지 않았다.
“체! 더우면 도시든, 시골이든 시원하게 지내야지. 무슨 배짱으로 저리 한담? 이런 산골로 같이 들어왔으면 나에게도 조금은 맞추어야지.”
아내는 부엌에서 계속 불평을 해대었다. 나 못지않게 아내 역시 유난히 더위를 못 참는 체질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요구를 들어줄 수는 없었다. 그건 내 딸아이, 나래 때문이었다. 나래는 몇 년 전, 지방 소도시에서 내가 서울로 전근을 하였던 해부터 아토피가 시작되었다. 새로 지은 아파트에 전세로 들어간 것이 화근이었다. 콘크리트 벽에서 뿜어대는 유해 물질이 아이의 호흡기와 피부를 통해 들어간 모양이었다. 게다가 아이에게 더 안 좋았던 점은 낯선 도시에서 맞벌이하다 보니 자연 시간상으로 여유가 없어 아이의 식생활을 방치한 점이었다. 아이는 학교가 파한 뒤 혼자 가게에서 피자와 튀김 닭, 그리고 일회용 샌드위치, 김밥 등으로 허기를 때웠다. 나 역시 혹 일찍 퇴근하더라도 밥을 하기 귀찮아 둘이서 라면 등으로 식사를 대신 한 적이 많았다. 그사이 그렇게 된 모양이었다.
그 후로 다른 아파트로 이사를 하고 아이는 병원 치료를 받으며 제대로 된 식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토피는 낫질 않았다. 특히 여름에는 치명적이었다. 열대야가 며칠씩 계속되는 날이면 아이의 얼굴과 배 등은 열꽃이 피어나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놓아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땐 혹 저 에어컨 때문에 아이의 아토피가 더 심해가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했다. 그러나 에어컨을 끄면 너무 더워서 식구들 모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