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0년을 이어 온 백제의 정기[3] 숨겨진 비밀이 드러나는 왕궁리유적과 오층석탑 전북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 산 80 - 1번지
왕궁리 오층석탑(국보 제289호)
무왕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대형사찰이 있던 미륵사지에서 약6km정도 떨어진곳에 위치한 왕궁리에는 거대한 규모의 백제유적지가 있다. 과거엔 휑~한 들판에 탑하나 쓸쓸히 서 있었단다. 가끔 주위에서 농사짓던 사람들이 기와조각이나 돌무더기를 심심찮게 발견했는데 1989년부터 발굴이 시작되면서 근처 미륵사지와 함께 최대규모의 시설이 있었음이 밝혀졌으나 그 시설의 의미와 용도는 갖가지 설과 추측만이 난무했고, 많은 논란속에서 20년 가까운 시간동안 발굴이 진행되면서 왕궁리는 1400년전에 사라진 백제의 비밀이 벗겨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발굴조사한 결과, 이 유적은 적어도 세 시기(백제 후기∼통일신라 후기)를 지나면서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단다. 석탑 동쪽으로 30m지점에서 통일신라시대 것으로 보이는 기와가마 2기를 발견했는데 특히 탑을 에워싼 주변의 구릉지를 중심으로 직사각형 모양의 평지성으로 생각되는 성곽유물을 찾았다. 성곽의 모습은 현재 발굴을 통해 점점 드러나고 있으며 이는 성곽연구에 좋은자료가 되고 있다고한다.
또한 이 지역 안에 있는 왕궁리 5층석탑(국보제289호)과 절터의 배치를 알 수 있게 하는 유물과 바깥쪽을 둘러싸고 있는 직사각형의 성이 발견되고 있으며 이는 백제 후기의 익산 천도설이나 별도설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유적으로 떠오르고 있단다.
성곽 안팎으로는 폭이 약1m정도로 평평한 돌을 깔아 만든시설이 발견되고 있다.
외부의 침입으로 사라진 백제는 가장 기록이 남아있지 않는 나라다. 하지만 그 훌륭한 문화는 바다건너 일본까지 전파되었고, 아직도 많은 부분이 베일에 쌓여있다. 잠자던 백제의 역사가 조금씩 세상에 드러내는 이 왕궁리유적지 발굴현장에 가면 발굴되는 현장주위로 산책로를 조성해서 그 역사적인 장면들을 직접 볼 수있다.
왕궁리 오층석탑(국보 제289호)
익산 왕궁리오층석탑은 전형적인 백제석탑 양식을 따르고 있다. 높이는 8.5m이며 단층으로 된 기단과 얇고 넓은 옥계석등 미륵사지 석탑양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으나 그 나이조차 선명하게 밝혀지지 않은 비밀의 탑이다. 게다가 탑의 가치를 미처 알지못해 보물 제44호로 지정되었다가 1997년에 국보제289호로 다시 지정된 사연을 가지고 있다.
전시관에 전시된 모형▲
기단의 네 모서리 주춧돌이 되는 팔각 기둥과 네모난 돌들 사이는 흙으로 메웠는데 이 속에서 백제시대의 기와조각이 발견되기도 하였고, 탑의 1층 지붕돌 가운데와 탑의 중심기둥을 받치는 주춧돌에서는 사리장치가 발견되었다. 발견된 유물을 국보 제123호로 일괄 지정되어 국립중앙 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 화려하기보다는 단아하고 곱다는 말이 더 어울리는 왕궁리오층석탑이다.
왕궁리유적전시관
왕궁리.., 한나라의 왕궁이 이곳에 있었다??? 우선 왕궁리를 기록하고 있는 「신증동국여람」「대동지지」「익산읍지」등의 문헌들은 이곳 왕궁리가 '옛날궁궐터', '무왕이 별도를 세운곳', '마한의 궁성터'라고 적고 있단다. 이를 뒷받침하듯 유적지안에는 백제시대 말부터 통일신라시대까지의 유물이 많이 출토되었다. 특히 우리나라 고대왕궁으로는 처음으로 외곽 담장과 함께, 왕이 정사를 돌보거나 의식을 행하던 정전건물지를 비롯한, 14개의 백제건물지와 백제 최고의 정원유적, 금, 은, 유리, 동 등이 조사되어 왕궁의 축조과정과 왕궁생활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2007년 발굴조사로 조경시설에서도 구릉지대에 있는 왕궁성의 자연스런 지형을 그대로 살린 백제시대 궁성정원의 자연친화적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왕궁리에서 출토된 유물에는 백제시대 기와류인 연화문수막새, 태극문수막새, 소문수막새와 토기류인 대형 항아리, 왕, 시루 등이 있고, 인장토기편, 손잡이 달린 이형토기, 변기형토기 등이 있다. 그 외에도 녹색 유리편, 유리구슬과 함께, 금사, 금구슬, 금사뭉치, 금제화형장식 등의 금속제품이 출토되었다. 대형화장실유구 또한 발견되어 그 시대의 생활상을 알 수 있다.
전시관에서는 백제궁성관련 기록 및 지금까지 조사된 백제왕궁유적과 지역적인 변화과정을 설명하고 있으며 또한 매직비젼 및 게임을 통해 궁성건축 과정을 쉽게 이해할 수있는 공간도 마련되었다.
왕궁리 유적의 백제 건물은 왕궁리유적에서 확인된 건물지에 대한 설명과 건물의 기단형태, 지붕위를 덮었던 기와 중 막새기와와 인장와를 중심으로 부여지역유적 출토품, 익산지역 출토품과 함께 비교 설명하고있다.
수부명인장와
전시관에서는 왕궁리 유적에서 발굴된 주요 생활관련 대형화장실유적, 공방폐기지유적, 정원유적을 모형과 유물과 그리고 영상을 통해 소개함으로서 왕궁리유적의 성격을 가늠하고 궁성에 거주하였던 백제인의 생활상을 이해할 수있다.
정원유적으로 발굴된 기암괴석들 ▲
기암괴석과 장대석 강자갈을 이용하여 물으 흐름을 조절한 백제최고의 정원유적이 확인되었다.
우리나라 최고의 위생시설인 화장실 유적이 발견된곳으로 유실되지않도록 비닐로 덮어놓고 있다고...
대형화장실 처음 드러난 모습과 화장실 토양분석자료를 채취하는 모습▲
대형화장실에서는 별도의 칸막이가 없고, 옆으로 나란히 앉아서 볼 일을 보는... 처리과정은 앞에 놓여있는 항아리속 막대기로...
화장실출토 수막새
출토된 대형항아리
유적지에서 발견된 유물로 확인된 것중 왕궁내에서 필요한 금, 유리, 동 등도 직접생산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금을 생산하고 제품을 만드는 과정 ▲
사진 일부는 클릭하면 크게 볼 수있어 내용을 읽을 수 있습니다.
발굴현장에서 나온 기와들을 쌓아놓았다.
비가 와서 붉은 흙이 신발에 쩍쩍 달라 붙어도 그 누구하나 인상을 쓰는 사람이 없다. 지금은 허허벌판이 되어버린 왕궁터를 걸으며, 우리는 그저 신기하고 놀라울 뿐이다. 발굴사무소와 간이전시관 앞에는 발굴현장에서 나온 기초석들과 기와들이 모여 또 다른 전시관을 만들어내고 있다. 발견된 유물이 묻혀있던 현장을 쳐다보고 섰는데 홀로 그 긴세월을 지나오며, 왕궁리를 지킨 오층석탑이 누군가 심어놓은 두그루의 소나무와 더불어 당당히 서 있는게 보였다. 발굴조사를 하며 퍼즐 맞추기처럼 조각조각을 맞추다보면 왕궁리 유적지 발굴조사가 모두 끝나는 날 석탑에 새겨진 세월이 헛되지 않게 사라진 백제의 왕궁은 베일을 벗고 진실을 드러낼 것이다.
왕궁리 유적전시관 ☎063-859-4631 관람시간 : 09:00~18:00 휴관일 : 매주월요일, 1월1일 관람요금 : 무료
찾아가는 길 서울 - 익산IC - 미륵사지 서울 - 동군산IC - 익산 - 미륵사지 부산 - 진주IC - 장수IC - 익산IC - 미륵사지 대구 - 함양IC - 장수IC - 익산IC - 미륵사지 |
출처: 삶의 향기...*^^* 원문보기 글쓴이: 산수유
첫댓글 한번 가보고픈 유적지 이네요~
백제 역사.., 전 매우 흥미있답니다. ^^ 서울서는 시간반이면 된다해요. 함 다녀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