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산티아고
영화
제목 <나의
산티아고>의
‘산티아고’는
스페인의 순례길 ‘카미노
데 산티아고’를
일컫는 말이다.
무슨
뜻인지 알아봤더니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중 한 사람인 야고보를 지칭하는 스페인식 표기이며 영어로는 세인트 제임스(St.
James)라
한다고 되어있다.
길의
종착지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Santiago
de Compostella)인데,
콤포스텔라는
스페인어로 무덤을 뜻한다.
그러니까
이 길의 종착지는 야고보 성인의 무덤인 것이고,
그곳을
향해가는 모든 길을 산티아고 순례길이라 할 수 있다. 800여km에
이르는 험난한 여정에서 신과 만나고,
자신에
대하여 깊이 성찰하는 시간을 갖는 게 대다수 순례자의 목표로 알려졌다.
그동안
이 길과 관련하여 여러 편의 영화가 나왔다.
유산을
둘러싸고 3남매가
좌충우돌하는 <산티아고…
우리들의
메카로 가는 길>,
여행
중 사망한 아들의 유해를 안고 아버지가 대신 걸어가는 <The
Way>, 브라질의
세계적인 대문호 파울로 코엘료의 파란만장한 삶을 조명한 영화 <파울로
코엘료>
등.
영화는
하나같이 길을 인생과 비유한다.
넓은
길,
좁은
길,
굽은
길,
가지
않는 길,
끊어진
길…….
무엇보다
강조되는 것은 잃어버린 길이다.
몇
년 전 제주 올레길을 만든 서명숙 제주올레길 이사장을 만난 적이 있다.
그녀도
이 길을 걸었다고 한다.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는데,
영국인
부부가 묻더라는 것이다.
“당신네
나라에는 길이 없소?”
벼락
맞은 기분이 들더란다.
그
길로 들어와 올레길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했다.
‘많은
사람의 에너지가 밖을 향하고 있구나.
나는
내 안에 있는데…….’
▼
“하나님은
널 위한 계획을 세우셨단다.”
독일
여성감독 ‘줄리아
폰 하인즈’가
만든 다큐멘터리 같은 독립영화 <나의
산티아고>는
‘에너지
소진’〔Burn
Out〕이라는
화두를 던진다.
살다가
신체적,
정신적
힘이 고갈되어 탈진 상태가 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고
묻는 것이다.
영화는
‘카미노
드 산티아고’로
가라고 말한다.
주인공
‘하페’(데비드
스트리에 소브 분)는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는 코미디언이다.
연일
방송 ·
영화
·
강연
스케줄로 숨 쉴 틈도 없다.
어느
날 공연을 마치고 나오던 그가 무대 뒤에서 쓰러진다.
의사는
아무것도 하지 말고 3개월쯤
푹 쉬라고 지시한다.
더운
물에 몸을 푹 담그고,
신문과
TV리모컨
챙겨 들고 소파에서 뒤척이는 장면이 떠오른다.
소위
카우치 포테이토(Couch
Potato). 나도
해봤지만 정말 아무 생각 없는 휴식방법이다.
그러나
이게 진정한 휴식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페는
다른 방법을 택한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순례길로 달려간다.
남프랑스의
‘생장피드포르’에서
콤포스텔라 까지 800여km에
달하는 대장정은 그렇게 시작된다.
첫날부터
몰아치는 비바람,
피레네
산맥에서의 탈진,
베드
버그〔침대
빈대〕로
인한 몸살,
어쩔
수 없이 낯선 사람과 동침해야 하는 상황 등.
예기치
않았던 복병이 괴롭히지만,
그는
꿋꿋하게 견디며 전진한다.
가는
길에 딸 아이를 이 길에서 잃고 다시 들어선 ‘스텔라’(마르티나
게덱 분)와
영국 일간지 기자인 ‘레나’(카롤리네
슈허)를
만나 서로의 아픔을 토로하지만,
이들은
끝내 자신의 마음 밭은 보여주지 않는다.
하루
20~30km에
달하는 길을 뒤뚱뒤뚱 걷다가 밤이면 순례자 숙소인 알베르게에 든다.
포도주와
함께 먹는 여러 가지 현지 음식은 달콤하여 여행의 피로를 녹여주고도 남음이 있다.
용서의
언덕을 지나고 철 십자가 아래 선다.
살면서
이래저래 얽히고설킨 여러 가지 상황들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진땀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는 짠물이 콧잔등으로 흘러내린다.
어린
시절 그는 아빠 엄마가 일찍 세상을 떠남으로써 애착을 형성하지 못했다.
할머니
손에서 자라며 세상을 익히고 해석했다.
자연히
신부님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았다.
신부님은
하페를 위로하기 위하여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널 위한 계획을 세우셨단다.”
하페가
망설임 없이 답한다.
“멍청한
계획이겠죠!”
아빠
엄마 없는 세상은 그에게 사무치는 아픔이었던 것.
영화는
어린 시절 그의 성장 과정을 계속 교차편집으로 보여준다.
어쩌면
하페는 자신의 인생에 대한 밑그림이 없었는지 모른다.
닥치는
대로 터벅터벅 걷다가 지금 넘어진 것일지도.
중세시대
지어진 듯한 성당과 소실점을 만드는 끝없는 평원이 연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평화를
부르는 무성한 숲,
이름
모를 꽃,
꽃들…….
눈을
길로 돌리면 수많은 순례자의 뒷모습이 보인다.
하페는
먼발치에 붕 떠 있는 자신을 본다.
선명하게,
때로는
희미하게 사진틀처럼 또 데자뷔처럼 그렇게 발현하는 자기를 보는 것이다.
부르튼
발,
수십
개 물집을 제거하고 절뚝이며 콤포스텔라에 도착한다.
그곳
성당에서는 ‘보타
푸메이로’라는
대향로 미사가 진행된다.
엄청나게
큰 금빛 향로가 긴 줄에 매달려 있는데,
이
향로를 밀면 그네처럼 장내를 오가며 연기를 뿜어낸다.
연기는
지치고 배고픈 또 아픈 순례자들의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 준다.
▼
바라지
말고,
두려워
말고,
기대하지
말라
정신과
의사이자 작가인 김진세 저 ≪길은
모두에게 다른 말을 건다≫라는
책을 봤다.
영화의
주장이 일리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서다.
34일간의
지독한 고통을 감내하며 이 길을 걷고 나서 수기처럼 적은 글이다.
독백처럼
길바닥에 깔리는 치유적 코멘트가 마음을 울린다.
‘걱정이
기쁨을 방해하는 것 같다.
저장
강박을 버려야 한다.’
저장
강박이란 이미 끝난 일에 마음 상하고,
이미
저지른 실수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것을 말한다.
‘과거의
실수를 오늘 되새김질 하고나니 가슴이 먹먹하다.’
또
어느 날은 ‘전에는
욕심도 내편이라고 여겼다.
욕심을
채우기 위해 하는 일이 모두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어떤
날은 자신을 강화하기도 한다.
‘생기지도
않을 일에 대한 걱정이 불안감을 만들고,
그
불안이 실천의 발목을 잡고 있다.’라는
등.
정신과
의사도 인간인 것을.
버리고
비우면 새 그릇에 무엇이든 다시 차겠지.
영화는
결론처럼 말한다.
‘바라지
말고,
두려워
말고,
기대하지
말라.’라고.
세상에
저절로 되는 일 없고,
공짜
없다는 게 평소 내 지론인데…….
어느
블로그를 보니 버킷리스트를 적어 놨다.
리스트
10개
중 ‘카미노
드 산티아고’
가는
게 9번째다.
글쓴이
연령이 50은
넘어 보이고 현재까지 이룬 것은 세 가지가 있다.
이
분이 이 길에 갈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읊조렸다.
순서를
바꿔보세요.
몇
년 전 백두대간을 종주했다.
지리산
중산리에서 강원도 진부령까지 720여km
길.
구간
평균 거리를 20~25km로
정하니 35회를
해야 했다.
대부분
산길이니 순례길보다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월
1회
출정을 하다 보니 6년
여의 세월이 소요되었다.
종주
기간 중 나를 가장 괴롭힌 것이 강박이다.
나를
옭아매고 떠나지 않는 미움,
후회,
자책
등.
나는
왜 거기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일까.
억압이
많았던 것일까?
완주를
마치고 호남정맥,
금남정맥
등 9
정맥을
탐사하는 중에도 나는 비슷한 강박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정녕
내가 만든 함정일진데,
내가
거기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으니 어쩌자는 것인가.
정신적
고갈이 끝이 없구나.
신을
만나야 하나……?
나는
현재 버킷리스트 5개를
남겨두고 있다.
그중
카미노 드 산티아고에 가는 게 두 번째 순서다.
영화
보고 책 읽으며 준비할 것들을 생각한다.
영어,
스팽글리시를
생각하면 목이 근질근질하다.
“이
길에서 만난 모든 사람이 이 길의 힘을 의심하지 않는다.”라는
영화적 주문 또한 믿기에 머나먼 이국에서 신을 만나고자 한다.
나의
계획이 멍청해지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