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김씨 세도정치와 음택풍수
안동김씨의 세도정치는 김조순(1765-1832)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런 김조순도 어느날 갑자기 등장한 것은 아니다. 그의 집안은 이미 오래전부터 명문가로 자리하고 있었다. 김상헌(좌의정)-김광찬(동지중추부사)-김수항(영의정)-김창집(영의정)-김제겸(사복시첨정)-김달행(처사)-김이중(서흥부사)-김조순(영안부원군)-김좌근(영의정)-김병기(이조판서)로 이어지는 그의 가계도가 이를 확인시켜주고 있다. 여기에 더해 조카와 삼촌 그리고 더 넓은 범위의 친족들이 세도정치의 일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로 김문근(철종의 장인)과 김조근(헌종의 장인), 김병학(영의정), 김병국(영의정), 김영근(판돈녕부사), 김유근(판돈녕부사)등이 있다.
거대한 권력을 휘두르던 그들의 묘소에 나타나는 특징들이 있는데, 다음과 같다. 먼저 문인석이 없다는 것이다. 세도정치의 뿌리를 내린 김조순을 비롯하여 그들의 조상산소에서도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 미관말직을 지낸 양반가에서 흔하게 보는 문인석이 없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두 번째 와혈에 무덤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김상헌을 비롯하여 김창집, 김제겸, 김달행, 김조순, 김좌근, 김병기, 김문근등의 묘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다.
셋째는 묘비석을 정면 혹은 측면에 세우고 있다. 묘비석의 형태도 같은데 거의 모든 안동김씨 묘역에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징이다. 본인의 벼슬과 합장한 부인들의 이력을 밝히고 있다.
넷째는 남양주와 여주, 이천 등지에 조성되어 있는데, 거의 부드럽게 탈살한 야산자락을 선택하고 있다. 험하거나 강한 지세에는 조성하지 않았다.
이를 다양한 각도에서 해석해 볼 수 있는데, 그 집안의 가풍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초기 세도정치를 뿌리내린 김조순의 경우 굉장히 치밀하지만 겸손하고 치부하지 않았다고 한다. 얼마든지 맡을 수 있었던 정승을 맡지 않고 있으며, 실질적으로 권력을 누릴 수 있는 요직을 맡고 있다. 그리고 비변사의 2인자의 자리를 죽는 순간까지 가지고 있으면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의 특징적인 모습이 와혈에 무덤을 조성하는 경향과 부합하고 있다. 또 다른 특징으로 부드럽고 순한 야산자락에 자리한 그들의 묘역도 역시나 부드러운 성품으로 나타나 적을 만들지 않고자 하는 성향과도 부합하는 모습이다. 권력의 중심에 있다 보면 본의 아니게 많은 사람과 적대적인 상황을 맞이할 수 있는데, 이를 부드러움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성향과 부합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과격함에서 오는 많은 문제점을 이해하고 있었다고 할 것이다. 화려한 분묘조성으로 인해 야기될 수 있는 여러 문제점을 사전에 방지하고자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양한 연구를 통해 이를 정립하는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