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수행이야기]〈23〉수행자의 오만과 겸손
선사들은 호에 어리석음(愚)이나 어눌함(訥) 많이 써
진정한 수행자는 어리석은 듯 겸손이 배어 있어
“도반존중.인격완성이 먼저”
부처님 당시에 띳사 비구는 부처님의 고모 아들로서 부처님과는 고종 사촌이다. 띳사는 늦은 나이에 출가했는데, 출가한지 며칠 되지도 않아 젊은 비구들에게 심부름을 시키고 자기에게 인사를 하라는 등 어른 대접을 받으려고 하였다.
유행(遊行)하던 스님들이 사원에 왔는데, 띳사는 법당 중간에 버티고 앉아 스님들의 인사를 받았다. 서로 인사를 주고받으며, 객스님이 띳사에게 ‘안거를 몇 번 보냈냐?’고 묻자, 팃사는 출가해서 한 번도 안거를 보낸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일행중 한 스님이 그에게 말했다. “오만한 늙은 비구여, 이제 갓 출가했고, 우리는 당신 선배인데 어찌 무례한 행동을 하십니까?”
띳사는 ‘내가 누구인지 모르고 스님들께서 건방을 떠느냐, 법납 제도를 없애야 한다’며 응수하였다. 띳사와 스님들 간에 입씨름이 오고가며 결론이 나지 않자, 띳사는 부처님께 가서 판가름하자고 하였다. 모두 부처님이 계신 곳에 도착하자마자, 띳사가 먼저 불만을 토로했다. 부처님께서 띳사의 말을 다 듣고 말씀하셨다.
“띳사여, 너는 저 스님들에게 먼저 인사하고, 저들에게 물 한잔을 올리며 대접하는 것이 옳은 행동이다. 너의 행동은 옳지 아니하다. 저 스님들께 용서를 구하도록 하여라.”
띳사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고집 피우자, 스님들이 부처님께 말했다. “부처님, 저 비구는 억지가 매우 심하고 오만을 버리지 못한 것 같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띳사의 이런 행동은 과거 전생에서부터 익혀온 습이다. 그러니 비구들이여, 애정을 갖고 그를 정성스럽게 보살펴 주도록 하여라.”
이 띳사 비구와 완전히 반대인 경우의 스님이 있다. 명나라 때의 무위능(無爲能) 스님이다. 이 스님에 관한 내용이 운서주굉(雲棲株宏, 1535~1615)이 쓴 <죽창수필>(연관 역, 불광)에 수록되어 있다. 무위능 스님에 관한 내용을 옮겨오면 이러하다.
“무위능스님은 나보다 나이도 많고, 덕도 높으며, 출가한지도 오래되었다. 내가 젊은 시절, 소호 지방에 머물 때 한방에서 함께 좌선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무위능스님이 내가 머물고 있는 도량으로 찾아와 내게 계를 받고, 제자가 되기를 원하였다. 내가 ‘그건 옳지 않은 일’이라고 사양했으나 굳이 간청하며 스님께서 말했다. ‘옛날에 보혜와 보현 두 보살도 광려연사에 들어가기를 원했건만, 제가 무슨 잘난 사람이라고 화상(운서주굉)같이 훌륭한 사람을 마다하겠습니까?’ 무위능스님께서 어질면서도 어리석은 척하는 겸손이 고인의 풍모로 엿보이기에 이 일을 적어 뒷사람에게 권하는 바이다.”
‘어리석은 척 하는 겸손’이라는 말이 마음에 와 닿는다. 불교에서 어리석음이라는 말은 여러 의미가 있지만, 크게 두 가지로 본다. 번뇌 가운데 하나인 어리석음도 있지만 오만(여기서는 아상.我相)하지 않는 겸손한 어리석음이다. 선사들은 자신의 호에 어리석음(愚)이나 어눌함(訥)을 사용하기도 했고, 편지를 쓸 때도 ‘어리석은 중’, ‘크게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자신을 지칭하기도 하였다.
운서주굉의 수필집을 세 번째 읽는데도 이 부분을 읽을 때마다 마음이 숙연해진다. 옛 말에 ‘한 마을에 도인은 둘이 살아도 학자는 둘이 못산다’고 하였는데, 진정한 수행자는 어리석은 듯 겸손이 몸에 배어 있는가 보다. 잠시 책을 덮고 자신을 들여다본다. 나는 무위능스님처럼 아랫사람을 선지식으로 섬길 만큼 겸손한가? 전혀 아닌 것 같다.
무위능 선사와 띳사 비구를 보면서 수행자는 깨달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함께 공부하는 승가의 도반들을 존중할 줄 아는 것, 겸손이 몸에 밴 인격완성이 먼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스스로를 다짐해 본다.
정운스님… 서울 성심사에서 명우스님을 은사로 출가, 운문사승가대학 졸업, 동국대 선학과서 박사학위 취득. 저서 <동아시아 선의 르네상스를 찾아서> <경전숲길> 등 10여권. 현 조계종 교수아사리ㆍ동국대 선학과 강사.
[출처 : 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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