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과 물리학] 17. 불생불멸의 실상
- ‘있다-없다’‘살았다-죽었다’지어낸 생각 -
- ‘깃발 펄럭이는’원인 바람·깃발 아닌 마음 -
상자속에 고양이를 넣어두고 이 고양이가 죽었느냐 살았느냐를 따지거나 상자를 열어서 관찰하면 반드시 죽은 고양이를 보거나 산 고양이를 보게 될 뿐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고양이를 볼 수는 없다. 이 고양이에 관한 문제는 반야심경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므로 계속해서 자세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삶과 죽음은 거시적 세계에서 나타나는 생물학적인 현상이므로 직접 고양이를 갖고 실험하면 언제나 삶과 죽음의 둘 중 하나만 나타난다.
그러나 미시적 세계에 들어가서 실험하면 논리적으로 삶과 죽음이 공존해야만 하는 현상이 실제로 나타난다. 입자-파동의 이중성을 나타내는 실험이 바로 논리적으로는 삶과 죽음의 이중성을 나타내는 것과 구별할 수 없는데 비유를 들어 설명하겠다.
앞문과 뒷문, 꼭 두개의 문을 가진 방(房)이 있고 이방에 사람이 들어간다면 사람은 앞문으로 들어가거나 뒷문으로 들어가거나 둘중 하나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사람이 아니라 작은 입자(粒子)를 쏘아 방에 들어가게 하더라도 입자는 앞문으로 들어가거나 뒷문으로 들어가거나 둘중의 하나일 수 밖에 없다. 사람이건 입자이건 하나라면 하나가 동시에 두개의 문을 통과할 수는 없기때문이다.
실제로 입자를 쏘아 실험을 해보면 입자는 반드시 앞문이거나 뒷문이거나 둘 중 하나만 통과하지 두개의 문을 하나의 입자가 동시에 통과한다는 법은 없다. 입자하나가 하나의 문만 통과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은 고양이가 삶과 죽음 중 어느 하나의 상태에 있다는 것과 논리적으로 꼭 같음을 지적하고 싶다.
이제 관심을 돌려 입자가 어느쪽 문을 통과 하는지에 관해서는 생각하거나 관찰하지 말고 방안에서 무슨일이 일어나는지에 관해서만 생각하고 관찰해보기로 하자.
방안에 들어온 입자의 경우 앞문이나 뒷문 어느 한쪽으로 들어온 입자의 행동은 두개의 문을 통과해 들어온 입자의 행동과는 확연히 다르다. 아니 입자라면 두개의 문으로 들어올 수 없기에 두개의 문으로 들어오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파동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입자와 파동은 서로 다른 것이라고 초기의 물리학자들은 생각하였다.
그런데 관찰 결과는 입자라고 생각하든 파동이라고 생각하든 사람이 관찰하면 두개의 문중 어느 한쪽으로만 들어오고 어느쪽 문으로 오는지 관찰하지 않으면 하나의 입자가 동시에 두개의 문으로 들어온 것처럼 행동한다.
빛을 쪼인 경우에 어느쪽 문으로 들어왔는지 관찰하지 않으면 방안에 들어온 빛은 밝고 어두운 무늬가 교대로 반복하는 띠를 만드는데 이 띠는 하나의 빛이 두개의 문으로 동시에 들어왔을 때만 나타날 수 있는 무늬이다. 빛대신 다른 입자를 써도 결과는 마찬가지이다.
하나의 입자가 앞문으로도 들어오고 뒷문으로도 들어왔다고 해야 설명되는 무늬를 만들다. 둘로 나뉘어질 수 없는 입자가 동시에 두개의 문으로 들어왔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아 입자가 어느쪽 문으로 들어오는지 관찰해보면 입자는 반드시 한쪽 문을 통해서 들어오고 동시에 두개의 문을 지난다는 법은 없다. 그리고 이렇게 한쪽 문을 통해 들어온 것이 확인된 빛이나 입자는 결코 밝음과 어두움이 교차되는 띠를 만들지 않는다.
어느 쪽으로 오는지 관찰하지 않으면 띠를 만들고 어느쪽으로 오는지 관찰하면 띠를 만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고양이에 적용시켜 보면 고양이가 든 상자를 열어보면 죽음과 삶이 공존하는 법이 없고 열어보지 않으면 삶과 죽음이 반반씩 섞인 고양이가 상자속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고양이가 죽었던 살았던 그것은 모두 사람이 창조해서 본 것이다. 그래서 육조 혜능스님은 깃발이 바람에 날리는 것은 바람도 깃발도 움직이는 원인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라고 한 것이다.
실상은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인데 사람이 갖가지를 지어내는 것이다.
김성구 <이화여대 교수.물리학>
[출처 : 부다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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