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젤리스(Vangelis)는 존경받는 전자 음악 작곡가이자 신서사이저의 무한한 잠재력을 탐구해 나가는 마에스트로로, 록, 클래식, 재즈, 뉴에이지 등 다양한 음악 장르를 장대한 스케일이 느껴지는 연주로 종합해내는 뮤지션이다. 그는 영화 음악가로서 뿐 아니라 뛰어난 신서사이저 연주가로 프랑스의 장 미셀 자르(Jaen Michel Jarre)와 함께 가장 성공한 뮤지션으로 인정받으며, 그리스인 특유의 서정성과 웅장함이 잘 배어난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이미 수많은 솔로 연주 앨범과 영화음악을 통해 국내에서도 확고한 추종세력을 확보한 반젤리스는 신비의 베일로 싸여있는 존재다. 런던에 있는 자신의 작업실인 '네모 스튜디오'(Nemo Studio)에서 칩거하며 오로지 '창조'를 위해 몸부림친다. 같은 그리스 출신이자 그에게 영향을 받은 야니(Yanni)가 대중들과의 교감을 중시하는 팝 스타라면 반젤리스는 자신의 예술혼을 고집스럽게 유지하고 있다.
에반겔로스 오딧세이 파파타나시우(Evangelos Odyssey Papathanassiou)라는 긴 본명으로 1943년 3월 29일 그리스 동부 발로스(Volos)에서 화가인 아버지와 가수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반젤리스는 어린 시절부터 음악적인 재능을 보였다. 4세부터 작곡을 시작한 반젤리스는 피아노 교습을 받았으나 이내 싫증을 내 독학으로 피아노를 배우며 연주감각을 익힌 반젤리스는 6세때 대중 앞에서 첫 피아노 연주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미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데가 있어서 훗날 인터뷰에서 "나는 내 자신의 경험이야말로 인생의 가장 확실한 지침서라 생각한다. 다른 사람이 전해주는 지식은 나에겐 아무런 유익이 없다"고 얘기했을 정도로 강한 개성을 드러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포밍스(Forminx)라는 록 밴드를 결성해 이듬해 싱글 "Ah Say Yeah", "Jeronimo Yanka" 등을 발표하여 1960년대 당시까지 록음악에 문외한들인 그리스 대중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던 반젤리스는 그리스에서 수퍼스타덤에 오르며 가장 인기 있는 음악인으로 성장한다. 1967년 포밍스가 해체된 후 반젤리스는 데미스 루소스(Demis Roussos, 보컬)와 루카스 시데라스(Loukas Sideras, 드럼)를 만나 자신의 이름을 딴 파파타나시우스(Papathanassious)라는 밴드를 결성한다. 이들 셋은 더 넓은 무대에서 활동하길 원했고, 영국에 진출하기 위해 1968년 프랑스 파리로 간다.
그러나 '혁명의 물결'이 1968년 파리를 중심으로 전 유럽에 퍼지면서 그리스의 정치적 상황이 불안해지게 된다. 녹음 작업을 위해 영국으로 가려던 이들의 계획은 당시 공장 노동자 파업으로 인해 비자발급이 되지 않은 관계로 수포로 돌아간다. 이 때 그들의 음악성을 높이 산 프로듀서 삐에르 스바로(Pierre Sbarro)의 도움으로 파리에서 레코딩을 할 수 있었다.
밴드 이름을 아프로디테스 차일드(Aphrodite's Child)로 바꾸고 발표한 첫 싱글 "Rain And Tears"가 영국차트 27위까지 오르며 유럽시장을 석권하였다. 1970년 이들의 마지막 앨범이자 명반으로 꼽히는 [666-The Apocalypse Of St. John]의 앨범 작업에 착수하게 되면서 상업적인 음악을 추구하는 데미스 루소스와 실험적이고 난해한 음악적 접근을 지향하려는 반젤리스와의 견해차이를 좁히지 못해, 결국 앨범 발표 후 해산을 결정하게 된다. 맴버인 데미스 루소스는 솔로 활동을 시작하여 80년대 큰 성공을 거두었다.
1972년 밴드는 해산하게 되고, 반젤리스는 솔로로 나선 반젤리스는 1973년 프랑스 영화 감독 프레드릭 로시프(Frederic Rossif)의 TV 다큐멘터리 "동물의 묵시록('L'Apocalypse Des Animaux)"의 배경음악과, 폴리돌(Polydor)에서 발표된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에 수록된 "La Petite Fille De La Mer"가 좋은 반응을 얻는다. 그리고 스튜디오 솔로 앨범인 [Earth](1973)를 발표하여 "Come on/He-O"가 싱글 커트되었다. 이 앨범의 프로모션을 위해 반젤리스는 파리에서 공연을 가지기도 했다.
이렇게 시작한 그의 솔로활동은 70년대 중반 활동무대를 영국으로 옮기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동물의 묵시록> 덕분에 본격적인 솔로활동을 할 수 있게 되면서 1974년 영국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예스(Yes)와 수개월간 공동작업을 하게 되고, 얼마 후 밴드의 키보드주자 릭 웨이크먼(Rick Wakeman)의 후임으로 키보드를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게된다. 3주간 맴버들과 세션을 가져본 반젤리스는 음악적인 스타일이 서로 너무 다르다는 데 합의를 보고 제의를 거절하였고, 결국 스위스 출신의 키보드 주자 패트릭 모라즈(Patrik Moraz)가 가입하게 된다. 하지만 이를 통해 반젤리스는 이후 예스의 보컬 주자 존 앤더슨(Jon Anderson)과의 지속적인 음악 교분을 갖게 된다.
1975년 RCA와 계약하며 반젤리스는 런던에 자신의 음악 작업실 '네모 스튜디오'(Nemo Studio)세우고 일렉트로닉과 어쿠스틱 사운드의 조화를 시도하며 수많은 솔로 명반들을 발표한다. 이 때부터 스튜디오가 폐쇄될 때까지를 흔히 'Nemo'시대라고 칭해지며, 타 아티스트들과의 공동 작업은 물론 반젤리스 자신의 솔로음반작업 등이 이 곳에서 이루어졌다. 평론가들은 이 시기를 70년대 발표되는 프로그레시브적 색체의 명반들이 대거 완성된 황금시대라 평가하였다. 존 앤더슨의 보컬이 참여한 "So Long Ago, So Clear"가 수록된 명반 [Heaven & Hell](1975)을 시작으로 달에 착륙한 비행사의 목소리가 담긴 컨셉 앨범 [Albedo 0.39](1976), 그의 대표곡 "To The Unknown Man"이 수록된 [Spiral](1977), [Beauborug](1978)를 연속으로 발표한다.
1978년 본국으로 돌아간 그는 여배우 이레네 파파스(Irene Papas)와 협력하여 비잔틴(Byzantine, 동로마 제국)과 그리스의 전통 음악을 정립하는 일을 도모했다.
1980년 반젤리스는 [Heaven & Hell]에서 함께 한 예스의 보컬리스트 존 앤더슨과 다시 한번 조우하며 존 & 반젤리스(Jon & Vangelis)라는 듀오를 결성한다. [Short Stories](1980) [Friends of Mr. Carino](1981), [Private Collection](1983), [Page Of Life](1991)로 이어진 공동작업은 "I Hear You Now"와 "I'll Find My Way Home" 등의 곡들이 히트하면서 영국을 포함한 유럽권에서 그의 입지를 굳히게 되었다. 이들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완벽한 조화의 만남이란 평을 받으며 "Polonaise", "The Freinds Of Mr. Cairo"와 같은 히트곡을 남긴다. 그리고 독일가수 밀바(Milva)와 함께 음반작업에 착수하여 반젤리스의 곡에 가사를 붙여 부른 곡이 대부분인 밀바의 앨범 [Ich Hab' Keine Angst]를 발표하였다.
하지만 반젤리스라는 이름이 대중들의 뇌리 속에 각인되게끔 한 것은 역시 영화음악이다. 먼저 <동물의 묵시록>에 이어 <Ode>, <Opera Savage>, <China>, <Antratica>, <The City>와 같은 TV 다큐멘타리 시리즈에서 배경음악을 맡으며 그의 재능이 영화 감독들 사이에서 널리 회자되었다.
그리고 1981년, 1924년 파리 올림픽에 출전한 영국 육상선수들의 우정을 그린 휴 허드슨(Hugh Hurdson)감독의 영화 <불의 전차>(Chariot Of Fire)의 사운드트랙을 맡았고 여기서 동명의 테마 연주곡 "Chariot Of Fire"가 전미차트 정상을 차지하면서 그의 솔로활동은 정점을 맞기에 이른다. <불의 전차> 영화 음악으로 그는 1982년 오스카상 영화음악 부문도 수상하는 기염을 토한다.
영화음악에서의 재능은 그칠 줄 몰라 리들리 스콧(Ridley Scott) 감독의 걸작 <Blade Runner>(1982)에서 반젤리스는 미래 도시의 음습하고 차디찬 분위기를 그의 신시사이저 연주로 완벽하게 소화해내며 영상만큼이나 강한 인상을 심어줬다. 이 앨범은 사운드트랙의 빛나는 걸작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그는 또한 쿠루하라(Kuruhara)감독의 [Antarctica](1983), 코스타스 가브라스(Costas-Gavras)의 [Missing](1982), 도날드선(Donaldson)의 [The Bounty](1984)에서 사운드 트랙을 전담하게 된다. 자크 코스티유(Jacques Cousteau)의 다큐멘타리 음악을 작곡하기도 한 그는 사운드 트랙 작업을 하는 중에도 솔로 앨범인 [The Mask](1985), [Direct](1988), [The City](1990) 등으로 자신의 음악영역을 더 넓혀갔다.
1980년대의 그의 솔로 앨범들은 대체적으로 확실한 컨셉트를 가진 대곡위주의 작품들이 많았다. 1984년에 발표한 [Soil Festivities], 1985년에 발표한 [Mask]와 [Invisible Connection] 등이 이러한 작품이다.
1990년대 들어서도 반젤리스의 명성은 지속된다. 이미 할리우드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영화 음악가로 대접받던 반젤리스는 로만 폴란스키(Roman Polanski) 감독의 영화 <Bitter Moon>의 음악을 담당하였다. 그리고 <Blade Runner>의 리들리 스콧 감독과 다시 한번 만나 영화 <1492: Conquest of paradise>(1992)로 여전히 웅장하고 힘이 느껴지는 신시사이저 연주를 들려주면서 과거 <불의 전차>에 못지 않은 찬사를 받는다. <1492: Conquest of Paradise>의 성공은 반젤리스가 '영화음악계의 지존'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1990년대에도 [Voices](1995), [Oceanic] (1996), [El Greco](1998) 등의 솔로 앨범을 꾸준히 발표한 반젤리스는 1997년 아테네 육상 월드 챔피온쉽 세레모니를 담당하여 10만관중앞에서 직접 퍼포먼스를 행한 바 있다. 또한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의 클로징 세레모니 음악을 담당하였고,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의 음악을 1997년 Monserrat cabelle의 앨범녹음시 두 곡에 참여한 인연이 있는 Monserrat cabelle와 공동으로 작업하였으며, 2002년 한일 월드컵 음악을 제작하기도 하였다. 2001년에는 미국 나사(NASA)의 후원으로 작업한 클래식 소품 <2001 Mars Odyssey>를 발표한다.
2000년대에도 올리버 스톤(Oliver Stone)감독의 <Alexander>(2004) 등의 영화 음악을 제작하였으며, <Blade Runner>의 25주년 기념앨범 [Blade Runner Trilogy](2007)를 발표하였다. 반젤리스는 2008년 5월 아테네 대학교(University of Athens)로부터 명예박사학위를 받은 바 있다.
민중의 노래, 저항의 노래, 전통과 현대가 함께 어우러진 곳, 어찌보면 우리와 아주 흡사한 현대사를 지내온 그리스의 암울했던 현대사를 관통하며 민중과 함께 야생초처럼 그 명맥을 유지해온 그리스 음악..
마치 애잔한 추억처럼 듣는 이의 마음을 흔드는 매력이 있는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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