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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성령의 임재와 성령 충만을 구해야 하는가
사도행전 1:4~8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시기 전날 밤에 참으로 많은 시간 제자들과 함께 있으면서 많은 영적 비밀을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런 후에 다시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에도 제자들에게 종종 찾아와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런 가르침 중에 중요한 가르침은 성령에 관한 가르침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승천 직전에 마지막으로 당부하신 말씀도 바로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 곧 성령을 기다리는 명령이었습니다. 그 만큼 예수님은 자신이 떠나가시면서 제자들 곧 교회 공동체 모두에게 가장 필요한 일이 성령을 받는 것,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설립 시점에 대하여 학자들은 대부분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 후 50일 후인 오순절에 예수님의 제자들을 비롯한 120문도에게 성령님이 강림하신 사건을 그 결정적 계기로 설명하곤 합니다. 만약 성령님이 오시지 않았다면 교회는 흐지부지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 역시 진실한 신자가 되어 신앙 생활을 꾸준히 영위하고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다가 주님 앞에 장차 서게 되어 천국 들어가는 모든 것이 성령 하나님이 우리 각 사람과 함께해주시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일인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성령님께서 우리의 신앙과 구원과 사역과 삶 속에서 어떠한 일을 하시기에 그처럼 성령의 임재와 성령의 충만이 절대적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일까요?
첫째로 성령님은 우리를 거듭나게 해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3장에 보면,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계실 때에 니고데모라는 학자 겸 공회의원이 밤중에 찾아왔을 때 예수님께서 그에게 일러주신 말씀이 이것입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그러자 니고데모가 묻기를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로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셧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니그데모는 교회도 다니고 성경도 가르치는 사람이었지만 그 마음에는 하나님의 실존에 대한 확신도 없고 내세에 대한 확신도 부족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단지 이성과 경험과 종교적 관습을 따라 종교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성경을 머리로 이해한다 해도 그 영혼에 참 생명이 없었기에, 예수님은 그에게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말씀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은 오직 성령만이 행하시는 일이라고 분명히 못을 박았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전서 10장 3절 말씀에 이르기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교회를 다닌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요 직분을 받아서 교회 활동을 한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요 성경을 안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요 성령님이 그 심령에 찾아오셔서 그 마음에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주셔서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진심으로 인정하고 믿고 받아들이게 해주심으로써 구원받는 것입니다. 아내 때문에, 부모 때문에, 그저 종교 생활은 해야 한다기에 남의 권유로 교회 문턱을 드나든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성령의 감화 감동을 받고 진정으로 예수님을 자기의 구원자로, 자기의 주님으로 믿고 자기 영혼을 맡기고 자기 삶을 맡길 때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은 주님께서 삼년반이라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제자들에게 성령을 기다리라고 명령하신 뜻 중에 바로 성령 없이는 결코 거듭나서 구원받을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압시다. 그래서 우리들 안에 성령으로 거듭남의 은혜가 있어서 확고한 신앙을 가진 자 역시 다시 한번 성령의 충만을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아직도 교회는 다니지만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확고한 신앙이 없고 그저 종교 생활하는 가운데 있는 성도가 있다면, 내게 거듭남의 영이신 성령을 부어주시라고 간절히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둘째, 성령님은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시는 영이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11장 말씀에 보면, 후일에 그리스도가 오시면 그에게 성령이 임하실 것을 예언한 말씀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면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여기서 보면 예수님께 임한 성령께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즉 성령께서는 하나님을 지극히 두려워하는 중에 뜨겁게 사랑하는 영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하나님 아버지를 뜨겁게 사랑함으로 한 순간도 하나님 아버지 없이 행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는 자기 일을 구하지 않고 아버지 하나님의 일을 구했으며, 하나님을 기쁘시기 위하여 전심전력으로 헌신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그를 사랑하여 늘 예수님과 함께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8:29 말씀에,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고 말씀하신 것이 그러한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그토록 하나님 아버지께 온전히 충성하며 헌신할 수 있는 배경에는 성령님께서 지상에서 예수님과 함께 계셔서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늘 마음을 감동 감화해주신 까닭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오늘날도 교회에 나오면서도 늘 뜨뜻미지근하던 심령도, 마음이 맨숭맨숭하고 하나님께 대하여 냉랭했던 마음의 소유자라도, 성령을 받으면 하여 뜨거운 사랑과 헌신과 열정을 다하는 사람으로 바뀔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 받고 성령 충만받으면 자기의 목숨까지 내 놓고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바뀌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성령의 임재를 구하고, 성령의 충만을 구합시다.
셋째, 왜 우리가 성령 충만받아야 하느냐 하면 성령님은 기도의 영이기 때문입니다.
스가랴 12:10 이하의 말씀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그 날에 예루살렘에 큰 애통이 있으리니 므깃도 골짜기 하다드림몬에 있던 애통과 같을 것이라 온 땅 각 족속이 따로 애통하되 다윗이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나단의 족속이 따라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여기서 스가랴 선지자는 예고하기를 후일에 메시야로 오신 이를 찔러 죽은 후에는 그들에게 애통하는 회개의 영이 임하여 통곡하면서 은총을 구하며 간구하는 심령을 갖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주시겠다고 하였으니, 이는 성령께서 애통하며 기도하는 영으로 임하심을 가리킨 것입니다.
성령님은 이처럼 간절히 기도하는 영입니다. 성령 받기 전에는 정신이 또렷또렷하고 이성적이고 차분하게 기도했으나, 성령을 받고 그 감화 감동 아래 기도할 때는 자기의 죄를 깊이 자각하여 저절로 애통하게 됩니다. 누군가를 위하여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저절로 생겨서 가만히 차분한 마음으로 기도할 수 없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며 기도하게 됩니다. 그래서 기도 속에 통곡이 나오고 눈물이 나오고 가슴에 깊은 눌림이 있고 흐느낌이 있는 기도의 사람으로 바뀌어집니다. 그러다가 기도 끝나면 다시 정상적으로 차분해집니다. 만약 계속 그렇게 마음에 애통이 있고 눌림이 있고 통곡하는 심령이 지속된다면 평상시의 일상적 삶을 유지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할 때에 그렇게 간구하는 영이 주권적으로 지배하여 기도하는 사람을 압도하여 기도를 이끌어가기 때문에, 이렇듯 기도가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성령의 기도의 이끄심을 받아 늘 기도하셨기에, 그의 기도 속에 통곡이 있고 눈물이 있었고 기도하는 도중에 땀이 변하여 피방울같이 되는 애씀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성령의 간구하는 도우심이 있어야 기도가 기도답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님의 임재와 성령의 충만함을 받읍시다. 그리할 때에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지고 누군가를 살리게 되고 우리와 다른 이들의 내면의 깊은 죄와 상처와 문제들이 해결받는 은혜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할렐루야.
넷째, 왜 우리가 성령님의 임재와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하느냐 하면, 성령께서 함께하실 때 능력이 임하고 영혼 구원이 일어나고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단 한 가지만 집중하기를 부탁합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예수님은 단 한 가지 성령 받기를 기다리라고 강조합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성령받는 것보다 하나님 나라의 현실적인 실현을 생각하면서,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다시 예수님은 그들에게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는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심으로써 다시금 성령받는 일에 집중하도록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처럼 제자들에게 성령받기를 집중하여 기다리라고 강조한 덕분에 마침내 그들이 성령을 받자 그렇게 겁이 많아 도망치는 데 바빴고 계집종 앞에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기까지 했던 제자들이 사자같이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들이 나가서 복음을 전하자 설교 말씀 한번에 남자 장정만 삼천 명, 또 한번에 오천 명씩이나 예수님을 믿겠다고 목숨 걸고 신앙 생활하는 자들이 생겨났습니다. 또 기적과 이적이 나타났으니, 성령의 능력으로 앉은뱅이로 태어나 한번도 걷지 못한 자가 고침받아 걷고 뛰는 이적이 일어났습니다. 사도의 그림자만 지나가도 사도의 손수건과 앞치마만 갖다 놓아도 병이 낫고 악귀가 떠나는 이적이 나타났습니다. 그리하여 놀랍게 변화되어 많은 영혼들이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는 사람의 말로 되는 열매가 아니요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맺어지는 열매인 것입니다.
그 한 예를 잠시 들겠습니다. 서울의 명문교회 이덕진 목사님은 우리 교회가 소속된 합동측 교단인데 이분이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입은 중에 한 교도관을 만나 변화시켰는데,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 고치지 못할 사람은 없다”라는 책을 쓴 박효진 장로님입니다. 박효진 장로님은 워낙 청송교도소에서 악명이 높은 분이어서 별명이 ‘지옥에서 온 박주임’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워낙 피도 눈물도 없이 죄수들을 엄하게 다루어서 얻은 악명이었습니다.
박효진 장로님은 원래 종갓집 장남이었는데, 그런 그가 잘 믿는 아내 덕분에 끌려서 믿음 없이 교회만 다녔는데, 아직도 마음에는 불신과 거부감이 가득한 채로 지냈습니다. 그는 교회 다니면서도 온갖 잡기에 능하였으니 술, 담배, 도박을 즐겼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청송 지역에 학교 교사인 이덕진 집사님이란 분이 은혜받고 교회에 와서 간증하는 것을 들었는데, 황당한 이야기로 들렸답니다. 그런데 은혜받은 아내가 이덕진 집사님을 모시고 집에서 예배 한번 드렸으면 좋겠다고 하도 간청하니까 못 이기는 척 집에 모셨으나, 이덕진 집사님 앞에서 기가 죽고 싶지 않아서 눈초리를 높여서 따지듯이 물었답니다. 도대체 성경 어디에 술 먹지 말라, 담배 피지 말라, 고스톱치지 말라는 말이 어디 있느냐고 따져 물었답니다. 그 말을 듣고 이덕진 집사님이 고린도전서 3:16,17 말씀을 펴서 읽자고 하더랍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그렇게 하고는 우리 몸이 얼마나 거룩한 성전인데, 거기에 이런 것을 들어붓는다는 것이 어찌 어울리는 일이냐고 차근차근히 설명해주더랍니다. 그 말을 한참을 들어보니 일리가 있어서 아무 말도 못하고서 다시 또 만나서 이야기하자는 말을 남기고 그 날 이덕진 집사님이 떠났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날 벌어졌답니다.
청송교도소에서 직원들과 얘기하면서 습관처럼 담배를 빼물었는데, 썩은 냄새가 나서 도저히 피울 수 없더랍니다. “이 담배 맛이 갔네. 다른 담배 하나 줘봐.”하고 옆 동료에게 한 대 구해서 피었는데, 더 지독한 냄새가 나더랍니다. 그래서 자리를 옮겨 난로 자리에 갔는데 또 주변에 지독한 니코틴 냄새가 나서 견디지 못하겠더랍니다. 그래서 속으로 “참 이상하다.” 생각하면서 할수 없이 신선한 바람이라도 쬐이면 나을까 싶어 밖에 있는 운동장으로 나갔답니다. 거기서 바람을 쐬는데 양 볼이 간지러워 만져봤더니 눈물이 흐르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찬바람 맞아서 눈이 시어서 그랬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계속 눈물이 나는데 뜨거운 눈물이 폭포처럼 나오더랍니다. 자신이 이상해진 것을 느껴지면서도 내면의 이상한 변화를 느꼈답니다. 박하사탕을 먹은 것처럼 속이 시원하게 느껴지면서 온 몸이 샤워라도 받는 것처럼 느껴지면서 더 눈물이 나오더랍니다. 그러면서 날아갈 것 같은 기쁨이 생기더랍니다. 그때서야 “이것이 바로 목사님이 그렇게 말씀하던 성령의 역사인가.” 하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정말 “하나님이 살아 계신가? 이러면 큰일인데.” 하면서 마음은 방망이질치는데, 실내로 들어오니 죄수들이 자기에게 오면 그렇게 불쌍해보이더랍니다. “저렇게 불쌍한 아이들에게 내가 너무 모질게 대했구나.” 하면서 통곡이 나오는데, 걷잡을 수 없어서 사무실에서 꺼이꺼이 대성 통곡을 하였답니다. 직원들은 나가주고 재소자들이 복도를 지나면서 박주임 완전히 맛이 갔다고 그러더랍니다. 그런 후에 그는 완전히 달라졌고 교도관으로 불러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재소자들을 위하여 헌신하며 살겠다는 각오가 생겨지더랍니다. 성경을 펴서 읽으면서 울고 또 울면서 그 때부터 완전히 전도자의 삶을 살기 시작하였답니다.
한 성령의 사람 이덕진 집사님 나중에 목사님이 되신 분인데, 이 성령의 사람과 접촉이 완전히 이름만 교인이지 세상 사람보다 더 악하고 모질었던 사람을 완전히 변화시켜 위대한 전도자의 사람으로 바꾸어놓고 만 것입니다. 이렇게 오직 성령만이 그렇게 사람을 바꾸어갈 수 있습니다. 성령만이 죽은 영혼을 살리고 변화시키며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놀라운 일을 계속하여 힘있게 해나갈 수 있습니다. 성령만이 권능을 주시며 하나님 나라를 땅끝까지 세워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하고자 한다면, 성령 받아야 합니다. 잃어버린 영혼을 건지며, 교회는 다니지만 변화되지 않은 영혼을 살리고, 연약한 교회를 힘찬 교회로 바꾸어가려면, 또 병든 자를 고치며 귀신 들린 자를 살리려면 성령을 받아야 하고 성령 충만한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철이 철이 날카롭게 함같이 친구가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한다”라고 성경이 말씀하신 대로, 우리를 만나는 사람들이 다 성령의 사람이 되어서 함께 하나님 영광을 위하여 뜨겁게 권세 있는 일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왜 우리에게 성령님께서 절대적으로 필요할까요? 성령만이 우리를 거듭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성령만이 하나님을 진심으로 경외함으로 사랑하는 은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만이 진실로 기도의 사람으로 바꾸어주기 때문입니다. 성령만이 능력 있는 주님의 일꾼이 되어 만나는 사람들을 성령의 사람으로 바꾸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의 명령을 따라 순종하여 이 시간 이후 성령을 늘 사모합시다. 성령 충만을 간구합시다. 그리하여 우리와 우리 삶에 하나님의 성령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복되고 위대한 일들이 계속하여 일어나는 현장을 늘 목도하는 은혜 속에 살아가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