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녹색 대문을 열면 반가운 미소로 엄마가 달려와 줄 것만 같다. 대문을 열자마자 노오란 모과가 열리던 아름드리 굵직한 모과나무가 정겹다. "케리"라 불리며 식구들 모두 정을 주었던 개가 꼬리를 흔들며 좋아서 어쩔 줄 모르듯이 반갑게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짖는듯 하다. 빠알갛게 앵두가 열려 한 소쿠리 가득 오빠와 내가 땄고 양 볼 가득 앵두를 입에 넣고 씨를 뱉어내며 웃었다. 이제는 볼 수 없는 엄마가 그립다. 푸근하고 다정했던 추억이 떠오른다.
어릴 적 엄마 손을 잡고 토마토를 파는 밭에 갔다. 엄마는 큰 대야 가득 이천 원어치 토마토를 사 머리에 이고 왔다. 난 미소가득 지으며 엄마 치맛자락을 잡고 뒤따랐다. 햇볕 따뜻한 오후였다.
대청마루 뒷문을 열고 멀리 노을을 보고 자유롭게 꿈을 꾸었던 생각이 난다. 하늘이 홍시 빛같이 물들어갈 때 세상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는 낮잠 자는 내게 부채질을 해주었다. 나중 깨어나면 엄마의 숨소리가 들렸고 세상이 평온하였다. 아직도 엄마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농촌이었던 고향 마을, 엄마는 새참을 머리에 이고 난 막걸리가 담긴 노란 주전자를 들고 엄마 뒤를 따랐다. 걸음에 흔들려 중간에 막걸리가 약간 쏟아졌다. 맛을 보니 달짝지근하고 맛있었다. 처음 느낀 막걸리 맛은 신세계였다.
누런 들판과 통통하게 여문 벼 이삭들을 햇빛이 이글거리며 쏘아댔다. 무거운 막걸리 주전자를 엄마에게 건네주고 난 너무 눈이 부셔 그늘에 누워 새참 먹기를 기다리며 하늘을 바라보고 누웠다. 팔베개를 하고 편하게 벌러덩 누운 들판 사이로 파란 하늘이 들어왔다. 하늘 한 조각이 퍼렇고 어린 눈에 비친 벼 이삭과 가을 풍경은 여유롭고 푸근하였다.
조그만 과수원을 했던 외가에서 가져온 복숭아로 엄마는 농촌 지도소에서 배운 방식으로 복숭아를 깎아 큰 유리병에 담아 뒤집어 세웠다. 겨울에 출출할 때 꺼내 먹으면 복숭아 통조림이 참 시원하고 맛났다.
가을이면 가지가 늘어질 정도로 주황색 감들이 열렸다. 큰아버지 집 대문 앞에 감나무가 풍성하게 늘어졌다. 잠자리채처럼 기다란 것으로 큰 감들을 땄다. 여기 저기 감나무채로 감이 달린 가지를 꺾고, 잘 익은 감들은 툭툭 그냥 떨어졌다. 땅에 떨어져 먹을 수 없게 된 감들을 보며 안타까워도 했다. 수북하게 모은 주황빛 감들, 군침이 돌 만큼 먹음직스럽던 가을날 감나무 풍경도 장관이었다. 겨울밤 구진할 때 얼음 박힌 통통한 감을 꺼내 오 남매를 먹였던 엄마가 그립다. 가을을 수채화 그리듯이 주황색 감나무들을 볼 때마다 엄마의 더없는 사랑이 그려져 활짝 웃으시던 엄마의 얼굴이 그려지곤 한다.
대전 동학사 벚꽃 축제 때 벚꽃이 하얗던 가로수길을 엄마와 아버지, 작은 언니와 나 넷이 웃으며 걸었다. 가위 소리 현란했던 엿장수, 노래 자랑..구경거리가 풍성해 새하얀 벚꽃 길을 걸으며 이 곳 저 곳 보느라 눈이 즐거웠다. 눈부시도록 하얀 벚꽃길, 지금도 텔레비전에서 가끔 나오면 세월이 흘렀어도 그 때가 선명하게 내 마음속에 그려진다.
세월이 흘러 한 사람을 만나 결혼하였다. 막 살림을 차린 경기도 가평에서 친정인 대전에 간다고 하니, 엄마가 맛있게 끓여주셨던 동태찌개를 잊을 수 없다. 두부 넣고 무도 넣은 평범한 동태찌개였겠지만 엄마의 정성이 추가됐으니 어찌 잊힐까? 지금도 보글보글 끓는 동태찌개를 보면 돌아가신 볼 수 없는 엄마가 생각나 괜스레 눈시울이 붉어지곤 한다. 그 정성, 하나라도 주고 싶어 마음 쓰던 엄마의 마음, 자식을 키워보니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세월은 흘렀지만
가슴에 새겨진 것이 있다. 내가 실수했거나 잘못했어도 무안하게 핀잔 주지 않고 포근히 감싸주던 엄마가 그립다. 초등학교 때 학교 대표로 글쓰기 대회를 나갔다. 글짓기 대상 받은 여자 아이가 나가서 "코스모스가 한들거립니다."로 시작하는 글을 읽었다. 상을 받지 못한 나는 낙담했으나 엄마는 용기를 주며 격려하였다. 이에 엄마의 정을 느끼며 뭐든 할 수 있다며 자신감을 느끼고 일어설 수 있었다. "은희야, 떨어져도 집에 들어와. 기운 내고!" 엄마의 목소리가 생생하다. 수능 전기에 떨어졌을 때도 글 응모에 당선과 떨어짐을 반복해도 낙담하지 않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건 어릴적 엄마의 무한한 사랑 덕분이다. 나를 믿어주고 신뢰해 준 엄마, 지금도 감나무나 동태찌개를 보면 돌아가신 엄마가 떠오른다. 그분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