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85. 왕자 보디의 경 (Bodhirājakumārasutta)
14. 한 쪽으로 물러나 앉은 왕자 보디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즐거움에 의해서 즐거움은 얻어질 수 없고, 괴로움에 의해서만 즐거움이 얻어진다.’라고 이와 같이 생각합니다.”
“왕자여, 나도 역시 올바로 깨닫기 전에, 올바로 깨닫지 못한 보살이었을 때에 ‘즐거움에 의해서 즐거움은 얻어질 수 없고, 괴로움에 의해서만 즐거움이 얻어진다.’라고 이와 같이 생각했습니다. 왕자여, 내가 나중에 젊은 청년이 되어 칠흑같은 머리카락을 지니고, 다복하고 혈기왕성한 인생의 청춘에 이르렀으나, 부모를 즐겁게 하지 않고, 그들이 눈물을 흘리고 통곡하는 가운데,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했습니다.
15. 그러한 내가 바로 이와 같이 수행자가 되어 무엇보다도 착하고 건전한 것들을 구하고 위없는 최상의 평화를 구하러, 알라라 깔라마가 있는 곳을 찾아갔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서 나는 알라라 깔라마에게 말했습니다.
‘존자여, 깔라마여, 나는 그대의 가르침과 계율에 따라 청정한 삶을 살고자 원합니다.’
왕자여, 이처럼 말하자 알라라 깔라마는 나에게 이와 같이 대답했습니다.
‘존자여, 머무십시오. 나의 가르침은 슬기로운 자라면 오래지 않아서 그 스승과 동일한 경지를 스스로 알고 깨달아 성취할 수 있는 그러한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왕자여, 나는 오래지 않아 그 가르침을 배웠습니다. 왕자여, 나는 스승이 말하는 것과 똑같을 정도로 그 지혜의 이론을 말하고 그 장로의 이론에 대해 말했습니다. 나와 남이 모두 ‘나는 알고 또한 본다.’라고 인정했습니다. 왕자여, 그 때 나에게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깔라마는 자신의 가르침에 대해 ‘나는 스스로 알고 깨달아 성취했다.’라고 단지 확신만으로 주장한 것이 아니다. 실제로 깔라마는 이 가르침을 알고 본다.’
16. 그래서 나는 알라라 깔라마가 있는 곳을 찾아갔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서 알라라 깔라마에게 말했습니다.
‘존자 깔라마여, 그대는 어떻게 ’나는 스스로 알고 깨달아(abhiññā) 성취했다.‘라고 주장합니까?’
왕자여, 이와 같이 말하자 알라라 깔라마는 ‘아무것도 없는 세계 (무소유처 ākiñcaññāyatana)’에 관해 알려주었습니다. 왕자여, 그러자 나에게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깔라마에게만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믿음이 있다. 깔라마에게만 정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정진이 있다. 깔라마에게만 새김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새김이 있다. 깔라마에게만 집중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집중이 있다. 깔라마에게만 지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지혜가 있다. 자, 이제 깔라마가 스스로 알고 깨달아 성취한 그 가르침을 스스로 성취하기 위해 노력해보면 어떨까?’
그 뒤에 왕자여, 나는 머지않아 곧 그 가르침을 스스로 알고 깨달아 성취했습니다.
17. 왕자여, 그래서 나는 알라라 깔라마가 있는 곳을 다시 찾아갔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서 알라라 깔라마에게 말했습니다.
‘존자 깔라마여, 그대는 이렇게 ‘나는 스스로 알고 깨달아 성취했다.’라고 주장합니까?’
‘존자여, 나는 ‘내가 스스로 알고 깨달아 성취했다.’라고 주장합니다.’
dhammaṃ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pavedemī
sayaṃ : [ind.] self; by oneself
sacchikatvā : [abs. of sacchikaroti] having realised; having experienced for oneself
sacchikaroti : [sacchi + kar + o] realises; experiences for oneself, 作証す, 証明をなす
upasampajjati : [upa + saṃ + pad + ya] attains; enters on; becomes fully ordained
pavedeti : [pa + vid + e] declares; makes known
스스로 통찰지(전생을 보는 것)를 경험하여 얻었다고 선언합니다.
‘존자여, 나도 이렇게 그 가르침에 대해 스스로 알고 깨달아 성취했습니다.’
‘Ahampi kho, āvuso, ettāvatā imaṃ dhammaṃ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āmī’ti.
‘존자여, 이와 같은 존자를 동료 수행자로 보는 것은, 우리들에게 참으로 다행하고 행복한 일입니다. 이와 같이 내가 스스로 알고 깨달아 성취하여 주장한 그 가르침을 존자는 스스로 알고 깨달아 성취했습니다. 존자가 스스로 알고 깨달아 성취한 그 가르침이 바로 내가 스스로 알고 깨닫고 성취한 가르침이라고 선언합니다. 이와 같이 내가 아는 가르침을 존자가 알고, 또한 존자가 아는 그 가르침을 내가 알았습니다. 이와 같이 나처럼 존자 역시 그러했고, 존자처럼 나 역시 그러했습니다. 오십시오. 존자여, 우리들 둘이서 이 무리를 수호합시다.’ 왕자여, 이와 같이 알라라 깔라마는 나의 스승으로서 오히려 제자인 나에게 최상의 존경을 표했습니다.
그러나 그 때 나에게 ‘아무 것도 없는 세계(무소유처)’에 머무는 한, 그의 가르침은 ‘싫어하여 떠남, 사라짐, 소멸, 적정, 지혜, 올바른 깨달음, 열반으로 이끌지 못한다.’는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왕자여, 그래서 나는 그 가르침에 만족하지 않고 그 가르침을 싫어하여 그 곳을 떠났습니다.
Tassa mayhaṃ, rājakumāra, etadahosi: ‘nāyaṃ dhammo nibbidāya na virāgāya na nirodhāya na upasamāya na abhiññāya na sambodhāya na nibbānāya saṃvattati, yāvadeva ākiñcaññāyatanūpapattiyā’ti. So kho ahaṃ, rājakumāra, taṃ dhammaṃ analaṅkaritvā tasmā dhammā nibbijja apakkamiṃ.
ahosi : [aor. of hoti] existed; was
upasama: [m.] calmness; appeasement, 寂静, 寂止, 休息, 止息
saṃvattati: [saṃ + vat + a] exists; leads to, 存在,导致
alaṅkaritvā [alaṃ+kara+tvā] alaṃ : able; suitable
nibbijja : [abs. of nibbijjati] having been disheartened or disgusted
nibbijjati : [ni + vij + ya] is disheartened or disgusted 厭, 嫌厭 싫어해서
apakkami: [aor. of apakkamati] departed; went away
apakkamati : [pa + kam + a] departs; goes away
왕자여, 그때 내게 하나의 생각이 있었다.; 이 법은 싫어함을 주지 못하고, 물들지 않음을 주지 못하고, 사라지게 함을 주지 못하고, 고요함을 주지 못하고, 통찰지를 주지 못하고, 완전한 깨달음을 주지 못하고, 열반을 주지 못한다. 왕자여, 그래서 나는 그 법을 만족해하지 않고 그 법을 싫어해서 떠났다.
18. 그래서 나는 무엇보다도 착하고 건전한 것들을 구하고 위없는 최상의 평화를 구하러 웃다까 라마뿟따가 있는 곳을 찾아갔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서 나는 웃다까 라마뿟따에게 말했습니다.
‘존자여, 라마뿟따여, 나는 그대의 가르침과 계율에 따라 청정한 삶을 살고자 원합니다.’
왕자여, 이처럼 말하자 웃다까 라마뿟따는 나에게 대답했습니다.
‘존자여 머무십시오. 나의 가르침은 슬기로운 자라면 오래지 않아서 그 스승과 동일한 경지를 스스로 알고 깨달아 성취할 수 있는, 그러한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왕자여, 나는 오래지 않아 그 가르침을 배웠습니다. 왕자여, 나는 스승이 말하는 것과 똑같을 정도로 그 지혜의 이론을 말하고 그 장로의 이론에 대해 말했습니다. 나와 남이 모두 내가 알고 또한 본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왕자여, 그 때 나에게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라마뿟따는 자신의 가르침에 대해 ‘나는 스스로 알고 깨달아 성취했다.’라고 단지 확신함으로 주장한 것이 아니다. 실제로 라마뿟따는 이 가르침을 알고 또한 본다.’
19. 그래서 나는 웃다까 라마뿟따가 있는 곳을 찾아갔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서 웃다까 라마뿟따에게 말했습니다
‘존자 라마뿟따여, 그대는 어떻게 ‘나는 스스로 알고 깨달아 성취했다.’라고 주장합니까?’
왕자여, 이와 같이 말하자 웃다까 라마뿟따는 ‘지각하는 것도 아니고 지각하지 않는 것도 아닌 세계(비상 비비상처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에 관해 알려주었습니다. 왕자여, 그러자 나에게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라마뿟따에게만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믿음이 있다. 라마뿟따에게만 정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정진이 있다. 라마뿟따에게만 새김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새김이 있다. 라마뿟따에게만 집중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집중이 있다. 라마뿟따에게만 지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지혜가 있다. 자, 이제 라마뿟따가 스스로 알고 깨달아 (abhiññā) 성취한 그 가르침을 스스로 성취하기 위해 노력해보면 어떨까?’
그 뒤에 왕자여, 나는 머지않아 곧 그 가르침을 스스로 알고 깨달아 성취했습니다.
20. 왕자여, 그래서 나는 웃다까 라마뿟따가 있는 곳을 다시 찾았다. 다가가서 웃다까 라마뿟따에게 말했습니다.
'존자 라마뿟따여, 그대는 이렇게 ‘나는 스스로 알고 깨달아 성취했다.’라고 주장합니까?’
‘존자여, 나는 ‘내가 스스로 알고 깨달아 성취했다.’라고 주장합니다.’
‘존자여 나도 이렇게 그 가르침에 대해 스스로 알고 깨달아 성취했습니다.’
‘존자여, 이와 같은 존자를 동료 수행자로 보는 것은, 우리들에게 참으로 다행하고 행복한 일입니다. 이와 같이 내가 스스로 알고 깨달아 성취하여 주장한 그 가르침을 존자는 스스로 알고 깨달아 성취했습니다. 존자가 스스로 알고 깨달아 성취한 그 가르침이 바로 내가 스스로 알고 깨닫고 성취한 가르침이라고 선언합니다. 이와 같이 내가 아는 가르침을 존자가 알고, 또한 존자가 아는 그 가르침을 내가 알았습니다. 이와 같이 나처럼 존자 역시 그러했고, 존자처럼 나 역시 그러했습니다. 오십시오. 존자여, 우리들 둘이서 이 무리를 수호합시다.’
왕자여, 이와 같이 웃다까 라마뿟따는 나의 스승으로서 오히려 제자인 나에게 최상의 존경을 표했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지각하는 것도 아니고 지각하지 않는 것도 아닌 세계’에 머무는 한, 그의 가르침은 ‘싫어하여 떠남, 사라짐, 소멸, 적정, 지혜, 올바른 깨달음, 열반으로 이끌지 못한다.’는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왕자여, 그래서 나는 그 가르침을 존중하지 않고 그 가르침을 싫어하여 그 곳을 떠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