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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14-19
역경을 이긴 히스기야의 믿음 / 손상률 목사
선진들의 역사는 후세 사람들에게 거울이 됩니다(고전 10:6).
솔로몬 이후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나누어진 다음 르호보암에서부터 시드기야까지(B. C 993-586) 모두 스무 명의 왕들이 거쳐 갔습니다. 그 중에도 히스기야는 열왕들 가운데 가장 모범적인 왕으로 바른 정치를 하였고, 역사에 귀감이 되는 업적을 남겼습니다. 히스기야는 그의 부친 아하스가 죽은 다음 유대나라 13대 왕으로 25살에 즉위하여 29년 동안(B. C 726-608) 치리하였습니다. 그는 북조 이스라엘의 왕들과는 달리 하나님의 계명과 율례를 따라 하나님의 법도를 지키며 바른 길을 감으로써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더욱이 히스기야가 치리하던 시기에 선지자로 활동하던 이사야가 옆에서 지켜주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신앙으로 자문하여 그로 하여금 성공적인 인물이 되게 하였습니다. 지금 우리는 믿음의 사람 히스기야의 사적을 살펴보고 특히 어려운 역경에 처했을 때 믿음으로 승리하게 된 비결을 교훈 받고자 합니다.
I. 하나님과 연합된 사람
열왕기하 18:6에는 “저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을 지켰더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그가 일평생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임마누엘의 삶을 살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제일주의로 사는 사람은 기뻐하시며 그와 함께 하십니다(창 5:24).
(1) 여호와께 정직히 행하였습니다.
열왕기하 18:3에 “히스기야가 그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라고 한 것을 보아 그는 왕위에 오른 후 다윗이 걸었던 그 신앙의 노선을 기키며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과 율례를 왕도의 규범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의 나아가는 길의 척도로 삼는 사람은 말씀의 기준에서 어긋나는 것을 과감하게 시정하고 척결합니다. 히스기야도 여러 곳에 있는 산당을 제하고 거기 세워진 주상을 깨뜨리고 아세라 목상을 찍어 없앴습니다. 그리고 모세 때 만들었던 놋뱀을 백성들이 분향하므로 그것을 모두 부수어서 쇠조각(느후스단)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왕하 18:4).
(2) 열왕 중에 제일 신앙적인 인물입니다.
열왕기하 18:5에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라고 하였습니다. ]
그는 이스라엘 열왕 중 하나님으로부터 가장 귀하게 인정받은 사람입니다. 이스라엘 열왕 중에는 개인적인 인품이나 능력 면에서 히스기야보다 월등하게 나은 왕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보시는 기준은 그가 전심으로 여호와를 의지하는 것과 매사를 말씀의 기준에 따라 정직하게 행하였다는 것입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고 하였습니다(렘 5:1)
열왕기하 18:7에 “여호와께서 저와 함께 하시매 저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일찍이 다윗은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왕위를 물려주면서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릇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찌라”고 하였습니다(왕상 2:3). 다윗이 이와 같은 유언을 하기까지는 그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통하여 하나님이 저와 함께 하시고 형통케 해 주셨던 승리의 경험에서 나온 말입니다(삼하 8:6).
II. 책벌과 능욕의 날
믿음의 사람 히스기야에게 최대의 위기가 왔습니다. 그것은 어떤 정적에 의하여 왕위를 빼앗기는 정도가 아니라 외적의 침략에 의해서 나라 전체가 무너지는 상황입니다.
열왕기하 19:3에 “저희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히스기야의 말씀이 오늘은 곤란과 책벌과 능욕의 날이라 아이가 임산하였으나 해산할 힘이 없도다”고 하였습니다.
(1) 앗수르 왕의 침입
구약시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범죄하거나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될 경우 하나님께서는 전쟁이나 기근이나 온역과 같은 재앙으로 그들을 징치하곤 하였습니다(삼하 24:13).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를 보면 그들이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이방인들에게 짓밟히고 전쟁으로 희생당한 일들이 가장 많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앗수르 왕 산헤립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먼저 징치 하였습니다. 열왕기하 18:10에 보면 이스라엘 왕 호세아의 구년에 사마리아가 함락되었다고 하였습니다.
또 12절에 보면 “이는 저희가 그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준행치 아니하고 그 언약을 배반하고 여호와의 종 모세의 모든 명한 것을 거스려 듣지도 아니하며 행치도 아니하였음이더라”고 하였습니다.
13절에는 “히스기야왕 십 사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올라와서 유다 모든 견고한 성읍들을 쳐서 취하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앗수르라는 몽둥이로 자기 백성을 징치하는 도구로 들어 썼습니다(잠 16:4).
(2) 대적할 수 없는 세력
이스라엘의 주변 국가들 중에 애굽이나 앗수르, 바벨론 같은 나라는 한때 세계역사를 주름 잡을 만큼 강력한 세력으로써 거기 맞설만한 나라가 없었습니다.
특히 앗수르 왕 산헤립은 십 팔만 오천의 대군을 보내 유다를 침공하게 하였습니다(왕하 18:17). 앗수르의 군대장관 랍사게는 그 많은 군사로 예루살렘을 포위한 채 히스기야 왕을 압박하였습니다.
열왕기하 18:20에 보면 “네가 싸울만한 계교와 용력이 있다고 한다마는 이는 입에 붙은 말 뿐이라 네가 이제 누구를 의뢰하고 나를 반역하였느냐”고 했습니다. 사실 히스기야에게는 앗수르의 군대를 막아낼 만한 힘이 없었습니다. 허약한 군사력으로는 도저히 맞설 수 없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3) 백성들의 좌절과 혼란
히스기야를 향한 랍사게의 협박은 집요하고 파괴력이 있었습니다. 왕의 사신인 궁내 대신 엘리아김과 서기관 셉나와 사관 요아가 랍사게의 위협하는 소리를 듣고 기가 질렸습니다. 랍사게는 너희 중에 말을 탈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말 이천 필을 내어주겠다고 했습니다.
“너희 들이 다 나와도 내 신복 중 지극히 작은 장관 하나인들 물리칠 수 있느냐”고도 했습니다(왕하 18:23-24).
이 말을 듣던 엘리아김과 셉나와 요아는 랍사게에게 백성들이 들으면 곤란하니 아람 방언으로 말하고 유대 방언으로는 말하지 말아달라고 사정을 했습니다(왕하 18:26). 랍사게는 오히려 더 큰 소리로 백성들이 듣는데서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며 “열국의 신들 중에 그 땅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진 자가 있느냐”고 하였습니다(왕하 18:33).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왕과 방백들과 백성들 모두는 간이 물처럼 녹아내리며 크게 당황하고 혼란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처지를 당한 히스기야는 “오늘은 곤란과 책벌과 능욕의 날이라 아이가 임산하였으나 해산할 힘이 없도다”하고 탄식하였습니다(왕하 19:3).
III. 결사적인 기도
히스기야처럼 경건한 성도에게도 때때로 시험이 오고 피할 수 없는 어려움에 직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위기에 처했을 때 하나님을 향하여 도우심을 청하고 간절히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이 있습니다. 국가적인 위기에 처한 히스기야 왕은 결사적으로 하나님께 매달리며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1) 선지자에게 사람을 보냈습니다.
다급해진 히스기야 왕은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고 하나님의 전으로 올라가면서 한편으로 궁내 대신 엘리아김과 서기관 셉나와 제사장 중 장로 몇 사람을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에게 보냈습니다(왕하 19:1-2).
5절에도 “이와 같이 히스기야왕의 신복이 이사야에게 나아가니”라고 하였습니다.
히스기야는 참으로 믿음 있는 사람이며, 신앙인의 태도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어느 때나 불신앙의 사람들은 찾아야 할 바른 길을 두고도 잘못된 길을 가곤 하였습니다.
아모스 5:4-5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길갈은 정녕 사로잡히겠고 벧엘은 허무하게 될 것임이라”고 하였습니다.
히스기야가 이사야를 찾았을 때 이사야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앗수르 왕 산헤립 까닭에 내게 기도하는 것을 내가 들었노라”하고 하나님의 계시를 전해 주었습니다(20절).
(2) 성전에 올라가서 기도하였습니다.
위기에 처한 성도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도우심을 요청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며 가장 올바른 신앙 행위입니다. 옛날 르호보암의 손자 되는 아사 왕은 구스사람 세라가 백만 대군으로 쳐들어올 때 하나님께 부르짖기를 “여호와여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 밖에 도와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하고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대하 14:11).
여기 히스기야 왕도 매우 절박한 가운데 하나님께 나아가서 처절하게 부르짖었습니다. 그는 랍사게가 보낸 편지를 사자의 손에서 건네받고는 그것을 여호와 앞에 펴 놓고 그 앞에서 기도하였습니다(14절).
16절에 보면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소서 여호와여 눈을 떠서 보시옵소서 산헤립이 사신 하나님을 훼방하러 보낸 말을 들으시옵소서”하고 외쳤습니다.
(3) 확신에 찬 기도입니다.
성도가 다급하면 저절로 하나님을 찾게 되고 또 사생결단 하는 식의 기도를 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때로는 그 기도가 너무나 자기의 목적만을 관철하고자 하는 이기적인 기도로 흐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 히스기야의 그 태도나 내용에 있어서 절절히 그의 신앙과 하나님을 위한 목적의식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는 먼저 앗수르 왕이 이웃의 열방을 휩쓸고 함락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나라들은 의지하는 신이 죽은 신이고 사람의 손에 의하여 만들어진 가공물이었기 때문에 도울 힘이 없었다고 하였습니다(18절).
히스기야의 신앙은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이요 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에 당연히 능력을 발휘하실 수 있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의 기도 내용 중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원컨대 이제 우리를 그 손에서 구원하옵소서 그리하시면 천하 만국이 주 여호와는 홀로 하나님이신줄 알리이다”고(19절) 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내고자 하는데 목적을 두었습니다.
Ⅳ. 하나님의 능력이 행사되었습니다.
신약의 야고보는 어려움을 당하는 성도가 하나님께 기도할 것을 강조하면서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고 하였습니다(약 5:16). 정말 히스기야의 기도는 하나님의 응답을 얻어 내었고 상상 못할 기적을 연출하였습니다.
(1) 즉각적인 하나님의 응답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이사야를 보내서 히스기야의 기도에 대한 대답을 하였습니다. 곧 “네가 앗수르 왕 산헤립 까닭에 내게 기도하는 것을 내가 들었노라”고 하였습니다(20절). 이어서 하나님께서 앗수르 왕에게 하시는 말씀이 “네가 누구를 꾸짖었으며 훼방하였느냐 누구를 향하여 소리를 높였으며 눈을 높이 떴느냐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에게 그리하였도다”고 하였습니다(22절).
이어서 앗수르 왕에 대한 징벌을 말씀하였습니다. 27-28절에 “네 거처와 네 출입과 네가 내게 향한 분노를 내가 다 아노니 네가 내게 향한 분노와 네 교만한 말이 내 귀에 들렸도다 그러므로 내가 갈고리로 네 코에 꿰고 자갈을 네 입에 먹여 너를 오던 길로 끌어 돌이키리라”고 하였습니다.
(2) 산헤립의 군대가 몰락되었습니다.
35절에 보면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에서 군사 십 팔만 오천을 친지라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고 하였습니다. 36-37에 보면 앗수르 왕 산헤립이 자기 나라로 돌아가서 신의 묘에 경배하던 중 자객들의 칼에 죽고 말았습니다. 삽시간에 되어진 이런 일은 하나님께서 친히 개입하시고 그들을 무너지게 하신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처음 사자를 이사야에게 보냈을 때 이미 “너는 앗수르 왕의 신복에게 들은바 나를 능욕하는 말을 인하여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한 영을 저의 속에 두어 저로 풍문을 듣고 그 본국으로 돌아가게 하고 또 그 본국에서 저로 칼에 죽게 하리라”고(왕하 19:6-7) 하신 말씀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어느 때나 하나님께서는 주님만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나아오는 사람에게 구원의 손을 펼쳐 주십니다. 다윗은 골리앗 앞에 맞서면서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고 하였습니다(삼상 17:47).
(3) 하나님의 언약이 실현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에 신실하신 분입니다.
34절 말씀에 “내가 나와 나의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여 구원하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산헤립의 십 팔만 오천 군사를 다 물리치시고 예루살렘을 구원하신 것은 이미 그의 종 다윗과 맺은 언약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그의 후손이 역사의 주역으로 빛날 것을 약속하였습니다(창 22:17). 하나님의 이 약속은 다윗을 통하여 실현되는 이스라엘 왕국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수 없는 고비마다 하나님께서는 그 언약 때문에 그 나라를 멸망하지 않게 보호하시고 구해 주셨습니다(왕상 11:3). 결국 이 약속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로 이어지는 메시야 왕국의 비젼을 열어 놓은 것입니다.
이사야 55:3에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고 하였습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하나님의 이 언약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언약이라고 하였습니다(사 7:9). 본문 말씀 31절에도 똑같이 “여호와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루리라”고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