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후 1: 4 환란 중에서 위로하사 ( 상 )
고후 1: 4 환란 중에서 위로하사 -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
바울은 하나님의 위로를 체험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환난 중에서” 그와 그의 동료들을 위로하셨다. 성도에게는 환난이 있으나 위로도 있다. 그것은 사람의 위로 정도가 아니고 하나님의 위로, 즉 하나님의 영육의 도우심과 간섭하심의 위로이다.
성도는 이 땅에서 환난을 통과해야 한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핍박과 순교의 길을 통과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모든 고난 중에서 하나님의 위로가 있었다.
하나님께서 사도들을 환난 중에서 위로하신 것은 그들로 환난 중에 있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자가 되게 하시기 위해서였다. 고난 중에서 하나님의 위로를 체험한 자마다 고난을 겪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위로를 전해주고 그들을 위로하며 격려하는 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1]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본 절의 '우리'는 일차적으로 본 서신의 발신인인 바울 자신을 가리키며 넓게는 본 서신을 읽게 되는 전체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킨다(Barrett, Lowery).
본서에서 바울이 아홉 차례나 사용하고 있는 '환난'(*, 들립세이)이라는 단어는 그리스도인의 실존(實存)이 환난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말해준다(8절. 2: 4. 4: 17. 6: 4. 7: 4. 8: 2, 13).
세상이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게 마련이다.
* 요 15: 19-20 – 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20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환란’이라는 단어이다. 이 단어로 번역된 대표적 헬라어는 드맆시스(θλῖψις)이다. 이 단어의 기원에 대해서는 확실하지 않지만, 동사의 뜻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
동사는 드리보(θλίβω)인 데, ‘누르다’(press), ‘짜내다’(squeeze), ‘좁게 하다’(make narrow) 등의 뜻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이 단어가 원래 포도 열매나 올리브를 틀에서 짜는 것을 표현하는 데 쓰였다고 한다.
기름이나 열매를 짜내는 과정을 통하여, 포도 진액이나 감람유를 얻어내는 기쁨을 가지기에 결코 짜내어지는 고통이나 억눌림의 과정이 의미가 없거나 헛된 것은 아니다.
드맆시스(θλῖψις)는 단순히 형벌적인 정죄나 심판을 뜻하는 단어 크리마(κρίμα)와는 다르다. 환란을 통하여 만들어지는 성장, 변화, 열매, 승리라는 목적을 기대하기에 이 단어는 신학적 종말론적 의미로 사용된다.
헬라어 구약성경 셉투아진트(the LXX)에서 드맆시스(θλῖψις)는 대체적으로 히브리어 동사 짜라(צָרַר)의 히필 동사의 뜻인 ‘핍박하다’ ‘괴로움을 주다’ ‘에워싸다’에서 온 명사 짜라(צָרָה, distress, oppression, trouble)를 번역한 것이다.
70인 역에서 드립피스 θλῖψις는 외적인 괴로움, 불행, 재난의 의미를 지닌 환란을 뜻한다. 이 환란의 종류가 전쟁,
* 신 28: 53 - 네가 적군에게 에워싸이고, 맹렬한 공격을 받아 곤란을 당하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자녀, 곧 네 몸의 소생의 살을 먹을 것이라.
압제,
* 출 3: 9 -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포로 됨,
* 신 4: 29 - 그러나 네가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되리니 만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그를 찾으면 만나리라.
죽음의 위험이기도 하고, 시편 106편에서는, 광야의 방황, 갇힘, 병, 파선 등을 환란의 종류로 열거한다.
* 시 85: 7 -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보이시며 주의 구원을 우리에게 주소서.
이러한 외적 환란뿐만 아니라, 내적인 두려움, 심령의 괴로움, 걱정과 근심에 대해서도 성경의 저자는 드맆시스(θλῖψις)라고 본다.
신약성경에서는 드맆시스(θλῖψις)를 물리적인 핍박과 압제의 뜻으로 사용하지만, 다른 많은 곳에서는 드맆시스(θλῖψις)를 은유적으로 사용한다.
* 행 11: 19 -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 고후 1: 4 -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 빌 4: 14 -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 살전 1: 6 -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 살전 3: 7 - 이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너희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위로를 받았노라.
* 살후 1: 4 - 그러므로 너희가 견디고 있는 모든 박해와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하노라.
* 히 10: 33 - 혹은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은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과 사귀는 자가 되었으니
* 계 2: 9 -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
주께서는 서머나 교회 목사의 계명 순종과 충성의 행위와 환난과 궁핍을 아셨다. 주께서는 우리의 계명 순종과 충성을 아신다. 또 주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들은 이 세상에서 많은 환난과 궁핍을 경험할 것이다.
* 행 14: 22 -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칭찬 :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1) 환난(患難) : [영] Tribulation [히] tsar, tsarah [그] thlipsis .
성경에서 말하는 환난[트립시스(thlipsis)]이란 외부상황에서 오는 고뇌, 중압감, 불행을 의미한다. 고뇌를 의미하는 파데마(pathema)와는 구별된다. 엄밀하게 양자를 구별하기는 곤란하다. 양자는 동시에 쓰여 있어 구별하기 어렵다.[롬 2: 9. 8: 35. 고후 1: 6]
성경은 모든 환난을 인류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로 본다. 이사야서는 고난의 종이 불의한 사람들을 위해 고난을 당한다는(사 42: 1-4. 49: 1-6. 50: 4-9. 52: 13 – 53: 12) 사상에까지 달해 있다.
이 사상이 신약에서는 예수의 수난이다.'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 이루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눅 12: 50]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 45]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말씀 중 세례라든가 섬김은 그의 수난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 주께서 고난을 겪으셨으므로 우리도 고난을 몸에 져야 한다. 예수님은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자기 피로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다. '그런즉 우리도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히 13: 12-13]
예수의 수난은 구원에 이르는죄의 대속인 동시에, 구원을 찾아내는근거요, 모범이다. 그가 하나님의 아들일지라도 받으신 고난과 순종으로 온전하게 되셨다. 따라서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다.
* 히 5: 8-10 – 8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9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10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으셨느니라.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셨다. [벧전 2: 21]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면 겉 사람은 부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게 된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다.
* 고후 4: 16-18 – 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롬 5: 3-4] 예수 그리스도의 환난을 통하여, 구원에 이르며, 참된 환희를 환난에서 찾아낼 수 있다.
바울은 육체에 가시 하나가 자기에게 주어진 것으로[고후 12: 7]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12: 9)고 말한다.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12: 9-10) 했다.
환난에 대한 많은 기록이 바울의 편지에 나타난다. 특히 복음의 사자로 직면했던 일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의 용기, 희망, 위로 등 각양의 심경을 아는 실마리가 되었다.[행 20: 23. 롬 5: 3. 8: 35. 고후 1: 4-8. 2: 4. 4: 17. 6: 4. 7: 4. 8: 2. 엡 3: 13. 빌 1: 17. 4: 14. 살전 1: 6. 3: 3,7. 살후 1: 4]
바울은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희망으로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였다. [롬 5: 3] 이렇게 말하는 것은 고통을 몰라서가 아니라, 환난이 임시적임을 알기 때문이다. 또 세상에 있는 그리스도인에게 불가결의 한 부분 됨을 알기 때문이다.
* 행 14: 22 -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 계 21: 4 -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 계 22: 12 –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또한 그리스도인의 고난이나 환난은 구원의 증거이며, 그를 성장하게 하는 힘인 것을 알기 때문이다.
* 빌 3: 10 -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예수님 때문에 받는 환난이다. 이 교회는 예수 믿는다는 것 하나 때문에 핍박을 받고 순교를 당했다. 여러분들도 남편이 못 믿게 하는데 교회 나온다. 생활이 어려운데 예배 시간을 지킨다. 이것도 다 환난의 종류다.
예수님 때문에 겪는 외부적 고통은 다 환난이다. 바클레이는 이런 말을 했다. '이런 것은 생각도 하기 싫은 것들이지만 예수 믿기로 작정했으면 이런 것들은 각오하고 있어야 한다.'
'환난'에 해당하는 헬라어 '들마신'(*)는 '무거운 물건 밑에서 눌려 부서지는 것'을 의미하는 말로, 신앙으로 말미암아 받는 외부적 핍박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