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코끼리가 유배 간 이 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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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전쟁사에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23전 23승의 신화를 써내려간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무용담은 아무리 많이 들어도 지루하지 않은데요.
가을비가 옷깃을 적시는 추풍낙엽의 달, 11월 첫 주말에~
이순신장군의 임진왜란 23번의 전투 중에서 22승에 이름을 올린 장도해전의 격전지 장도!
우리나라 최초의 코끼리가 유배된 여수시 율촌면 장도로 고고씽합니다.
여수에는 ‘장도’가 두 곳이라는 사실 잘 아시죠.
여수시 웅천동에 자리 잡은 예술의 섬 장도,
그리고 여수시 율촌면 여동리에 자리 잡은 임란 구국의 섬 장도!
이렇게 두 군데가 있는데요.
오늘 포스팅은 잘 알려지지 않은 섬, 율촌 장도에요.
원래 장도는 송도, 대늑도, 소늑도와 함께 광양만에 떠있는 여동리에 속한 네 개의 섬마을 중 하나였어요.
여동리의 본래의 마을 이름은 송도와 장도의 첫 글자를 따서 송장리 였는데요.
‘송장’이 사람의 시신인 송장이 연상되는 단어라 하여 1995년 여수의 동쪽을 의미하는 여동리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해요.
장도는 섬 모양이 노루를 닮아 노루장‘獐‘자를 써 장도라고 하는데요.
섬 주변의 수심이 낮아 남해안 패류의 보고였지만 율촌산단이 조성되면서 매립되어 육지가 되고 말았어요.
예전 노루섬의 모습이 아니라서 아쉽긴 한데요.
그럼 지금부터 장도해전과 코끼리의 스토리를 따라 장도로 시간여행을 떠나보겠습니다..
장도공원 입구에 들어서니 이순신장군 동상이 보입니다.
이순신 장군 동상은 칼 대신 활시위를 당기고 있는 이순신장군의 동상이에요.
이순신 장군 동상은 항상 긴 칼 옆에 차고 근엄한 모습으로 세상을 호령하는 모습 이었는데~
활 쏘는 충무공의 동상은 처음 본 듯합니다.
난중일기를 보면 이순신 장군은 늘 활쏘기 연습에 매진했으며 부하들에게도
'적의 머리를 베는 것보다 활로 사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치셨죠.
동상 앞에는 거북선 조형물이 있고 뒤에는 장도해전에 참가한 장수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요.
동상의 오른쪽에는 정찬주 작가의 대하역사소설 <이순신의 7년>의 내용 중 일부를 발췌한 글이 적혀 있고~
동상 왼쪽에는 “이순신 마음은 한국인의 마음이다” 오른쪽에는“호남이 없다면 국가도 없다-장도해전 이야기”가 적혀 있습니다.
장도는 남북으로 길게 뻗은 형태의 섬으로, 수백 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었는데요.
주민 대부분이 농업과 어업을 겸했으며, 바지락과 꼬막 등을 양식하는 살기 좋은 동네였어요.
하지만 지금은 율촌제1산업단지 매립 공사로 육지가 되었고,
장도에 살던 사람들은 1998년 율촌면 월산리 일대로 이주하게 되었지요.
이후 장도는 조명 연합군의 전초기지가 되어 임진왜란 구국의 역사에 중심이 되는데요.
충무공의 임란 22번째 해전인 장도해전에서 조명연합군은 30여 척의 왜선을 격침시키고,
11척을 나포, 왜군 3,000명을 수장시켰다고 합니다.
이 해전에서 명나라 전선 30척이 격침당하고, 수군 2,000명이 전사할 정도로 명나라의 피해는 컸는데요.
조선수군의 피해 상황은 왜군에게 포위된 명군을 구하러 가던 사도 첨사 황세득과 군관 이청일,
휘하의 조선군 130명이 전사했지만 피해는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었어요.
임란 구국의 섬 장도에는 이런 전설이 있어요.
하루는 이순신장군이 빈 배에 대나무 다발을 올려놓고 불을 붙인 후
바람과 물 흐름 이용하여 왜교성을 향하도록 배를 띄웠다고 해요.
배가 왜교성 인근에 이르러, 불이 붙은 대나무가 터지면서 총 소리처럼 요란한 소리를 내자
놀란 왜군들은 그 빈 배에 집중 사격을 했고~
결국 대나무를 실은 배는 계속 전진하여 왜성이 불탔다는 전설이에요.
장도 지역에 내려오는 또 다른 전설이 있는데요. 왜군들에게 이 바다는 지옥의 문이었어요.
왜성과 장도 그리고 노량에서 죽은 왜군의 귀신들이 울부짖는 소리로
인근 사람들은 한날한시도 제대로 된 잠을 잘 수 없었다고 해요.
밤마다 울부짖는 왜귀(왜군 귀신)때문에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마음 편히 지내지 못하던 백성들은
마지막 방편으로 순천왜성 맞은편에 이순신 장군을 모시는 사당을 세웠어요.
충무공 사당에서 충무공의 영정을 보고 깜짝 놀란 왜귀들이 이후로 조용해 졌다는 전설이에요.
여기 보이는 건물은 장도기념관이에요.
장도기념관은 내부에 장도해전 관련 유물과 자료들을 전시할 예정이라고 하는데요.
지금은 건물만 세워져 있는 상태라 안으로 들어 갈 수는 없어요.
빨리 공사가 마무리 되어 충무공의 정신을 배울 수 있는 역사체험관으로 태어났으면 좋겠어요.
섬 정상(88m)으로 가는 길은 경사가 심한 편이지만, 산 정산에 봉수터가 남아있고~
여수와 순천 그리고 광양이 한눈에 조망되고 올망졸망한 섬들이 그림처럼 펼쳐집니다.
정상까지 오르는 테크길과 의자 등이 있어 산책하기도 좋은데요. 무엇보다도 야생화가 있는 향기로운 가을길이라 좋습니다.
조선 태종 11년(1411년) 일본 국왕이 조선에 코끼리를 바칩니다.
태종은 궁중의 말과 가마, 목장 등을 관장하던 사복시에서 맡아 기르라는 명을 내리는데요.
이듬해(1412년) 공조전서를 지낸 전직 관리 이우가 코끼리를 구경하기 위해
사복시에 들어갔다가 코끼리를 생김새를 보며 침을 뱉으며 비웃었다고 합니다.
이에 화가 난 코끼리가 갑자기 달려들어 이우가 밟혀 죽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놀랍게도 형조판서 유정현을 재판장으로 하여 코끼리의 죄에 대해 논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동물재판이 열리는데요.
재판 결과는 사람을 죽인 코끼리를 이곳 노루섬에 유배 보내는 것으로 판결이 났습니다.
이리하여 장도는 한국 최초의 코끼리 유배지에 이름을 올리게 됩니다.
전라도 관찰사가 보고하기를, "길들인 코끼리를 순천부(조선시대는 여수가 순천부에 속함)
장도(獐島)에 방목(放牧)하는데, 수초(水草)를 먹지 않아 날로 수척하여지고, 사람을 보면 눈물을 흘립니다."
이 말을 들은 태종은 코끼리를 불쌍히 여겨 육지로 돌아오게 하면서 장도에서의 코끼리의 유배생활은 끝나게 됩니다.
장도공원
전라남도 여수시 율촌면 여동리
첫댓글 좋은 정보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