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군세기.(119)
[46세 단군 고열가 재위 58년].-2
癸亥五十八年帝仁柔不斷令多不行諸 계해오십팔년제인유불단령다불행제
將恃勇禍亂頻起國用不敷民氣益衰 장시용화란빈기국용불부민기익쇠
三月祭天之夕乃與五加議曰 삼월제천지석내여오가의왈
昔我列聖肇極垂統種德宏遠永世爲法今 석아열성조극수통종덕굉원영세위법금
王道衰微諸汗爭强惟朕凉德懦不能理無 왕도쇠미제한쟁강유짐량덕나불능이무
策招撫百姓離散惟爾五加擇腎以薦大開 책초무백성이산유이오가택신이천대개
獄門放還死囚以下諸俘虜翌日遂棄位入 옥문방환사수이하제부로익일수기위입
山修道登仙於是五加共治國事六年 산수도등선어시오가공치국사육년
先是宗室大解慕漱密與須臾約襲據 선시종실대해모수밀여수유약습거
故都白岳山稱爲天王郞四境之內皆爲 고도백악산칭위천왕랑사경지내개위
聽命於是封諸將陞須臾侯箕丕爲番朝鮮王 청명어시봉제장승수우후기비위번조선왕
徃守上下雲障蓋北夫餘之興始此而高句麗 왕수상하운장개북부여지흥시차이고구려
乃解慕漱之生鄕也故亦稱高句麗也 내해모수지생향야고역칭고구려야
계해 58년(B.C. 238년) 단제께서는 어질고 순하기만 하고 결단력이 없었으니, 명령을 내려도 시행되지 않은 일이 많았고 여러 장수들은 용맹만을 믿고 쉽사리 난리를 피웠기 때문에 나라의 살림은 시행되지 않고 백성의 사기는 날로 떨어졌다. 3월, 하늘에 제사하던 날 저녁에 마침내 오가들과 의논하여 가로대
"옛 우리 선조 列聖(열성)들께서는 나라를 여시고 대통을 이어가실 때에는 그 덕이 넓고 멀리까지 미쳤으며, 오랜 세월동안 잘 다스려졌거늘 이제 왕도는 쇠하고 여러 왕들이 힘을 다투고 있도다. 짐은 덕없고 겁 많아 능히 다스리지 못하니 어진 이를 불러서 무마시킬 방책도 없고 백성들도 흩어지니, 생각컨대 그대들 오가는 어질고 좋은 사람을 찾아 추대하도록 하라." 고
하시고 크게 옥문을 열어 사형수 이하의 모든 죄수들을 돌려 보내도록 하였다. 이튿날 마침내 왕위를 버리시고 입산수도 하시어 신선이 되시니, 이에 오가가 나라 일을 함께 다스리기를 6년이나 계속하였다. 이 보다 앞서 宗室(종실)의 大解慕漱(대해모수)는 몰래 수유와 약속하고 옛 서울 백악산을 습격하여 점령하고는 天王郞(천왕랑)이라 칭했다. 須臾候(수유후) 箕丕(기비)를 권하여 번조선 왕으로 삼고, 나아가 상하의 운장을 지키게 하였다. 대저 북부여의 일어남이 이에서 시작되니 고구려는 곧 해모수의 태어난 고향이기 때문에 역시 고구려라 칭하는 바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