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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오지랖 좀 그만 부리라며 등짝을 맞았다. 지난주에 타코야끼에 파채를 얹어먹으면 맛있다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이 기쁨을 나누기 위해 친구들과 손을 잡고 타코야끼집에 갔는데, 그 중 한명이 나의 강력한 추천에도 불구하고 오리지널을 주문해 다시 생각해보라며 만류하다 일어난 일이다. 하지만 파채를 얹어먹으면 더 맛있는 걸…
천생이 오지라퍼인 나는 선을 넘지 않으러 조심 또 조심하며 지낸다. 적어도 나름은 그렇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오지랖을 부려도 될 것만 같은 기분이다. 싫다는 이솔님을 끌고나오신 따님처럼 말이다.
살림의 조합원 협동 운동공간인 다짐에서 처음 만나뵌 이솔님은 산뜻한 짧은머리에 핫핑크 두건을 두르고 계셨다. 동작동작 능숙히 따라하시며 운동 연륜을 뽐내시는 모습이 멋졌다. 운동을 마치고 몸을 풀며 이솔님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이솔님은 오늘 운동을 마치시고도 스케줄이 빡빡하셨다. 일단 같이 오신 분들과 맛있는 것으로 영양보충을 하러 가야 하고, 서로 소식 업데이트도 하셔야 하고, 뜨개질 작품도 완성 하셔야 하고, 악기 연습도 하셔야 한다고. 이솔님은 스스로는 ‘구르는 돌’이라 부르시며 이끼 낄 새가 없다고 하셨다.
이솔님의 에너지에 덩달아 나도 하고 싶은 것들이 마구 떠올랐다. 그런데 이런 이솔님도 다짐에 오기 전에는 매우 다르셨다고 한다.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식구들을 챙기며 힘들었다고, 그래서 조금 쉴 수 있게 되자 더는 움직이고 싶지 않으셨다고 하셨다. 그런데 살림의원에서 좀 가만히 있겠다는 사람에게 운동을 처방으로 내주었고, 싫다는데도 딸이 손붙잡고 다짐으로 끌고오셨단다. 얘기를 듣다보니 과거 어느 겨울 털모자 뒤집어 쓰시고 몸의 무게중심을 한껏 뒤로한 채 딸에게 한 손 잡혀 뒤꿈치 끌며 다짐 앞 골목에 나타나는 이솔님이 그려져 웃음이 났다.
이솔님은 처음에는 운동은 있는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셨다고 한다. 그러나 따님 손을 잡고 다짐에 다니시며 차츰차츰 몸이 건강하지셨고, 운동이 좋아졌고, 다른 욕구들도 생기셨다고 한다. 지금은 먹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궁금도 하시단다. 살림 협동조합에서 대의원도 하시며 은퇴를 하였지만 전에는 생각치 못했던 방식으로 계속 삶을 확장해나가신다고 한다. 얘기를 풀어놓으시면서도 이솔님은 누구보다 부지런히 자세를 바꿔가시며 다양한 폼롤러 스트레칭을 시전하셨다.
운동 효과와 다짐이라는 공간에 대한 간증은 이솔님 이후로도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운동을 하니 잡념이 사라졌다는 분, 승질이 줄었다는 분, 진통제 없이 잠들 수 있게 되셨다는 분 등 다양했다. 그리고 이들 대부분 또한 친구의 시작은 누군가가 손을 잡아 끌고 등을 밀어주어 이 공간에 처음 들어오게 되셨다고 한다.
이솔님이 스스로를 ‘구르는 돌’이라고 표현하신 것이 귀여워 이 표현에 대해 생각해보다 어느순간 멈춰버린 돌이 다시 구르려면, 다시 굴려주는 외부의 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아픔은 슬프게도 악순환이다. 아파서 피로해져 움직이지 않으니 우울해지기 쉽고, 움직이지 않으니 더 아파지고, 마음이 힘드니 몸을 관리하기도 더 힘들고; 또 아파서 일하는 데 지장이 있어 가난해 지고 있고, 사정이 여의치 않아지니 건강을 챙기기 더 힘들어지고… 이러한 순환을 끊어내려면 대부분은 외부적 개입이 필요하다. 다행히도 다짐의 회원들에게는 딸이, 어머니가, 친구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손내밀어 줄 사람이 없는 분들은 어쩌면 좋을까. 훈훈하게 달아오른 마음이 다시 울적해지려던 찰나 이솔님께 처음 운동을 처방으로 내주신 원장님 생각이 다시 났다. 문득 대부분의 아픈 사람들을 정기적으로 만날 수 있고, 이들에게 도움이 될 정보도 알고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났다. 의사이다. 호소하는 증상에 대한 처방을 내주는 것으로 마칠 수도 있겠지만, 마음만 먹으면 한 발짝 더 나가 오지랖을 좀 더 부려볼 수 있는 사람.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다 필요한 것을 떠올려 줄 수 있는 사람. 좋은 의사의 1번 조건은 무엇보다도 제대로 된 의학 지식을 가지는 것이겠지만, 2번이나 3번쯤에, 사람을 치료하는 의사라면, 오지랖을 부리고자 하는 마음도 들어가지 않을까 싶었다. 환자가 말하지 않은 필요가 보이고, 알고 있는 좋은 것들을 어떻게든 다른 사람에게도 전파 하고 싶은 마음. 그렇다면 천생 오지라퍼인 나에게 의사는 천직인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오지랖은 메스이기도 하다. 오지라퍼로 살면서 알게된 것이다. 종양을 도려낼 수도 있지만 남의 마음을 괜히 헤집어 놓을 수도 있는. 조심히 다루는 법을 알아야하는 이유다. 다짐의 벽에는 이에 도움이 되는 ‘서로 돌봄 약속’이 크게 적혀있었다: ‘중요한 것: 소통, 협동, 지지, 격려, 책임, 예상치 못한 발견, 꾸준함; 없는 것: 텃세, 성차별, 나이차별, 폭력, 잘난 척, 외모지상주의.’ 정말이지 감탄스러운 통찰이었다. 경험과 토론을 통해 추출 되었을 귀한 단어들. 오지랖을 참을 수 없는 사람들이라면 책상머리에 써붙이고 아침저녁으로 들여다봐야 할 약속들이다. 이에 내가 깨달은 두 가지만 덧붙여 보자면, 먼저는 오지랖의 출 발이 남에 대한 애정인지 내가 아는 것을 뽐내고 싶은 나에 내한 애정인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또 하나는 오지랖은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는 게 좋다는 것. 너도 밉고 나도 미운 가장 슬픈 결말을 맞지 않기 위해서는 무리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몸이 건강해지는 법과 함께, 오지라퍼로써 건강해지는 법까지 배운 알찬 다짐에서의 시간이었다. 이 좋은 공간이 참이지 널리널리 알려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운동하고 관계맺고 건강해졌으면 한다. 그리고 타코야끼에 파채를 올려먹는 걸 다들 꼭 한번씩은 시도해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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