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漢詩)
회갑축시(回甲祝詩)
요과육순유일년了過六旬有一年
창안소발양표연蒼顔素髮兩飄然
낙심상체개화후樂湛常棣開花後
기애아란무채전氣靄阿蘭舞彩前
휴설저간이경사休說這間已經事
감흔금일회갑천堪欣今日回甲天
구상판서금조회具觴板敍今朝會
진미동남빈주현盡美東南賓主賢
신채호<申采浩>
어느덧 육순이 된지 일년이 지나
파리한 얼굴 흰머리 모두 덧없네
형제가 모인 잔치 자리 즐겁기만 한데
마음씨 고운 아란이 무늬 옷 입고 춤추네
요즈음 와서 지난 일을 말하지 마오
오늘 회갑 날 기쁨 감당 할수 없네
술 자리 베풀고 오늘 일을 글로 쓰니
많이들 모인 것은 주인의 어진 덕일세!
이 시(詩)는 독립운동가(獨立運動家), 언론인(言論人)이자 역사학자(歷史學者)인 신채호(申采浩)선생이 17세 때 조부(祖父)님 회갑(回甲)을 마치고 쓴 시라고 전한다. 이 시는 칠언율시(七言律詩)다. 압운(押韻)은 하평성(下平聲) 15성운(聲韻)중에 선통(先統) 운목(韻目) 한 운족(韻族) 중에 년(年), 연(然), 전(前), 천(天), 현(賢) 운(韻)으로 작시(作詩)를 하였다. 10여 세 때부터 한학 자치동감(資治通鑑)과 사서삼경(四書三經)을 배웠고, 시문(詩文)에도 뛰어난 신동(神童)이라 불렀다고 전한다. 선생께서 사신 시대가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인데 근체시(近體詩)로 작시(作詩)하였다는 것이 탄탄한 한학의 밑바탕이 아니면 운통(韻統) 칠언(七言) 율시(律詩)를 지을 수 없는 일이다. 시의 전체 시정(詩情)은 시대가 시대인만큼 형제 가족들과 함께 조부님의 회갑연(回甲宴)을 흥겹고 즐겁게 마친 것을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다. 신채호(申采浩, 1880~1936)선생께서는 1880년 11월 (음력) 7일 충남 대덕군 산내면 어남리에서 출생하셨다. 신채호 선생은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 조선상고문화사(朝鮮上古文化史), 조선사 연구초(朝鮮史硏究草), 등도 저술했다. 대한일보 주필로서 항일언론 운동을 벌이며 신민회와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하였고, 1910년 중국으로 망명했다. 일제강점기에 암울한 시대에 독립운동과 함께 조선혁명선언(朝鮮革命宣言) 문도 썼다. 1922년 이후에는 폭력을 통한 민중 직접혁명을 주장하여 무정부주의자의 길을 걸었다. 1928년 대만에서 체포, 여순 감옥에서 복역 중 순국했다. 신채호 선생의 명언으로 알려진 역사를 잊는 민족은 미래가 없다라는 구절의 독사신론(讀史新論)을 보면 구구절절(句句節節)이 마음에 경종(警鐘)으로 각인(刻印)된다.
”내가 지금의 각 학교에서 교과서를 쓰는 역사를 보건대, 가치 있는 역사가 거의 없도다. 제1장을 펼치면 우리 민족이 지나 족의, 일부분인 듯하며 제2장을 펼치면 우리 민족이 선비(鮮卑)국의 인부 인듯, 하며, 나중에 전편을 다 펼치다보면, 때로는 말갈(靺鞨)족의 일부인 듯하다가 때로는 몽고족의 인부인 듯하며, 때로는 여진족의 일부인 듯하다가 때로는 일본족의 일부인 듯하니, 아아, 과연 이럴진대 우리 몇만 방리(方里)의 토지는 이것이 남만북적(南蠻北狄)의 수라장이며, 우리 4천여 년의 산업은 이것이 아침에는 양(梁)나라, 저녁에는 초(楚)나라의 경매물이라 할지니, 그것이 그럴까 어찌 그럴 이치가 있으리오? 역사의 붓을 잡은 자는 반드시 그 나라의 주인이 되는 한 종족을 먼저 나타내어서 그것을 주제(主題)로 지은 후에, 그 정치는 어떻게 잘 되고 못 되었으며, 그 산업은 어떻게 성하고 쇠하였으며, 그 무공(武功)은 어떻게 진퇴 하였으며, 그 습속은 어떻게 하였으며, 외래의 각 종족을 어떻게 흡수하였으며, 다른 곳의 여러 나라를 어떻게 교제하였음을 서술하여야 여기서 역사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요,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정신이 없는 역사이다. 정신이 없는 역사는 정신없는 민족을 낳으며, 정신없는 국가를 만들 것이니 어찌 두렵지 아니하리오. 어떻게 하면 우리 이천만 동포의 귀에 항상 애국이란 말이 울려 퍼지게 할 것인가? 오직 역사로 할 뿐이니라! 어떻게 하면 우리 이천만 동포의 눈에 나라라는 글자가 배회하게 할 것인가? 오직 역사로 할 뿐이니라! 어떻게 하면 우리 이천만 동포의 손이 항상 나라를 위하여 봉사케 할 것인가? 그렇다. 오직 역사로 할 뿐이니라! 어떻게 하면 우리 이천만 동포의 발이 항상 나라를 위하여 달리게 할 것인가? 그렇다. 오직 역사로 할 뿐이니라! 어떻게 하면 우리 이천만 동포의 목이 항상 나라를 찬사하게 할 것인가? 그렇다. 오직 역사로 할 뿐이니라! 어떻게 하면 우리 이천만 동포의 머리들이 항상 나라를 위해 뭉치게 할 것인가? 그렇다. 오직 역사로 할 뿐이니라! 어떻게 하면 우리 이천만 동포의, 혈혈누누(血血淚淚)가 나라를 위해 솟구치게 할 것인가? 말하노니 오직 역사로 할 뿐이니라!
역사를 떠나서 애국심을 구하면 이것은 눈을 감고 보려는 것이며, 다리를 버리고 달리는 것이라, 어찌 될 수 있으리오. 그러므로 국민의 애국심을 불리 이르키려 하거던 먼저 ‘완전한 역사’를 배우게 할지어다. 저 조국을 버리고, 외인의 창귀(倀鬼) 노릇 하는 자를 볼때에 나는 이것을 역사를 읽지 않은 자로 믿으며, 동포를 능멸하고 타력(他力)을 의지하는 자를 볼때에 나는 이것을 역사를 읽지 않은 자로 믿으며, 한 몸의 화복(禍福)만을 생각하고 국가 흥망을 꿈 밖에 돌리는 자를 볼 때에 나를 이것을 역사를 읽지 않은 자로 믿노니, 아아, 저가 과연, 4천 년간 우리 조선들이 눈물과 피로 이 국토를 옹호하여 우리들에게 끼쳐 준 것을 알며, 2천만 동포가 곧 육대주(六大洲)의 신성한 한 가족임을 알며, 3천리 강산이 곧 만대 자손의 대대로 지켜나갈 강토인 줄을 안다면, 저가 이 나라를 잊고자 한들 어찌 차마 잊으며, 저가 이 나라를 버리고자 한들 어찌 차마 버리리오. 대저역사는 국가의 정신이요, 영웅은 국가의 원기이다. 모든 지구상에 야만 부락이 아니요, 국가의 제도를 성립하고, 국민의 자격으로 생활하는 자는 모두 그 역사를 존중하고, 영웅을 숭배하는데 그 국민이 문명할수록 역사를 더욱 존중하고 영웅을 더욱 숭배한다. 그것은 그 역사를 존중함과 영웅을 숭배함이 곧 그 국가를 사랑하는 사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학상의 참고될 자료가 있으면 거친 들판 잡초 우거진 사이, 흙에 묻히고, 불길에 타다 남은 옛날 비석의 쪼각 돌이라도 아름다운 옥, 큰 구슬과 같이 보고, 영웅의 유적(遺蹟)이 있으면 부녀자와 어린애들이라도 받들어 기념하며 큰절하고 외워서 전하는 것이다.
우리 한국은 4천여년 문명한 옛 나라이니, 4천여년 간에 역사의 광채도 빛날 것이요, 4천여 년간에 영웅의 공업도 빛날 것인데 종래의 누습(陋習)이 제나라 역사는 발휘하지 않고 남의 나라 역사를 전송(傳誦)하며, 제나라의 영웅은 숭배하지 않고 남의 나라 영웅을 떠받들었다. 소미 통감(少微通鑑)은 아이들이라도 모두 외우지만 동국통감(東國通鑑)은 노성한 선비도 읽지 않으며, 항우(項兩)·한신(韓信)의 사적은 초동목수(樵童牧竪)도 말할 수 있으되, 을지문덕(乙支文德)·양만춘(梁萬春)의 공업은 학사도 잘 아는 이가 드물다. 그러는 중에 일종 맹목적인 학자의 무리가 존화(尊華)라는 두 글자를 칭탁(稱託)하고, 노예적민(奴隸的民) 학문을 서로 전하여 가르치고 배워서 국민에게 떠들어대므로, 국성(國性)이 소침하고 국수(國粹)가 마멸(磨滅)되게 되었으니, 어찌 웃을 일이 아니며, 어찌 개탄할 일이 아니리오.“<옮겨온 글) 조국 광복을 위해 순국선열(殉國先烈)들은 이렇게 나라를 찾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외치고 싸웠는데, 오늘날 한국 정치권은 보면 나라 꼴이 한심스럽다. 날이면 날마다 이념논쟁으로 권력 투쟁으로 요즘은 제국주의 일제강점기를 근대화 발전론으로 미화하는 작태로 니전투구(泥戰鬪狗) 싸움판이니 통탄할 일이다. 오늘은 그래서 대한민국 여야 정치인들은 일독(一讀)하라고 신채호 선생의 칠언율시(七言律詩)와 함께 독사신론(讀史新論)을 옮겨 게시하여 봤다. 여여법당 화옹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