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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波濤詩 심연이 노래하는 우주의 서사시
A. 파도와 인간
天行健,君子以自强不息 "하늘의 운행은 굳세니, 군자는 그것으로써 스스로 강해지기를 쉬지 않는다." (《周易》)
파도는 바다의 언어였다. 그러나 어느 날 천추객은 그것이 단지 바다의 언어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파도는 지구가 우주에게 보내는 오래된 편지였고, 우주가 생명에게 건네는 최초의 문장이었다.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정적 속에서 파도는 태어나고, 자신의 몸을 스스로 무너뜨리면서 다음 파도를 일으켰다. 하나의 파도가 사라지는 순간, 다른 파도가 태어났다. 그것은 소멸이면서 탄생이었다. 죽음이면서 계승이었다. 젊은 시절에는 파도를 장애물로 보았다. 높은 파도는 넘어야 할 것이었고, 폭풍은 피해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그는 조금씩 다른 것을 보기 시작했다. 파도는 그에게 살아 있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가르치러 오는 것이었다.
어느 날 밤이었다. 수평선은 사라지고 하늘과 바다는 하나의 검은 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별도 없었다. 달도 없었다. 빛이라고는 선체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지는 포말의 흰빛뿐이었다. 거대한 너울 하나가 어둠 속에서 솟아올랐다. 그것은 파도라기보다 산이었다. 산이 아니라면 짐승이었다. 짐승이 아니라면 오래된 신이었다. 천추객은 선교에 서 있었다. 그와 저 거대한 심연 사이에는 불과 몇 밀리미터의 강철판이 있었다. 그 얇은 철판이 그날 밤 그에게는 세계의 전부였다. 파도가 선체를 때릴 때마다 강철은 울었다. 쿵. 쿵. 쿵. 마치 바다가 인간의 심장을 두드리는 소리 같았다.
너는 누구인가. 쿵.
무엇을 믿고 살아가는가. 쿵.
언제까지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가. 쿵.
천추객은 난간을 움켜잡았다. 손바닥에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박혔다. 그리고 처음으로 깨달았다. 자신이 평생 배운 항해술은 바다를 지배하는 기술이 아니라, 바다 앞에서 인간이 어디까지 인간으로 남을 수 있는가를 배우는 기술이었다.
B. 파도는 왜 부서지는가
上善若水,水善利萬物而不爭 "최고의 선은 물과 같으니,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는다." (《老子》)
거대한 파도가 선수 위로 넘어왔다. 선체가 깊이 기울었다. 파도는 정점에 이른 바로 그 순간부터 스스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천추객은 문득 생각했다. 파도는 왜 반드시 부서져야 하는가. 그때 바다가 말했다. "나그네여, 왜 나를 이기려 하는가?"
"나는 당신을 이기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두려워하는가?" 천추객은 대답하지 못했다.
바다가 다시 말했다. "나는 너희에게 길을 주지 않는다. 너희가 길을 발견하도록 만든다. 나는 너희를 흔든다. 그래야 너희가 무엇을 붙들고 있는지 알게 된다." 파도가 다시 솟아올랐다. "그리고 나는 부서진다."
"왜입니까?"
"부서지지 않는 파도는 다음 파도를 낳을 수 없기 때문이다."
C. 흔들리는 자만이 살아 있다
窮則變,變則通,通則久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 (《周易》)
그 순간 천추객은 평생의 항해를 하나의 문장으로 볼 수 있었다. 젊었을 때에는 배가 흔들리지 않기를 바랐다. 선장이 된 뒤에는 배가 흔들릴 때 어떻게 바로잡을지를 배웠다. 나이든 항해사가 된 뒤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배가 흔들리는 것은 실패가 아니었다. 흔들리면서도 중심을 찾는 것. 그것이 항해였다. 인간도 그러했다. 사랑 때문에, 이별 때문에, 실패와 배신 때문에, 죽음 앞에서 흔들렸다. 그러나 천추객은 이제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흔들린다는 것은 아직 살아 있다는 뜻이었다. 고통받는다는 것은 아직 무언가를 사랑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그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흔들리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 멈추지 않는 것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
폭풍이 가장 거센 순간, 바다의 표면은 미쳐 날뛰었다. 그러나 그 깊은 곳은 놀랍도록 고요했다. 수면에서는 수십 미터의 파도가 일어나지만, 깊은 바다에서는 그 파도의 흔적조차 희미해진다. 인간의 마음도 그러하다. 젊은 마음은 표면에서 너무 많은 것을 흔든다. 욕망. 분노. 명예. 질투. 사랑. 두려움. 그러나 긴 세월을 건너온 사람의 마음은 조금씩 깊어진다. 깊어진다는 것은 감정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감정을 품고도 그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그가 사막에서 만났던 조종사가 남긴 말과도 닮아 있었다. 세계 앞에서 자신의 한계를 깨달음으로써 비로소 깊어진다는 것. 사막이 생텍쥐페리에게 그것을 가르쳤다면, 바다는 천추객에게 같은 것을 가르치고 있었다.
D. 적벽의 뱃놀이
明月幾時有,把酒問靑天 "밝은 달은 언제부터 있었는가, 술잔을 들어 푸른 하늘에 묻는다." (소동파, 〈水調歌頭〉)
폭풍이 지나간 다음 날 새벽이었다. 하늘은 아직 어두웠지만 동쪽에는 가느다란 빛이 생기고 있었다. 밤새 자신을 죽이려 들었던 바다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조용히 숨을 쉬고 있었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퉁소 소리가 들려왔다. 술 냄새가 바람에 섞여 왔다. 안개 속에서 작은 배 한 척이 나타났다. 뱃머리에는 한 사람이 술잔을 들고 앉아 있었다. 소동파였다.
"나그네여." 그가 웃었다. "그대는 방금 큰 파도와 싸웠군."
천추객은 고개를 숙였다. "선생께서는 적벽에서 강물과 싸우셨습니까?"
소동파가 웃었다. "나는 강물과 싸우지 않았네." 그는 술잔을 들었다. "나는 강물에게 배웠지."
E. 逝者如斯,而未嘗往也
逝者如斯夫,不舍晝夜 "가는 것이 이와 같구나, 밤낮을 쉬지 않는다." (공자, 《論語》)
소동파가 강물을 바라보았다. "그대는 내가 적벽에서 한 말을 기억하는가?" 그리고 조용히 읊었다. "逝者如斯,而未嘗往也. 흘러가는 것이 이 물과 같으나 일찍이 실제로 가버린 적은 없다. 그대의 젊은 날은 지나갔네. 그러나 그것은 지금의 그대를 만들고 있지." 소동파는 다시 달을 바라보았다.
"盈虛者如彼,而卒莫消長也. 차고 이지러지는 것이 저 달과 같으나 끝내 없어지거나 더 자라난 적은 없다. 사람은 변하네. 그러나 변한다는 사실 자체가 생명의 방식이네."
"그렇다면 무엇이 변하지 않는 것입니까?" 천추객이 조용히 물었다.
소동파가 웃었다. "그 질문을 평생 붙들고 있었네. 아마도 변하는 모든 것을 바라볼 수 있는 그 마음이겠지.
自其變者而觀之,則天地曾不能以一瞬. 변하는 것으로 보면 천지는 한 순간도 그대로 있지 않다. 그러나 自其不變者而觀之, 則物與我皆無盡也. 변하지 않는 것으로 보면 만물과 나는 모두 다함이 없다. 사랑했던 사람도, 동료도 하나둘 떠났을 것이네. 그러나 그 시간이 지금 그대의 영혼 안에서 다시 살아난다면… 정말 사라진 것인가?"
천추객의 눈이 깊어졌다. 그 순간 그는 알았다. 기억은 과거를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사라진 시간을 현재로 다시 불러오는 영혼의 항해라는 것을. 기억이란 시간의 무덤이 아니라, 시간의 두 번째 바다였다.
F. 조물주의 무진장, 간직하지 않는 지혜
為道日損,損之又損,以至於無為 "도를 닦으면 날로 덜어내고, 덜고 또 덜어 마침내 무위에 이른다." (《老子》)
동쪽 하늘이 조금씩 밝아지고 있었다. 소동파는 술잔을 들어 올렸다. "보게." 맑은 바람이 지나갔다. 먼 곳의 구름 사이로 빛이 스며들었다. 소동파가 말했다.
惟江上之清風與山間之明月 강 위의 맑은 바람과 산 사이의 밝은 달. 耳得之而爲聲目遇之而成色 귀로 얻으면 소리가 되고 눈으로 만나면 빛깔이 된다. 取之無禁用之不竭 가져도 막을 자 없고 써도 다함이 없다. 是造物者之無盡藏也 이것이야말로 조물주의 다함없는 곳간이다.
소동파가 웃었다. "그대는 폭풍을 견뎠지. 그 폭풍도 그 곳간에서 나온 것이네. 같은 바람이 어떤 날에는 사람을 죽일 듯 몰아치고, 어떤 날에는 뺨을 어루만지네. 바람이 변한 것인가, 인간이 변한 것인가?" 천추객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답은 굳이 찾지 않아도 좋네."
"선생께서는 그 깨달음을 어떻게 평생 간직하셨습니까?" 천추객이 물었다.
소동파가 한참 웃었다. "간직하지 않았네. 간직하려고 하면 깨달음은 죽어버리네." 그는 술잔을 물 위에 띄웠다. "강물을 손에 쥐려고 해보게. 손가락 사이로 모두 빠져나가지. 그러나 손을 펴면 강물은 다시 흐르네. 지혜도 그러하네. 잡으려 하지 말게. 살게. 그러면 지혜가 그대 안에서 살아 움직이네."
천추객은 그 말을 듣고 웃었다. 아주 오랜만의 웃음이었다. 항해의 기술을 모두 기억할 수는 없지만, 그 모든 항해가 만들어낸 한 가지 감각은 몸 어딘가에 남아 있을 것이다. 파도가 높으면 몸을 낮추고, 길을 잃으면 다시 별을 보는 것. 그것이 삶이었다.
G. 파도와 적벽은 하나의 강물, 일흔의 항해사
人生代代無窮已,江月年年只相似 "인생은 대대로 다함이 없고, 강 위의 달은 해마다 서로 같을 뿐이다." (張若虛, 〈春江花月夜〉)
소동파의 배가 안개 속으로 멀어졌다. 퉁소 소리도 점점 희미해졌다. 천추객은 문득 깨달았다. 적벽의 강물과 태평양의 파도가 전혀 다른 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잘못이었다. 물은 하나였다. 소동파는 적벽에서 강물을, 천추객은 대양에서 파도를 바라보았을 뿐, 두 사람이 본 것은 결국 하나, 흐름이었다. 사람은 떠나고 젊음은 사라진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한 인간의 영혼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면,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인간의 기억이란 시간이 묻히는 무덤이 아니라, 흘러간 시간이 다시 밀려오는 또 하나의 바다였다.
그날 이후 천추객은 파도를 조금 다르게 바라보았다. 젊었을 때는 파도가 높으면 긴장했고, 중년에는 계산했다. 노년이 된 지금은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를 생각한다.
파도는 그에게 묻는다.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그는 대답한다. "잃는 것을 두려워한다." 파도가 다시 묻는다. "무엇을 사랑하는가?" 그는 대답한다. "잃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한다." 파도가 다시 묻는다. "그렇다면 왜 움켜쥐는가?" 그는 침묵한다. 그리고 마침내 손을 편다.
H. 파도는 시가 된다
波破而歌不息 "파도는 부서져도 노래는 그치지 않는다."
천추객은 이제 안다. 한 생애는 결국 파도와 같다. 태어나고, 높아지고, 빛나고, 부서지고, 다시 흐른다. 그러나 돌아간다는 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파도는 바다로 돌아가 다시 다른 파도가 된다. 인간도 그러할 것이다. 한 사람의 삶은 끝나지만 그 사람이 남긴 사랑은 다른 사람의 마음에서 계속된다. 한 사람이 흘린 눈물은 다른 사람의 슬픔을 이해하는 물이 되고, 한 사람이 견뎌낸 고통은 다음 사람에게 길이 된다. 삶은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라 이어지는 흐름이다. 그날 밤 천추객은 책상에 앉아 처음으로 파도를 시로 옮겼다.
파도여, 너는 왜 부서지는가. 너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다시 일어났다. 나는 그제야 알았다. 부서진다는 것은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생을 밀어 올리는 일이라는 것을.
사랑도, 사람도, 한 시대도 그러했다. 우리는 모두 한 번씩 부서졌고, 그 부서진 자리에서 지금의 우리가 태어났다. 그러므로 나는 더 이상 파도를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파도가 높으면 더 깊어지고, 길이 보이지 않으면 별을 기다리리라. 그리고 마침내 나 자신도 하나의 파도가 되어 내가 왔던 바다로 조용히 돌아가리라. 붓을 내려놓은 뒤에도 그는 오래도록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문득, 자신이 다시 쓰고 있는 이 책의 이름을 생각했다.
《사유의 항해록》은 이미 부서져 바다에 흩어진 뒤였다. 한동안 그는 그것을 《大航海錄》이라 다시 부르려 하였다. 그러나 이제 그는 알았다. 자신이 쓰고 있는 것은 한 사람이 다시 떠나는 항해의 기록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마천의 잠실에서 시작되어, 화성호의 붉은 새벽을 지나, 오늘 이 파도 위에까지 이어진 어떤 목소리의 계승이었다. 자신이 부서졌던 자리에서 사마천도 부서졌고, 한 나라도 부서졌으며, 소동파가 바라본 적벽의 강물도 이미 천 년 전에 흘러가 버렸다. 그런데도 그 모든 부서짐이 지금 이 순간 그의 붓끝에서 다시 하나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는 붓을 들어 표지 위에 새로운 이름을 적었다.
千秋之歌.
한 사람의 칠십 년이 아니라, 인류가 수천 년 동안 스스로에게 던져온 질문의 시간. 그것이 이 책의 이름이 되었다. 그는 다시 붓을 들어 마지막으로 한 수의 시를 지었다.
파도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 한 생애는 사라지지만 노래는 사라지지 않는다. 인간은 바다를 건너는 것이 아니라, 마침내 자기 안에 잠든 인류에게 도착하기 위해 항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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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잠시 머무르면서
공부하고 갑니다.
마지막 더위에
힘내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늘 좋은 인사말씀 주심에 깊은 감사인사 올립니다.
부서지지 않는 파도는
다음 파도를 낳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참을 머물렀습니다.....
이제 한여름도 좀 물러날 듯 합니다.
자꾸 여름과 겨울이 지겨워져갑니다.
다시 생각해 봐도
대단하십니다.
감사합니다.
늘 좋은 인사말씀 남겨 주심에 깊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