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는 대로 현실화되는 양자역학적 증거들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 이것은 모세의 저서 구약 성경 창세기의 기록이며, 인간이 신의 형상을 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것은 인간에게도 창조력이 있다는 가설이 되기도 했는데요, 실제로도 그게 사실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창조력의 원천은 인간의 의식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의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양자역학은 심오한 질문들에 직면하게 됩니다.
인간의 의식이 양자역학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양자역학이 현실화의 근거가 될 수 있을까요? 이런 질문들은
여전히 과학 대 철학 또는 영성 간의 논쟁이 되었습니다.
과학적으로는 양자역학과 현실화는 서로 무관하다고 보는 입장도 있기 때문에 양자역학이 현실화의 과학적 근거라고 보기에는 아직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충분히 연관지을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양자역학이 현실화와 관련이 없을 수도 있다고 하여 인간이 믿는 대로 보게 된다는 진리가 부정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신약 성경은 믿음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라.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이런 저런 이유로 현실화의 양자역학적 근거를 제안하긴 어렵겠지만, 양자역학이 현실화의 연관 주제가 된 이유, 그리고, 그 둘의 흥미로운 유사점을 찾아볼 수는 있을 것입니다.
양자역학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것은 매우 어려운 학문이지만, 양자역학의 핵심은 이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론적으로 보인다는 것은 빛이 통과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시야를 빛과 비유했을 때, 원자와 전자에 빛이 통과했다고 가정해 보면, 원자와 전자 같이 아주 미세한 입자들은 빛이 통과되는 것만으로도 영향을 받게 됩니다.
빛이 통과되는 것을 눈으로 보는 것으로 비유했을 때, 이것을 간단히 풀이하면 보는 순간, 원자와 전자가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보는 것만으로도 원자와 전자의 움직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은 원자와 전자의 위치를 예측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즉, 본다는 것은 대상의 움직임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우리는 보는 대상의 위치를 짐작만 할 수 있을 뿐,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베르너 하이젠베르그가 주장한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입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을 심하게 반대했던 대표적인 인물인데, 그 이유가 바로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 때문이었습니다. 고전물리학의 의의는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인데, 양자역학은 이에 반하는 이론이었기 때문입니다.
아인슈타인은 결국 화를 참지 못라고, 항상 존재하는 달도 눈으로 봐야지만 존재하는 것이냐며 닐스 보어에게 분노했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그러자 닐수 보어는 눈으로 확인해야지만 비로소 그것이 어딨는지 알 수 있는 것이라며 아인슈타인의 비판에 반박했다고 하였지요.
즉, 아인슈타인은 미래가 예측 가능하다고 믿는 입장이었지만 보어는 관측하기 전까지는 미래를 알 수 없다고 믿는 입장이었던 것입니다. 양자역학이 현실화의 영역까지 파생된 것은 이 부분 때문일 것이 가장 유력합니다.
미래는 관측하기 전까지는 알 수 없고 예측할 수 없습니다. 본래 의도와는 다를 수 있겠지만 여기에 "코펜하겐 해석"이 현실화의 원리에 힘을 실어줍니다. "코펜하겐 해석"은 보어와 하이젠베르그가 주장한 이론인데, 그들은 양자계가 관측되기 전 까지는 가능한 모든 상태로 존재하다가, 관측이 되었을 때, 분명한 상태가 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휴 에베렛 3세는 한술 더 떠서 "다세계 해석" 이라는 이론을 내놓게 됩니다. "다세계 해석론"에 따르면 모든 일의 결과는 다중 우주로부터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양자가 관측되면 우주가 증식하여 다중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왜? 모든 가능성과 결과를 수용하기 위해서, 모든 잠재적 상태가 각각의 분리된 우주들 속에서 지속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리얼리티 트랜서핑"의 핵심과도 일맥상통 합니다.
"리얼리티 트랜서핑"에는 가능태 공간이라는 개념이 나오는데, 이것은 모든 일의 가능성이 존재하는 무한한 정보 공간입니다. 가능태 공간에서는 과거, 현재, 미래가 동시에 존재하는 데, 여기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영화 비유입니다.
영화에 몰입하여 관람하는 사람은 과거는 사라진 장면, 미래는 알 수 없는 장면으로 인식하겠지만, 영화의 필름을 펼쳐 볼 수 있는 사람은 과거, 현재, 미래의 장면이 공존한다고 인식할 것입니다.
이것은 과거와 미래가 모두 현재에 있다는 뜻이며, 우리의 시간대가 과거, 현재, 미래로 나눠져 있기 보다는, 오직 현재만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기다릴 필요 없이 모든 것이 현재에서 가능합니다.
우리가 지금 그러기로 선택한다면 우리는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아이디어는 "다세계 해석", "리얼리티 트랜서핑"에서 파생되어 현실화의 과학적 근거로 인용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잠재된 "다세계 해석"의 다중 우주에는 한 가지 심각한 결점이 있습니다. 이때 우주는 그 중 하나의 세계만 우리에게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우리는 한 번에 한 가지 면만 관측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 논리대로 라면 주체적인 현실화란, 다중 세계를 인지하고 여러 가능성을 동시에 관측하는 겁니다.
이쯤 되면 에너지와 주파수 얘기가 나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모든 것은 에너지이고 진동합니다. 인간의 생각도 에너지이고 진동을 일으켜 주파수가 되지요.
존 디마티니 박사는 관측에도 주파수가 있다는 흥미로운 주장을 하였습니다. 우리가 결과의 양면을 관측하는 속도가 우리가 머무는 주파수를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최악 안에 최선이 있고, 최선 안에 최악이 있지만, 우리는 중립적으로 보지 못한다는 것이 그의 견해였습니다.
그는 관측의 양면을 동시에 대비하는 것이지, 한 쪽만 추구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픽사의 첫 3D 장편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가 개봉했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토이 스토리"의 흥행은 성공적이었고 스티브 잡스는 이것으로 엄청난 이익을 냈지요. 잡스가 최고의 전문가들과 함께 모여 무난하게 픽사를 만든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이 세운 애플에서 추방당한 잡스는 10년 동안 무려 5,000만 달러의 빚을 내가며, 심각한 적자를 보고 있는 픽사를 유지했습니다. 그리고, 픽사의 "토이 스토리"는 성공하였고, 디즈니는 74억 달러에 픽사를 인수하게 되었습니다.
잡스는 디즈니의 최대 주주가 되었고, 애플로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만 들으면 그가 10년 동안 5,000만 달러의 빚을 안고 픽사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픽사의 비전에 대한 자기만의 확신 때문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의 성공 스토리는 사실 그렇게 감동적이지 않습니다. 잡스는 "토이 스토리"가 제작되는 동안에도 픽사를 팔려는 시도를 세 번이나 했습니다. 그가 직접 영업하면서 픽사의 가치를 체감하여 매각을 포기한 것일 수도 있고, 대기업들이 픽사를 원하지 않아서 못 판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그가 "토이 스토리"의 성공에 이득을 볼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픽사가 안 팔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서 추방되었을 때, 그 결과의 반대편에 픽사의 창립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픽사가 안 팔릴 때, 그 결과의 반대편에 "토이 스토리"의 성공이 있었지요. 스티브 잡스는 처음부터 그에게 일어난 모든 결과들의 양면을 관측하고, 그에게 있어 가장 이상적인 현실을 창조했던 것일까요?
이렇게 모든 것은 반대 요소가 있다는 것을 극성의 법칙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고대부터 이어진 현자들의 지식이 현대로 넘어오면서 하나의 법칙으로 불리게 된 것이며, 오늘날에도 적용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극성의 법칙의 가장 큰 의미는 모든 부정적인 결과에도 긍정적인 결과가 숨어 있다는 것입니다.
밥 프록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좋은 일이 없는 일은 없다. 무언가 좋은 점이 있다. 그게 뭔지 찾아야 될 수도 있지만, 모든 일에는 좋은 점이 있다. 당신이 손해 볼 수도 있지만 그 안에서 이익을 얻을 기회에도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극성의 법칙은 단순히 모든 것이 반대 요소를 가진다는 뜻만이 아니라, 모든 것은 반대 요소가 똑같은 크기로 존재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
여기에 오시는 무든 분들이 보는 대로 이루어 진다는 양자역학에 눈을 뜨시고 성공의 길로 접어드시기를 기원드립니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