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카페나 이단 대처 카페들을 보면… 익명이나 닉네임으로 글을 썼지만 그 분별력이 탁월한 사람들을 가끔 보게 됩니다. 그런 훌륭한 안목을 가진 분 중 한분(닉네임: 별명수정)은 구원파를 탈출한 분으로 보입니다. 별명수정님이 경험하고 밝힌 구원파의 아래와 같은 도덕률폐기론 에피소드를 읽고 진짜 무서운 이단이라는 생각이 듭니다ㅠㅠ
구원파의 도덕무용론과 율법폐기론 관련 댓글)
예전에 저희 와이프가 구원파에서 상담을 받을 때 구원파 상담사가 했던 말이 떠오르네요.
"복음을 믿습니까?" "네 믿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사람을 죽인다면 지옥에 갈까요, 천국에 갈까요?" "...? 네? 아무래도 사람을 죽인 거면 좀.. 잘 모르겠네요." "아직 복음을 제대로 믿지 못하고 계시군요." "...?!?!"
이후로 다시 상담을 여러 번 받게 하더군요.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은 사람을 죽였어도 천국에 간다고 대답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대답할 수 있어야 진짜로 복음을 믿는 것이라고 여깁니다.
참 소름 돋는 집단입니다. |
통일교, 여호와의 증인, 안식교, 신천지, 전도관 처럼 너무나 명확하게 사이비(似而非)스러운 새빨간 이단은 분별이 쉬울 겁니다. 그러나 구원파, 베뢰아 같은 류의 고등(高等) 이단들은 나름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다고 주장하고, 예수를 사칭∙자칭하는 교주가 없으며, 기성교회와 어느 정도는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잠시 분별하기에 혼란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유형의 이단들이 구사하는 가장(假裝)과 기만의 위장 능력은 매우 뛰어날 것 같은데요. 별명수정님이란 분의 아래 분별도 그 점을 잘 파악하고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단은 모든 내용이 거짓인 종교단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단의 가르침에도 분명히 희석된 진리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단이 진리를 가르치는 것으로 둔갑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도 예전에 구원파에서 나오고 나서 굉장히 많이 놀란 것이 정상적인 교회들의 가르침이 구원파와 너무 흡사한 것들이 많고 익숙했다는 점입니다. 이 부분은 많은 탈 구원파 사람들이 인정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구원파가 이단의 딱지를 벗어던질 수 있나요? 그럴 수 없습니다. 인터콥 역시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마치 구원파가 엄청난 사이비 종교이고 인터콥과는 비교도 못할 정도의 극악무도한 가르침을 갖고 있는 듯이 인식하고 계시는 듯 한데, 구원파의 무서움은 그 가르침이 정상적인 교회들과 굉장히 유사하다는 점에 있습니다. 구원파의 위험함은 일반 성도들은 이것과 정통 교리를 예리하게 구분할 수 없을 정도의 애매모호함과 유사성에 있습니다. "구원파와 비교는 무리"라니요. 오히려 구원파 출신 입장에서는 귀신이니 신사도니 하는 것들이 더 해괴망측해 보입니다. |
첫댓글 기성교회와 어느 정도는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는 이단들을 보면 아래 말씀이 떠오릅니다.
"고린도후서 11:14, 15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네, 더욱 세밀하게 분별해야 하겠습니다.
@노베 매우 공감힙니다.
<호크마 주석>, 고린도후서
=====11:14
사단도...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 사람들이 보기에 뛰어난 웅변술로 인해 참으로 신뢰할 만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이 양의 탈을 쓴 이리인 경우는 초대 교회 당시뿐아니라 기독교 2,000년 역사에서 여러 번 있었기에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바울이거짓 사도들을 공격함에 있어서 '사단과 광명의 천사'란 단어를 등장시킨 것은 뱀과하와의 사건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특히 사단이 천사로 가장하는 것은 당시에 널리알려진 이야기 가운데 하나였다. 묵시 문학 작품 중 모세의 묵시록 17:1에는 하와의회상이 나오는데 '천사들이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 올라갔을 때 사단은 천사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천사처럼 찬송을 불렀다.'고 되어있다. 또한 다른 작품 중 아담과 하와의 생애 9:1에는 '사단은 분노해서 빛의 천사로 변장했다. 그리고 티그리스강의 하와에게로 갔다'는 기록이 있다. 따라서 본 구절에서 암시된 중요한 사실은 바울이 거짓 사도를 단순히 그의 대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대적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을 미혹시키는 자로 규정하고 있음과 동시에 거짓 사도들의 기원이 사단에게 있다는것이다.
=====11:15
사단의 일꾼...의의 일꾼 - 사단이 천사로 변장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닌 것처럼 사단의 일꾼이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거짓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사도'(13절)로 가장하여 고린도 교인들에게 사도로 행세하지만 그들의 실제 행동과 메시지는 그것이 거짓임을 드러낸다. 그들은 복음 자체보다는 복음의 삯, 즉 보수를 탐하는 자들이며 믿음의 의가 아닌 자신들의 의를 나타내며 또한 진정한 복음의 의미를 왜곡시키는 자들이다(4절).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 바울은 자신이 어떠한 사심도 없이 그리스도의 복음만을 전파했으며 고린도 교인들을 위하여 종이 되는 자리에까지 이르도록 신실(信實)한 행위를 한 것에 대해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4:5). 즉 그는 하나님의 심판대에서도 자신의 행위에 대해 부끄러움이 없이 고린도 교회를 위해 사역했던 것이다. 반면 거짓 사도들은 그들이 선포한 메시지 뿐만 아니라 행실에 있어서도 사단의 종이라는 사실이 결국에는 폭로될 것이었다.
@장코뱅 사단이 천사 출신이기에 광명한 천사로 가장을 하지만 선한 천사가 아니라는 것이 소름 돋는 것 같습니다.
율법폐기론은 아래 주님의 말씀과 배치됩니다.
"마5:17,18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네, 공감합니다.
<호크마 주석>, 마태복음
=====5:17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 여기서 먼저 '율법'이란 구약성경 전체를 뜻하기도 하고 축약된 의미로서 모세 오경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리고 '선지자'는 구약 역사서들로 구성된 초기 선지서들과 이사야 이후의 후기 선지서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개별적 의미보다 오히려 예수 당시 유대인이 신약이 기술되기 전에 구약을 지칭하는 관용적 표현으로 '율법과 선지자'라는 말을 사용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7:12;11:13; 눅 16:16; 요 1:45; 행 13:15; 롬 3:21). 한편 '폐하다'(* , 카탈뤼사이)란 건축물의 파괴와 연관된 표현으로서(24:2;26:61;27:40) 여기서는 어떤 규범이나 제도의 완전한 개편 또는 폐기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사실 예수를 비난했던 당시 유대인들은 스스로가 율법의 손상자와 파괴자 역할을 하기도 했다. 즉 합리성을 추구하는 사두개인들은 선지서들을, 고지식한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극단적인 엣세네파는 율법과 선지서들을 부분적으로 폐기함으로써 결국 율법의 파괴자가 된 것이다. 이에 비해 그들의 비난 대상이었던
그리스도는 그 모든 것의 완전한 성취자였던 것이다(Lange). 한편 '온 줄로'에서 '왔다'는 말은 예언자들에게 사용되었던 표현으로서(11:18, 19), 적어도 예수가 어떤 사명을 가지고 보냄을 받았다는 것을 보여 주고있다(Maier).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 이 부분에 대한 가장 훌륭한 해석은 율법과 선지자가 예수를 지시하고 있다고 볼 때 예수가 그것들을 완전케 하는 자이고, 동시에예수가 바로 그 성취라고 하는 것이다. 여기에 대조시키고 있는 것은 '버리다'와 '행하다'간의 대조가 아니라 '폐(廢)하다'와 '완전(完全)케하다'인 것이다. 그리고 마태복음에 있어서 문제되는 것은 '율법에 대해 예수가 어떻게 관계하고 있는가가 아니라 예수에 대해 율법이 어떻게 관계하는 가인 것이다(Banks)' 한편 본문에 제시된 바 '완전케 하다'(* , 플레로오)는 말은 원래 '가득 채우다'는 뜻으로 여기서는 '그 깊은 뜻과 충분한 의미를 드러낸다', '모두 실행한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결국 본문은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하나의 큰 목적을 제시하고 있는 바, 예수께서는 율법이 목적, 의도하는 그 온전한 뜻과 속깊은 내용을 완전히 드러내 보이시기 위해
오신 것이다(NcNeile). 이러한 사실은 당신의 권위로써 그 율법의 각 조항을 문자적 해석 이상의 궁극적 목적과 의도를 밝히신 21-48절에서 확실히 알 수 있다. 실로 구약성경이 가지는 실제적이고, 지속적인 권위는 구약성경의 풍성한 성취가 되시는 예수의 품격과 가르침을 통해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가 의도하는 바는 구약의 율법을 폐기하거나 강화하려는 것이 아니고 구약이 지시해 준 자기 자신의 권위에 입각하여 구약성경의 율법이 지향하는 바를 보여 주려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이 구절이 갖는 기독론적인 의미를 간과할 수 없다. 예수는 자신이 구약이 지향하는 종말론적인 목표(目標)임을 드러내고 있으며, 따라서 자신이 구약성경에 대하여 유일하게 권위있는 해석자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를 통해서만 구약성경의 근거를 얻고 의미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율법과 선지자가 가리키는 초점은 바로 예수였으니, 바로 이 점이 바울과 마태가 모두 의도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바울은 기독론적이고 종말론적인 해석을 통하여 구약성경에 접하고 있는데, 이러한 구약 해석의 기초를 놓은 분이 예수라는 점이 본 복음서에 의하여 분명해지는 것이다(Carson
====5: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멘 가르 레고 휘민) - '믿을 수 있는'이라는 말을 헬라어로 음역한 것이다. 구약에서는 이 말이 '틀림없이', '진실로'라는 부사로 자주 사용되었으며, 문장의 마지막에서 그 문장이 진실이거나 또는 진실임이 증명될 수 있다는 것을 보증하는 의미로 사용된 용례가 자주 보인다(기도에서 마지막에 '아멘'으로 화답하는 경우). 그리고 이 말로써 문장이 시작되기도 한다(렘 28:6; 계 7:12;19:4;22:20). 또는 '아멘'이 응답으로 쓰이는 경우도 있다(신 27:15-26; 고전 14:16; 계 5:14). 어쨌든 예수께서 하신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란 말씀은 당신의 절대적 권위에 입각해 어떤 한 진리를 단정적으로 선언하실 때 흔히 사용하셨다.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 이는 '세상의 종말까지는'으로 번역될 수 있는 말로서 예수의 재림을 지향한 표현이다. 진정 세상 종말까지는 율법과 선지자는 폐해질수 없다는 것이 예수의 단정적 선언인 것이다. 일점 일획(一點 一劃)(* , 이오타 헨 에 미아 케라이아). '일점'이란 히브리어 문자에서 가장 작은 글자인 '요오드'(* )를 가리키며 헬라어로는
'이오타'(* )정도의 가장 작은 문자를 뜻하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일획', 즉 '케라이아'가 무엇을 가리키는가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다. 일획에 대하여 슈바츠(G. Schwaz)는 히브리어 문자 '와우'(* )라고 하고, 휠슨(Filson)과 렌스키(Lenski), 알렌(Allen), 잔(Zahn)은 비슷한 히브리어 문자들(* ; / ; / ; )을 구별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작은 획이라고 이해한다. 그리고 타스커(Tasker)와 슈니빈트(Schniewind)와 슈바이처(Schweizer)처럼 순수히 장식적인 획이었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락스(Lachs)는 가장 작은 글자의 가장 작은 부분을 가리키기 위하여 '일점'과 연결지어서 사용된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어떤 경우든간에 예수는 여기에서 구약성경이 '붓 한번 살짝 움직인 정도'의 아주 조그마한 내용조차도 모두 권위를 갖는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같은 예수의 생각이 구약성경에 대한 최상의 견해이다.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 이는 분명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진 새 세상에서까지도 율법의 권위와 그 효력성은 계속될 것임을 시사한다고
볼 수 있다(24:35; 막 13:31). 그러나 이것으로써 이 구절의 의문점이 완전히 풀리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문자적 측면에서 예수께서는 안식일을 범하셨고(12:8), 이혼(divorce)에 관한 모세의 규범을 거부하셨으며(5:31, 32), 특히 음식에 관한 규정을 무효화시키셨었다(15:11). 그렇다면 땅이 지속되는 한 율법의 한 획도, 나아가 경건한 필사자(筆寫者)가 덧붙인 수식어 중 어느 하나까지도 없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마태는 어떠한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마태는 세상이 끝날 때까지는 율법의 어느 것도 없어지지 않는다는 엄격한 문자적 보존과 성취라는 측면에서 이해하기 보다는, 율법이 의도하는 것은 더욱 완전한 형태로 성취되며, 또한 모두 실제로 일어나고 실제로 이루어질 것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에서 일어나며, 어디에서 이루어지는가? 진정 그것은 예수의 가르침과 행위에서 그리고 그의 가르침과 행위를 계속하는 그의 제자들에게서 이루어질 것이다.
구원파에 대한 이단 결의, 출처: 현대종교
아래 사진 클릭시 확대가능합니다.
인터콥에 대한 이단성 등 결의, 출처: 현대종교
아래 사진 클릭시 확대가능합니다.
완전히 이단으로 판명된 곳, 사회적으로 이단이라고 널리 알려진 곳은 사실 전도와 파급력에 있어서는 약화되었다고 볼 수 있겠죠.
완전히 이단으로 판명된 것은 희석되거나 왜곡된 진리마저도 없는데, 구원파나 베뢰아는 희석되고 왜곡된 진리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미혹하는 파급력이 더 강할 수 있습니다.
교리와 성경해석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러한 문제들만 봐도 알 수가 있네요. 정통교리에서 벗어난 주장들이 왜 나올까요? 제 생각으로는 정통교리를 알지 못해서 이단적인 주장들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정통교리를 충분히 배우거나 접하지 못한 상태에서 비뚤어지고 설익은 해석들이 나온다고 봅니다. 그래서 신자들은 교회에 왔을 때 배움이 중요하고 그 배움을 실천하고 적용할 수 있는 건강한 신앙공동체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맞아요. 진리를 모르니까 이단이 되는 것 같습니다.
@노베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