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에서 가족이나 지인을 만나면 알아본다? 못 알아본다? 질문을 한 분을 보았는데요. 거기에 딱 들어맞는 답변은 아닐 수 있지만 어느 정도 연관이 되는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다'는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을 잘 설명할 실력이 없어서 해당 말씀에 대한 주석을 찾아 읽고 아래에 타붙해 올립니다.
마22:23-30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그 날 예수께 와서 물어 이르되 선생님이여 모세가 일렀으되 사람이 만일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에게 장가 들어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우리 중에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장가 들었다가 죽어 상속자가 없으므로 그 아내를 그 동생에게 물려 주고 그 둘째와 셋째로 일곱째까지 그렇게 하다가 최후에 그 여자도 죽었나이다 그런즉 그들이 다 그를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일곱 중의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죽은 자의 부활을 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바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무리가 듣고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더라 |
『IVP 성경주석: 복음서』
마 22:23-33 부활(막 12:18-27; 눅 20:27-40)
앞의 '시험'을 시도한 바리새인들과는 달리, ‘사두개인’들은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믿음이 전혀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권위적인 것으로 받아들인 유일한 성경인 모세오경에서는 사후의 삶에 대해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분야야말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우스꽝스러워 보이게 만들 수 있다고 느꼈다. 신명기 25:5-6에 기초한 이 '질문'은 진지한 질문이 아니라 부활이라는 새롭게 유행하던 신학적 사상을 조롱하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그 질문은 한 번 이상 결혼한 사람에게는 중요한 목회적인 쟁점을 제기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대답은 이중적이다. 제기된 특수한 문제에 대해, 예수님은 부활의 삶이 지상의 삶의 단순한 연장이 아님을 지적하신다(30절). 때때로 예수님의 이 말씀은 지상에서 결혼한 삶보다 천상의 삶의 행복이 덜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으로 읽히기도 한다. 그러나 정반대로 천상의 삶은 훨씬 더 풍성하다. 결혼의 배타성은 자녀를 낳을 필요가 있는,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에게만 적합한 것이다. 그러나 '천사들과 같은' 불멸의 삶으로 일으킴 받는 사람은 지상의 결혼 생활의속박이 정당하게 내포하는 제약과 질투 없이 사랑하는 관계를 계속 누릴 수 있다.
부활의 더욱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 예수님은 사두개인의 경전인 모세의 책들 가운데서 이 믿음의 기초를 찾아내신다(31-32절). 하나님이 이미 오래 전에 죽은 족장들과 관련해서 자신을 기술하시는 것을 보면(출 3:6), 지속적인 관계가 있음이 함축되어있다. 하나님이 백성과 맺은 언약은 죽음 때문에 끝나지 않는다.
『칼빈주석: 공관복음』
마 22:30. 천사들과 같으니라.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모든 면에서가 아니라 단지 현세에서의 온갖 연약함으로부터 벗어나게 되리라는 점에서 "천사들과 같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런 식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내세에서는 더 이상 연약하고 썩어져 가는 현세의 삶이 지닌 결핍들을 겪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누가는 내세에서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죽음이 없을 것이기 때문에, 이 땅에서와는 달리 종족을 번식할 일도 없게 될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천사들과 같게 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좀 더 분명하게 보여준다. 여기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악인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단지 믿는 자들에 대해서만 말한다.
그러나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왜 그리스도께서는 그 때에 그들이 “부활의 자녀"일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일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인가? 그것은 그들이 비록 육신의 썩어질 감옥에 갇혀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그를 믿는 자들에게 그러한 존귀를 이미 수여하시기 때문이다. 만약 하나님이 이미 우리를 "자녀"로 인정하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우리가 사후에 영생의 후사(後嗣)들이 될 수 있겠는가? 나의 대답은 이렇다. 즉,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몸에 접붙여질 때에, 하나님에 의해서 그의 "자녀로 받아들여지고, 성령은 이 양자(養子)됨의 “증인"이자 "인침"이며 "보증"이고 "담보"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이 확신을 가지고서거리낌 없이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를”(롬 8:15; 갈 4:6) 수 있다.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알지만, 우리가 그리스도의 영광으로 변화되어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보게” 될 때까지는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기"(요일 3:2)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아직 "하나님의 자녀”로 여겨지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새롭게 되었지만, 우리의 "생명"이 여전히 "감추어져"(골 3:3) 있기 때문에, 장차 그 생명이 나타날 때에 비로소 우리는 외인(外人)들과 진정으로 그리고 온전히 구별이 되게 될 것이다. 바울은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양자됨"이 마지막 날까지 연기되어 있다고 말한다(롬 8:23).
첫댓글 위 주석의 내용과 조금 다르지만 나름 참고할 만한 내용이 있는 댓글을 써주신 분(닉네임: pikafit)이 있었습니다. 그분의 글을 아래에 첨부합니다.
<천국에서 만나면 알아 본다. 못 알아 본다?>
1. 부활의 몸: 고린도전서 15장에서는 우리가 죽은 후 영원한 몸으로 부활한다고 말합니다. 이 몸은 지금 우리가 가진 육체와는 다르게 변화될 것이라고 합니다(15:35-44). 변화산에서 예수님과 함께했던 모세와 엘리야를 제자들이 알아본 사건(마태복음 17:3-4)은 부활한 자들이 서로를 알아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2. 성도들의 교제: 히브리서 12장 1-2절에서는 하늘에 있는 "큰 무리"와 "완전케 된 의인들의 영혼"이 함께 모여 있다고 말합니다. 이는 천국에서 성도들이 서로 만나 교제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계시록 7장 9-17절에서는 모든 민족과 언어에서 온 무리가 하늘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는 천국에서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도 함께 생활한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3. 영원한 관계: 마태복음 22장 35절에서는 예수님께서 "부활 때에는 혼인하지도 아니하며 혼인 받지도 않느니라 오직 하늘에서의 천사들과 같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천국에서의 관계는 지상에서의 관계와는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서로를 완전히 알 수 없는 관계는 아님을 시사합니다.
요한복음 17장 20-24절에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며 "내가 아버지께 간구하노니 아버지께서 저희를 하나로 합하여 세상이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보내심을 믿게 하옵소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천국에서도 서로 깊은 유대감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성경에는 천국에서 서로를 알아볼 수 있다는 내용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구절은 없지만, 부활의 몸, 성도들의 교제, 영원한 관계 등을 통해 추론해 볼 수 있는 근거들이 있습니다.
* 원 댓글 작성자: pikafit님
@노베 네, 원 댓글자(pikafit)님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성경을 세밀하게 읽고 신앙의 연륜이 있는 분 같습니다. 좋습니다.
@장코뱅 저도 읽고 새롭게 알아 갑니다.
위 포스팅의 성경 본문은 예수님이 직접 가르쳐 주신 영적 지식이기에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만물이 새롭게 될 때는 자손을 낳기 위해 결혼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부활한 신실한 자들은 다시는 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이 점에서 그들은 천사와 같이 될 것이다: 마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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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으로 예수님께 질문을 던지는 지도자 집단은 사두개인으로(22:23~33), 이들의 질문은 육체의 부활을 믿는 것의 불합리함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이들은 일곱 형제가 죽어 일곱 번 과부가 된한 여인이 있다고 가정한다. 이들의 질문은, 죽은 자들이 부활할 때 그 여자는 누구의 아내가 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들이 완전히 잘못되었다고 대답하신다. 이들은 성경도 능력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22:29)! 만물이 새롭게 될 때는 자손을 낳기 위해 결혼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부활한 신실한 자들은 다시는 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이 점에서 그들은 천사와 같이 될 것이다: 22:30). 예수님은 성경을 기반으로(출 3:6)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주장하신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죽은 지 오랜 후에도, 하나님이 여전히 이 사람들의
하나님이라고 언급될 수 있다면, 거기 함축된 것은 하나님이 그들을 최후의 부활 때 다시 살리시리라는 것이다(22:31~32). 마태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은 미래의 부활에 대한 약속을 변호하시면서, 현재의 로마 체제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통치가 임할 것이라고 암시적으로 단언하신다. 로마의 징세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과 마찬가지로, 여기에서 예수님의 메시지는 체제 파괴적 요소를 지닌다(Wright 2003, 419).
『베이커 성경주석: 신약편』, “마태복음”.
@장코뱅 부활을 믿지 않고도 종교적 특권층이 된다면 얼마나 어리석고 황당한 것이지를 알게 됩니다ㅠㅠ
마22:23-33 산 자의 하나님
<22:25> 고대 유대교 종파 중 사두개파는 부활을 믿지 않는 것으로 특히 유명했다. 바리새파의 후예를 자처하던 랍비들은 이런 견해 때문에 사두개파를 이단으로 규정했다(그러나 주후 70년경을 전후해 사두개파가 역사에서 사라져 버림으로써 더 이상의 논쟁은 생기지 않았다).
<22:24> 사두개인의 질문은 수혼과 관련된 것이었다. 고대와 현대를 막론하고 여러 문화권에서 발견되는 이 풍습(신 25:5을 보라)은 여성이 급료를 받아 생계를 꾸릴 수 없었던 특정 부류의 가족 중심 사회에서 과부들을 경제적, 사회적으로 보호해 주는 구실을 했다. 예수님 당시와 그 이후에 율법을 배우던 생도들은 구약의 이 법을 놓고 여전히 씨름을 했는데, 랍비들의 규정은 몇 가지 점에서 구약과 달랐다(예를 들어, 형수와 결혼한 뒤 낳게 된 자녀들을 시동생의 자식으로 간주했다).
<22:25-27> 사두개인이 유대교 경전인 토비트에서 빌려온 이야기를 보면, 의로운 여인 사라에게 질투심을 느낀 악마 아스모데우스가 일곱 남편을 연속으로 살해한다. 2세기 랍비 몇 사람은 두세 번 남편과 사별한 여인은 다음 번 남편이 다시 피해를 입지 않도록,
더 이상 결혼하지 말아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참고. 창 38:11). 교사들은 보통 유대 율법을 명확히 정의하기 위해 가상적 상황을 제시하곤 했다.
<22:28> 랍비 문헌에는 이교도와 변절자 그리고 사두개인처럼 랍비들에 의해 이단으로 정죄된 자들이 조롱조로 던진 질문이 수없이 많이 기록되어 있다.
<22:29-33> 천사들은 보통 번식도 하지 않고 (죽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었으므로 번식할 필요가 없었다). 먹지도 마시지도 않는다는 것이 당시의 통념이었다. '장가 든다'(marry)는 것은 아마 신랑에게, '시집 간다' (be given in marriage)는 것은 아버지의 주선으로 신랑과 약혼한 신부에게 각기 적용된 표현일 것이다.
바리새인은 적수인 사두개인과 논쟁을 벌일 때면 보통 모세의 율법을 근거로 부활을 입증하려 애썼다(심지어 어느 랍비는 율법의 한 구절 한 구절이 모두 부활을 가르친다고 주장했다. 참고. 또한 마카비서 7:18-19; 16:25;18:19). 예수님도 여기서 그렇게 하신다. 하나님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이들의 하나님이 아니시다. 실로 하나님이 사람의 죽음 이후에도 그들의 하나님이시라면,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은
죽음이 그들에게 최후의 운명이 되지 않게 하셔야만 한다. 이 시대 유대인들이 즐겨 낭송하던 기도문 중 하나는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에게 보여 주셨던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그들 세대에서도 여전하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다.
유대 교사들은 때로 상대방을 논박하기 위해 성경을 인용할 때 '가서 읽으라'와 같은 표현으로 성경에 호소함으로써 상대방의 논지를 논박했다.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는 논박에는 더 엄중한 책망이 담겨 있다(22:31: 참고12:3: 19:4; 21:16, 42).
『IVP 성경배경주석』, “마태복음”.
@장코뱅 성경배경을 주석한 것 치고는 내용이 생각보다 평이한 느낌이 듭니다.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면 더 이상 성별이 필요 없기 때문에 지상에서의 가족 관계가 연장되지는 않지요. 누구의 배우자나 부모, 자녀의 관계가 아닌 개개인의 신분으로서 존재하겠죠. 서로를 알아볼 수 있느냐의 문제는 많은 분들이 그럴 것이라고 추론만 조심스럽게 할 뿐이지 확실한 건 없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기에 오해한다고 하셨죠. 여기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다 라고 하신 것은 과거, 땅에서의 일의 연장이 아닐 거라는 맥락일 것 같습니다. 하늘나라와 새 예루살렘성은 새 하늘과 새 땅으로 표현되며 모든 눈물을 씻겨주시고 최후 심판을 거쳐서 들어가는 곳이죠. 우리가 모세나 엘리야, 바울, 요한 사도들을 알아볼 수 있을까 하는 것도, 굳이 말하자면 현재의 인식과는 다른, 모든 것이 리셋된 상태에서 일이 진행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부활 이후의 상황은 예수님께서도 최소한으로만 정보를 주신 것 같습니다.
네, 공감합니다.
공감합니다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