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바로 밑으로 남동생 둘이 있다. 두살 터울로 .. 고향이 군용비행기가 쉭쉭 거리며 오르고 내리는 군산비행장 바로 코앞이었고 친정아버지가 군산비행장에 근무하다보니 어려서부터 피자 통닭 감자튀김 토마토케챱 버터 전유 과일통조림 같은 것을 일상으로 먹고 자랐다.
주말이면 종이배 같이 생긴 파란베레모(공군)에 파란군복 갈색베레모(육군)에 위장복을 입고 눌러 쓴 미군들이 여섯개로 엮인 맥주캔이나 양주.피자.통닭.비프스테이크들을 노란 봉투에 담아 배낭에 짊어지고 오토바이를 타고 미스터 고~(친정아버지)를 부르며 한 둘 씩 모여들기 시작해 아래채 마당에서 모닥불을 피워 놓고 두런두런 얘기들을 나누다 컨트리송 때창을 부르며 어깨동무를 하고 포크댄스를 추기도 하며 놀다 어두워지면 돌아가고 그랬다.
방학 때 무료함에 마루에 앉아 있을때면 쌍발군용헬기가 지붕을 날릴것처럼 가까이 다가 와 헬기문을 열어 젖힌 채 미군이 다리를 바깥으로 걸터 앉아 "헤이 베이비~" 하고 부르며 노란봉투를 마당에 던져주고 가곤 했다. 열어보면 쵸컬릿부터 버터통 빨간 실크스카프까지 지들 맘 내키는데로 담아 갖고 와 떨어뜨려 주고 가곤 했다.
그 중에 어머니가 주방에서 요긴하게 사용하는 것이 깡통에 든 버터였다. 그때만해도 식용유가 일반화되지 않았던때라 제사.명절이면 돼지비계를 녹여 가며 전을 부쳤었는데 고소한 버터로 전을 부치니 일도 수월할뿐아니라 맛도 좋아 어머니가 무척 좋아했었던 것 같다.덕분에 나도 고딩졸업때까지 밥도 해 보지 않았었지만 버터를 팬에 듬뿍 퍼 넣고 김치를 잘게 썰어 밥만 넣고 볶아 먹는 김치볶음밥은 어려서부터 잘 만들었다.친구들이 놀러와도 김치볶음밥 만들어 둘러 앉아 먹으면 다들 맛있게 잘 먹고 갔다. 그것을 기억하는 친구들이 지금도 가끔 그 김치볶음밥을 말한다
그 버터 깡통이 지금 생각해보면 5키로 정도 되는 크기 였었던거 같은데 버터를 다 먹으면 어머니가 뒤란 장독대앞 처마밑에 깨끗이 씻어 깡통을 쌓아 놓았다. 뭐 딱히 쓸일도 없는터라 그냥 모아두는 거였을텐데 이 깡통이 설날이 지나고 정월 보름이 다가오면 제 몫을 톡톡히 하기 시작했다.
우선 내 남동생들은 초딩 4학년일 때 태권도 초단이었던 이 누나한테 꼼짝을 못했다. 하여 구슬치기.딱지치기 뭐 이런걸 하면 거의 다 내가 싹쓸이 했고 싹쓸이 한 구슬 딱지는 댓가(심부름 같은거)를 받고 조금씩 다시 나눠주곤 했다. 그래서였는지 모르겠지만 무슨 놀이나 뭐 아쉬운게 있으면 엄마보다 우선 나한테 부탁하곤 했다. 그리고 나는 어려서부터 자찬(?)이겠지만 손으로 하는 것은 뭐가 됐든 다른 애들보다 쪼끔 더 잘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쥐불놀이 하러 가겠다는 남동생들을 위해 그 버터 깡통에 망치.대못.철사.노끈까지 철저히 작업 준비를 해서(내딴에는 연장창고를 뒤져서)깡통 옆.밑면을 열과 줄을 맞춰 대못을 대고 망치로 골고루 돌아가며 구멍을 낸 후 윗쪽 양 옆은 너댓번 붙여 구멍을 좀 크게 내서 뺀찌로 철사를 적당히 끊어 고리를 만들고 노끈을 두겹 새끼 꼬듯이 꼬아 휘휘 돌릴 수 있을 정도 길이로 딱 맞게 쥐불놀이 깡통을 만들어서 쥐불놀이하는 논으로 내보냈다. 해가 바뀔때마다 그런 깡통도 없고 만들어주는 누나도 없는 동생 친구들은 내 동생들을 따라 와 자기도 하나만 만들어 달라고 졸랐다. 간 크게도 그때 나는 뭐줄건데?..하고 물어보고 나서 사탕이든 딱지든 구슬이든 내 동생들이 고개를 끄덕이면 마지못한 척 만들어주곤 했다.
그러고보면 난 초딩 어렸을적부터 어머니가 "민영아 쟈 좀 봐라~"하실때마다 "너 일루와~"하고 줘 패기도 하고 저녁이면 "이 딱고 와.일기 써.숙제 했어? 갖고 와~" 으르딱거리는 누나였지만 동생친구들이 함부로 하지 못하게 형 노릇 해주고 먹을거 챙겨주고 딱지 만들어 줬지.구슬 떨어지지 않게 다 따줬지.연 만들어 줬지.썰매 만들어 줬지~ 참내 나 말고 또 이런 누나 있었음 나와보라 그래 ㅎ
♡♡아~ 대보름날이다.너가 떠난지도 한세기가 더 지나 삼십오년의 세월이 흘렀다. 누나 잔소리 때문이었는지 어려서부터 항상 깔끔하던 너가 쥐불놀이 하며 바지를 태우고 들어 와 "엄마한테 혼날텐데 어떡해 누나~"하며 달기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너를 "괜찮아 바지 많으니까 "하며 바지 갈아 입혀 다시 내보내고 그 바지를 소 여물 끓이는 아궁이에 갖다 넣어 버렸던 기억이 엊그제 같이 생생하구나. 어렸을적 보름날이면 큰 시루에 팥찰밥을 해 몇날 며칠 찰밥을 먹었었는데 너만 유난히 콩을 골라내는 걸 보며 흰 쌀밥을 항상 따로 해 주는 엄마한테 "걍 굶게 냅두지 참내~" 궁시렁 거리며 냅다 눈을 흘겨주면 금새 또 눈물을 뚝뚝 흘리던 너~ 지나고보니 미안하구나.몸이 안 받아 식성이 그런걸 그때야 어디 내가 그런걸 알았었겠니?.. 육십 중반인 니 또래들을 보며 가끔 니 모습을 그려보곤 한다. 담에 만나면 으르딱거리지 않을게 누나도 이제 나이 먹으니 많이 약해졌단다 진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