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수신료 징수 제도 개선 (3)
1980년 12월 1일에, 시험방송으로 시작된 컬러TV 방송개시로 인해,
시간이 지나면서 컬러TV 수상기 보급도 증가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1986년 7월 1일부터 흑백 TV를 소지한 시청자들께는 시청료 800원을
면제하였다.
그런데, 시청료 거부 운동이 1985년부터 시작되고, 1986년에는 그
절정을 이루면서 수신료 징수는 일대 위기에 봉착하였다. 그런데도 이
거부 운동은 이렇다 할 마무리가 없이 1990년 대로 접어들었고, 내가
복직한 1993년도 무렵에는 수신료 징수율이 대략 75% 수준에 불과하
였다. 이는 곧 우리나라 시청자들 4명 중 1명은 수신료를 납부하지 않는
다는 의미였다.
물론, 이 중에는 국가유공자나 장애인과 극빈 계층에 해당하는 분들은
관계 법령에 따라 면제를 해 드렸지만, 그래도 상당수 TV 수상기 소지자
들은 수신료를 의도적으로 납부하지 않고 있었다. 이는 수신료 납부의
공정성과 형평성에 어긋나는 불공평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당시의 KBS
형편에서는, 이 수신료 납부제도 개선이 시급하고도 중요한 과제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이러는 와중에,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기형적인 제도로 전락해 버린,
이 TV 수신료 징수제도를 정상화하려는 노력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 중요한 개선 방향은, 한전의 전기요금에 수신료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었다. 이 방안에 대해 한전과 KBS는 적극적으로 환영
하였지만, 이를 강력하게 반대하는 단체도 등장하였다.
바로 기존의 통합공과금 징수제도 하에서 운영되고 있는 통합요금 수납과
관련된 전산 회사와 이 회사들의 노동조합이었다. 특히, 해당 회사들의 노동
조합들은 이에 대해 조직적이면서도 지속적인 반대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렇지만 수신료 징수제도 개선이 없으면 KBS의 미래는 잿빛으로 암담할
수밖에 없다는 냉엄한 현실을 직시하며, '문민정부'하에서의 제도 개선이
최적기(最適期)라는 판단하에 사장을 중심으로 전사적인 대응을 추진하였다.
그러면서, 이 제도의 추진 과정에 국민 여론의 추이가 지대한 관심사로 떠
오르게 되었다. 출범부터 '문민정부'임을 자임(自任)한 정부 쪽 입장이 더욱
그러했다. 이 수신료 문제로 해서 국민의 여론이 나빠진다면, 국정 초기부터
새 정부는 온갖 개혁 과제에 대한 추진 동력에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려하였다.
그러니, 시청자들의 여론 형성에 적지 않은 역할을 담당하면서 영향력 있는
시청자단체들과의 우호적인 협력이 절실하였다. 이는 또한, KBS가 진정한
공영방송으로 도약해 나가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실현해 나가야만 하는 시대
적인 책무이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