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보다도 늦장부리는 혁수가 오늘 아침 당번이었다.
더 일찍 일어나 밥준비를 해야 하는데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고있다.
같은 방을 쓰는 우리 남자들이 아침 식사시간이 더 늦어지기 전에
깨워줬어야 했는데 개인적인 일에 매몰되어 신경쓰지 못했다.
결국 아침밥을 늦게 먹게 되었다.
이 날 거문오름을 가기로 하였으나, 또 착오와 실수로 예약이 늦어지고
또 예약석이 꽉차는 바람에 다음으로 미룰 수밖에 없게 됐다.
일정이 무산돼 아무것도 안하고 쉬는 날로 보낼뻔 했으나
이렇게 하루를 아무것도 안하고 보내는 것보단
뭐라도 하면서 제주살이를 더 의미있게 보내는게 좋겠어서
전날 밤 하루 나눔 시간에 우리 모두는 치유의숲에 가는걸로 수정했다.
'치유의숲'이라는 이름대로 숲길을 걸으면서
우리 모두가 치유 받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치유의숲 내부에 엄부렁 숲이 있었는데
엄부렁의 뜻은 '어마어마하다'라는 뜻이다.
삼나무 기둥이 두껍고 솟아나 있는데 그 나무들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경사높은 계단길을 올라 정상에 도착했을 때
공간은 협소했지만, 확 트여 한라산이 보이는 경치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 고생한 보람도 있었다. 그렇게 바람을 맞고 있는 시간이 편안하고 좋았다.
그래서 치유의 숲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리아 선생님이 작년 제주 여행길에서
귤밭에 직접 유기농 농사를 짓고 있는 청년을 소개해주려고 했다가
날씨가 좋지 않고 시간이 안돼서 못 만났었는데 이번 기회에 꼭 소개해주겠다고
하례리로 가 그분을 만나뵙게 됐다.
그분께선 다른 일 때문에 멀리 계셨는데
우리를 만나기 위해 어렵게 시간을 내어 바삐 와주셨다.
그분의 애칭은 자몽이었다.
자몽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우리와 뜻이 같고, 훨씬 넓은 영역에서 활동하신다는 걸 알게 됐다.
924 기후정의행진 참여를 통해 귤밭을 일구게 됐다는 걸 알았을 때
이분의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모습을 닮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언제 한번 유준형과 같이 여행을 계획해
이곳에 와서 며칠 지내보겠다고 약속을 하며 헤어졌다.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