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토란국은 참 맛있다.
어려서 어머니는 토란국을 참 잘 끓여 주었다.
토란을 캐지도 않고 밭에 그대로 두었다가 눈이 오면 눈 속에서 토란을 캐다가 맨손으로 씻어서
국을 끓여주곤 했다.
알토란 하나씩을 먹을 때면 참 알토란맛이었다.
그렇게 어려서 토란국을 잘 먹었다.
나는 해마다 토란을 심는다.
사실 대는 나에게 별 의미가 없다.
사람들이 대를 먹는 것이지 하면 그러라고 다 나눠줘버린다.
그리고 난 알토란을 먹는다.
가을에 캐서 캐 오는 즉시 물에 득득 문질러 씻어
팔팔 끓는 물에 소금 한 줌 넣고 반만 익혀서 냉동실에 넣어두고 제사때면 알토란 국을 끓여 올린다.
알토란같은 자손이 되기를 기원하며
토란은 뿌리가 참 부드럽다.
그래서 생긴 말
대끄렁에 찧힌 사람은 아무말 안 하는데 토란끄렁에 찍힌 사람이 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이것은 더 큰 아픔을 참아내는데 찌끔 아픈 사람이 엄살 부린다는 뜻으로 쓰인다.
가끔 난 아무말 못하고 있는데 찌끄만 일로 동네방네 떠들고 곁에 사람을 험담 하는 사람들을 본다.
그럴 때마다 난 모모를 떠 올리며 그들이 하는 말을 잘 들어 준다.
내가 토란 이야기를 하면 자신의 토란에 대한 사연을 이야기 하던 분이 있었다.
정말 큰 아픔을 참으며 큰 살림을 하시던 분이다.
남편이 토란국을 참 좋아했는데 돌아가실 무렵이 토란이 한참 커가는 시기라 구할 수가 없었단다.
"토란국 한그릇 먹었으면 좋겠다."
눈물을 머금고 토란국 양념을 하여 가짜 토란 알을 만들어 넣어서 끓여 드렸단다.
"알토란 아니구만"
그리고 그 분은 그해 토란국을 드시지 못하고 돌아가셨단다.
가을
토란만 보면 못 드시고 돌아가신 남편을 떠 올리며 눈물이 난다고 하였다.
그래서 우린 가을에 만나면 꼭 토란국을 먹곤 하였다.
먹을 수 있을 때 먹자고
오늘은 아침부터 서둘렀다.
육포를 조금 챙기고 토란국을 끓이고 유자청을 만들고 호박식혜를 하고 냉이와 두부무침까지 만들었다.
그분이 좋아하시던 음식들이다.
집에 있는 것들로 잘 챙겨들고 갔다.
세상에 아파트 앞에 차를 대고 전화를 하니 오늘 오기로 한 날이 아니라고 하신다.
잊어버리고 있었나보다.
목소리에 기운이 하나도 없어서 밖에 외출도 삼가야 하는 상황이라 우리가 올라갔다.
우리는 그리 눈물 흔하게 울지는 않는다.
숨 한번 크게 쉬고 돌아설 뿐
짠하다는 말은 그럴 때 쓰는 말일 것이다.
한 때 200여명의 직원을 움직일만큼의
영향력을 가진 분이었는데
사람의 말년이란 참 힘빠지는 일이다.
육포 한조각 입어 넣으며 고개 끄덕끄덕 하시고
동아정과 한 조각 입어 넣고 드시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아렸다.
정작 토란국은 드시는 것도 보지 못하고 다른 일정이 있어 나올 수 밖에 없었다.